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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아오라, 내게로(슥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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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는 소선지서에 포함됩니다.
구약 성경을 분류하면 모세가 기록한 모세 오경, 이스라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을 기록한 역사서, 삶 속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한 시가서,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역사의 주되심을 나타낸 선지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선지서는 분량이 두꺼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은 대선지서로 하고 분량이 비교적 얇은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함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렇게 12권을 소선지서라고 합니다.

스가랴는 소선지서에 포함되는 것이지요.
소선지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 기 전 회개하라는 경고의 말씀을 전한 포로 전 서신서, 그리고 포로에서 돌아온 후 다시는 하나님을 버리지 말고 행복하게 살라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 포로 후 선지서로 나룰 수 있습니다.
호세아. 미가, 이사야 등 대부분인 포로전 선지서이고 학개, 스가랴, 말라기는 포로 이후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스가랴는 소선지서 중의 포로 후기 서신입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다리오 왕 이년 팔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선지서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 말씀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는 시금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느냐 입니다. 그냥 자기 말, 자기 생각을 전하는 것은 아무리 바른 말이고 옳은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는 선지자가 아닙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말씀을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구약에서는 선지자에게 주로 임하였습니다. 선지자는 말씀을 받는 자입니다. 때로는 유다 백성에게, 혹은 북 이스라엘 백성에게, 혹은 왕에게 방백에게, 제사장에게, 재판장들에게 혹은 타락한 백성과 지도자들에게 말씀을 주시되 선지자를 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으면 선지자를 찾기도 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가 공격하여 예루살렘 성이 포위를 당할 때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 뜻을 알아보게 합니다. 이사야는 기도하여 말씀을 받습니다. 앗수르는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교만하기에 하나님이 친히 혼을 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사를 보내 18만 5천을 하루아침에 치시니 왕이 얼굴이 뜨뜻하여 돌아갔다고 합니다.

아하스 왕 시대에 아람의 공격을 받을 때도 선지자에게 말씀이 임합니다. 그들은 타다 남은 부지 갱이 같으니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왕은 선지자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여 바람이 나무가 흔들리듯이 불안해합니다.

여호사밧 왕이 연합국의 공격을 받을 때 기도합니다. 그 때 선지자  야하시에에게 말씀이 임합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이번 전쟁에 승리를 주시겠구나 믿고 군대가 아닌 성의를 입은 찬양대를 맨 앞에 세우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합니다.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고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할 때 유다를 공격은 연합국이 서로 대적이 되어 자기들끼리 싸우다 망하고 유다 백성은 말씀대로 구원을 받습니다.

이렇게 선지자에게 말씀이 임하니 신실한 왕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선지자를 찾습니다.
유다의 요시아 왕은 신명기를 읽다 죄를 짓을 때 망한다는 말씀을 읽고 가슴을 치며 나라가 망할 것인지 여선지 훌다에게 사람을 보내어 물어 봅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가슴을 치며 회개한 것을 보고 너의 시대에는 망하지 않지만 죄악이 관영하여 반드시 유다가 포로로 잡혀갈 것을 말씀합니다.

어찌되었던 하나님 말씀은 선지자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이 임할 때 그것을 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복되고 평안하다는 말씀은 전하기 쉽지만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왕이나 고위층에게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전할 때 잘못하면 가문이 망하고 자기 목이 달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선지자의 사명은 받은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너무 힘들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시는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니 가슴이 답답하여 견딜 수 없어 회개하고 다시 말씀을 전하고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실 책망과 경고의 말씀은 입에는 쓴 약 같으나 창자로 내려가면 보약이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통해 주어진 말씀을 받아 돌이키는 것은 복입니다.

아합 왕이 죄를 지적하는 이름 없는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옷을 찢고 걸음 거리도 천천히 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겠다는 뜻을 돌이키사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책망과 교훈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때로는 책망의 말씀이 때로는 교훈의 말씀이, 때로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때로는 경고의 말씀이 임한다 할지라도 나에게 주어진 말씀을 순종하는 복인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것도 복이고, 들은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더 큰복입니다. 잠언5장에 보면 지혜로운 아비는 자녀들이 음녀의 길로 가지 않게 훈계합니다. 음녀의 길이 꿀을 바른 달콤한 것 같으나 나중은 쑥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가는 길 바로 앞에 함정이 있다면 당연히 그 길을 가지 말라고 합니다. 자녀들이 넘는 산길에 맹수들이 우글거린다면 그 길을 돌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길이 잘못되었을 때 말씀을 보내어 돌이키게 합니다. 그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이고, 듣고 순종하는 것은 더 큰복입니다.

스가랴에게 말씀이 임했습니다. 언제 임했습니까? 다리오 왕 이년 팔월에 임한 말씀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고레스 왕 원년에 포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70년만의 해방입니다. 처음에 고국인 팔레스틴 땅에 돌아와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자 예루살렘 성전 재건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났습니다. 15년 지난 때가 다리오가 당시 강대국이던 바사 곧 페르시아의 왕이었습니다.

