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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 열차 (창 1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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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 13:9-18
제목 / 인생 열차

남북의 끊어진 철도가 완전히 이어지면,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새로운 현실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그것은 철도로 우리가 <유럽>까지도 여행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오면 여러분과 함께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싶습니다.
아직은 좀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겠지만 우리, 오늘이 그 날이라고 생각하고 <유럽 여행>을 떠나 보시지요 !

자, 우리는 오늘 <영국 런던>을 최종 목적지로 삼고 서울을 출발하려고 합니다.
출발 시간은 <12시> 정각입니다.
이제 <몇 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
여러분과 함께 가기로 하신 분들은 다 오셨는지요 ?
언제나 그렇듯이 아직 도착하지 못하신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출발시간 1분전에 허겁지겁 열차에 오르실 분도 없지 않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
<출발지>인 서울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저마다 그렇게 달라도 우리의 <최종목적지>인 영국 런던에 도착하는 시간은 동일할 것입니다.
그것이 왜 그렇겠습니까 ?
그것은 열차가 <출발하는 시간>이 똑같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같은 열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같은 속도>로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거기에는 <1등석>이나 <3등석>의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가 <똑같은 시간>에 영국 런던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분명히 다른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똑같은 열차>를 타고, <똑같은 속도>로 달리고, <똑같은 목적지>에, <똑같이>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분명히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국적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재산도 다르고, 지적 수준도 다르고, 가치관과 인생관도 다 다를 것입니다.
저들 가운데는 <관광>을 목적으로 열차에 오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목적>으로 열차에 오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게 중에는 남에게 커다란 피해를 끼치고 <도피할 목적>으로 열차에 오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처럼 저들은 <같은 공간> 속에 머물고 있지만 서로가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  알고 계십니까 ?
우리 <인생 열차>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하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 <인생 열차>에 일찍이 올라 탄 사람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늦게 올라 탄 사람도 있습니다.
게 중에는 이제 막 올라 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인생 열차에 올라 탄 시간들은 제 각각이지만 그들은 <출발지>와 <목적지>는 똑같습니다.
<출발지>는 출생이고, <목적지>는 죽음입니다.

하지만 우리 이처럼 모두가 <똑같은 인생 열차>에 타고 있지만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입니다.
게 중에는 <진리>를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게 중에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단히 <양심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의 소리>를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지탄의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야말로 <백해무익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들은 그처럼 <같은 공간> 속에 머물고 있지만 <천태만상>이라 할 정도로 서로 <다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그것은 <공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 어떤 사람의 마음 중심에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1등 석에 앉아서 귀족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불의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의 마음 중심에 <진리>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리 초라한 옷을 입고 3등 석에 앉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의로운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 잊지 말자고요.
그 마음 중심이 <강도의 굴혈>이면 그가 거하는 곳이 <아방궁>이라 할지라도 그 공간은 <강도의 굴혈>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 중심이 <진리>로 가득하다면 그가 비록 <초가삼간>에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공간은 <아름다운 성소>인 것입니다.

여기 이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가 꼭 살펴보아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 24:40-41> 말씀인데, 같이 보시겠습니까 ?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 둠을 당할 것이니라 !

<세상 마지막 날>과 관련해서 우리 주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  여러분께서는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
보십시오 !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은 데려가시고, <한 사람>은 내버려두신 답니다.

성도 여러분 !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
그것은 우리가 비록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 중심>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에 따라서 우리 삶의 결국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 중심에 무엇으로 채워져야 하겠는가 ?
여기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창세기>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해서 <타락의 길>로 접에 들게 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  알고 계시나요 ?
<사탄>이 하와를 유혹하는 과정에서 한 말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를 말입니다.
그것은 "너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하나님 중심>이었던 우리 인간의 마음이 <자기중심>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이 지니고 있던 모습 !
그 모습은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지 말아야 할 모습이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서 있던 자리 !
그 자리는 우리 인간이 설 자리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 찾아오셔서 묻지 않으셨습니까 ?
  아담아 !  네가 어디 있느냐 ?

