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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삼중의 감동체험 (왕상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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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왕상 3: 4-5
제목 : 삼중의 감동체험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저는 말씀을 증언할 때마다 청중들에게 문안을 여쭙니다. 그리고 청중들이 그 문안을 받아 “좋습니다” 하고 응답하도록 유도를 합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서 7년 정도 설교목사로 있을 때, 설교하기 전에 온 교우들을 향해서 “오늘 아침 어떻습니까?” 하고 문안을 여쭈었습니다. 그 때 온 교우들이 “좋습니다” 하면 열심히 증언을 하고 “별로예요” 라든가 별 대답이 없으면 우물쭈물하다 내려가고 맙니다. 한국 사람들은 사물놀이를 잘 하는데 저절로 “좋-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만들고 난 뒤에 “좋다”고 하셨고 사람을 만들고 난 뒤에는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어요. 하나님께서 일곱 번씩이나 좋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좋다고 말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섭섭해 하셔요.

  사실 우리에게는 좋지 않은 일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 신앙인은 “좋습니다” 라고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표정이 바뀝니다. 얼굴에 미소를 띠게 됩니다. 표정이 바뀌면 태도가 바뀌고, 태도가 바뀌면 행동이, 행동이 바뀌면 생각이 바뀝니다. 21세기에는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됩니다. 새 세계에 새 플랜으로 적응해야 하는데 그것이 “좋습니다”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 오늘 아침 어떻습니까?”하고 문안을 여쭈면 여러분은 한 목소리로 “좋-습니다” 하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표정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뀌었지요? 여러분의 태도가, 행동이, 생각이 바뀌어서 새 세계를 향해 웅비하고, 자긍심을 가지고 새 세계의 일군들이 되어 크게 역사하는 나날이 여러분에게 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솔로몬이 왕이 되어서 1천 번 기도를 했고 하나님을 체험했다는 내용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이 무슨 새로운 뉴스냐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오늘 본문은 특별히 감동이 넘칩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은 기적입니다. 그 당시 형편을 생각해보면 다윗왕의 아들들이 기라성처럼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그 아들 중 말째 중의 말째인 솔로몬이 무슨 재주로 왕이 됩니까? 더구나 솔로몬은 다윗이 밧세바와의 불륜관계에서 난 아들입니다. 다윗의 맏아들은 다윗이 죽기 전에 벌써 왕좌를 찬탈하려는 모의를 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셋째 아들은 왕궁을 점령하고 다윗을 내쫓고 난장판을 만들었지요. 결국엔 압살 당했는데 그래서 그 아들을 압살롬이라고 한다더라고요. 넷째, 다섯째... 다윗의 아들들이 즐비한데 무슨 재주로 솔로몬이 왕이 된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왕이 되었습니다. 밧세바가 원격조종을 했고 나단 선지자가 기도로 잘 받들어서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럴 때 솔로몬이 느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순간 솔로몬은 완전히 감동의 도가니에 휩싸였겠지요. 내가 왕이 되다니! 그리고 솔로몬이 제일 먼저 한 것이 1천 번제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1천 번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온 백성이 감격할 수밖에 없지요. 왕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왕이 되고 난 뒤 기도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솔로몬이 그만큼 감동했고, 그 감동을 행동으로 옮겨 1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온 백성이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감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복하셨다는 것은, 솔로몬이 자신의 감동을 몸으로 증언하니 온 백성이 이런 왕은 처음이다 하고 감격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번에는 하나님이 감복하셨다는 것입니다. 감복이란 감동해서 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만든 말입니다. 모두 ‘감’자 돌림입니다. 감동하면 그것을 사장시키지 않고 증언해서 다른 사람들을 감격시키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감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증언의 제목을 ‘삼중감동체험’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한동안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주제로 제 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저는 최근에 이 성경은 감동의 책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을 체험하고 감동해서 그 감동을 증언했고, 그 증언한 내용을 우리가 읽고 우리도 감동하고 그 감동을 증언하니 다른 사람이 감격하고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감복하시더라는 내용이 신구약을 통해서 즐비하게 있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감동해보셨습니까? 제가 45세 된 남자 분에게 “최근에 감동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했더니, “감동이요? 저는 대학 합격증을 받고 감동한 후로 한 번도 감동해본 적이 없어요. 감동이 밥 먹여주나요?” 하는 겁니다. 여러분, 그분 얼굴이 어떨 거라고 상상하십니까? 새까맣습니다. 골프 치느라 그런 것이 아니라 감동체험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감동체험을 못하면 몸이, 정신이, 영혼이 무너집니다. 인간이 진정 건강하려면 그 영혼이 성령을 체험하고 감동해야 합니다. 정신이 맑고 깨끗해서 지성과 감성이 발달하면 육체도 강건해지고 그러면 물질의 세계를 정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행해서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사는 삶, 그것이 인간의 진정한 삶입니다. 여러분은 최근에 크게 감동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혹시 언제 누군가를 감격시켜본 적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게 했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감복하실 것입니다. 이 삼중의 감동 체험이 오늘의 주제입니다.

