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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을 이기라 / 창 12:1-4, 창 22:1-19, 창 3:1-7, 마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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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제목:시험을 이기라
성경:창12:1-4절,창22:1-19절,창3:1-7절,마4:1-11절


우리의 신앙 생활이 늘 일취월장하면 참 좋겠지만 우리들의 신앙 생활을 때로는 힘들게 하고 신앙의 전진을 멈추게 하는 한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시험이라는 장애물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신앙을 지도하다가 신앙의 전진이 멈추고 퇴보하는 성도들을 보면 시험에 들었구나 하고 그 원인을 찾아보게 됩니다 시험의 원인을 찾아보게 되는 이유는 시험에는 두 가지 종류의 시험이 있기에 그 시험을 승리로 이끄는 자세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유혹의 시험과 시련의 시험이 있습니다 유혹의 시험은?  마귀가 유리를 믿음의 자리에서 넘어뜨리려는 것이요 시련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큰 것으로 복을 주시려고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찾아보면 유혹의 시험을 당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있는데 다름 아닌 창3장에 기록되어 있는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사탄이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에덴에서 쫓겨나며 인류에게 죄를 가져오고 멸망을 가져왔던 행위언약의 파괴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 다른 유혹의 시험의 경우는 마4:1-11절에 나오는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40일 금식 후에 사탄이로 말미암아 받으셨던 시험입니다

시련의 시험의 경우는 창세기 12장과 22장에 기록되어 있는 아브라함의 경우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중에 두 번의 큰 시련의 시험을 맞이하게 되는데 12장에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씀이요  22장에서는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의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잘 이겨냄으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던 결과 가나안을 무상으로 제공받고 믿음의 조상 축복의 시여자가 되는 축복을 가져왔는가 하면 여호와 이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가는 신앙의 길에는 이 두 가지 시험이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어  승리의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승리 아닌 실패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이 신앙의 승리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은 바른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고 시험을 이기지 못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받아 드려야 할 한 가지 사실은 시련의 시험이든 유혹의 시험이든 멋지게 통과하고 승리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 드렸듯이 시련의 시험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크게 사용하시고 복을 주시려고 주시는 것이요 유혹의 시험은 마귀가 우리를 믿음의 자리에서 떠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대적하게 하려는 것이기에 우리는 어떤 시험이든 승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1:1-19절의 말씀에 보면 야고보 사도가 권면하고 있는 시험을 대처하는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이 대처 방법은 유혹의 시험과 시련의 시험에 따라서 그 자세가 조금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약1:2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원 뜻은 "너희가 예기치 못한 시련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기쁘게 여기라"는 것은 기쁨이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또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시련의 시험을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당하는 시련의 시험은? 믿음의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말씀 중심으로 살기 위하여 세상과 환경으로부터 받는 고난입니다 핍박과 소외 환란 등을 말합니다  이러한 것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핍박과 소외의 현장에서 그 자체를 기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사랑하기 위함이요 구원받은 자로서의 바른 삶을 살기 위함이라 생각하고 받아 드릴 때 우리는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시련을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고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니 속상해 할 필요도 없고 서러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시험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가 되니 우리는 그 사랑이 자랑스럽고 고마울 뿐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시련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를 연단 시키시고 더욱 아름답고 든든한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시키시며 아름다운 복으로 보상해 주시는 것입니다 야1:3절을 보면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내는 "휘포모네"입니다 휘포모네란 앞이 막혀도 후퇴하지 않는 것 무거운 것이 내려 눌러도 일어서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시련의 과정을 통과할 때 더욱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우뚝 서게되는 것입니다 즉 시험을 통한 고난은 성도의 인격을 향상 시켜 줌으로 유익을 줍니다

