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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시 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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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시편 100:1-5)

열흘 전 쯤 부산대학병원 응급실에 들를 일이 있어서 가 보았더니, 응급실 게시판에 이런저런 내용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항상 감사하기>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응급실에서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있는 가족들이 그 글을 읽으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참 좋은 글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이런 내용입니다.

「10대의 자녀가 반항하면
그건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있다는 것이고,
지불해야 할 세금이 있다면
그건 나에게 직장과 재산이 있다는 것이고,
파티를 하고나서 치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면
그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고,
옷이 몸에 좀 끼인다면
그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고,
깎아야 될 잔디, 닦아야 될 유리, 고쳐야 할 하수구가 있다면
그건 나의 집이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맨 끝 먼 곳에 겨우 자리 하나가 있다면
그건 내가 걸을 수 있는데다 차도 있다는 것이고,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면
그건 내가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고,
교회에서 뒷자리 아줌마의 엉터리 찬송이 영 거슬린다면
그건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이고,
세탁하고 다림질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있다면
그건 나에게 입을 옷이 많다는 것이고,
온 몸이 피곤하고 뻐근해 진다면
그건 내가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이고,
이른 새벽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깼다면
그건 내가 살아있는 것이고,
이메일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면
그건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겠지요.」

자녀가 반항을 하고, 세금이 많이 나오고, 설거지꺼리가 많고, 옷이 작아지고, 집에 손 볼 일이 많아지고, 먼 거리에 주차하고, 난방비가 많이 들고, 엉터리 찬송 때문에 짜증이 나고, 빨래거리가 쌓이고, 온 몸이 피곤하고, 자명종 소리에 새벽잠을 깨고, 이메일이 쏟아지면 귀찮아질 때가 있습니다. 불평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해보면, 그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바꾸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으면 언제나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고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늘 원망하며 불평하며 살아갈 때가 많았던 우리들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감사꺼리입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감사거리입니다. 이 감사의 계절에 언제나 어떤 사건을 만나든지 나는 감사하며 살아가리라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안 좋은 사건, 아무리 안 좋은 환경 가운데서도 생각해보고 찾아보면 좋은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부터 해 놓고, 그 다음에 감사꺼리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줄 믿습니다.


