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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
성경말씀 : 고후 5:17


우리는 한 평생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갑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외딴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가는 것은 정상적인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가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필수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할 뿐 아니라, 사회를 이루어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교회 역시 일반사회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동일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려면 좋은 인간관계가 필수적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났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다윗은 요나단을 친구로 만났기에 사울 왕의 손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된 데는 신실한 친구 빌립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로 유명한 관중과 포숙의 우정에 관해서 아실 것입니다. 관중은 포숙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기도 하고 나중에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서 큰 업적을 세웠습니다. 관중은 말하기를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한 평생 갈릴리 어부로 살다가 갔을 것입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동족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세리 노릇을 하면서 살다가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자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4절에 보면, 새 예루살렘에 관해서 말씀하기를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고 하셨습니다. 주의 제자들의 신분이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예수님을 만난 결과가 이와 같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를 보세요. 그는 일곱 귀신 들려서 인격이 파탄 나고 가족과 이웃에게 버림 받은 비참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사로잡은 일곱 귀신을 쫓아내시자 그는 생명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막달라 마리아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여성은 드물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 앞에 거룩할 성(聖) 자를 붙여서 성 막달라 마리아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오늘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하여 말씀해 드림으로 피차에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첫 번째로, 죄인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죄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범죄로 인해 아담 속에 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손상되었으므로 그의 자손은 누구나 타락한 본성을 갖고 태어납니다. 사람은 환경이 나빠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이는 환경의 영향을 무시하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 사회의 불합리한 환경 역시 타락한 인간 본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죄가 가져다 준 불행은 한둘이 아니지만 핵심적인 것 몇 가지를 든다면,

첫째로,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입니다.

이는 죄의 본질을 이해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죄란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을 말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은 하나님의 금하신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6-17)고 하셨지만, 간교한 뱀이 다가와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고 하였을 때,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뱀의 말을 들었습니다. 또 아담은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헛된 욕망을 품었습니다.

지음 받은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생각은 이만 저만한 교만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인간들의 마음속에 “너희도 신이 될 수 있다”는 헛된 꿈을 넣어주어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결과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고, 평생 이마에 땀을 흘려 수고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하와에게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고 수고하고 자식을 낳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미움과 반목과 살인과 전쟁으로 얼룩진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동시에 타락한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1장 18절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 57장 21절에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불화하여 그 진노 아래 있는 인간들의 마음에 평안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둘째로, 죄로 인해 인간은 죽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대로, 아담의 범죄로 인해 사망이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인간뿐 아니라 다른 모든 피조물도 죽음의 세력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8장 22절에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전국에 산재해 있는 묘지의 수는 약 2천만 기가 되며 이는 전국토의 약 1%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는 서울과 인천을 합친 면적과 같고, 또 매년 20만기씩 새로운 무덤이 생겨난다고 합니다. 이 같은 현실은 사망의 세력이 그만큼 막강함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사람치고 죽음을 겁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인다는 말은 가장 무서운 위협입니다.

성경은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들을 일컬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히 2:15)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욱 비참한 것은 육신의 죽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악인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영원한 불못에 던짐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로, 죄로 인해 인간은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꾀어 범죄케 한 뱀은 곧 마귀를 상징합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20장 1절로 2절에 보면 “1)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2)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마귀의 말을 들은 것은 곧 마귀의 지배 아래 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일컬어 “이 세상 임금”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2:31). 마귀는 이 세상의 임금이 되어 타락한 인생들을 종으로 부립니다. 마귀에게는 자비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요 10:10)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마귀는 인간들의 생명을 노략질하고 파멸시키기 위한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역사합니다. 왜 사람들이 예수 믿기를 거부할까요?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전력을 다해서 행하는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만들어 사람들의 영과 육을 끝까지 파멸시키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죄의 결과는 이처럼 끔찍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비참한 운명을 해결하려면 먼저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락한 인간이 무슨 수로 자기의 죄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마귀의 종된 상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을 얻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가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롭게 되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그것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행을 통해서 또는 수양을 통해서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만이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보혈로써 우리를 위한 속죄를 완성하셨기에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죄 사함 받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하신 로마서 8장 1절로 2절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사람답게 언제나 승리를 구가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일어난

