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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족 초청 주일]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 하라. / 욥 2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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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초청 주일>

† 말씀 : 욥기 22 : 21-23
† 제목 :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 하라.

사람은 누구나 평안을 원합니다. 인생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평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무덤으로 찾아온 여인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평안하뇨>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또 예수님께서 70인의 전도대를 파송하시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집이 평안 할지어다>라고 축복을 빌게 하였습니다. 이토록 사람에게 평안이 중요합니다. 부모와 자식이 불화 하여 평안이 없다면 불행한 가정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화목하지 못하여 평안이 없다면 참 불쌍한 인생입니다. 이웃과도 불화하여 평안이 깨어졌다면 그 삶이 여간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 사람의 마음에서 평안을 빼앗아 가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지나친 욕심입니다. 지나친 욕심은 마음에서 평안을 빼앗아 갑니다.
그리고 마음의 평정을 잃게 합니다.

두 번째는 질투심입니다. 남이 성공하고 잘되는 것을 보면 질투심이 일어납니다. 질투심이 일어날 때 평안을 빼앗기게 됩니다.

셋째는 분노입니다. 세상에서 분노할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분노는 기쁨과 평안을 빼앗아 가고 갈등을 낳게 합니다.

네 번째는 복수심입니다. 사람이 복수심을 가지고 있으면 평안을 빼앗깁니다. 복수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성을 흐리게 하고 혼돈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래서 무서운 일을 저지르게 하는 동기로 작용하게 합니다.

사람의 평안을 빼앗아 가는 요소가 세상에는 참 많습니다. 평안을 상실한 인생은 바로 설 수가 없으며 바로 사고 할 수 없고 바로 행동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잠 15:17절에 말씀하기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평안이 제일이란 말씀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서신은 모두 13권입니다. 그런데 이들 서신들은 그 서두에 반드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평안이 인간에게 제일 중요하다 이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반가운 소식이 무엇입니까? <나 잘 있습니다>입니다. 멀리 있는 딸에게서, 군에 간 아들에게서 <엄마, 나 잘 있습니다. 아빠 나 잘 있어요>이 말이 제일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평안이 깨어지고 무너지면 충격입니다. 큰 일입니다. 평안하지 못한 개인, 가정, 사회, 국가는 얼마나 큰 불행을 만난 것입니까?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평안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그러면 평안의 방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참 평안, 진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21절 말씀에 그 답이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 하라> 무슨 말 입니까? 인간이 평안하려면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할 때 평안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 하라><그리고 평안 하라> 오늘 이 말씀 통해서 은혜 받으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화목 하는 길이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가? 그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1.하나님의 교훈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마음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훈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둘 때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마음에 둔다”는 말은 피와 심장이 움직이는 곳 즉 생명의 중심에 있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의 참 뜻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중심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 말씀을 따라 행하고 생각하고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화목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들으셔야합니다. 군인이 언제 당당하고 떳떳합니까? 법을 지켰을 때입니다. 군인이 법을 어기면 도망자가 됩니다. 그러면 피해 다닙니다. 백성이 언제 당당할 수 있습니까? 법을 지킬 때입니다. 법 지키고 사는데 경찰이 무섭습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경찰이 있어 마음이 든든합니다. 자식이 언제 떳떳합니까? 부모님 말씀대로 행할 때입니다. 당당하게 아빠 엄마를 부를 수 있을 때가 언제 입니까? 아버지 어머니 말씀대로 움직일 때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이 언제 평안 할 수 있습니까?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말씀을 따라 살 때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언제 불행이 찾아 왔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을 때입니다.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아담과 하와에게 수치가 왔습니다. 공포가 왔습니다. 불안이 왔습니다. 요나라는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가라는 니느웨로 안 가고 반대쪽 다시스로 갑니다. 요나에게 공포가 왔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이 왔습니다.