롬5:3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을 앎이로라"고 말씀합니다

성도에게 오는 시험의 환란과 고난은 성도의 인격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고난이 오는 것을 알고 내게 크고 작은 고난이 올 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성도로서 갖추지 못한 인격의 요소들을 바로 갖추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게 고난이 올 때 내 신앙의 인격을 살펴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내게 교만이 있다면 겸손으로 바꿔야 합니다 불순종이 있다면 순종으로 내게 혈기가 있다면 양선 으로 바꿔야 합니다 성도의 인격은 겸손입니다 사랑입니다 온유 입니다 성도는 바른 인격을 형성하고 있어야 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사람에게 주님을 증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약1:12절을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시험이 오면 참으라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견디는 것이 참는 것입니다 고로 인내의 신앙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인내란 참고 견딘다는 것입니다만 헬라 원문에 밝힌 뜻은 지속적으로 일정한 상태에 머무르면서 견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고통스런 상황에도 끝까지 참고 견디는 것을 인내라고 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신앙의 경주에서 인내하려면 인내의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히12:2절 말씀을 보면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씀 드려 예수님의 인내의 결과는 하나님 보좌 우편 이였다는 것입니다  운동 선수들이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는 것은 후에 있을 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공부에만 열중하는 것도 영광스런 합격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실 수 있었던 것은 앞에 준비되어 있는 영광 즐거운 때문 이였습니다

첫째:시련의 시험을 생각해 보겠습니다(창12:1-4,창22:1-19절)
창12장과 22장에는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요 축복의 시여 자라고 하는 아브라함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에게 시련의 시험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시련의 시험을 잘 참고 통과하여 새로운 축복의 장을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 같으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할 정도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명령 그것도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어딘지도 모르고 가야만 하는 상황이였으니 정말 힘든 순종이였습니다  그러는가 하면 백살이 되어 얻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는 명령 이것은 자기 손으로 아들을 죽여야 하는 엄청난 일 이였습니다 그러나 아부라함은 이 두 가지 시련의 시험을 잘 통과하여 오늘날까지 성공 자 승리자의 모습으로 당당히 우리 앞에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은 그 비결을 찾아 은혜를 나눔으로 우리도 시련의 시험에서 승리자로 남아 이 당에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고 증거하는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시련의 시험의 주체자는 하나님이십니다(시:139편)
성도의 삶은 항상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환경에 구애됨이 없이 주어진 삶에 용감히 도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우리 앞에 놓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기쁠 때는 용감할 수 있고 인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과 어려움이 닥칠 때는 의욕이 상실되고 자신감 마저 잃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형통 할 때나 어려울 때나 구애됨이 없이 자신 있는 삶을 살아가야 되는데 그것은 나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여 때로는 주의 종인 모세를 원망하기도 하고 아우성을 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원수들을 물리쳐 주시는가 하면 만나를 내려 먹게 해 주시고 반석에서 생수가 나와 마시게 해 주셨습니다

시139:1-6절의 말씀을 보면"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요 우리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살펴보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죄짓는 자에게는 무서운 일이요 거룩한 자녀들에게는 이 보다 복된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의 계획을 알고 계시며 생각을 알고 계시고 행위를 알고 계십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은 섭리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슬픔과 위험을 알고 계십니다

마6:32절에 보면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고 말씀 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우리에게 채워 주시고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구원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 무슨 일을 만나든지 두려워 마시고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니 은밀한 중에라도 말씀을 떠나 생활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시139:7-10절의 말씀을 보니"내가 주의 신을 더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신다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편재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렘23:24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숨기겠느냐 나는 이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담처럼 요나 처럼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하나님의 낮을 피하려고 해도 그것은 가능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자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참된 진리요 축복입니다

시23편에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내가 비록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잠 15장 3절의 말씀에서는 "여호와의 눈은 항상 의인을 향하여 계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 곁에 항상 엄마가 지켜보고 있으면 그 어린이는 어려움을 당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위험한 곳에 이를 때  지켜 주시고 막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곁에 하나님이 항상 계시니 두려움 없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시련의 시험은 믿음으로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히11:1절에"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데 과연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알 때 아브라함의 믿음을 훌륭하게 볼 수 있으며 내 믿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맡긴다"(피스듀오) "충성한다"(피스티스) "확신한다"(페포이데시스) 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로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이 있다면 나의 삶을 맡겨 드려야하고 주님을 위하여 충성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며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현실을 버리는 결단성 있는 믿음이였습니다 창12:1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는 것은 잘못되어 있는 현재의 생활을 청산하고 그 있는 곳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본토 친척 아비집 이라는 곳은 정든 곳입니다 소중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곳을 원치 않으셨을 때 그는 자기는 유익해도 하나님에게 유익이 없다면 버리는 결단성 있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히11:8절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갈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1:19절을 보면 이삭을 받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고 말씀합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믿음이 그에게 있을 때 그는 어떤 시련의 시험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과감에 버리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본받을 만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떠나기를 원하고 계신 자리에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받치라 하시는 것을 내 것으로 끌어안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는 자리를 떠나라하심은 우리에게 있는 것을 바치라 하심은 우리를 어렵게 하려함이 아니요 더 크고 아름다운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자리가 아쉬워서 그것이 아까워서 연연해하며 떠나지 못하고 바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준비해 주셨음에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우상의 자리이면 떠나야 합니다 세상을 향하여 있는 자리이면 떠나야 합니다 교만과 불순종과 욕심과 불평과 나태의 자리라면 떠나야 합니다 지금 잇는 것으로 더 큰 축복을 주시려고 축복의 씨앗으로 삼으시려고 헌신하라 하시면 드려야 합니다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하늘 나라를 향하여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고해와 같은 세상을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하는데 악한 세상은 우리의 신앙에 장애물로 다가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하여 시련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길은 이 시련의 시험은  믿음으로 가는 길이며 믿음으로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 가나안으로 가는 길도 시련과 고난의 길이였지만 믿음으로 통과하여 가나안을 정복했습니다 신약에 기록되 하나님의 모든 축복도 시련의 과정을 믿음으로 통과한 자들의 것이었습니다