다리와 왕 2년에 집중적으로 말씀이 선지자들에게 임하였습니다.
학개1:1에 다리오 왕 6월에 초하루에 말씀이 임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을 다시 시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학개1:15에 다리오 왕  6월 24일 말씀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흥분하여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학개2:10 다리오 왕 9월 24일에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임합니다.
그 사이인 8월에 하나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스가랴1:7에는 다리오 왕 2년 11월에 말씀이 임하고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은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15년 동안 연기하였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여  다리오 왕 6년 아달월 3일에 마칩니다(에스라6:15). 물론 중간에 대적 자들이 다리오 왕에게 고소를 하나 다리오 왕이 자세히 조사하여 보니 15년 전인 고레스 왕이 이미 예루살렘 성전을 중건하라고 명령한 것을 발견하고는 오히려 대적 자들에게 방해하지 말고 도우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 것입니다.

하여튼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할 다리리 왕 2년에 집중적으로 하나님 말씀이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에게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가장 빈번하게 임할 때는 포로에서 돌아온 때가 아니라 예루살렘 성정을 재건축할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임합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반대도 부딪히고 대적 자들도 있기에 하나님은 말씀을 주셔서 위로하고 격려하고 다시 일어나 일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힘차게 하는 시기에, 하나님의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퍼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헌신적으로 희생하며 하는 종들이 말씀을 더 많이 듣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믿음 생활하는 한국 교회보다 선교 현지에서 헌신하며 희생하며 일하는 선교사들이 더 많은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부흥이 정체된 교회가 아니라 늘 부흥을 열망하며 몸부림치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받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일하는 종들, 일하는 교회, 일하는 현장에 말씀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받아 흥분하며, 기쁨과 감격의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 일에 쓰임 받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일하는 현장에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순종할 마음의 자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위로하기고 격려하십니다.
 
말씀을 받지 않고 일하면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자 말자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였지만 반대에 부딪혀 15년 간 중단했습니다. 건축을 하겠다는 열심은 있었지만 하나님에게서 온 열심히 아니라 인간적 열심이었기에 여러 어려움이 생기자 15년 간 중단 한 것입니다. 인간적인 열심은 오래가지 못하고 난관을 돌파하는 힘이 약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빈번히 임하는 때는 일을 하 때입니다. 학개와 스가랴를 통해 말씀을 받고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재건할 때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계속 말씀을 받았기에 힘을 얻었고 결국은 하나님은 책임져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고 순종한 사람들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스가랴에게 임한 말씀이 무엇일까요? 2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진노했다는 것은 심히 불쾌했다는 것입니다. 왜 조상들에게 진노했을까요? 4절입니다.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 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열조들을 심히 불쾌하게 생각하신 이유가 설명됩니다. 그들이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계속 악한 길, 악한 행실에서 떠나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심히 진노하여 포로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가랴에 임한 하나님 말씀은 먼저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4절). 말씀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며 악한 길, 악한 행위를 계속하여 저주를 받아 70년 간 포로 생활을 한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조상들을 본받아 악한 길, 악한 행위를 한 것 같습니다. 원래 악행은 당장 훔쳐먹는 꿀이 단것처럼 달콤함이 있기에 돌이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쁜 것은 가르치는 이가 없어도 쉽게 배웁니다. 거짓말하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거짓에 도사들입니다. 거짓에 박사 학위를 받는다면 몇 개씩 가질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욕을 가르치지 않아도 친구들과 조금만 어울리면 금방 욕을 배웁니다.

조상들이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였는데 그것을 본받지 말라는 경고이지요.
아무리 하나님 말씀이 임하여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설마 설마 하면서 돌이키지 않습니다. 설마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까? 우리 우리나라가 포로로 잡혀갈까?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코방귀도 끼지 않습니다.

마치 설마 우리나라의 경제가 무너질까? 설마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날까? 설마 우리 가정에 화가 임할까? 설마 내가 불치병에 걸릴까? 설마 설마 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는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긴 대가가 엄청났습니다. 70년간 나라와 가정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고 포로가 되어 종살이했습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긴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입니다. 그런 조상들을 본받아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 스가랴에게 임한 하나님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복된 사람들입니다. 말씀이라면 무조건 아멘 하고 순종하는 다윗과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바울처럼 날마다 나를 쳐 말씀에 복종시키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말씀과 반대로 살아가는 불신앙을 쳐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가볍게 여기는 못된 요소를 쳐 복종시키는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가볍게 여긴 결과가 5절에 있습니다.
너희 열조가 어디 있느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 내 말과 내 전례들이 어찌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다 하셨느니라 하라

설마 하던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말씀이 열조들에게 그대로 임하였습니다. 말씀이 임하여 포로가 될 때 돌이켜 여호와께서 우리 행위대로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이루었고 회개합니다. 포로 생활 중에 깨달은 것이지요. 대가가 너무 큽니다. 그래서 3절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 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몸이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국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도 돌아와서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15년 동안 순종하지 않았던 예루살렘 성정 건축에 다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학개에 보면 복을 받습니다. 우리 내 생각과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 뜻으로 돌이키는 은총의 종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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