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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시의 은혜 (고후 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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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의 은혜(고린도후서 12:7-10)


“사람은 누구나 다 찌르는 가시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가시입니다. 가시는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평안하게 보이는 사람도 어떤 가시가 찌르면 괴로움과 아픔의 고통을 느낍니다. 본문에는 위대한 사도바울도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가시의 종류

1. 병으로 오는 몸의 가시 -

본문에 나온 사도바울이 시달리는 가시는 질병이었습니다. 눈병으로 고통이 심하여 그 병을 고치기 위하여 세 번이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쳐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가시들이 있습니다. 심장이 약하여, 위장이 나빠서, 관절이 아파서, 허리가 아프고, 머리가, 눈이 아파서, 손발이 저려서, 여러 가지 질병으로 가시처럼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시를 원망하지 말고 가시로 하나님을 붙듭시다. 그러나 그 가시는 꼭 필요한 은혜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인간관계로 오는 사람 가시 -

사람 가운데 항상 가시 노릇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가롯유다가 가시였고, 다윗에게는 사울이 가시였고, 야곱에게는 에서가 가시였고, 사라에게는 하갈이 가시였고, 한나에게는 브닌나가 가시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사단의 가시가 항상 따라 다닙니다. 바울에게는 핍박과 능욕과 모함이 여러 사람들을 통하여 왔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았고, 로마의 세력이 사단의 가시로 찌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 중에도 어떤 사람은 시어머니 가시, 어떤 이는 며느리 가시, 어떤 이는 자식들이 가시노릇하고, 어떤 이는 남편에게 얻어맞아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또 직장의 상사나 동료가 가시 노릇하고, 이웃에 있는 사람이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교회에는 교인가시가 있습니다. 가시에 찔린 사람이 치유받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찔러댑니다. 없던 가시도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가시를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3. 자신의 실수로 오는 죄책감의 가시 -

이것은 양심의 고통을 받는 가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한 것 때문에 일평생 새벽으로 닭 우는 소리만 나면 자신의 실수가 생각나며 양심의 고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큰 상처를 남깁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약점 때문에 수시로 찔림을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배우지 못한 것 때문에, 가난한 것 때문에, 못난 것 때문에 항상 가시에 찔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내가 실수를 안했어도 억울하게 일생 가시처럼 따라 다니며 고통을 주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가시는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가시를 주신 목적은 무엇일까요?

1. 겸손케 하려고 가시를 주셨습니다.(12절)

2. 더 큰 은혜를 위하여 가시를 주셨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가시를 주셨습니다.

롬8:18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아픔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습니다. 나의 아픔을 다른 사람이 채우고, 다른 이의 연약함을 내가 채워주며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가시를 통하여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선을 이루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시가 올 때 어떻게 할 것인가?

1. 기도하십시오. -

바울도 가시로 인하여 고통당함을 세 번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함으로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가시로 겸손케 됨을 알았고, 은혜로 주신 것을 알았고, 더 큰 능력이 약한데서 나옴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찌르는 가시가 있습니까? 교회로 달려나와 기도하십시오. 우리에게 나타나는 가시를 내게 족한 은혜로 바꿉시다. 더 큰 은혜를 풍성히 주실 줄 확신합니다.


2. 가시로 면류관을 만듭시다. -

바울은 가시 때문에 기도하였고, 기도하여 은혜를 받았고, 그 가시가 자신을 만드는 면류관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가시를 챙피하고 부끄럽게 여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하게 되었습니다(9절). 내게 주신 가시로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으니까 그것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가시면류관 쓰시고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로 승리하셨습니다. 땅위의 가시관이 하늘의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이 됩니다.

우리들도 가시로 인하여 고통과 괴로움 속에 원망과 절망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아 오히려 가시 때문에 내가 겸손해지고, 가시 때문에 내가 연단되어 강하게 만들어지고, 가시로 하나님의 부르심의 뜻을 이루어 면류관의 자랑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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