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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이 되도록 하라 / 고후 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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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이 되도록 하라
성경본문 : 고린도후서 7:10∼11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는 크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피할 수 없이 직면하는 문제, 즉 ''고민'' 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고민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때로는 이 고민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며 각종질환을 유발시켜 육신을 상하게도 합니다. 성서에서도 이 고민의 고통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잠17:22)

고민이라는 것은 우리의 얼굴빛을 빼앗아 가기도 하고, 건강 뿐 아니라 심령까지도 상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신앙 인들이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신앙의 삶은 고민이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고민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신앙인은 고민을 죄악시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은 고민을 백해무익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면서 의도적으로 그 고민을 무시해 버립니다. 그러나 실상 이 시대의 심각한 문제는 고민할 줄 모르는 인간을 만들어 가는데 있음을 보게됩니다.

성서는 ''무가치한 고민''을 버리고 ''가치 있는 고민''의 신비를 간직할 것을 깨닫게 합니다. 신앙인의 삶은 고민하는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고민을 어떻게 수용해 갈 수 있을까''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한 과제입니다. 오히려 가치 있는 고민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칼 바르트''는 "우리의 마음속에 고민이 없다면 우리의 입술에 노래도 없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오늘 성서본문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한 고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복음을 전하여 이루어진 고린도 교회에 거짓교사가 침투해서 거짓 진리를 가르치고, 또 그들이 만든 선동자들이 나타나 교회를 분열시키고 병들게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바울의 사도권을 시비하는 무리까지도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분노하여 고린도 교회에 심하게 책망하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자신의 책망을 고린도 교인들이 어떻게 받아드릴까 근심하며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책망의 편지는 고린도 교인들로 하여금 가치 있는 고민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고민 속에서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시 돌아서서 처음의 믿음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소식을 듣고 바울은 자신과 고린도 교회의 고민하는 역사는 가치 있는 것임을 말씀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고민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가치 있는 역사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민은 인간 삶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많은 고민을 가치 있는 고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의 고민을 가치 있는 것이 되게 하겠습니까?

고민의 양면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치 있는 고민이 되려면 고민의 양면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은 고민의 양면성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고민''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입니다. ''세상고민''은 무익하고 해로운 고민입니다. 바로 사망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고민입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고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태복음 6:31)
먹고 마시고 입기 위해 하는 고민은 끝이 나지 않는 고민입니다. ''세상고민''은 자신에 대한 염려, 원망, 욕망 그리고 불만으로서의 고민이며, 자신을 은폐하며 변명하고자 하는 고민입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달밤에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름다움에 반했습니다. 밧세바를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왕의 힘으로 그녀와 동침하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밧세바는 임신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로 인하여 또 다른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꾀를 내어 최전방 전투에 임하고 있는 우리야에게 휴가를 주어 밧세바와 동침케 하였지만,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자 더 큰 고민 가운데 빠졌습니다. 결국 다윗은 우리야를 최전선으로 보내 화살에 맞아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야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으려는 고민, 차지하려는 고민, 범죄한 자신의 죄를 감추려는 고민, 우리야를 죽이려는 고민 등 이러한 다윗의 고민들이 바로 ''세상고민''입니다. 이것은 사망을 이루는 고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은 원어적으로 볼 때 ''하나님에 의한 고민''이란 뜻입니다. 모펱(Moffet)은 바로 이 고민을 가리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고통''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고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으로 주시는 이 고민은 우리에게 유익한 고민이고, 회개의 삶을 만들어 주는 것이며, 또한 후회 없는 구원의 삶을 만들어 주는 가치 있는 고민입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차지하고 즐겁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어 그의 죄악을 지적하며 꾸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야를 죽이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도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사람 우리야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삼하12:9∼13)

다윗은 나단이 선포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 또 다른 고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직면하여 자신의 죄악과 허물에 대해 더욱 더 괴로워하며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극심한 고민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가 그의 시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6:6)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51편)

