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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직과 회개 / 시 32:3-11, 요 8: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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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정직과 회개것             
말 씀 : 시 32:3-11, 요 8:43-45             

  지금 우리나라는 어느 것 하나 믿어 볼 것이 없고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의 기본은 정직함입니다. 정직이 선보다 우선이고 의보다 우선이고 진리보다도 우선입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이 정직입니다. 환자가 병을 고치려면 의사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언제부터인지 어느 곳이 얼마나 아픈지 마신 것은 마셨다고 먹은 것은 먹었다고 나는 이런 일을 했고 어디에 갔고 심지어 옷을 벗게 되면 벗고 자신을 정직하게 적나라하게 내놓아야 치료가 되지 의사 앞에 환자가 요렇게 조렇게 거짓말을 하면 병을 절대로 고침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정직이 먼저입니다. 무엇보다도 정직함을 찾아야 합니다. 아시는 대로 다윗은 결코 의로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아도 그렇게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했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지만 모세도 의로운 사람은 아니었으나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직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직입니다. 때로 우리는 좋은 구실과 목적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목적이 방법을 정당화 할 수는 없습니다. 잘못된 것은 어디까지나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리 화이트 박사가 쓴 정직, 도덕, 그리고 양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사람의 정직함을 4가지로 분리해서 말했습니다. 먼저는 일반적인 정직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직입니다. 기초적인 것입니다. 다음에 법률적 정직입니다. 남이 보건 안보건 스스로 정해진 법을 잘 지켜 나가는 정직입니다. 다음에 내면적 정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심에 따라서 스스로 양심을 깨끗하게 지켜 나가는 정직입니다. 다음에 성경적 정직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을 기준하는 것이 아니고 문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의 감화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함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직에 대하여 크게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생각할 때 정직하지 못한 것 거짓말 같은 것을 재간으로 착각합니다. 거짓말 하면서 스스로 나는 참 똑똑하고 머리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한테 속는 저 사람은 멍청하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속이고 있는 내가 형편없이 멍청하고 바보스러운 사람인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남을 속이는 자기가 남보다 아이큐가 높고 머리가 잘 돌아가고 똑똑하다고 착각을 합니다. 실은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을 어기든가 양심을 어길 때 통쾌하게 생각합니다. 아예 여기서 쾌감을 느낍니다. 어떤 운전자는 아직 붉은 신호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차들은 다 기다리는 사이로 혼자서 휙 지나가면서 통쾌해 하는 운전자가 있습니다. 왜 멍청하게 그대로 있느냐 나는 먼저 간다는 식입니다.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짓된 것을 큰 이득으로 생각합니다. 거짓됨으로 뭔가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듯이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엄청나게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총명을 잃어버리고 거짓이 성품화 하면서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친구를 잃어버립니다. 내가 거짓말을 했으니 언젠가는 알게 되고 그러면 가까운 사람이 멀어지게 됩니다. 많은 것을 잃게 되고 큰 손해를 보고 있으면서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칠 때에는 정직했고 골리앗과 싸워서 이길 때도 정직한 사람이었고 요나단과 친구로 지낼 때에도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고 보좌에 앉고 권세를 누리게 되자 다윗은 정직함이 퇴색되었습니다. 명예를 생각하고 자기 지위를 생각하는 가운데 점점 거짓된 사람이 되었고 밧세바와 큰 죄를 범한 뒤에는 그것을 은폐하려고 했고 결국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부정한 방법으로 죽였습니다. 아예 정직함을 버렸습니다. 이렇게 정직을 버린 다윗이 회개하기를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절실하고 뼈아픈 회개의 기도입니다.

