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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벧전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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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벧전 1:3-9
 
우리 그리스도인의 진정성(眞正性)을 나타내는 표지들로는 사랑과 섬김, 또 희생과 온유함, 거룩함과 순결함 등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두드러지는 표지 중의 하나는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환경에 따라 치우치는 기쁨이 아니라, 항상 기뻐하는 기쁨이요, 고난과 시련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기쁨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기뻐한다’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인 ‘카이레인’이라는 단어가 72회나 나오며 또 ‘기쁨’이라고 하는 명사에 해당하는 ‘카라’라고 하는 헬라어 단어는 60회나 나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우리 기독교는 믿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종교이며 또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기뻐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이며, 예수님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좋은 교회,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교회는 기쁨이 넘쳐야만 합니다. 초대 교회는 오늘날의 교회보다 가난했고 수많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들은 기쁨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어떻게 기뻐했다고 했습니까? 예. 본문에 보면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벧전1:8). 베드로 전서가 기록되었던 때는 폭군 네로가 기독교에 대해서 핍박하던 때였습니다. 그 대핍박의 기간 동안에 기독교인들은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원형 경기장에서 짐승들의 밥이 되어 죽어 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도까지는 되지는 않아도 많은 기독교인들인 직장에서 쫓겨난다든지 재산을 압수당하고 고향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난의 시기에도 그들은 어떠했다고 말합니까? 6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고 하였으며, 8절에 보면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했습니다. 즉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불같은 시련과 환난 가운데서도 크게 기뻐했는데, 그 기쁨은 어떤 정도의 기쁨이었는가 하면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이었다고 사도 베드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할 수 없는’이란 말이 영어로는 ‘unspeakable’ 또는 ‘unexpressible’로서 말로서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란 말입니다. 왜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까? 그 기쁨이 너무 크고 너무 영광스럽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도무지 기뻐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 누리는 기쁨이기에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기쁨이라고 하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극심한 시련과 환난 가운데서도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 것이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자태였습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자태입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그러한 신앙의 자태로 말미암아 마침내 로마 제국과 세상도 굴복시키고 만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초대 교회 성도들이 맛보고 누렸던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그 기쁨을 맛보아 알아야 할 것이며 그러한 기쁨을 얻기까지는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말고 그 기쁨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기쁨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산 소망’을 붙잡고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극심한 환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언제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목숨을 빼앗길지도 모르는 위험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그들의 목숨을 빼앗긴다 해도 그들의 영혼은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화롭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가졌던 산 소망입니다. 다른 것에는 소망을 두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더 높아지거나 부유하게 된다거나 사람들에게 명예를 얻는 등의 일들은 그들에게는 사치한 일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생명을 부지해 나가기가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위축되거나 슬퍼하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크게 기뻐했습니다. 마10:28에서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만,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의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시련과 고난들을 통하여 그들의 믿음이 더 연단되어 자기들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더욱 아름답게 될 것을 바라보며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바라보며 붙잡았던 산 소망입니다. 산 소망이라는 말의 반대말은 죽은 소망, 또는 썩어질 소망이 되겠습니다만, 오늘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은 그런 썩어질 소망 때문에 싸우고 다투며 살아가는 것이며, 그 썩어질 소망으로 인해서 슬퍼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속한 산 소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초대 교회 성도들의 그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을 맛보며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을 누리려면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하는 가운데 그 기도 속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구합니다만, 막상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간구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물질과 건강을 구하며, 자식들 잘 되게 해 달라는 등등의 기도는 많이 하면서도 하나님을 더 알게 해 주시고, 하나님을 더 만나게 해 달라고 하는 등의 하나님 자신이 목적이 되는 기도는 부족한 것이 현대인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기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런 간구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고, 하나님이 거기에 대해서 응답해 주시기도 합니다만, 자칫 그런 기도만 하다 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수단으로 여길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간절하게 간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암5:4과 암5:6에서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형식적인 종교도 있었고 또 나름대로의 종교적 열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자신을 구하거나 찾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그저 자기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고 자기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신으로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너희는 나 하나님을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살리라”고 하신 것입니다만, 오늘도 우리의 신앙과 기도에서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알기를 소원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의 그 지각에 뛰어난 사랑과 은혜를 더욱 알기를 원하는 소원을 품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하나님 한 분만을 가장 큰 소원으로 삼고 찾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알기를 바라며 하나님과 더욱 깊이 사귀기를 구할 때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당신을 체험하게 하시며 당신의 임재와 영광으로 채워 주시는 그 경험을 가리켜서 우리는 성령 충만, 또는 성령 세례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성령 충만이란 하나님 자신으로 우리의 심령이 채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는 체험이며,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다가 이제는 눈으로 뵙게 되는 체험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영적인 체험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지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심령이 채워질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것들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영광스러운 기쁨을 맛보게 되며, 그 기쁨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의 현실과 환경을 따라 우왕좌왕하며 희로애락에 빠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도 기뻐하며 즐거워함으로써 세상을 이겨 나가는 적극적인 성도들이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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