  솔로몬이 1천 번 기도를 했더니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네가 이제 왕이 되었는데 무엇을 더 달라고 하느냐?” 했을 때 솔로몬의 응답은 간단했습니다. 흔히 우리말 성경에는 ‘지혜’라고 했는데 히브리원어 속에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마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두고 “저희는 큰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기가 막힌 안목입니다. 그 당시 중동의 이스라엘이 무슨 큰 백성입니까? 별 볼일 없는 변두리 민족(marginal people)이었지요. 남쪽에는 엄청난 애굽이, 북쪽에는 시리아와 앗수르, 동쪽에는 페르시아, 서쪽에 로마가, 가까이에는 그리이스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아주 작은 민족을 솔로몬은 큰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출입을 할 수도 없는 어린 아이와 같은데 제가 어떻게 이 백성을 인도합니까? 아버지께서 그 뜻을 알아낼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솔로몬의 말이 하나님의 마음에 든지라.” 하나님께서 감복하셨습니다. 감동해서 복을 쏟아 붓는데, 구하지도 않은 것까지 보너스로 마구 부어주시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장수와 건강과 원수 갚아달라는 것과 명예와 권력과 돈을 구하는데 솔로몬은 그런 것을 안 구하니 구하지 않은 것까지 쏟아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삼중감동체험입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감동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요셉이 많은 고생 끝에 애굽의 바로왕에게 잡혔습니다. 그런데 바로왕이 요셉에게 감동을 받았어요. 바로는 신하들에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창41:38)라고 하며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그는 잘 다스리는 위대한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총리의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동된 자가 진짜라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영혼이 살아서 하나님의 영을 갈급하면 성령이 나의 영혼에 들어와서 내가 감동할 수 있어요. 내 정신이 맑아서 건강하면 지성과 감성이 발달되어 영성개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도 건강해지고 재물과 물질에도 자신 있게 됩니다. 이것을 잘 모르고 엉뚱한 데 가서 헤맵니까?

  성령으로 감동 받았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수없이 나옵니다. 사울과 다윗, 여호수아가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역사하실 때도 매번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점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감동은 우리들 생활 속에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여러분 중에 “그래, 그렇다면 날 좀 한 번 감동시켜봐.”하고 앉아 계신 분이 있을지 몰라요. 그런 사람을 죽었다 살아나도 감동받을 수 없습니다. 감동은 자가발동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각성과 더불어 영성개발이 되어서 감동 받을 수 있는 훈련이 되어야 하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무(無)에서 만물을 창조할 때 첫 단계를 거쳐서 물질이 생겼어요. 그 물질 중에 진흙을 빚어서 육체를 만든 것이 두 번째 단계입니다. 그 육체 안에 감각이 발달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에 지각이 발달되었어요. 요새는 지각이 최고인 줄 알아요. 그래서 지성과 이성 쪽으로만 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동이 없어집니다. 왜 감각을 통해서 감성과 심성을 계발하지 못합니까? 이것이 우리들에게 문제 아닙니까?

