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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금하지 말라 / 막 9:3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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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금하지 말라
성경본문 : 마가복음 9장 38~41절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마가복음 9장 38~41절) 

<목회기도>
 
천지를 만드시고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거룩한 주일 예배의자리에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지난주간, 은혜롭게 중·고등부 수련회를 마치게 하시고
내일부터 어린이 성경학교를 시작하려 합니다.
모든 것에 주관자 되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충만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기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은혜로운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군대에 나가 있는 이들, 외국에 나간 이들, 객지에서 사는 이들,
병상의 환자들… 어느 곳에 있든지 저들에게도
은혜와 평강의 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예배에 절망감에 사로잡혀 이 자리에 온 이들이 있다할지라도
희망감에 들떠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은혜롭고 능력있는 말씀을 전하고 받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은혜로운 여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기둥교회 예배실의 온도가 적정온도보다 더 낮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덥다고 부채질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에어컨에 너무 의지하면 감기에 걸립니다. 몸에 좋지도 않고요.
여러분의  몸의 온도가 38℃인데 그 몸에서 나오는 열기가 쉽게 식기가 어렵지요.
어떤 분은 춥다고 하고, 어떤 분은 덥다고 하는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요.
모두 여러분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견딜만 하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에게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금하였나이다
 
예수 믿고 천국백성이 된 기쁨으로 사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봉사하지만…
분별력을 잃고 잘못된 열정에 빠진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막 9:38~41)에 보면
요한은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 보고합니다.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막9:38)
 
여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이적을 행한 사람은
이름이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12제자 중의 한 사람도 아니고, 12제자가 아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제자들과 어울려 함께 일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았습니다.
 
마가복음 9장 14~18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귀신을 쫓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하지 못했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제외한 9명의 제자들 : 막9:2~14)
예수님께 믿음이 없다는 책망만 들었습니다(막9:18).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자신들과 함께 하지도 않은
이름도 알 수 없는 사람이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다고 하니…
제자들의 명예가 흔들렸고…  자존심도 상했고…
자신들은 할 수 없었던 일을 했다는 놀라움과 함께 
시기심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은
자기들만이 예수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자기들만 그런 능력을 받았다고 자부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귀신을 내어 쫓는다든지 하는 일에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9장 33~37절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관심은 "서로 누가 크냐"였습니다.
영문성경에 보면
"~they had argued about who was the greatest." -NIV-
"~they were arguing with one another about who was the most important."
                                          - The Simple English Bible -
제자들은 서로 '누가 더 위대한가?',
'누가 더 중요한가?' 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하지도 못했던 일을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았다는 말을 듣고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가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다. 그러니 당신은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we told him to stop~)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일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제자들에게 일을 맡겨 내보내실 때에
귀신을 제어하는(휘어잡는) 권세를 주셨습니다(막6:7).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막6:7)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고, 제자들과 같이 다니는 사람도 아닌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았는지…
우리가 그것을 자세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그가 외관상으로 사도들과 같이 부름을 받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바람이 임으로 부는 것'처럼 역사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성령이 역사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성령충만함을 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빛되고 소금된 삶을 살고
능력을 행하며 살았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마 이런 사람들이 그 당시에 많았을 것입니다."(Matthew Henry 주석참조)
본문과 같은 일은 민수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칠십 장로들이 회막에 모였을 때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치 않은 '엘닷'과 '메닷'이 성령을 힘입어
예언을 하였는데 한 소년이 모세에게 이것을 고하였고
옆에 있던 여호수아가 그것을 "금하소서"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민11:29)하며
여호수아를 책망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면
금할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금하지 말라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께 칭찬을 받을 것으로 여겼는지
당당하게 예수님께 가서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라고 보고했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39절에 보세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막9:39)
그리고 40절에 보면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막9:40)
 
예수님은 제자들의 당파적인 태도를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선별된, 선택된 몇몇 사람들이나
특정한 민족을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같이 교제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성경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탄과 싸우는데 우리와 일치한다면
그 사람이 일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과 손을 잡을 줄 알아야 하고 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막9:40)고 하시며 "금하지 말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신학자이며 주석가인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비록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하더라도,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우리와 함께 하지는 않는다 해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면 우리와 입장이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들이므로 우리편임을 생각하고
그들의 유익에 대하여 우리가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Matthew Henry 주석참조)
 
요한 웨슬리 목사님도
"…누구든 '한 성령', '한 소망', '한 주', '한 믿음'을 가지고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신 '한 하나님'을 모셨다면,
그들이 잘못된 의견을 가졌거나,
미신적 예배의식을 가졌더라도 그들을 용납할 수 있을 것이며,
그들을 공교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게 하기를 주저치 않을 것이며,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교회원으로 받아들이기를 꺼리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Albert C. Outler, "Do the Methodist have the Doctrine of the Church",
  In the Doctrine of the Church, ed., by Dow Kirkpatrick,
  (New York : Abingdon Press, 1964), p.316. ]
 
예수 믿는 사람은 복음 전파의 문을 닫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민족,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고
정해 놓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사랑 실천의 문을 닫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봉사활동의 문을 닫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될 대상, 전도할 대상, 사랑할 대상을 제한해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주님의 사업을 위해, 교회를 위해
열정을 품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성경에도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고 했습니다.
그러나 열심이 잘못되면 분별력을 잃게 되고 실수하게 됩니다.
마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자에게
"하지 말라"고 금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 것처럼
잘못된 열심은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열심
 