3)시련의 시험은 순종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창12장4절에"이에 아브라함이 말씀을 쫓아 갔고................"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참 믿음의 소유자들이 하는 신앙의 행위이며 축복의 결정이기도 합니다 눅5장1-10절에 보면 베드로가 순종을 통하여 축복을 받는 내용이 있고 요2:1-11절에 보면 가나 혼인집에서 순종을 통하여 물이 포도주가 되는 축복이 있습니다

순종하다 "훼파쿠오"는 "훼포" "아래, 밑에"라는 말고 "아쿠오" "듣다, 순종하다, 이해하다, 깨닫다"의 합성어로서 "아래서 듣는다 ,귀를 기울인다, 따른다,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순종하다 "웨페이코"는 "훼포" "아래"라는 말과 "에이코" "항복하다, 굴복하다"라는 합성어로서 "아래서 항복하다, 예속되다"는 뜻입니다 순종하다 "페이도"는 "신뢰하다, 믿다, 확신을 가지다, 순종하다, 의뢰하다, 희망을 걸다"의 뜻입니다 순종은 겸손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순종은 "훼파쿠오"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잘 듣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불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기도는 많이 해도 교만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최고인양 하나님의 말씀을 뛰어 넘어서 살려고 합니다 즉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말씀은 병행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신앙의 첫 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믿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는다"는 것은"페이도"순종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순종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믿음과 순종은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나 순서적으로 말하면 순종보다 믿음이 앞선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왜 예수를 순종치 못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도 순종치 못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순종은 믿는 것이기에 바른 순종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순종은 전적인 항복입니다 순종하다 "훠페이코"는 "아래서 항복하다"는 뜻으로 이것은 완전한 굴복 내지는 항복을 의미 합니다 이와 같이 순종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생각과 의지와 주장과 목적을 전적으로 포기하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부분적 순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사울왕이 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는가? 그것은 전적인 순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자기의 생각이나 의지나 계획을 그리스도 앞에서 전적으로 버리고 포기하는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말씀이 떨어지면 오직 "예"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절대적이며 이적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에는 고난도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희생이 있어야 함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내 유익 내 방법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순종 후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준비되어 있음을 믿으시고 힘이 들고 어려워도 순종하며 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창22:12절에 보면"백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서 바치라 하셨을 때에 아낌없이 바치는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유익과 영광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것은 어떤 것이라도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이런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제 너를 알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삭도 살려주시고 아브라함에서 무수한 축복으로 보상해 주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귀중한 것이 무엇인가요 ? 지금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계시지는 않으신 가요 여러분은 그것 때문에 신앙생활에 방해가 되고 있지는 않으신 가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주가 쓰시겠다고 하실 때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헌신의 신앙인이 되셔야 합니다 신앙의 길에서 그가 오직 승리자로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오직 순종하는 일이 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그는 자기의 조건이나 핑계나 항변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전폭을 주께 맡기고 "예"하는 순종뿐이 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여 축복하시려고 주시는 시련의 시험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이러한 아부라함의 신앙생활을 통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비결은 인간의 편에서 보면 엄청난 손해요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예"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엄청난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셔서 떠났던 아부라함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무상으로 주셨습니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셔서 순종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삭도 살려 주시고 여호와 이례의 축복을 주시며 믿음의 합격을 받았습니다

