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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 지수 높이기 / 시 50:23 ,엡 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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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감사 지수 높이기
  본문 / 시 50:23 ,엡 5:20-21
 
  우리의 두뇌는 이성적인 뇌와 감성적인 뇌로 역할이 나누어져 있는데 이성적인 뇌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을 담당하고, 감성적인 뇌는 감정을 담당합니다. 이 두 기능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갑니다.
  최근에는 지능 지수보다 감성 지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한 두 가지의 뇌의 기능이 있습니다. 믿음 지수와 감사 지수입니다. 믿음지수는 지성적인 뇌의 작용이라면 감사 지수는 감성적인 뇌의 작용입니다.

  믿음이 좋은 것 같지만 감사 지수가 낮은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이 아무리 좋은 것 같아도 감사 지수가 낮으면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의 믿음 지수보다 감사 지수를 크게 보십니다. 그래서 시 50:23절에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라고 했습니다.

  감사로 예배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사 지수가 어느 정도여야 할까요? 에베소서 5:20절에서 성도의 감사 지수가  어느 정도여야 할지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범사와 항상 입니다.
  범사는 사건이고 항상은 시간입니다. 때마다 일마다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감사 지수를 이 정도로 높일 수 있을 까요?

  ① 습관의 문제입니다.
  감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살 버릇여든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습관은 죽을 때 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습관을 어떻게 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의 모든 것은 습관의 문제입니다.
  잘못된 습관은 그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좋은 습관은 성공으로 이끌어갑니다. 술먹는 것도 습관입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습관입니다.
  죄를 짓는 것도 잘못된 습관에서 그렇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고쳐야 할 습관이 많습니다. 나에게도 고쳐야 할 습관이 많습니다. 제일 심각한 것이 일을 미루었다가 닥쳐서 처리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아주 잘못된 습관인데 그렇게 익숙해져서 그것이 편해졌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주보를 토요일 만드는 습관입니다.
  목회 칼럼도 토요일 쓰고 설교 작성도 토요일 합니다. 월-금요일까지 손에 안잡히다가 토요일 오후만 되면 순발력이 나옵니다.
  오래된 습관으로 발등에 불 떨어지면 순발력이 나오는 습관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심각한 잘못된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조금만 어렵고 힘들면 감사보다 불평이 먼저 나오는 습관입니다. 
  이제는 불평보다 감사를 먼저하는 습관을 들여보십시오.

  감사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에릭 캐스터너라는 사람이 친구와 밤새 기차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아침 여섯시가 되었을 때 피곤해 지쳐잠자던 친구가 벌떡 일어 나더니 아이구 수면제 먹는 것을 잊었네 하며서 수면제를 알알 먹고 또 자더랍니다.
  익숙해진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장실의 여비서가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있다가 노크소리가 나니까 "예 들어오세요" 하더랍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범사와 항상 감사하는 습관이 생겨져야 감사지수가 높아진 것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언제나 감사할 정도로 감사의 지수가 높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힘들어도 감사부터 합니다. 눈물이 나도 감사부터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②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의 욕심과 정욕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 다고 했습니다. 감사 지수를 "범사" 와 "항상" 의 단계까지 끌어올리려면 욕심과 탐욕을 절제하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4:11-13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이 말하는 일체의 비결이란 바로 예수님 때문에 만족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예수로 만족하는 마음을 가지면 감사의 수준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③ 긍정적인 생각이 감사의 지수를 높여 줍니다.
  불평이나 원망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감사는 긍정적인 생각에서 나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일에 긍정적인 사고를 가져야 감사의 지수가 높아집니다.
  유대인들은 자녀 교육을  할 때 긍정적 사고와 비전을  강조하기 위해 다윗이 골리앗과 싸운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사울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을 싸워 이기기에 너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두려움에 떨며 감히 한번 싸워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을 생각할 때 자신의 돌팔매가 빗나가기에는 골리앗의 몸집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고 용감하게 덤벼서 이겼다는 것입니다.
  의식의 출발점이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불평의 열매를 맺습니다. 모든 것을 안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주 부정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희망을 찾고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어 감사를 하는 것입니다.
 