1. 감사의 대상이신 여호와 하나님

오늘 본문의 표제가 <감사의 시>입니다. 이 시편은 예배자들이 감사의 예배,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예물을 가지고 성전 뜰을 지나서 성전 문에 들어서면서 하나님 앞에 불렀던 찬송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라고 했는데, 그 문이 어떤 문입니까? 성전 문입니다. 그 궁전은 어디입니까? 왕이신 하나님의 집, 성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문에 들어가면서, 그 궁전에 들어가면서, 성전에 들어가면서, 성전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절에 보면 <즐거이 여호와를 부르라>고 했습니다. 막 외치라는 말입니다. 마치 지난 월드컵 때 우리가 “대한민국!”하고 “와!~”하고 외쳤던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외치라고 했습니다. 2절에 보면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또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4절에는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하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감사와 찬송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예배하는 성도의 자세에 감사와 찬송, 이 두 가지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성전의 문을 열고 들어올 때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감사와 찬송 이 두 가지가 내 마음 속에 있는가 우리 자신을 점검해보면서 찬송과 감사로 충만히 젖어서 성전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구에게 감사하라고 했습니까? 4절에 보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찌어다>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1절에 보면 <여호와>, 2절에 보면 <여호와>, 3절에 보면 <여호와 우리 하나님>, 5절에 보면 <여호와>, 시편 100편에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감사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이 감사의 대상인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하나님을 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우리는 감사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우리가 찬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호와>라고 하는 이 말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번역이 안돼요. 예를 들어 말하면 <할렐루야>라든지 <아멘>이라든지 이런 말을 번역하면 그 본래의 의미가 훼손되기 때문에 여호와는 본래 그대로 여호와라고 불려졌는데, 이 여호와라는 말은 ‘존재하다’라는 ‘하야’에서 유래된 말로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여호와가 항상 어떤 때에 사용되는가 하면 여호와는 인간과 더불어서 언약을 맺으시고 신실하게 약속을 지켜나가시는 분이라고 할 때에 <여호와>라는 말을 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번역을 해서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그 원어는 <엘로힘>입니다. 전능자를 의미하는 ‘엘’에서 나온 말입니다. 엘로힘은 어떤 존재보다도 뛰어나신 분,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리킬 때 <엘로힘>, 우리말로 <하나님>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여호와, 이 엘로힘에서 많은 하나님의 이름이 파생되어 나옵니다. 여호와에서 <여호와 이레>,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 마치 부모가 자식이 태어나기 전에 그 자녀를 받을만한 준비를 다 해놓고 자식을 낳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만세 전부터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의 모든 삶을 다 예비해놓고 계시는 여호와 이레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에 살아갈 때 사람이 얼마나 평강을 잃어버립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까? 정신적인 피로의 삶이 지나치게 되면 정신적인 병을 앓게 됩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서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 샬롬>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패배감에 젖어 있습니까?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승리자 되시는 여호와, 깃발 되시는 하나님, 늘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십니다.
영육 간에 병든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 되시는 하나님,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갈 길을 알지 못하고 있는 인생들에게 목자가 되시는 <여호와 로이>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으면 이런 하나님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 앞길을 예비하시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풍성하게 예비하시는 하나님. 날마다 우리 마음에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 세상이 주는 평강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강. 날마다 세상 속에서 승리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영육 간에 병들 때라도 치료하시는 하나님, 우리 앞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만나야하고 체험하는 것이 신앙의 삶인 것입니다.
<엘로힘>에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 엘로힘에서 <엘 샤다이>, 백성의 궁핍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궁핍함도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언제나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부자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가난에 찌들어 살기를 바라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백성의 궁핍을 그때그때마다 채워주시는 하나님, <엘 엘리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그러면서 작은 내 인생의 앞길도 인도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 <엘로이>,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 뭐든지 다 아시는 하나님, 무소부재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우리는 늘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신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초월해서 계시는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 장소에 임재하시며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여호와되시는 하나님이요, 엘로힘되시는 하나님인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성경에는 3만 2천 5백 가지의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는데 이 엄청난 약속들을 지킬 수 있는 엘로힘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되셔서 그 모든 약속을 다 지키시고 우리를 체험케 하시는 하나님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우리가 체험하고 있느냐?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전혀 다를바가 없이 생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닌가? 그 하나님이 우리의 내일을 예비하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치유하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승리케 해주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그 하나님이 내 인생을 주장하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고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믿고, 그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하나님의 능력을 옷 입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 자신인 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예배를 통해서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치료를 받습니다. 삶이 달라집니다. ‘내가 안 믿으니까 다른 사람도 안 믿지’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배 속에서 질병이 치료되어지고, 문제가 해결되어지고, 가난이 해결되어지는 역사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능력 많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일전에 우리교회가 강사를 모시고 경남지역에 있는 목회자들을 모셔서 세미나를 열고 또 권사님, 집사님들이 가셔서 식사를 제공하면서 위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오신 분들이 시간이 없어서 다 간증은 못했지마는 몇 분들께 간증을 부탁했더니 불교에 심취되어 있다가 교인되고 목사님 된 분들이 여러 분 계시더라고요.
그 분들 가운데 한 분은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해서 자기 소원은 30살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건강 때문에 연구도 하고 또 절에 가서 오래 있게 되었는데 절에 가서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주 친해졌답니다.
이 아무개라는 유명한 스님이 계십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겠지만 이 아무개라는 스님과 가족처럼 되어졌는데, 스님에게 물었답니다. “과연 인간에게 내세는 있는 것입니까?” 그렇게 물으니까 이 스님이 “내세는 있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정말 부처님을 잘 섬기고 믿고 불교에서 도를 닦으면 내세에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인데, 그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물으니까 “불교에서는 그 문제를 해결 못 한다”고 하더랍니다. 우리가 지금 믿는 이 불교의 교리라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냐?” 물으니까 “예수믿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네가 정말 영생을 얻고 싶으면 교회가서 예수 믿으라”고 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내려와서 신앙생활하게 되고 결국 그는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자, 그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영생의 길이 없어요. 물론 다른 종교에도 기적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든 종교에는 기적이 있는데 그런 기적이라는 것을 통해서 미혹해서 사람을 그렇게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성철(性徹) 스님 잘 알지 않습니까? 얼마나 도를 닦는데 열심이었던 스님이었습니까? 장좌불와(長坐不臥)라고 눕지 아니하고 15년 동안을 앉아서 도룰 닦은 도인입니다. 그리고 또 옷 한 벌을 가지고 50년을 입었던 스님입니다. 그리고 철조망을 쳐놓고 나가지 않기를 수 십년을 수도했던, 그러면서 도를 닦았던 그 스님이 마지막에 세상을 떠나면서 뭐라고 고백했는지 아십니까? “내가 남들을 속인 죄가 수미산(須彌山)보다도 더 높아서 아비지옥(阿鼻地獄)에 가서 갈기갈기 찢겨죽을 것이다”고 고백하면서 갔습니다.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영생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만이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생의 내일을 준비하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신은 하나님 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온 우주만물을 지으신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궁정입니다. 그 하나님이 계시는 궁정에 들어올 때에 무엇을 갖춰서 들어오라고 했습니까? 감사와 찬송함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거하는 청와대에 들어갈 때에 예의를 갖추어서 들어갈 것 아닙니까? 온 천지만물을 지으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뭘 가지고 나갈 것입니까? 감사와 찬송함으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을 만날 때보다도 더 큰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고 감사와 찬송으로 나아오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성도의 자세인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하기 위해서 나온 우리 성도가 갖추어야 할 자세입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축복으로 만나주시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궁정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그 문에 들어가면서 시편 100편을 노래하면서 뜰을 지나가고, 성전 문을 들어가고, 궁정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그 궁정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 궁정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하는 모임이 바로 하나님의 궁정입니다. 교회당만이 궁정이 아닙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하나님이 그 곳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바로 그곳이  궁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두세 사람이 예배드릴지라도 그곳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궁정임을 깨닫고 감사와 찬송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축복으로 우리를 만나주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궁정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우리가 갖추어야 될 감사와 찬송, 이것은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것이다. 전능하신 여호와, 엘로힘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내 기도를 받으시고 어떤 축복으로 응답하실까.’하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올 때에 늘 감사하는 마음, 늘 찬송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예배 속에서 만나게 될 줄을 믿습니다.

