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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일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 마 6: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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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6:25-34
제목 : 내일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오늘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3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염려는 ‘분열’을 뜻합니다.  ‘마음을 나눈다, 가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염려가 시작되면 마음은 분열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고자 해도 그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됩니다.  일의 성취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염려는 인생을 망칩니다.  염려처럼 비생산적이고 파괴적인 것은 없습니다.  염려는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염려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첫째, 염려는 작은 것이기 때문에 하게 됩니다.  큰 걱정이 생기면 작은 것은 사라집니다.  자녀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부모님들은 염려를 하다가도 자녀가 앓아 눕기라도 하면 공부는 그 다음입니다.  건강하기만을 바라게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개구장이라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이 말은 모든 부모들이 바라는 소원입니다.  걱정, 근심이 많으신 분 계십니까?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시시한 것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이길 수가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염려는 육체적인 운동부족에서 올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하나님께서 창조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에게는 생각하는 부분, 즉 이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을 놀리지 않으면 편할 것 같아 보여도 가만히 앉아 있으면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쓸데없는 걱정이 모아지면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너무 편하기 때문에 생기는 염려가 있으면 움직여야 합니다.  운동을 해야 합니다.  정신적인 피로는 육체적인 운동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건전한 마음에 건강한 육체가 됩니다. 

  염려는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첫째, 쓸데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염려 말라’고 6번이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2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염려는 과거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또한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나아가서 남의 일에 대한 잘못된 걱정입니다. 
  제가 20대에 결핵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쩌다가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니, 나쁘니’ 자기 마음대로 말하면서 쓸데없는 걱정들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얼굴 모습 가지고 ‘건강한 것 같다, 건강하지 않은 것 같다’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은 특히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그런 말들에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병으로 앓는 분이 주위에 계시면 무조건 ‘많이 좋아진 것 같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래야 도와주는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염려도 쓸데없습니다.  과거는 모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염려를 해도 회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잊어야 합니다.  인간은 과거에 사는 것이 아니고 현재에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래에 대한 걱정도 하면 안됩니다.  성실하게 살아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큰복을 주십니다. 
  대학입학 때는 꼴찌로 입학했지만 졸업 때는 전교 수석을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모집 정원 80명에 이 사람은 81등 이었습니다.  그런데 80명 가운데 한 사람이 면접을 하지 않아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합격은 했지만 기쁨보다 굴욕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극이 되어 입학초부터 공부벌레가 되었습니다.  남들이 하는 미팅(Meeting)에는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고 세 가지 좌우명을 가지고 공부했습니다.  ①강의시간에는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②쉬는 시간에는 반드시 도서관에 간다.  ③강의실에는 맨 앞자리에 앉는다.  그렇게 공부한 결과 일학년 첫 학기 성적을 4.1을 받았고 이것에 용기를 얻어 더욱 열심히 공부했더니 졸업 때는 전교 수석의 영광을 차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과거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에 사는 것입니다.  희망찬 미래를 내다보고 사는 것입니다. 

  염려를 할 필요가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염려는 우리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염려는 몸에 병을 만듭니다.  위장병의 80%는 신경성이라고 합니다.  관절염도 정신적인 것이 많다고 합니다.  난치병인 암의 원인도 염려, 근심 때문일 때가 많다고 합니다.  즉 스트레스(Stress)를 많이 받고 풀지 않으면 암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22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교훈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보약이 따로 없습니다.  즐거움이 보약입니다.  기쁨이 보약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야 건강해집니다.