아부라함의 순종은 청지기적인 순종 이였습니다 이 말씀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을 위하여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재산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요 내 자식도 내 아들이 되기 전 하나님의 백성이니 하나님께서 요구하실 때에는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근본적으로 내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생명도 내 자녀도 하나님의 것임에는 분명 합니다  아부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것을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시니 바치는 것이 피조물의 도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내가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명이 끝나고 세상이 끝나는 날 나의 소유권은 내 놓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아부라함 처럼 청지기적인 순종의 자세로 살아가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부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라 그 지시대로 한 순종이였습니다 너는 사흘길을 가서 모리아 산에 가서 내가 지시한 산에서 제사를 드리라 고 하셨습니다 아부라함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방법대로 순종했습니다 순종은 내 환경 내 방법 내 유익에 맞추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데로만 하면 됩니다 말씀을 떠나 인정을 가지고 순종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노아도 방주를 지을 때 하나님의 설계대로 만들었으며 구약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드렸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린 것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가능했습니다 오늘도 내 방법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됨을 아시고 바른 순종의 자세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도하다가 응답이 더딘 것 같으면 중단하고 환경이 바뀌어도 중단하고 봉사를 하다가도 내 환경에 안 맞으면 중단하고 환경과 감정 따라 변하는 우리의 신앙과 비교해 볼 때  우리 모두는 아부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변하지 맙시다 변하면 세상적인 것이나 하나님의 것이나 모두가 쓰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4)시련의 시험은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시25:4절에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했고  시27:11절에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간절한 기도인데 다윗이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인도하는 길로 가는 것만이 행복한 삶을 보장받는 길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하는 가운데 자칫 잘못하면 내 뜻을 내세우기가 쉽습니다 내 환경을 내세우고 내 방법을 내세워 문제를 해결하고 시련의 시험을 통과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이 방법은 하나님께 인도 받을 수 있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의 모습을 우리의 삶의 지침으로 삼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현실을 앞에 놓고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신 것은 범사에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승리하셨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아야 할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일 뿐 아니라 우리의 기쁨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는 것이 시련의 시험을 이기는 비결이며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일을 내가 하려고 하고 내 유익을 앞세우고 나의 안일을 추구할 때 하나님은 나를 보고만 계십니다 하지만 내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아버지께 범사를 맡겨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과 길을 축복과 번영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제 부터 우리모두는 하나님의 뜻을 내 뜻에 맞추려 말고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살아가심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어서 어떤 시련의 시험도 아브라함처럼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시련의 시험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가 이길 수 있습니다
잠3:6절에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부리시는 창조주의 권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하나님은 나의 주인이시요 우주 만물의 주관자로서 모든 권한이 그에게 있음을 믿는 것이고 내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영광과 유익만을 생각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요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의 시험을 주는 것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쓰시려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내 상황에 맞지 안아도 믿음과 순종으로 이기셔야지 시련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사탄이가 유혹의 시험으로 도전해 온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 모두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아름다운 모습을 배워서 남은 여생 늘 하나님과 동행하시며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보여 드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유혹의 시험을 생각해 보겠습니다(창3:1-7,마4:1-11절)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유혹의 시험의 주체자인 마귀는 어떤 존재이며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하고 우리를 어떻게 만드는 가를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시험의 요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에게 오는 시험 중에 우리의 부주의와 연약함으로 시험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선택한 창세기 2:8-17절 창3:1-7절의 말씀에는 인류의 대표자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있던 아담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실패하므로 전 인류가 죄를 짓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게된 내용과 마4:1-11절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40일 금식 후 찾아온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심으로 승리하시는 모습이 잇는데 이 내용들을 가지고 유혹의 시험을 통한 실패의 원인과 승리의 원인을 찾아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유혹의 시험의 주체자는 사탄이 입니다
막1:21-28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회당에 들어가 말씀을 가리킬 때에 마침 그 회당에 들어와 소리를 지르고 있던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주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내용 속에는 사탄이의 정체가 드러나 있는데 사탄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적이기에 우리는 항상 싸울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싸워서는 반드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또한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의 전술 및 장기를 알아야만 합니다 운동 선수들도 상대 팀과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편의 장기와 전술을 탐색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막1:21절의 말씀에 보면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라고 말씀하며 26절에서는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라고 했으며 27절 하반절에는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유혹의 시험의 주체자인 사탄이는 더러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마가 복음을 기록했던 마가도 더러운 귀신이라고 했고 예수님께서도 더러운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더럽다"는 말은 원문에 "배설물, 불결한, 음탕하다"는 등의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귀신은 도덕적으로 사람을 타락시키고 윤리성을 마비시켜 양심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합니다 더러운 귀신이란 더러운 영이라는 뜻도 되는데 귀신은 영이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강점도 가지고 있습니다 더러운 영인 귀신이 사람의 몸 속에 들어가면 사람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더럽게 타락시킵니다