두 번째 변화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범죄한 인간의 영적 실상에 대하여 에베소서 2장 1절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라고 했습니다. 이는 죄인은 영적으로 볼 때 죽은 상태에 처해 있다는 뜻입니다. 육신은 살아서 활동하고 있지만, 영은 죽은 상태입니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의 역할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교통을 나누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이 죽은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지 못합니다. 두뇌가 명석해서 석박사가 된 사람이라도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들의 관심은 단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이 거듭나게 됩니다. 거듭남은 곧 영적 신생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2절로 13절에는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였고, 요한일서 5장 1절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출생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지 무슨 느낌을 통해서 알 수는 없습니다. 신생아가 태어나는 것은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고 오직 부모의 뜻에 의한 것이듯이, 영적 출생인 거듭남도 우리의 의지와 상관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치상으로는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 먼저이고 믿는 것이 그 다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믿는 것이 먼저냐,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먼저냐 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증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믿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고,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믿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차이점이 예수 믿고 구원 받는 데 장애가 되지 않으므로 어느 편이 옳은지를 놓고 지나치게 집착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아는 바로는 성경 말씀과 같이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믿는 것이 공로가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획득한  것이 아닙니다.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명목상으로만 법적으로만 자기의 자녀로 삼으신 것이 아니고 실제로 자기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8장 14절로 16절에는 이같이 말씀합니다.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종의 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무서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바’란 말은 우리말의 ‘아빠’라는 호칭과 같은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사실을 증거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령께서 성도들의 심령에 와 계신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표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7절에 보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은 자녀들만이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17절에 보니 하나님의 후사라고 했습니다. 후사란 상속자를 의미합니다. 그것도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맏아들이시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동생들이라는 뜻입니다.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신분을 이 보다 더 확실하게 표현할 수는 달리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천사들보다 더 고귀한 신분입니다. 이에 대하여 고린도전서 6장 3절에는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고 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실 터인데, 그 때 성도들은 주님과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계시록 22장 5절에 보니 “…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은 말할 수 없이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아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때로 시련을 당하고 핍박을 받더라도 낙심하거나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부심이 있고 믿는 배경이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시험이 다가올지라도 담대히 외칠 수 있습니다.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라고 말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위대한 특권이 있는데 그것은 언제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란 곧 성전의 지성소를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단 한 차례 그릇에 제물의 피를 담아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지성소는 엄위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언제라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늘 자각해서 언제 어디서나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일어난

세 번째 변화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믿기 전과는 귀하게 여기는 대상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사도 바울은 육체를 신뢰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팔일만에 할례 받은 것을 내세웠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내세웠습니다. 이만한 조건이면 유대 사회 어딜 가더라도 대접 받고 행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그토록 애지중지하고 자랑하던 것들이었는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나니까 과거의 것들은 더럽고 냄새나는 배설물에 불과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세상 즐거움을 위해서 살았으나 이제는 예수 믿는 것이 너무나 재미가 있어서 세상 즐거움은 싱거워서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이전에는 탐욕의 노예가 되어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자족하면서 삽니다. 이전에는 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는데 이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합니다. 이전에는 세상일에 바빴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데 열심 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합니다.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에 대하여 성경적인 기준을 갖고 삽니다.

그 다음, 사생관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목숨에 연연해서 몸을 아끼고 불의와 타협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8) 이와 같은 사생관을 갖고 삽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20)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21)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영생과 부활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삶의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이 세상의 썩어질 것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신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데 힘씁니다. 그것은 한 영혼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천사들과 함께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이해타산에 의해서 행동하는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에 마음 쓸 것 없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성도들은 천국의 시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남겨두신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일꾼으로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추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함으로써 주님 앞에 설 때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써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분은 땅바닥에서 하늘까지 상승했습니다. 비천한 땅에서 육의 것을 바라고 살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늘의 신령한 것을 누리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죄인이 의인 되었고, 마귀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육신을 위해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님 각자에게 주어진 영적인 변화와 새로운 신분을 늘 자각하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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