  전에 어느 기도원에 갔더니 기도원에 써 붙여져 있는 표어 가운데 하나가 ‘웃으면 산다’였습니다.  저는 참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웃으면 삽니다.  병이 치료됩니다.  웃으면 건강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을 부정적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남의 허물을 지적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나의 허물을 고치기는 힘듭니다.  비판하기를 좋아하면 나의 사고가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부정적인 인간이 되고 맙니다.  부정적인 마음은 병을 가져옵니다.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될 일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과천교회에 부임할 때 신학대학 동기동창들 가운데 상당히 걱정하고 반대하고 염려한 목사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목회하기 어려운 시골로 간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과천이 행정구역상으로는 과천면이었고 97번 버스가 서울로 유일하게 운행하는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전화 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서울이나 타지로 전화하려면 신청을 해놓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대중목욕탕이 없어서 안양이나 사당동으로 가야 했습니다.  서울특별시에서 300여명의 장년이 모이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있다가 그런 면소재지 100여명 모이는 교회로 부임한다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교회조직이나 구성원에 문제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목사가 자주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담임목사가 자꾸 바뀌는 교회 치고 부흥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러한 교회는 문제가 많은 교회가 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도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 잘못하는 사람도 있고, 실수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전체 모습은 아니다.  그리고 또한 시골이 어떻다는 것인가? 공기 좋고 자연적인 환경 속으로 건강에 유익하고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천교회에 부임했습니다.  부임 후 저희 가족들 특히 아들들이 고생을 좀 했습니다.  다니는 학교가 너무 멀어졌기 때문에 하루에 4시간씩 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동안 교회를 잘못 섬기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천교회에 복을 주셔서 대교회로 만드셨습니다.  이제는 그때 반대했던 친구들 모두가 부러워합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흠만 보면 부정적인 자가 되고 맙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합니다.  우리는 칭찬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평안을 만들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근무하는 직장을 긍정적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직장의 상사와 동료를 긍정적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건강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국가를 볼 때, 사회를 볼 때, 긍정적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희망이 있습니다.  수 년 안에 통일의 큰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교회를 세우러 가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선교헌금을 모금하는 것입니다.  신학생들이 너무 많다고 부정적으로 보면 안됩니다.  앞으로 통일되면 북한에 모두 선교사로 보내게 될 것입니다.  많이 양성해 놓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금년에 우리 교회는 2억 6천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합니다.  힘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명년 2월까지 11단지와 3단지가 재건축 때문에 이사를 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 약 500세대가 이사를 해야 됩니다.  성도여러분들이 서로 도우셔서 먼 지역으로 이사하지 않고 가까운 곳에 정착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부림동, 과천동, 별양동, 중앙동, 문원동에 사시는 성도들은 전세나 주택을 매매할 때 우리 성도들이 우선적으로 입주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그러므로 더 많이 새벽에 나오셔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과천교회 성도 된 것에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어느 어부가 고기잡이 갔다가 풍랑을 만나 죽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가 탔던 배를 타고 바다고 나갔습니다.  이때 친구들은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바다에서 죽었는데 너도 죽으러 나가느냐?”고 염려하며 말렸습니다.  그 아들 어부는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어디서 죽었느냐?  물론 침대에서 죽었을 것이다.  그럼 자네는 어디에서 잘 것인가?  여전히 침대에서 잘 것 아닌가? 염려하지 말게나!”
  우리의 걱정과 염려는 대개 이러한 것입니다.  서울대학병원은 이름난 좋은 병원입니다.  그러나 그런 병원에도 영안실은 꼭 붙어있습니다.  영안실이 무서워 병원에 가지 않을 것입니까?  부정적으로 인생을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상합니다.  건강을 해칩니다.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고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의 능력 주하나님
  의심말라 하시고 물결 위를 걸으라 하시네
  할 수 있다 하신 주 할 수 있다 하신 주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염려를 하지 말아야 할 세 번째 이유는 염려는 불신앙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은 목숨을 위하여 염려 말라고 했습니다.  목숨이란 생명입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그러한 문제는 우리 권한 밖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시고 부자를 만들기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만듭니다.  권세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권세를 가진 자가 권세를 잘못 쓰면 가져갑니다.  빼앗아갑니다.  이 모든 권한은 모두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보호하십니다.  함께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나의 아버지입니다.  필요한 것을 여호와이레로 준비하시고, 에벤에셀로 보호해 주시고, 여호와닛시로 승리케 해주십니다.  본문에는 공중의 새도 기르신다고 했습니다.  들풀인 백합화도 입히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더 보호하고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염려를 버려야 합니다.  432장 찬송입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어려워 낙심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너 쓸 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후렴)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현대인의 걱정가운데 하나는 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이거 암 아닌가?’ 할 정도로 예민합니다.  불신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진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큰복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저주는 3, 4대이고 복은 1,000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는 모두 씻음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죄 값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마지막 시간에 회개한 강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생애의 마지막 그 시간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해도 그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절대로 저주라고 생각지 않기를 바랍니다.  시련이 있다면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신호라고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길을 허락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다음 염려를 이기는 방법입니다.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는 염려를 이기는 최고의 비결입니다.  부르짖어 주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길 수 있는 복을 허락하십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땅의 기름진 복입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모든 괴롬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자녀의 문제가 있습니까?  직장의 문제가 있습니까?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염려보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한숨만 쉬면서 남의 탓하고 있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고, 해결해주시며 더 좋은 길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염려를 변화시켜 평강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와 복을 우리 모두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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