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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길을 가리라 [눅 13: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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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을 가리라 <눅 13:31-33>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 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눅 13:31-33>

인생은 나그네 입니다.
인생은 나그네이기에 먼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높은 산도 넘고 거친 들판도 지나야 되지요. 그러나 우리는 목적지를 분명히 알기에 어려운 길도 힘차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목적지를 모르고 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면서 가요.
왜 나그네 인생길 가면서 내 인생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데 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까? 정말 그게 알 필요 없는 일입니까?
그렇게 사니까 인생을 잘못 사는 거죠. 우리가 다른 건 다 몰라도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뭐냐, 어디서 와서 무얼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 지식은 좀 없어도 괜찮아요. 정말 귀한 지식, 인생을 바로 살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 지식만은 꼭 알아야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대답하지요.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하나님께로 가느니라.’ 우리 신앙인은 이것을 똑똑히 알지요. 그러니까 우리하고 저들하고 그것이 바로 다릅니다.
저들은 인생의 목적지를 모르고 가요. 알 필요도 없다고 하면서 살아요.
그러나 우리는 목적지를 분명히 알지요.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하나님께로 간다.’

오늘 읽어드린 이 말씀...
어느 날입니다. 그 바리새인들 중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이라고 다 나쁜 것이 아니고 그중에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고 가까이 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 큰일 났어요. 저 헤롯 왕이 예수님 죽이려고 해요. 그러니까 예수님 빨리 도망가세요.”
헤롯 왕이 누굽니까? 세례요한의 목을 소반에 담았던 악한 왕 아닙니까?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자기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서 자기가 데리고 사는 그런 나쁜 사람입니다.
“예수님 죽이려고 하니까 예수님 빨리 도망가세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저 여우같은 헤롯에게 가서 말해라. 나는 도망가지 않는다. 오늘, 내일, 모레 나는 할일이 있다. 귀신을 쫓아내야하고 병자들을 고쳐주어야 하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나는 예루살렘에서 죽는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의 길을 가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주님의 길이 뭡니까?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 지는 그 길을 가겠다는 겁니다. 예루살렘에서 죽겠다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환란과 핍박이 온다고 내가 나의 길을 가지 않고 도망갈 줄 아느냐?”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따라 간다고 하다가 환란과 핍박이 오면 가던 길을 돌이킬 때가 많아요. 그건 주님을 따르는 삶이 아닙니다.
주님은 헤롯의 핍박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의 길을 가리라.”
여러분, 믿음 생활하다보면 핍박이나 고난이 와요. 그 핍박이나 고난은 믿음생활의 적이 아닙니다. 원수가 아니에요. 가만히 보면 환란과 핍박은 믿음생활의 동지에요. 그 환란과 핍박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예수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를 핍박하고 거스려 악한 말을 할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거꾸로에요. 우리는 믿음 생활하다가 핍박하고 핍박을 받고 누가 나에게 거스려 악한 말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가던 길을 돌이켜요. 오히려 슬퍼하고 원망해요.

그런데 우리 주님은 내가 믿음의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너를 핍박하고 너에게 악한 말을 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래요. 우리 생각하고 반대이지요.
그다음에 우리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고하니 “하늘에서 너의 상이 크니라” 제가 늘 주장하지요. 우리 인생이 성공하려면 오늘만 보면 안돼요.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봐야되요. 오늘을 보지 말고 내 인생의 끝을 봐야되요. 내가 믿음 생활하다가 어려움 당해요. 그게 인생의 끝이 아니에요. 그것 때문에 나의 길을 돌이켜서는 안돼요. 왜냐 내 인생 끝에 주님께서 내게 주실 상을 쌓아두고 계시니까요.