막1:23-24절을 보면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은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귀신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악을 쓰고 소리를 지릅니다 본문에도 귀신들린 사람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회당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이 그 곳에 계시는데도 아랑 곳 없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귀신은 체면도 없이 떠들어대는 시끄러운 존재입니다 때와 장소를 모르고 교회를 핍박하고 비방하는 행위는 사탄의 역사로 알고 물리쳐야 합니다 귀신은 할 수 있는 데로 문제를 일으키려고 하고 불필요한 장소에서 불필요한 말로 남을 미혹케 하려고 합니다 귀신은 오늘도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의 마음을 충동질하고 혈기를 일으켜 소리를 내고 떠들게 합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가정을 어지럽게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역사입니다

막1:24절에 보면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귀신이 말하고 있습니다

귀신은 주님의 지배를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직역한다면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하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할 것이니 상관하지 마시요"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부인하려는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사탄의 권세를 멸하시고 인간을 구원하시며 피조물의 타락을 회복하시려는 것이 그 목적 이였습니다 사탄이 역시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배를 벗어 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은 "우리와 상관이 없으니 우리 일에 상관하지 마시요"라고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사탄은 믿는 성도에게 역사하여 하나님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기의 향락을 누리며 살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더 내세우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야 사탄이 마음대로 끌고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역사 합니다 이러한 사탄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귾게 하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을 생각하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될 것을 행동하며 보아서는 아니 될 것을 보게 합니다

2)마귀는 왜 성도에게 시험을 주는가요?
마귀가 성도에게 시험을 주는 목적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롬16:18절을 보면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성도로 하여금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 것도 내 이익과 내 배 만 채우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가도 자신에게 조그마한 손해 가 생기게 되면 소리를 지르고 토라지게 하는 것이 사단이의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하여 말씀도 뛰어넘게 하는 것이 사단이의 전략입니다 교회 생활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지 자신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의 일에 사용되어 질 수 있을까 생각하고 순간의 자기 손해를 감수하려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교회의 아름다움과 새로워지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사탄이는 성도로 하여금 주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분쟁을 일으킵니다 사탄이는 더러운 존재로서 어디서나 소리를 지르며 성도로 하여금 주님의 통치를 벗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성도로 하여금 분쟁을 일으킵니다 롬 16:17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되게 하시고 사탄이는 분쟁하게 합니다 부부가 갈라지게 하고 형제가 갈라지게 하고 서로 미워하게 하고 다투고 시기하계 하고 질투하게 합니다 사단이는 교회 안에서도 분쟁을 하게 합니다 하나되고 싶은 마음, 하나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지만 그러나 하나되는 것을 방해하고 분쟁하게 하여 갈라지게 하는 것은 사탄이가 주는 마음입니다

그러는가 하면 사탄이는 어디에서나 그 곳이 교회이든 예배의 장소이든 봉사의 현장이든 간에 거치는 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롬16:17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치게 한다는 것은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세게는 아주 예민한 세계이기 때문에 자그마한 것 하나가 걸려도 신앙에 많은 장애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는 모든 것에서 거치게 만듭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단체에서 필요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방해꾼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단 이의 전학을 파마하고 교회의 일에 협력자로 서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이는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케 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게 만들고 나가서는 하나님과 대적하게 만듭니다 롬16:18절의 말씀을 보면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공교하다는 것은 세련되었다는 것이고 아첨한다는 것은 돋기 좋다는 것입니다 즉 사탄이는 성도로 하여금 세련되고 보기 좋은 모습으로 꼬여서 자기편으로 만들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과 대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단이는 우리의 대적자인데 그들의 공격 무기는 분쟁하게 하고 거치는 자가 되게 하고 자기만을 위해 사는 이기주의자가 되게 하고 우리를 꼬여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자신을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3)유혹의 시험을 주는 사탄이의 방법입니다
창3:1-7절의 말씀을 보면 선악과를 따먹는 문제를 가지고 사탄이는 아담과 하와에게 역사했고 마4:1-11절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신 후 굶주린 상태에서 마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살아가는 동안에도 마귀는 틈만 있으면 기회를 포착하여 우리를 넘어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의 말씀 속에서는 마귀가 시험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 방법은 오늘날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은 이 방법을 찾아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탄이는 유혹의 시험으로 성도에게 역사할 때 육신을 위해 먹는 문제를 가지고 시험했습니다 창3:1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바라보니까 창3:6절에"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고 말씀합니다 마4:3절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여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시험합니다