여기 이 <하나님의 음성>은 아담이 정말 어디에 있는지 모르셔서 소리내어 그를 찾으시는 음성이 아니었습니다.
여기 이 <하나님의 질문>은 <공간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네 마음의 중심>에 지금 누가 있느냐 ?
하나님은 지금 그 문제를 가지고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고 계십니까 ?
우리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주로 어떤 것들인지를 말입니다.
여기 이 문제와 관련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같이 보실래요 ?  <막 7:20-23> 말씀입니다.  신약성경 65면.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홀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

성도 여러분 !  어떻습니까 ?
여기 이 사실을 우리, 충분히 인정할 만하지 않습니까 ?
오늘 우리 마음 중심에 왜 <우리 자신>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가 ?
오늘 우리 마음 중심에 왜 <하나님>께서 자리하셔야 하는가 ?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영암의 가족 여러분 !  잊지 마십시오 !
우리 마음 중심에 우리가 존재하는 한, 거기에는 <평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거기에는 오히려 <고통>만이 가득합니다.

성경 안에서 여기 이 사실을 확인해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노아>라는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
그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다른 것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들 마음 중심>에 자기 자신들이 아닌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결코 잘 나가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
햇빛이 연일 쨍쨍 내려 쬐고 있는 상황에서 <홍수>를 대비해야 한다면서 날이면 날마다 산에 올라 배를 만들고 있는 노아의 가족들 !
저들의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하게> 보였겠느냐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저들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말았습니다.
느닷없이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보통 비>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양동이>로 물을 쏟아 붓는 것처럼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며칠 이러다가 말겠지 !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흘, 나흘, 열흘, 스무날 !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비는 무려 <40일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것도 <밤낮>으로 계속해서 말입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산으로, 산으로 !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저마다 높은 곳을 향하여 사력을 다해서 뛰었습니다.
하지만 쏟아져 내린 비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마저 집어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히말라야> 산 같은 높은 곳에서 <물고기 화석>이 발견되는 것은 여기 이것으로밖에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 !
거기보다 <15 규빗>, 즉 <6.84>미터 정도 물이 더 차 오르게 하셨습니다.

여기 <6.84>미터는 불과 <2층> 정도의 높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습니까 ?
그렇게 <대단한 높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
하지만 어떻습니까 ?
전혀 대수롭게 보이지 않는 <차이> !
바로 그 <차이>가 <삶과 죽음>, <구원과 심판>을 갈라놓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
여기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
<우리 마음의 중심>에 누가 존재하고 있는가 ?
여기 이 문제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렇게도 <전혀 다른 결과>를 우리에게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같은 시대>, <같은 공간> 속에 머물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이것입니다.
보십시오 !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결국>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그 배경>은 이렇습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서 걸어가던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물질의 복>을 충분히 부어주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자꾸만 늘어가는 <가축 수> !
그것은 저들로 하여금 도무지 함께 살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먼저 제안합니다.
<우리, 따로 살자>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
  네가 '좌' 하면 내가 '우' 하고, 네가 '우' 하면 내가 '좌' 하리라 !

삼촌의 여기 이 말에 <롯>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
그가 눈을 들어 <요단 들녘>을 바라보았답니다.

그 때 그가 바라본 <요단 들녘>은 어떠했습니까 ?
거기 <10절> 말씀을 마저 보십시오 !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 하지 않습니까 ?
말하자면 <요단 들녘>은 <에덴동산>처럼 <풍요의 땅>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풍요의 땅>이 눈에 들어오자 <롯의 마음>은 <주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그렇게 <욕망의 불길>로 타오르게 되자 그의 눈에는 <삼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에는 <하나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땅을 그가 오늘 처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가축을 치면서 정말 많이 보아온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저렇게도 <풍요로운 땅>을 이제는 <나 혼자>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풍요의 땅>에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롯> !
그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자리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처럼 <마음 중심>에 하나님께서 자리하지 않은 <인생 열차> !
그런 <인생 열차>가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

물론 그가 <더 좋은 집>에서 <더 많은 재물>을 누리며 <더 안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 열차>는 결국 <탈선>하고 말았습니다.
<풍요의 땅>에서 롯은 <아내>를 잃었습니다.
<두 사위>도 그 땅에서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두 딸>과의 관계 속에서도 <정상적인 가정>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뒤틀려 버린 가정> !
그야말로 <패가 망신해 버린 가정> !
그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기 자신>이 앉은 <인생 열차>의 결국은 그것이었습니다.