  미국의 많은 교회들이 텅텅 비는 까닭은 교인들이 1주일에 한 번 교회에 와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야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이 강단에서 감동의 말씀이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갑니까? 야구장입니다. 뙤약볕 밑에 앉아서 이제 감동이 오려나 저제 감동이 오려나 기다립니다. 인간은 감동을 목말라 하는 존재입니다. 스트라이크, 아웃, 볼 하다가 한 번 “딱!” 하고 맞으면 모든 관중이 일어납니다. 하얀 공이 하늘을 가르더니 담을 살짝 넘어서면 “와-” 하고 감동 받는 겁니다. 오죽 감동을 못 받았으면 거기 가서 땀 흘리며 감동을 기다립니까. 영화관에서, 디스코장에서, 인간은 별 것을 다 하면서 감동을 받으려고 안달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런 귀한 감동의 세계의 문을 다시 두드릴 필요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제가 최근에 감동 받았던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아들이 뉴욕대학 의사로 있는데 어느 날 저에게 전화를 했어요. 한 환자가 죽었는데 가슴이 너무 아프다는 겁니다. 그 어려운 고통을 젊은 아이가 감당하지 못해서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교통사고까지 일으켰어요. “아빠, 참 힘들어요. 13살 먹은 아주 잘 생긴 아이인데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을 수 있어요? 내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너무나 안타까워서 살맛이 안나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느냐고 했더니 제 설교테이프를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미국에 훌륭한 목사님 테이프가 많은데 왜 하필 내 거냐?” 그랬더니 어떤 목사님의 설교도 자기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고 아빠의 설교가 듣고 싶대요. 제가 전화기를 들고 펑펑 울었어요. 세상에, 자식이 아빠의 설교 외에는 치유의 방법이 없고 위로의 방법이 없다고 하는 이런 목사 있으면 나와 봐라. 아들이 저를 이렇게 감동시킵니다.

  이렇게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을 증언하면 그 증언을 듣는 사람들이 감격하고 그 감격하는 장면을 하나님께서 내려다보시고 감복하시지 않겠어요? 그것이 솔로몬의 역사이고 성경에서 일어나는 신앙 사건들입니다. 그런데 나쁜 것도 있습니다. 아들이 원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셔요. 그래서 제가 제 아들을 사랑합니다. 어떤 때는 아내가, 어떤 때는 남편이 원수입니다. 그런 겁니다. 원수가 먼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사람은 압니다. 이거 모르는 사람은 웃지도 못해요. 예배시간에 웃지 못하고 울지 못하면 그게 무슨 예배시간입니까? 감동으로 눈물을 짓고 감동으로 웃고 그래서 기뻐서 즐거워하는 것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감복하시게 되어 있지요.

  우리 아들이 의젓한 외과 의사가 되니까 제가 전화하면 “What's new, Daddy?" 합니다. 그래서 ”Nothing new" 그러면 "끊어요" 합니다. 이건 너무 섭섭합니다. 그래서 끊기 전에 사정사정해서 한 마디만 묻자 하고, 먹기는 제대로 먹니? 잠은 제대로 자니? 하고 묻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 이제 그만 끊어요” 합니다. 어쩌다 제가 못 알아듣는 말을 할 때도 있어요. 예전엔 제가 다 가르쳐줬는데 이제는 거꾸로 제가 배워야 됩니다. 그래서 “너 지금 한 말 뭐냐?” 했더니 “이건 라틴어에서 온 의학용어인데요 설명해도 아빠는 몰라요.” 너무 억울해서 스펠링이라도 알자 했더니 아들이 "Forget it, Daddy" 하고 끊어버렸어요.

