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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 호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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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본문 : 호세아 10:12

스티븐 코비가 쓴「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 by Stephen R. Covey).

자기 생(生)을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7가지 특징이 있다.
1. 매사에 주도적 자세를 가지고 살아간다(Be proactive)
2. 목표를 염두에 두고 일을 시작한다(Begin with the end in mind)
3. 중요한 일일수록 우선적으로 해결한다(Put first things first)
4. 상호 이익(윈-윈)을 추구한다(Think win-win)
5. 상대방을 먼저 이해 한 후 설득시킨다(Seek first to understand, then to be understood)
6. 시너지 효과를 활용할 줄 안다(Synergize)

그리고 스티븐 코비는 맨 마지막 일곱번째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7. 톱날은 항상 날카롭게 한다(Sharpen the saw)

이 말은 톱날이 한번만 날카로와야 한다는 의미보다는
자주 갈아서 항상 날카로와 있어야 인생에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비유적인 말이지만 톱날을 항상 날카롭게 하라는 말과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묵은 땅을 기경(起耕)하라는 것은 일맥상통합니다.

말하자면 톱이나 도끼 칼 등 도구(道具)도 시간이 지나면 날을 갈아야 하는 것처럼
땅도 시간이 지나면 굳어지게 마련이므로 굳어진 땅은 기경(起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여기 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처음에는 좋은 땅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잡초도 생기고 돌도 생기고 굳어지더니
이젠 못 쓸 땅이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 땅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갈아엎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이런 비유를 하십니다(마가복음 4:3-9).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이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들에게 밭의 중요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밭에 뿌린 씨는 모두 동일하지만 그 씨를 받아들이는 밭의 상태에 따라
결과는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고 나서 비유에 대한 해석을 이렇게 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4:14-20).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땅은 다 땅이지만... 땅이라고 다 결실을 잘한 것이 아니고
좋은 땅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하였으므로
가시덤불밭이나 돌짝밭 길가밭은 다시 기경(起耕)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마 농촌에서 자라신 분들이나 농사를 조금이라도 지어보신 분이 있다면
이 말씀을 잘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땅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땅이라고 할지라도 계속 돌보지 않으면
저절로 잡초도 나게되는 법이고 저절로 땅도 굳어지게 마련이기에
땅의 기경(起耕)이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호세아 10장도 바로 이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입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義)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起耕)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義)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묵은 땅을 기경(起耕)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오늘의 주제인데 그것은 말씀과 기도라는 도구로 기경(起耕)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딱딱하게 굳은 땅은 삽이나 괭이로 기경(起耕)할 수 있는 것 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마음을 기경(起耕)할 수 있는 도구는 오직 말씀과 기도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니라"(디모데전서 4:5)

우리는 우리의 마음 밭이 굳어져 말씀은 들으나 깨닫지도 못하고 은혜 받지도 못할 때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찬송가 172장 가사 1절).

  빈들에 마른풀 같이 시들은 나의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게 되면 그 굳은 땅에 성령의 단비가 내려
아직 옥토(沃土)는 아니지만 기경(起耕)이 가능한 땅이 되게 되는데
그때 곡괭이와 같고 수술칼과 같은 말씀으로 묵은 땅을 기경(起耕)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이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의 묵은 땅과 같은 마음을 찔러 쪼개면서 기경(起耕)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찔러 쪼개어 기경(起耕)한 다음엔 어떻게 하느냐?

자기(自己)를 위하여 의(義)를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의(義)를 스스로 심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를 위하여 의(義)를 심기는 심되 스스로 심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의(義)를 선물로 주시면 감사함으로 받아 심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자, 의(義)를 받아서 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무엇을 거두라고 말씀합니까?
긍휼(矜恤)을 거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곰곰히 들여다 보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추수의 원리란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로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원리인데
어떻게 의(義)를 심었는데 의를 거두지 않고 긍휼(矜恤)을 거두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사랑하시는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가는 백성들이지만
우리가 묵은 땅을 진심으로 경작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거두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역사로 우리에게 의(義)를 비처럼 내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義)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은 그 이름을 기억하시겠습니다마는
중국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오랫동안 미국과 유럽을 여행 한 후
영어로도 책을 많이 쓰고, 중국어로도 책을 많이 쓴
임어당(林語堂) 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임어당 박사의 아버지는 목사입니다. 그래서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말하자면 옥토(沃土)같은 환경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조금만 노력하면 신앙생활을 훨씬 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좋은 신앙적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환경 속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옥토(沃土)를 굳은 땅, 묵은 땅으로 만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는 일단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상해(桑海)에서 기독교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그리고 북경(北京)에 가서 교수(敎授)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그는 점점 이상한 이론(理論)에 빠져들게 됩니다.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이성(理性)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이 사람과 동물을 판가름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이성(理性)대로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거기에 뭐 또 하나님을 믿고 하는 신앙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그래서 그는 처음에는 마음이 옥토(沃土)와 같았지만 점점 가시떨기 밭처럼 되었다가
돌짝밭 처럼 되었다가 결국에는 완전하게 굳어버린 땅, 묵은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를 다 부인하고 철저한 유물주의자(唯物主義者)
자기 자신(自己 自身)만 자신(自信)하는 철저한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번은 자기 부인을 따라 뉴욕에 있는 매디슨 장로 교회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설교를 듣다가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고
계속 한주 두주 세주 그렇게 다시 교회를 나가더니
결국에 가서는 지나온 과거를 다 청산하고 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하게 됩니다.