  오늘 읽은 시 32:3에 보면 다윗은 내가 토설치 아니 할 때에 종일 신음함으로 내 뼈가 쇠하였다고 했습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 할 때라는 말은 내가 회개하지 아니하고 내가 죄를 숨겼을 때 내게 거짓이 있을 때 내가 다른 사람 앞에 깊은 죄악을 숨기고 있을 때를 말합니다. 죄를 숨기고 있을 때 종일 신음하므로 뼈가 쇠하였다고 했습니다. 뼈가 쇠하였다고 했는데 뼈는 히브리 원문에는 척추입니다. 척추가 말라 버렸다는 말입니다. 책에 보니까 척추가 피를 만들고 피를 생산하고 피를 맑게 하고 척추가 모든 호르몬을 만들고 모든 신경을 전부 척추가 주관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뼈가 말랐다는 것은 끝났다는 말입니다. 몸도 병들고 얼굴이 죽어갑니다. 온몸의 균형이 깨어져 나갑니다. 다윗은 내가 죄를 숨겼더니 뼈가 말라 버리더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고백입니다. 4절에 하나님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다윗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가를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 몸의 진액이 다 말라서 마치 여름 가뭄에 모든 것이 싹 말라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모든 것이 팟싹 말라서 부스러집니다. 다윗은 자기의 타는 심정 초조한 심정, 불안한 심정을 이런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고통이 낮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밤에도 계속됩니다. 자기는 아무리 이 죄를 가리우려고 애써도 가리워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 죄를 잊어보려고 해도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죄를 잊어버리기 위해 저녁에 누워서 눈을 감으면 시 51:3에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자기가 범한 죄가 항상 자기 앞에 있습니다. 자기가 범한 죄가 눈앞에 환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심한 고통의 연속입니다. 마음속에서 성령님은 떠나갔고 따라서 기쁨도 없고 불안과 공포만이 마음속에 가득합니다. 잠이 들어도 꿈까지 사납고 우리아가 다윗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들고 달려드는 장면이 눈앞에 전개되어 전전긍긍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다윗을 종일 누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몸도 약해지고 정신도 쇠약해 졌습니다. 신경쇠약에 걸렸을 것입니다. 이런 고통이 주야로 계속됩니다. 아마 이런 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정신이상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다윗이 이런 생활을 하다가 나단 선지의 책망을 듣고 자기 죄를 하나님 앞과 하나님의 종 선지자 앞에서 진솔하게 정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자기 죄를 감추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다 털어놓았습니다. 죄는 자기 자신만의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다윗왕은 다른 사람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저버리고 범죄한 자기가 얼마나 악한 배신자 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자기의 죄를 철저히 하나님 앞에 자복했더니 하나님께서는 더럽고 흉악한 죄를 다 사하여 주셨습니다.

  5절에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하나님께 자복하리라 하고 하나님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를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하나님께서 내 죄악을 사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어떠한 죄를 지었든지 정직하게 회개하고 자복하면 그 죄를 다 사하여 주시고 기억도 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살인강도가 십자가에 죽기 직전에 자기 죄를 회개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즉시 그 사람이 범한 죄를 다 용서하여 주고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다 용서해 주었을 때에 다윗의 마음가운데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주야로 자기를 누르던 고통이 없어졌습니다. 무거운 짐이 벗겨졌습니다. 숨을 자유롭게 쉬게 되었습니다. 심령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잠도 편히 자게 되었고 아픈 머리도 시원해졌고 악몽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6절에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찌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찌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자기의 죄사함에 관한 경험에 의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리라는 권면의 말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하나님께 회개 하면 다 용서하여 주십니다. 깨끗하게 사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홍수가 범람할찌라도 그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죄사함 받은 사람을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9절에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지한 즉 아무것도 모르는 망아지나 아무것도 모르는 노새는 주인의 채찍을 맞으면서도 자기 잘못을 고칠줄을 모릅니다. 너희는 그런 망아지나 노새처럼 그냥 죄 가운데 있지 말고 하나님의 채찍이 내리기 전에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11절에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찌어다”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의인입니다. 의인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정직한 사람입니다. 죄는 기쁨과 평안함을 삼켜버립니다. 그러나 죄사함을 받으면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209장 후렴에 보면 “기쁜날 기쁜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날 기쁜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이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진실로 복 있는 사람은 죄를 용서 받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정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별명이 정직한 다윗입니다. 다윗은 의인이 아니고 선한 사람도 아니고 전쟁을 치른 사람이고 피를 많이 흘리게 한 사람이었으나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의 이름 가운데 제일 많이 나오는 이름이 다윗입니다. 무려 800번이나 나옵니다. 다윗은 엄청난 죄를 짓고 백성들 앞에 부끄러워했으나 철저하게 정직하게 회개 하였습니다. 회개 하지 아니할 때 뼈가 말라버린 것과 같았지만 회개 하고 나니 참으로 자유로웠습니다. 