  이렇게 아들과 대화가 두절되다니, 내가 의학을 공부해서 대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뉴잉글랜드에서 병원장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최신의학책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계간지 “Journal of Medicine"이라는 책을 보내왔어요. 그런데 읽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모르면 어떻게 하지요? 넘겨, 넘겨. 제가 원래 성경도 읽다가 모르면 넘겨, 넘겨 합니다. 아는 것으로 은혜 받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최고지요. 막 넘기다 보니까 칼럼이 하나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그 내용은 사람은 기뻐해야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기뻐하면 뇌하수체의 작용에 의해서 여러분이 잘 아시는 엔돌핀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게 나오면 사람이 건강해집니다. 그런데 최근에 새롭게 발견한 것은 기뻐하는 정도가 아니라 감동을 받으면 엔돌핀보다 1천배 더 센 다이몰핀, 즉. 다이너마이트 같은 엔돌핀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읽는 순간, 번쩍 영감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아들에게 전화를 했지요. “기가 막힌 일이 있어.” 뭐냐고 하길래 다이몰핀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무슨 이야기냐고, 스펠링을 대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Forget it" 했지요.

  나중에 전화가 다시 왔기에 “사람이 감동을 받으면 다이몰핀이 흐르는데 아주 나쁜 병도 다 제어할 수 있는 이상한 호르몬이란다. 이것이 성령으로 감동받아서 기쁨보다 환희에 넘치게 될 때 나온다고 하더라”고 설명했어요. 다음날 아들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어요. “아빠, 그게 사실인데 아직 실험은 안 끝났대요. 그 얘기 함부로 하시면 안돼요. 그런데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요?” “어디서 듣다니, 아빠가 신약과 구약을 연구해가지고 성경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이 감동의 역사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몰라요.

  저는 외국에 갔다가 돌아올 때 비행기가 인천공항 활주로에 착륙을 하면 무조건 기도합니다. “하나님 또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고국 땅에 보내주셨으니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아멘” 그 때 기내의 방송을 통해서 음악이 흐르는데 기가 막혀요.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기에 운명같이 영원히 돌아보지 말라. 후회하지 말라.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말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사랑해.” 다른 사람들은 짐을 챙기느라 바쁜데 저는 그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 앉아 울었어요. 감동에 북받쳐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대. 물론 이건 노사연의 노래지만. 너무 좋잖아요? “누구 날 좀 감동시켜봐” 하는 사람들은 들으세요. 감동은 이렇게 자가발동하는 것이지 누가 감동을 시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처지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감동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을 체험하면 감동하게 되고 주님을 만나면 감동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감동적인 것을 찾으면 한 없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 주대관이라는 대만의 9살짜리 어린이가 암에 걸려 다리를 잘라야 했습니다.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픈 부모에게 이 아이가 쪽지를 하나 줬어요. “아빠, 엄마, 그래도 내게는 한 쪽 다리가 남아 있을 거야. 베토벤은 두 귀가 다 멀었고, 또 두 눈이 다 먼 사람도 있잖아. 그래도 난 한 쪽 다리가 있어. 난 지구 위에 우뚝 설 거야. 헬렌 켈러는 두 눈이 멀고 귀가 먹어서 말도 제대로 못했고, 두 다리를 다 못쓰는 사람도 있어. 그래도 나는 한 쪽 다리가 있잖아. 나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 한 쪽다리로 다 다닐 거야.” 이 쪽지를 읽은 부모가 너무 감동을 받아 발표를 했고 대만의 많은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감동의 역사는 그런 것입니다. 전염병처럼 번져나가요. 그 감동을 사장시키지 않고 증언하면 감격으로 번져나가고 감동과 감격이 넘실거리고 그 환희에 북받쳐서 하나님께 찬양하면 하나님이 못 견디고 감복하시게 되어 있다는 것 아닙니까?