다윗의 고민은 그로 하여금 회개의 삶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구원의 삶을 찾도록 했습니다. 이 고민은 다윗에게 유익한 결과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통과 번민, 부끄러움의 감정에서 자유를 얻게 해 주었습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준 것입니다. 이 고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고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고민의 양면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은 ''세상 고민''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입니까?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의 삶을 우리에게 요구하였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6:33)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고민하는 삶을 요구하셨습니다. 가치 있는 고민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입니다. 이 고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우리가 해야 할 고민입니다. 우리는 고민의 양면성을 깨달읍시다. 그리고 세상 고민에 얽매이지 마십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을 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민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가치 있는 고민이 되도록 하려면, 세상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불황이 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직장인과 서민들은 실직의 공포 속에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는 반면 일부 부유층을 겨냥한 명품 마케팅이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압구정동 청담동 일대의 이른바 명품 매장가에서는 한 벌에 수백만원이 넘는 남성복과 1000만원이 넘는 양주등이 팔려나가고 있고, 아기 옷 매장에서는 한 벌에 70-80만원을 호가하는 수제 맞춤복이나 100만원을 넘는 파티 복들도 끊임없이 팔려나가고 있답니다. 독일산 벤츠나 BMW등 수입자동차 업계도 불황을 모른답니다. 지난 5월 외국차 판매는 1800대 이상이 팔렸는데 이것은 4월에 비해 7.9%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은 성분을 넣었다는 기저귀와 배냇저고리, 은으로 만든 유모차와 젖병은 물론 100만원이 넘는 애견용가구와 전용의류 각종 영양제, 화장품들이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좀더 진귀한 것 값비싸고 화려한 것을 구입하기 위하여 고민하는 사람들 같습니다. 사치 향락을 위하여 고민하는 세상고민은 멸망을 향해 가는 고민입니다. 이런 고민은 이웃사랑을 위한 구제와 나눔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고민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한 정당의 대표가 굿모닝 시티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사건으로 정가가 시끄럽습니다. 도덕성을 강조하는 현 정권도 돼지저금통의 거짓말로 이미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치적 술수, 권력에의 탐욕을 위한 정치가들의 고민은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대로의 고민으로 바뀌어야, 이 땅에 참된 회개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을 찾는 사회로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들 내면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을 겪을 때에, 이런 고통이 왜 내게 있을까? 라고 원망하며 고민하기보다는 나는 왜 그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는가? 그리고 나는 왜 그 고통에서 만족한 것을 찾지 못하는가? 라고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민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입니다. 왜 나는 많이 가지지 못했고 행복하지 못할까? 라고 고민하기보다는, 왜 나는 많이 가지지 못한 그 곳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또 행복하지 못한 조건에서 행복하지 못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 힘들다고 고민하기 보다, 믿음의 길이 최고이며 기쁨의 것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을 향하여 ''저런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 라고 미워하며 고민하기 보다 ''왜 나는 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할까?'' ''왜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까?'' ''왜 나는 그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없을까?'' 라고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내가 모욕과 무시를 당해야 하나?'' 라고 고민하기보다, ''왜 나는 이런 모욕과 무시에 예민해야만 하는가?'' ''왜 이런 일로 이렇게 민감하고 불쾌해야 하는가?'' 라고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자랑할 수 없어서, 높아질 수 없어서, 인정받지 못해서 고민치 말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더 큰 즐거움으로 여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은 결과에 대한 것이기보다 원인에 대한 고민입니다. 나의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대한 고민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데에 대한 고민인 것입니다. 이제 세상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은 세상의 모든 고민을 하나님의 뜻으로 하는 고민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처리하시는 결과가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성서본문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이 뜻대로 하는 고민은 후회 없게 해주고, 회개의 삶을 만들어 주며, 구원의 삶을 이루어 주는 유익한 결과를 맺도록 해 줍니다. 바울의 책망의 말씀에 고린도 교인들은 가치 있는 고민의 역사를 만들어 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불평과 불만의 시각에서 고민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시각에서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고민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고민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민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회개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고민은 그들의 죄악 된 모습을 바로 잡도록 했습니다. 바울의 책망에 대해 반항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였습니다. 죄악 가운데 있는 형제들에 대해 분노했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두려워했습니다. 자신들이 비난했던 바울을 다시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데 더욱 열심을 내었고 자신들을 깨끗케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세상적인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바꾸어야 하며 하나님이 처리하시는 결과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고민이 가치 있는 고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고민이 ''하나님의 처리하시는 고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하나님께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자신에게서 나오는 세상고민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26:37∼38)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으로 바꾸셨고, 고민을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신하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민을 하나님께로 가지고 가서 처리하심으로 인류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26:39)

이제 우리의 고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고민''이 되도록 하십시다. 그리고 그 고민을 ''하나님께서 처리하시는 것이 되도록 하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에 다루어지도록 하십시다. 성령께서 고민가운데 일하시도록 하십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 고민의 내용이 되게 하십시다. 우리의 모든 고민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되게 하시기 위해 주신 것이 되게 하십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가치 있는 고민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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