등록한 후 1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는
온 세계에 자기는 다시 기독교로 돌아 왔다고 증언하게 되지요...

이것이 무엇입니까?

묵은 땅을 기경(起耕)하게 되니까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의(義)로운 길로 다시 인도하실 뿐 아니라 의(義)를 비처럼 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굳은 땅, 묵은 땅이라고 할지라도 온전히 깨뜨리며 기경(起耕)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다시 옥토(沃土)가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도 듬뿍 받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도 기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例)를 성경 안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한 예(例)로 구약의 요나를 보십시다.
그가 처음 소명(召命)을 받아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을 때 그의 마음은 옥토(沃土)였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삐딱하게 다시스로 갑니다. 완전히 반대로 행동한 셈이지요.
그때 그의 마음은 옥토(沃土)가 아니라 돌짝밭이거나 길가밭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회개하려는 마음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때 보다 못한 하나님은 드디어 손을 드셨습니다. "어디 한번 맛을 좀 봐야 알겠냐!"

당황한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야 깨닫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이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묵은 마음밭을 기경(起耕)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다시 옥토(沃土)로 만들어졌을 무렵
하나님은 요나를 니느웨 해변가로 인도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요나 뿐만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옥토(沃土)로 만들었다가 돌짝밭으로 만들었다가
아예 굳은 땅 묵은 땅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신약에서 사도 베드로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제자로서 수제자라고 불리우는 제자입니다.
말하자면 마음이 옥토(沃土)인 제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항상 옥토(沃土)로 계속 유지했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잘 아는바 처럼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부인하다 못해 저주하고 맹세까지 할 때
그의 마음은 옥토(沃土)가 아니라 굳은 땅, 묵은 땅으로 변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기본이 있어서
곧바로 크게 통곡하며 눈물로 회개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시 기경(起耕)하기 시작하여
결국은 다시 옥토(沃土)로 만들고 큰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항상 우리의 마음밭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매 주일 선포되고 있습니다!! 아니 매일 위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밭은, 기분에 따라 감정에 따라 상황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데...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자신의 마음밭을 잘 관리하지 못하여 그렇게 좋던 옥토(沃土)를
금방 길가밭이나 돌짝밭이나 가시덤불밭을 만드는 것입니까?
다 우리의 미숙함 때문이며 우리의 미련함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과거 한때는 정말 잘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음들이 옥토(沃土)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들이 옥토(沃土)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이 계실 성전을 그렇게 크고 멋있게 지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간 정성 물질 다 바쳐야만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들은 다 바치고도 기뻤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일년에 세 번,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에는 감사한 마음으로 절기를 반드시 지켰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 보다 더 잘살게 되었지만 신앙의 길에서 떠나
이방사람들처럼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제사(祭祀)도 형식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장 1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 하였느니라!"

좀 잘살게 되었다고 이제는 마음대로 행음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들은 좀 형편이 나아지게 되니까 그동안 오직 하나님만 향하던 한 마음이
두마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물질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우상도 사랑하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장 1-2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치시며 그 주상을 헐으시리라."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義)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起耕)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義)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이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호세아 10장은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에 적용하면 오늘 우리에게 혹시 때묻은 것이 없다 살피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출석을 하느냐 안하느냐.. 봉사를 하느냐 안하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하게 말하면 신앙과 신앙생활은 다른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신뢰 관계로서
주위 사람들이 느낄 수도 있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신앙이 없고서도 잘 나타날 수 있고 좋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없는데 출석을 잘할 수 있으며 신앙은 없는데 봉사도 잘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저 문화입니다. 자기 기쁨이고 자기 의(義) 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의무감으로 나와 앉아 있고 봉사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전혀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천국에 갔더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와 있기도 하고
분명히 올 줄 알았던 사람이 천국에 없더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각자가 단독자로 서서 자기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다시 10장 1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아름다울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이 말씀 번역을 죄송하지만 NIV 성경은 그 뜻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열심히 왔다갔다하면서 열매는 뭔가 열심히 맺는 것 같은데
그 열매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맺은 것이 아니라 다 자기를 위하여 맺었다는 것입니다.
(Israel was a spreading vine ; he brought forth fruit for himself.)

자, 이제 어떻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묵은 땅을 기경(起耕)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시고 의(義)를 비처럼 내려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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