다윗은 정직한 사람이었고 죄사함을 받은 기쁨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죄를 다 용서하신 것을 믿고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사람은 자기를 용서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죄를 사하시면 내 죄를 내가 용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살면됩니다. 정직해야 자유할수 있습니다. 정직해야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기쁨을 만끽할수 있습니다. 웃음과 평화와 기쁨도 다 정직에 근거한 것입니다. 전 7:29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신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의 편이고 정직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욥 1:1에 보면 욥은 정직하게 살았고 욥 1:8에는 하나님께서 욥을 정직한 사람이라고 말씀했고 욥 2:3에는 하나님이 욥은 정직하다고 칭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욥의 편이었고 정직한 욥은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욥 8:6에 정직하면 하나님이 돌아보시고 형통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시 84:11에 하나님은 정직히 행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신다고 했고 시 112:2-3에 정직한 사람의 후대가 복이 있고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고 정직한 사람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잠 14:2에 정직히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했고 잠 23:16에 너의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고 했고 대상 29:17에 하나님은 정직을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행 5장에 보면 초대 교회에서 일어났던 무서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나니아가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자기 땅을 팔아 땅 값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를 가지고 가서 사도들 앞에 바쳤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어찌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고 책망했습니다. 베드로의 책망을 듣고 즉시 아나니아가 죽었습니다. 그 후 3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되어진 일을 알지 못하고 베드로에게 왔습니다. 그 아내에게 베드로가 그 땅을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나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 아내가 예 이뿐입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너의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고 나가리라고 했습니다. 그때 삽비라가 혼이 떠났습니다. 그 후에 젊은 사람들이 메고 나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죽은 것은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에는 기술도 필요하고 수출도 필요하고 정치선진화도 필요하고 경제 성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국민이 정직함을 회복해야합니다. 그래야 삽니다.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려워집니까? 왜 부정과 비리의 연속입니까? 왜 바람잘날이 없습니까? 정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정직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요 8:44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귀를 가리켜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한자요 마귀의 추종자입니다. 거짓말을 하고 속이는 것은 이기심 때문입니다. 뭔가 이것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심, 나 자신만 아는 자기 중심적인 마음이 거짓된 삶을 살게 하고 거짓말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명예욕 때문입니다. 체면을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유교 문화에 젖어서인지 우리 민족의 체면의식은 참으로 큰 문제입니다. 체면은 사실은 거짓된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체면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하나님께서 다 보십니다. 그런데 거짓을 행합니다. 불신앙이 바로 거짓으로 통합니다. 그리고 거짓은 현재만 생각합니다. 몇 시간 뒤 몇 개월 몇 년 뒤에 될 일을 생각지 못합니다. 지금 내가 거짓을 심으면 그 다음에 저기 가서 어떤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인지를 생각지 못합니다. 순간만 생각하는 찰라 주의가 거짓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리고 거짓은 무지입니다. 나 자신을 병들게 하고 내 인격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거짓의 체질에 젖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은 사랑이 없습니다. 나는 속이고 좋을지 몰라도 나한테 속은 사람, 나로 인하여 실망하는 사람들의 그 아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은 정직할수 없습니다.

  박씨와 김씨가 동업을 했는데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어서 모조품을 사다가 진품이라고 속이면서 몇 년 동안 장사를 해서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벌었는데 차차 그것이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집 가게에서 파는 물건은 다 가짜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손님이 다 끊어졌습니다. 장사를 계속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둘이 다시 작전을 세우기를 ‘우리 따로따로 나가서 한 5년간 신용을 회복해야 되겠다 5년 동안만 작전상 정직하게 장사하여 명예를 회복한 다음에 왕창 한탕해버리자’ 이렇게 작전을 세우고 나가서 5년 동안 정직하게 장사 하였습니다. 수입이 신통치 아니했지만 정직하게 장사했더니 박씨는 ‘정직한 박씨’라는 별명을 얻고 김씨는 ‘고지식한 장사꾼’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5년 후에 두 사람이 만나서 신용을 회복했으니 이제는 가짜를 진짜라고 해도 다 믿을 것이다 한번 왕창하자 하고 김씨가 말하자 박씨가 말하기를 돈은 덜 벌었지만 정직하게 사니까 마음도 편하고 누구를 만나도 두렵지 않고 잠도 잘 오고 좋더라 그냥 이렇게 정직하게 살자고 해서 정직하게 장사하기로 했습니다. 정직함이 주는 유익을 모르면 안됩니다. 거짓 때문에 오는 고통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거짓되게 계속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정직하게 사는 하나님의 자녀, 가정에서 정직한 남편, 정직한 아내, 정직한 자녀, 정직하게 사는 국민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순간순간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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