<톨스토이>가 쓴 우화 중에 이런 제목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

그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어느 날 <촌장>으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습니다.
  네가 하루 동안 걸어서 표시할 수 있는 땅만큼
  내가 네게 그냥 주겠노라 !

여러분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잠시도 쉬지 않고, 한숨도 자지 않고, 그 누구와도 잡담을 나누지 아니하고,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걷고 또 걷지 않겠습니까 ?
아니 그냥 걸을 리가 없지요 !
저 같으면 뜁니다.

그 책에 나오는 주인공도 저와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도 열심히 뛰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쉰다고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왜 그랬겠습니까 ?

내가 쉰다고 하는 것은 내가 차지할 수 있는 땅 !
그 땅이 그 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
그러니 어떻게 잠시라도 쉴 수 있겠습니까 ?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몸은 점점 지쳐 오는데 땅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해야 하겠다는 <욕심>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뛰면 뛸수록 <욕심>은 자꾸만 더 커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숨이 목에 차 오르도록 뛰고 또 뛰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국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
마침내 해가 지고 돌아와 촌장 앞에 섰을 때, 그는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
결국 그에게 돌아간 땅은 얼마나 되었습니까 ?
자신이 묻힐 <반 평> 정도의 땅 !
그것이 그가 차지한 땅의 <전부>였습니다.

여기 이 이야기와 <아주 비슷한 이야기>가 불경 속에 있습니다.
<불경 속에 나오는 주인공>도 여기 이 사람처럼 죽도록 뛰었습니다.
그리고 그도 맨 나중에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습니다.
그 역시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불경 속의 주인공>이 다른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죽어가면서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내던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
그가 그렇게 <지팡이>를 던지면서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
  저기까지가 내 땅이야 !

성도 여러분 !
그가 그렇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력을 다했지만 결국 그가 차지한 땅은 <몇 평>이었습니까 ?
<반 평> !
<반 평>이었지 않습니까 ?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또 다른 사람, <아브라함> !
그를 통해서는 우리가 <전혀 다른 인생 열차>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본문 1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보시겠습니까 ?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

아브라함은 좀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하지 않았습니다.
여기 이 말씀을 보십시오 !
그는 <헤브론>땅 <마므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았다 하지 않습니까 ?

여기 <헤브론>과 <마므레>는 단순하게 지명만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헤브론>은 <교제의 자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므레>는 <뜨거운>, <강한>, <활발한>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이 <헤브론>땅 <마므레>라는 곳은 <어떤 땅>이라는 말씀입니까 ?
<풍요의 땅>을 조카 롯에게 양보하고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땅 !
그 땅은 하나님과의 <뜨거운 교제>가 있는 땅, 하나님과 <뜨거운 만남>이 있는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아브라함의 인생 열차>는 바로 이런 열차였습니다.
여기 <이런 인생 열차의 종착역>이 어디인가는 우리가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예측할 수 있는 말씀이 오늘 <본문 14-17절> 말씀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내가 네게 주리라 !
  네 자손으로 하여금 땅의 티끌처럼 번성하게 하리라 !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인생이라고 하는 열차>에 올라타 있습니다.
이 열차에는 지금 <여러 사람>이 함께 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 닿을 <마지막 종착역>은 다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동일한 공간> 속에 머물고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사람은 아닙니다.
<동일한 예배당> 속에 머물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다> 같은 사람인가 ?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  잊지 마십시오 !
내가 지금 <참된 그리스도인인가> 하는 것은 공간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참됨>은 지금 <우리의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가에서 판가름이 납니다.

바로 그 <마음 중심> !
거기에 <나>가 아닌 <하나님>께서 자리하도록 하십시오 !
바로 그것이 <우리 인생 열차>가 전복되지 않는 비결입니다.
바로 거기에 <참된 평안>과 <참된 기쁨>과 <참된 위로>와 <참된 치유>와 <참된 자유>가 있습니다.
여기 이 모든 <참된 것들>이 이 시간 이곳에 둘러앉은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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