옛날이라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1960년대 한참 월남전이 치열할 때 파병된 군인들이 월급을 이중으로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한국의 월급을 전에 받던 대로 받고 또 월남에서 전투 수당이라는 것을 받았습니다. 고국에 있는 아내들이 갑자기 많은 돈을 만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돈 관리를 잘 못해서 많은 사람이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흥청망청 돈을 쓰거나 바람이 나서 전쟁터에서 남편이 목숨 걸고 번 돈을 탕진해 버린 아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어찌 됩니까? 남편이 귀국 할 날이 가까워 오면서 두려움에 떱니다. (Expl) → 도망, 심지어 자살

하나님과 화목 하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교훈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말씀에 붙잡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훈은 우리 살리려고 우리 축복하시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붙잡히면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평안을 얻습니다.

2. 전능자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흥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전능자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못된 아들이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을 나갑니다.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지니 금새 방탕 생활에 빠졌습니다. 누구하나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 방탕 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 통제되지 않는 자유는 인생을 망치는 독약이 되는 것입니다. 허랑 방탕하면서 살았으니 얼마 못 되어 가진 것 다 잃고 망했습니다. 결국엔 가는 곳마다에서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으로 흘려간 곳이 돼지 우리였습니다. 그곳은 탕자가 가게 되는 가장 낮은 자리입니다. 탕자는 거기 앉아서 후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탄합니다. <지금 내 아버지 집에는 풍족함과 평안함과 따듯함이 있을 것인데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그 때서야 탕자는 비로소 아버지의 품을 생각합니다. 떠나온 집을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오열합니다. 회환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 기막힌 낮은 자리에 처해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품과 가정의 평온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다 탕자는 용기를 냅니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아버지 집으로 갑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탕자의 지혜입니다. 탕자는 정말 용기 있는 결단, 지혜로운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만약 집으로 가지 않고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되지 우리에서 자살이라도 했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 인생은 망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존심도 버리고 체면도 버리고 용기 있게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뜨거운 마음으로 맞아 줍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원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탕자에게 진정한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께 돌아와 아버지와 화목을 이루니까 마음에 평안이 회복된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탕자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탕자는 하나님 떠난 인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떠난 인생은 탕자와 같은 것입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언제나 불안 합니다. 집 즉 하나님 품을 떠나면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안정감이 없습니다. 제가 부흥회 인도하러 가면 천사 대접을 받습니다. 정말 어떤 때는 죄송한 마음이 들 정도로 과분한 대접을 받습니다. 최고의 Hotel에서 최고의 음식을 먹으며 지냅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아십니까? 왜 집 떠나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집회는 오지 말아야지 하면서 집에 돌아갈 날만 기다립니다.

나그네는 외로운 것입니다. 나그네는 슬픈 것입니다. 그래서 이북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천만금을 벌어도 북쪽 하늘 바라보며 우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인생은 전능자에게로 돌아가야 행복한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 있어야 평안한 것입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찍 돌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축복입니다. 정말 큰 축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쯤 돌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복입니다. 그런데 죽을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인생은 망한 인생입니다. 탕자가 돼지우리에서 고집을 부리며 나는 여기서 죽어 버리겠다 하면 죽는 거지 별수 있습니까? 그래서 무지한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죽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참으로 측은하고 불쌍한 인생입니다. 아버지 집이 있는데, 모든 것이 있는, 하나님이 있는데 그냥 그 인생을 돼지우리에서 끝내 버리는 사람, 불쌍하고 측은한 인생입니다.

3.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4절 이하에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 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며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보다 귀한 것이 있으면 안 되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 할 것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그를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로 얼굴을 들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머리를 들 수 있는 것은 그를 나의 아버지로 알고 의지 할 때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이 얼마나 놀라운 진리인지 아십니까? 인생이 26절 말씀처럼 <전능자를 기뻐하고 하나님께로 얼굴을 드는 길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즉 그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그의 아들이 될 때 진정한 화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 하라>
<그리하면 네게 복이 임하리라> → 27절, 28절, 29절
↘※ 내 맘속에 있는 참된 이평화는 누구도 앗아 갈수 없네
↘어린 아이에게 평화가 있습니다. 왜 엄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믿고 의지할 엄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 죄로 허물로 저주아래 있는 인생이 평안해 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면 되는 것입니다. (Expl) → 믿고 의지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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