2. 왜 감사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을 지은(知恩)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을 사은(謝恩)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보은(報恩)이라고 합니다.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을 망은(忘恩)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을 배은(背恩)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될 사람들이 받은 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에게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현대인들이 개를 많이 키웁니다. 개 키우면 돈 많이 들어갑니다. 또, 개 키우면 시간 많이 뺏깁니다. 사람은 아플 때  몇 천원이면 병원에 가서 주사맞고 나오지만 개는 만원 들고 가야합니다. 개밥도 얼마나 비싼지 모릅니다. 어디에 갈 때에 개 맡기려고 개 호텔에 가면 사람 호텔에 간 것과 같다고요.
그렇게 개 키우기가 힘들고 돈이 드는데 왜 사람들이 개를 키우고 있는 줄 아십니까? 개는 배반하지 않습니다. 팔려가도 집으로 돌아옵니다. 때려도 주인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배신합니다.
땅이 우리를 배신하는 것 봤습니까? 땅은 거름주면 더 잘 자라고, 콩 심으면 콩 나고, 절대로 배반 안 합니다. 짐승도 사랑하게 되면 무서운 짐승들도 사람을 알고 사람을 따르고 사람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배반하고 배은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만물보다도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감사하며 늘 찬송하면서 나아가서 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광장에 개 조각상이 있습니다. 보비라고 하는 작은 개가 떠돌아다닙니다. 떠돌아다니니까 얼마나 굶주렸겠습니까? 그래서 아주 말랐습니다. ‘조크’라고 하는 한 노인이 보비를 발견하고 식당에서 저녁 한끼를 잘 사 먹였습니다. 얼마 후에 노인이 죽었습니다. 문상객들이 노인의 시신을 운구할 때 그 개가 졸졸 그 뒤를 따라다닙니다. 장례를 치렀습니다. 매장하는 인부들이 개를 쫓아내도 가지를 않습니다. 장례식이 끝났습니다. 사람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보비는 떠나지 아니하고 밤낮으로 노인의 무덤을 지키고 있습니다. 보비가 묘지를 떠날 때는 매일 오후 먹을 것을 찾아서 나설 때뿐이었습니다.
보비의 행동에 감동한 마을 사람들이 보비를 위해서 작은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14년을 하루같이 묘지를 지키던 보비도 죽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에게 식사 한끼 따뜻하게 해 준 친절에 그토록 헌신적이었던 보비를 노인 옆에 묻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서 에딘버러 광장에 조각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배은하는 인간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짐승도 따뜻한 밥 한끼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평생동안 그 무덤을 지켜내고 감사를 표시했는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너무 많은 은혜를 받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가장 귀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와 동질(同質)의 인간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한 독생자를 주시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시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여 주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우리를 인도하여서 승리하게 만들어주시고 보호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지난 6개월 동안도 살아오고 지금까지도 평생을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밥 한끼에 미물인 개 한 마리도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14년 동안 무덤을 떠나지 아니하고 보은하는 개도 있는데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정말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엘로힘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을 지키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셨다고 했습니까?. 3절에 보면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다,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하고많은 존재들 가운데 사람으로 창조된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다윗은 <사람이 무엇이관대 이렇게 인자(人子)를 사랑하십니까?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의 몸을 보니까 실로 신묘막측(神妙莫測)합니다>하고 감탄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몸 구조를 한번 보세요. 사람의 몸이 얼마나 신비롭게 만들어졌는지 참으로 묘하게 묘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우리 몸 속에는 지구를 한바퀴 반 돌 수 있는 핏줄들이 있습니다. 이 핏줄들이 아무렇게나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일전에 어느 권사님께서 심장병으로 고통을 당하셨는데, 그 핏줄이 한겹으로 되어있는 줄 알았는데 권사님 심장 때문에 의사에게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 핏줄이 전부 다 삼겹으로 되어있답니다. 같은 모양과 방향으로 짜여진 게 아니고 베를 짜듯이 삼겹으로  어긋나게 짜여져 있는데, 권사님의 심장 핏줄이 어떻게 되어있는가 하면 안에서 한겹이 떨어지고 또 두 번째 겹이 떨어지고 마지막에 껍데기 한겹만 남았는데 이게 떨어지면 죽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메리놀 병원에서 치료를 하고 약물을 썼는데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의 인체를 신비롭게 만드셨는가 하면 치료하고 약물을 쓰니까 안에 떨어졌던 겹들이 새로 붙어서는 두겹이 완전하게 되어서 지금도 얼마나 건강하게 생활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귀한 존재로 창조를 하시고 우리의 몸 신체구조를 신묘막측하게 만들어서 지금 제가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면 공기의 파장을 통해서 그 소리가 귀에 들어갑니다. 또 머리에 전달됩니다. 이해가 됩니다. 눈이 반짝거립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불교에서는요. 사람의 존재가 귀하지 않습니다. 살생하지 말라고, 살아있는 것은 다 귀하게 여기라고 하고 있지만, 인간의 가치가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이 나중에 소로도 태어나고 개로도 태어나고 쥐로도 태어나는데, 쥐로 태어나 살다가 어느날 소도 태어나기도 하고,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한다고 해석을 하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사람이 동물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요. 뭐가 다릅니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이 하나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짐승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 지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펼쳐나가고 하나님 살아계신 증거를 보여주는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피조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 아닙니까?
오늘 본문에서 지었다는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재창조(再創造)했다는 말입니다. 구속했다는 말입니다. 죄로 인하여서 멸망받을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께서 피흘려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백성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중의 복이요, 감사의 제목 제 1순위가 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같은 사람은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내가 짐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 감사하다. 두 번째로는 내가 하고많은 세상 사람들 중에서 헬라 사람으로, 그리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참으로 감사하다고 감사드렸습니다.
우리는 만물들 중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으로 창조되었으니까 우주만물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존재요, 또 이 땅에 많은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재창조되었으니까 사람 중에서도 위대한 사람들 아닙니까?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이 우리 성도의 위치인 것입니다.