예수님 따라가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에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넓은 길을 포기하고 좁은 길을 가는 것이 주님 따라가는 길이에요.
신앙의 길에는 넓은 길이 없어요. 십자가의 길은 좁고 힘든 길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왜 가는가? 이 좁은 길에 마지막에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예수님이 왜 예루살렘에서 죽겠다고 하십니까? 십자가의 고난을 주님이 왜 지겠다고 하십니까? 그 십자가 넘어 에 부활의 기쁨과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승천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십자가만 보지 말고 십자가 뒤에 있는 영광과 면류관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많은 성도들은 하나님께 이런 요구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 나 힘들고 괴로운 건 싫어요.
그러니까 나는 쉽게 넓은 길 갈게요. 복일랑 좁은 길 가는 사람이 받는 복을 주세요.’ 사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나는 그냥 편하게 믿을게 하나님 그 복 좀 다 주세요. 나는 넓은 길 갈테니까 하나님 좁은 길 가서 얻는 그 복을 좀 주세요. 십자가는 싫어요. 하나님 면류관만 주세요.’
나가서 십자가의 길, 주님 가신 길 따라가기 힘드니까 ‘나가서는 그냥 마음대로 살게요. 하나님, 복일랑은 좁은 길 가는 복주세요.’ 이게 요즘 많은 그리스도인의 생각이에요.
그러니깐 몇십년을 믿어도 날마다 제자리 걸음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에 태어날 때 다 사명을 줘서 태어납니다. 여러분 ‘나’ 라고 하는 존재가 이제 대단한 존재임을 여러분 다 아셔야 합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은 이 인류 역사상 당신 하나뿐입니다. 이 지구상에 그 수백억의 사람이 왔다 갔지만 나하고 똑같은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어요. 똑같은 인간이 두 번 태어난 적이 없어요.
이건 하나님만이 가능하신거에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무한하기 때문에 그 무한속에서 그게 나온 것입니다.
사람 태어나는 것이 이게 사람 작품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작품이에요. 작품인데 오직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에요.
여러분은 인류 역사가 아무리 오래 흘러가도 당신은 당신이지 당신 똑같은 사람이 다시 한번 나타나는 것이 아니에요.
이게 놀라운 일이거든요. 그럼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 땅에 이렇게 만들어 보내셨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고, 이게 사명이에요.
예수님 말씀하셨죠.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러니까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예수님 따를 자격이 없는겁니다.
여기서 십자가는 사명이에요. 사명. 십자가를 지고 그저 뭐 소풍가는 것처럼 어슬렁 어슬렁 따라 오란 말이 아닙니다. 쫓아오라는 거에요. 정신을 쏟아서 우리 주님 가신 길을 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 뒤를 따라 가는 거에요. 오늘 우리들처럼 게을러서 어슬렁 어슬렁 그렇게 가란 말이 아닙니다. 정말 주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 짊어지고 주님 가신 길 그게 나의 길이니까, 그게 믿음의 길이니까 그 길을 쫓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환란이 있다고 어려움이 있다고 물러서거나 돌이키지 마세요. 주님가신 길, 믿음의 길, 나의 길을 가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는 제법 사랑하는 척하다가 정말 주님을 위해서 내 땀과 눈물을 바쳐야할 때 돌아서는 사람 주님을 사랑하는 자도 아니고 주님의 길을 가는 자도 아니에요. 정말 믿음의 사람은 어떤 위험이이와도 나의 길을 가요.

오늘 말씀에도 보면 헤롯이 자기를 죽이려 할 때도 주님 나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낳게 하고 나는 예루살렘에서 죽을지언정 떠나지 않겠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이 없다. 교회에서 많이 봅니다.
교회일 좀 열심히 합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열심히 하고 싶은데 누구 때문에 못하겠어요.’ 무엇 때문에 못하겠어요. 한번 잘하고 정말 잘해볼려고 하는데요.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못하겠어요.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내가 믿음의 길을 가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을 하다가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내가 안하고 돌아섰다.
그럼 돌아선 내 모습을 보고 누가 기뻐할까요? 마귀가 박수치며 기뻐합니다.
하나님은 슬퍼하시는데... 무엇 때문에 누구 때문에 나의 가는 길을 돌일킬 수 있습니까?
그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에요? 아니에요. 하나님의 관계에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그르칠 수 없습니다.
정말 믿음 좋은 사람들은 무엇할지라도 나는 나의 길을 가리라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무엇이 없을지라도 바로 해요.
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못해요.
이게 다른 믿음인것입니다. 인생은 피아노 연주와 같아요.
작곡자가 작곡한 것을 연주하는데 잘할려면 작곡자의 생각을 이해해야 해요.
그리고 작곡자의 뜻대로 잘할 때 아름다운 연주가 되는 거에요.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인생을 바로 살 수 있는 겁니다.
작곡자 무시하고 자기 맘대로 연주하는 것은 연주가 아니에요 소음이지.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내 인생이라고 막 살아버린다면 그건 작품이 아니에요.
그건 쓰레기이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의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그게 뭐에요? 주님 가신 것처럼 우리도 믿음의 길을 가야될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중에 그런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나는 나이도 많고 내가 이제와서 깨달아서 뭐하겠냐고 그럭저럭 살다가지.’ 아니에요.
그것도 하나님 앞에 잘못된 생각이에요. ‘나는 하나님 일 하기에 늦었다.’ 그런 인생은 없어요.
하루에도 한 시간도 우리는 하나님의 큰일을 할 수 있어요. 여러분 주님 가신 길, 믿음의 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 바로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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