  이 어린이가 다리를 자르고 난 뒤 생일을 맞았습니다. 측은해서 어쩔 줄 모르는 부모에게 또 한 편의 시를 써줬습니다. “9살 생일. 지금까지 난 누구와도 싸워본 일이 없어요. 싸울 일이 없었거든요. 앞으로 난 암 악마와 싸울 거예요. 싸워서 내 몸의 건강도 찾고 싸워서 내 살아갈 권리도 찾을 거예요. 왜냐하면 난 아직 9살이니까요. 난 99살까지 살 거니까요.” 이 글을 읽고 부모는 기뻐했습니다. 다리 하나 없이도 99살까지만 살아다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몸은 점점 나빠져서 사경을 헤매는데 이 아이가 또 쪽지를 하나 써주는 거예요. 제목은 합창단. “우리는 암을 물리치는 합창단. 의사선생님이 지휘자, 간호사 누나가 반주자, 엄마, 아빠, 동생과 나는 생명의 자장가를 합창해요. 호주의 코알라도 잠들고 중국의 팬더도 잠들고 대만의 원숭이도 잠들었어요. 암 악마도 이제 잠들 거예요.” 주대관의 부모가 이 글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어요. 하나님, 이 녀석이 우리를 이렇게 감동시키네요.

  우리는 왜 일합니까? 감동받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왜 음악을 합니까? 음악 하는 사람들을 보면 죽어라 하고 음악만 해요. 그리고 무대 위에 서면 그 연주로 감동을 주는 겁니다. 열심히만 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남을 감동시킬 수 있어요. 내가 아는 음악인들은 음악밖에 모르는데 한 번 활을 쥐면 기가 막힌 음악이 나오지요. 특히 바이올린은 소리를 만들어낸다고 하잖아요?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고 하지요. 그래서 다윗이 현을 치니까 사울이 그렇게 아팠던 머리가 나았다고 하잖아요? 그의 일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역사입니다. 어떤 사람은 감동을 시키기는커녕 한 마디 탁 뱉으면 그것을 들은 사람이 밤새도록 잠 못자고 침대 위에서 대굴대굴 구른대요. 세상을 살면서 왜 그렇게 하나요? 남은 감동시키면서 산다는데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어요. 교회 다니는 사람 가운데도 그런 사람이 있지요. 왜 한국교회에 1부, 2부, 3부 예배가 있는 지 아십니까? 교인들끼리 싸우고 나서 보기 싫은 사람 안 보려고 그래서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세상의 모든 동물 가운데 사람만 웃는답니다. 주일에 와서 감동 받고 웃고, 감동받고 눈물 흘리고 그리고 그 감동으로 영혼이 건강해지고 정신이 건강해지고 육체가 건강해져서 이 세상에서 힘차게 살아가야 하잖아요? 무슨 일인들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게 있겠어요? 목사가 교인들을 감동시켜야죠. 선생이 학생들을,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감동시켜야 합니다. 회사에 가면 감동경영을 해야 합니다, 회사를 경영하는 여러분, 오늘부터 감동경영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물건을 하나 만들어도 그것을 쓰는 사람이 이 물건은 정말 기가 막히다 하고 감동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 저는 30년 전에 산 녹음기를 아직도 쓰고 있어요. 쓸 때마다 저는 감동해요. 어쩌면 물건을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그 나라를 보니 잘 살더라고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 아니겠어요?

  저희 집 파출부는 저를 여러 번 감동시켰어요. 저희 집에 와서 일을 하면서 자기 먹을 것을 싸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든 쓰레기는 비닐봉지에 싸서 자기 핸드백에 넣어갑니다. “여기다 버리시지요.” 하면 “아이구 목사님 댁에 쓰레기를 버리다니요.” 하면서 가지고 갑니다. 그런 역사가 우리들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거지요.

  솔로몬이 감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1천 번을 기도했어요.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왕이 되기 전에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왕이 된 후에는 바빠서라도 기도 못 할 텐데 1천 번을 기도하니 온 백성이 감격하고 하나님께서 감복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내게 구하라.” 여러분도 앞으로 그런 음성을 들으면서 이 세상 살아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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