거기다가 지나 온 6개월 한번 살펴보세요. 국가적으로 얼마나 위태로운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평화무드에 젖어가지고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고 있지만, 북핵에 관한 문제는 바깥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몇 년 전에는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려고 했다가 폭격하지 못한 것이 얼마 전에 발표되지 않았습니까?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미국이 호락호락 그렇게 넘어가지 않을 것 아닙니까?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언제 이 땅에 전쟁이 터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지금까지 지키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위시한 수많은 사고와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이런 환경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지난 6개월 동안 우리의 삶을, 우리의 가정을, 우리의 자녀를, 우리의 생명을 지켜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다 감사할 것입니까?
보비라는 개는 한끼의 밥을 얻어먹은 은혜에 자기의 삶을 다 드려서 감사를 표시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엄청난 축복, 주님으로부터 받은 이 생명, 성령을 통해서 보호받고 살고 있는 이 놀라운 축복을 어떻게 우리가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의 궁정에 들어올 때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마음으로 감사하고, 말로 감사하고, 우리의 몸과 물질로 감사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게셔서 이곳에 임재해 계십니다. 우리는 그 궁정에 들어와서 오늘도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엘로힘되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예배 속에서 구체적으로 만나서 우리의 삶의 문제들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물 중에 위대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으로 창조해주시고, 거기다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고 성령께서 우리를 지난 6개월 동안 지켜주었지요. 하나님의 은혜 다 어떻게 감사할 것입니까?

다음 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한주간동안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하나 헤아려 보면서 뜨겁게 감사해서 주의 전에 나올 때마다 언제든지 감사하는 마음, 기쁨으로 찬양하는 마음 가지고 주 앞에 나가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감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늘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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