  ④ 받은 은혜를 크게 헤아릴 때 감사의 지수가 높아집니다. 
  신 16:10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높은 감사 지수를 가지고 하나님께 예물 드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네 힘을 헤아려... 라는 말은 네가 받은 복을 헤아려... 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에 받은 은혜는 쉽게 잊고 현재 누리고 있는 복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리고 현재 내게 없는 것들 때문에 힘들고 속상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때로 힘들고 어려울 때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이 지금까지 주신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나의 어떤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안다면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4대 감사 제목’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개나 소나,당나귀로 태어나지 않고 인격과 이성을 갖춘 존재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는 철학, 정치, 예술, 학문이 살아 숨쉬는 문명국가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셋째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변변한 글 한줄 남기지 않았으나 플라톤으로 인해 위대한 철학자로 부상했습니다.
  넷째는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을 정도로 봉건적이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은혜를 감사해 보았습니까?
  이렇게 좋은 나라 우리 대한 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양정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 것을 감사해 보셨습니까? 내게 아내를 주시고 남편을 주시고 자식을 주신 것을 감사해보셨습니까?  받은 은혜를 헤아려 감사할 때 우리의 감사의 지수는 높아질 것입니다.

  ⑤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면 가능합니다.
  본문에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범사와 항상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평생 무거운 질병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의 입에서 원망과 불평이 아닌 감사가 나올수있을까요?
  평생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야 될 어린 장애아를 두고 씨름하는 부모의 그 입술에서 감사가 나올수 있을까요?
  이력서를 수십 통 써 가지고 다니면서 취직을 해보려고 하지만 회사에서 면접 한 번 하지 못하고 연거푸 퇴짜를 맞는 젊은이의 입에서 과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나올수있을까요?
  내가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범사에 항상 감사하라는 이 말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이상론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고 했다면 분명 무엇인가 있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해답이 살전 5:18절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고 기록되었고 에베소서 5:20절에서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고 기록 되었습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리고 예수님 이름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라는 말을 이름 때문에로 바꾸어도 전혀 잘못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감사해야 할 이유 그리고 감사 지수를 높일 수 있는 길은 예수 이름 때문입니다.

  예수 이름은 우리의 구원의 이름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죽고 내게 생명을 주신 이름입니다.

  즐겨 부르는 복음송이 있습니다.
  내가 써야 할 가시관을 대신 쓰고 가신 주님 내가 맞아야 할 채찍을 날 대신 맞으신 주님
  사랑의 주님 사랑의 주님 이 죄인을 위하여 주님의 사랑 주님의 은혜 어찌다 갚으오리까
  탕자처럼 방황한 나를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이제는 내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르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신 주님을 생각하면 왜 감사하지 못하겠습니까?

  날 대신 채찍 맞으신 주님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 만큼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100평 짜리 아파트에 살아도 이런 감사가 없으면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13평 짜리 아파트에 살아도 예수 모시고 감사하고 살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감사 지수는 높을 수 록 좋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라고 노래한 것처럼 우리도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이름으로 약속되어졌습니다.

  송명희 시인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로 온 몸이 비비 꼬여서, 말 한마디를 하려고 하면 죽다 살아나는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해야 할 정도로 일급 장애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시를 썼는지 모릅니다.
  그 시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가슴에 저미어 오는 감동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를 생각하면 자신이 지고 있는 십자가가 가벼워짐을 느낀다" 고 노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쓴 시 가운데 "나"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못하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뇌성마비로서 남이 가진 것의 90%를 못 가진 자매가 어떻게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그리스도가 그의 마음을 가득히 채웠기 때문입니다.  남이 가지고 있는 자기에게 없는 것 많으나 그러나 남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자기에게만 있을 것을 말하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양하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누가 그로 하여금 이런 노래를 하게 하였을 까요?
  바로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부자가 자신이 부자인 것 때문에 감사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건강한 사람 중에 진정 감사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 보셨습니까? 다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자기가 잘나서 얻은 것인 줄 생각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누구에게서 나오는지 아십니까?
  진정 눈물나는 감사는 가난하고 고달픈 인생 길을 가면서도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 삶이 힘들고 버겁지만 주님과 동행하며 위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입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항상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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