예수님도 인성을 가지신 분이라 주린 배를 참으시기란 쉬운 일만은 아니셨을 것입니다 인류의 시험은 먹는 육신의 문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에던 동산에서 아담도 선악과를 먹음으로 시험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아담은 주위 환경으로 보아 시험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좋은 열매가 얼든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동산 중앙에 있는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연약함으로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인류의 처음 시험에서 먹는 문제 육신의 문제로 시험하여 승리했던 마귀는 또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께 먹는 육신의 문제로 시험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마귀들은 우리의 어려운 환경이나 육신의 문제를 가지고 시험해 오고 있습니다 육신의 환경이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고 믿음의 자리를 떠나게 만듭니다 직장 때문에 사업 때문에 물질 때문에 성도의 자리를 퇴보시킵니다

이러한 마귀의 시험 앞에 아담과 하와는 말씀을 어기고 실패했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마4:4절을 보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심으로 이 육신의 약함을 틈타 시험해 오는 마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험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비결은 성령의 검 오직 말씀을 부여잡는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먹는 날에는 죽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었더라면 아무리 눈에 보기에 아름다고 탐스럽게 보이는 선악과라 할지라도 따먹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현실에 급급하다 보면 유혹의 시험에 빠지게 됨을 기억하시고 사람의 현실이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이는 유혹의 시험으로 성도에게 역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영적인 문제로 시험합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따 먹으면 죽는다는 말씀을 하자 창3:4절에"뱀이 여자를 꼬이기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아니하리라"고 합니다  마4:5-6절에"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기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어 너를 받들어 돌에 부디 치지 않게 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구약 성경 시91:12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먹는 문제로 시험해 오는 사탄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물리치시자  이번엔 사탄이 말씀을 들어 시험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 치셨습니다 요즘 성도들도 말씀을 시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씀을 믿고 나가다가 자신이 생각한 대로 되어지지 아니하면 시험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어떤 이는 병 낫기를 위하여 기도하다가 낫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경우입니다 어떤 이는 사업 문제가 자기의 뜻대로 되어지지 아니하면 시험에 드는 경우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며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겸허한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맙시다 어떠한 조건을 내세워 하나님을 믿지 맙시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하나님의 계획대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사탄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바로 파악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인내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사탄이는 유혹의 시험으로 성도에게 역사 할 때 인간의 욕심을 틈타 시험해 오고 있습니다 창3:4절에서는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마4:8-9절에 보면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며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고 합니다

이것은 사탄이가 거짓말로 시험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같이 될 수도 없을뿐더러 사탄이에게는 천하 만물을 다스리는 영광과 주권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믿음이 적은 성도들은 세상의 거짓되고 터무니없는 말에 속아 마귀를 섬기며 마귀의 종으로 전략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터무니없는 말에 속아 지나친 욕심이 선악과를 따먹고 마는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세상 유혹으로 시험해 오는 것을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물리치십니다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 오직 섬김의 대상은 하나님뿐입니다 육신의 욕심이나 명예 때문에 마귀를 경배해서는 아니 됩니다 구약의 나오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그랬고 주기철 목사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신앙의 정절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신앙의 정절을 지키려면 많은 유혹과 핍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경배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알고 세상의 욕심을 버리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사탄의 유혹의 시험을 이기고 지는데 따라서 생사 화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영 이기에 우리보다 교묘하고 강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아담도 실패했고 성군 다윗도 실패했고 가룟유다도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정체에서 살펴보았듯이 내 생활이 세상으로 흐트러지고 불평 불만이 생기고 주의 지배를 벗어나려고 하는 생활이면 사탄의 역사로 알고 주의 이름으로 물리쳐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의 실패는 시험에서 승리하지 못할 때 당함을 아시고 아브라함처럼 시련의 시험은 믿음으로 순종하시여 승리하시고 유혹의 시험은 예수님처럼 오직 하나님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그의 말씀을 지키며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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