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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므로 (창 2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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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시므로
(창 26:12-22)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너희 입으로 구하여 말하고, 너희 발로 찾아다니며, 손을 들어 열심히 하늘의 문을 두드려 문이 열리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호세아서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10:12) 이처럼 지금 호세아서에는 인간의 심령을 밭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밭이 씨를 뿌리기에 적당한 땅이 아니라 씨를 뿌려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는 묵은 땅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지금 우리에게 황무지 같은 네 심령의 땅을 기경하고 파 엎으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묵은 땅을 기경하는 일이야말로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또 한 가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바로 너를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도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너와 네 가족만이 잘 먹고 잘살게 하기 위해 방주를 지으라고 하신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영혼의 구원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자마다 말씀을 통해 내 심령의 묵은 땅을 기경하고 파 엎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위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지금이 곧 하나님을 찾을 때니 너희는 묵은 땅을 기경하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바로 여호와를 찾을 때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로 나아가 우리의 묵은 마음을 갈아엎을 때인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의”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의”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데 그것이 바로 “긍휼”인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의 심령 속에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심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의의 씨앗이 지금 여러분의 굳은 심령 밭에서 온전히 자라지 못하고 말라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심령이 사망의 열매만 거둘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서 10장 13절에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13)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갈아엎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여러분의 악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내 자신의 실력을 의지한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맥추감사절을 맞이하여 내 심령의 묵은 밭을 기경하고 내 마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뿌린 의의 씨앗을 온전히 자라게 하는 하나님의 농장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이삭의 무저항주의의 축복

  여러분! 동물들은 강한 동물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이런 약육강식의 원리가 사람에게도 적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이런 동물적인 본능이 인간들 사이에서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를 축적하고 힘을 얻으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누르고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을 달랐습니다. 그는 의를 심고 긍휼을 베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그는 하나님께 받는 축복으로 인해 창대하고 왕성한 거부가 되자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됩니다. 중동지방에 샘의 근원은 곧 힘과 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삭의 우물을 다른 사람들이 시기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삭의 아브라함 때부터 있었던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운 것입니다.


3. 무저항주의로 충돌을 피하고

  이렇게 해서 이삭은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샘의 근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그곳에도 그랄 목자들과의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에섹”이라고 하고 다시 또 다른 우물을 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에도 다시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싯나”라고 하고 거기에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판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이 다투지 않자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삭의 무저항주의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려고 했을 때에도 건장한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저항도 하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런 이삭을 축복의 근원, 샘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복의 근원이 되면 저주받은 땅에 들어가도 복을 받게 되고 흉가 속에 들어가도 더 잘되는 축복은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곳에 단을 쌓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이제 이삭은 브엘세바로 올라갑니다. 그러자 그 밤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24) 그러자 이삭은 일어나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조상들의 삶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이 말씀을 받는 자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의 믿음의 대를 잇고 생수의 근원을 얻으므로 말미암아 가는 곳마다 생명의 물을 터치며 주안에서 양보하므로 다툼이 없게 하는 르호봇 교인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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