오늘날 기독교에는 많은 교파가 있습니다.
특별히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많은 교파와 교단이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보다 교회의 전통을 중시하고
신앙보다는 제도를 강조하다 보니 쉽게 갈라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장로교인들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순복음교인, 성결교, 침례교, 감리교인…들이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교단이 서로 다투고 하나되지 못하는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잘난 사람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자기 생각이, 자기 해석이 최고라고 주장하며…
으뜸이 되고자, 최고가 되고자, 큰 사람이 되고자 다툰 제자들처럼…
으뜸이 되려는 사람, 최고가 되려는 사람,
자기 생각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국 교회에 아니 크고 작은 교회 교회마다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
 
우리 기둥교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처음 예수 믿을 때의 은혜 받은 순수한 마음으로 
기쁨으로 섬기는 마음으로 일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격하여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면 여럿이 어울려 해야 하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장', 애들 말로 '짱'이 필요합니다.
'장'을 세우는 이유는 여럿이 함께 하는 일을 좀더 잘 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섬기고 봉사하며 일이 잘 되게 하려고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장이 되면 더 겸손하게 섬기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따지고 권위를 행사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그 영향력의 크기를 따지려 합니다.
자신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일하게 하려고 합니다.
어려운 일에는 발을 빼고 결재하려 듭니다.
그러다가 뭐라고 합니까?  "내가 결재하지 않았는데… 내가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진행돼…" 하면서 목에 힘을 줍니다. 
교회도 조직이 있어 일이나 서류에 따라 부서장의 결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하지 않고 폼만 재며 결재하는 사람의 존재는 필요 없습니다.
교회의 부서장은 함께 일하는 사람 중에 세우는 대표이지
군림하고 목이 힘주며 펜 들고 사인이나 하는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크기를 따져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크기를 따져 일하는 데가 아닙니다.
가끔, "그런 일은 집사들이 해야지"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 일'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런 일'을 권사, 장로, 목사가 하면 안됩니까?
어떤 일은 집사가 하는 것이고,
어떤 일은 청년들이 하는 것으로 제한되어 있습니까?
교회 각 부서, 팀의 대표인 회장, 팀장을… 장로, 권사만 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그가 집사일지라도, 직분이 없는 사람이라도…
예수 믿는 신실함과 교회를 사랑하는 진실한 애정이 있다면
누구든지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지 않는 일을,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거든
박수 치고, 감사하며… 함께 하지 못한 죄송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하지마, 나도 안하는데 왜 당신이 해. 너는 그런 거 하면 안돼."라고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내어 쫓은 어떤 사람에게 금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금합니다. 참으로 어이 없는 일이지요.
 
교회는 '누가 더 오래 되었느냐?, 누가 더 많이 했느냐?,
누가 더 중요하냐?'를 따지는 곳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잘못된 생각에 젖어 있는 것입니다.
주보에 누구 이름이 먼저 나왔나?
소개할 때 누가 먼저 소개되었는가?
그 사람이 회장인데, 그 사람이 팀장인데… 내가 어떻게 그 밑에서 일하나?'
이런 사람들은 신앙적으로 바른 자세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그 사람하고는 일 못해…  그 사람은 틀렸어…'라고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자기 생각과 같지 않다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나라에 전해 오는 동화 가운데 잘못된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모두 <개미와 베짱이>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 어느 개미가 놀기만 하는 베짱이에게 충고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이 올 테니, 너도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걸."
개미의 충고를 무시했던 베짱이는
춥고 배고픈 겨울이 되어 개미를 찾아갔다.
개미가 말했다. "너는 내가 일할 때 팡팡 놀았으니
이제 와서 굶는 것이 당연하지, 나는 너를 도와줄 수 없어."
올바르고 이성적인 논리이긴 하지만 좀 가혹하다.
베짱이가 말했다.
  "같이 사는 사회잖아.
  네가 가진 것을 조금만 나눠주면 내 목숨을 구할 수 있어."
개미가 말했다.
"누구는 놀 줄 몰라서 안 논 줄 알아? 앞날을 생각할 줄 알아야지."
……
                                  [조선일보 2003. 7. 12 참조] 

 
물론 교육적인 면에서 '부지런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다른 내용으로 발전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베짱이가 열심히 노래하다 히트곡이 나와 음반이 많이 팔려서
돈을 엄청 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짱이는 실컷 먹고 놀고 마약을 하다가
쫄딱 망해서 결국 개미한테 구걸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개미는 개미이고, 베짱이는 베짱이입니다.
베짱이가 개미처럼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베짱이가 틀린 것이 아니라 베짱이처럼 게으른 사람이 틀린 것입니다.
우화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틀리다'와 '다르다'를 구별해야 합니다.
'다르다'라고 해야 할 것을 '틀리다'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미와 베짱이는 다른 것입니다.
개미가 베짱이에게 틀린 것이라고 할 수 없고
베짱이가 개미에게 틀리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자기가 한 것은 다 옳고
다른 사람이 한 것은 모두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은 자기만 할 수 있고,
남은 그 일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이 문제입니다.
합력하여 하나 되지 못하고, 화목하여 평안을 이루지 못하고
불화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문제입니다.
열심히 일하기는 하지만 자리다툼하고, 크기 다툼하고
머리 다툼하는 사람은 잘못된 열심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두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리라면
감사함으로 흔들리지 말고 그 자리를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 옆에 있는 사람이
자기에게 시비를 건다고 삐져셔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어 구문 가운데 "Dirty is out of the place”라는 말이 있습니다.
'더러움이란 자기 자리를 떠나는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강이나 바다 속에서 고기가 헤엄칠 때에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고기가 우리의 침대 위에 누워 있다면 우리는 더럽다고 말합니다.
아름답던 물고기가 혐오스러워지는 것은
그 물고기의 본질이 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합하지 않은 장소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은 더러운 것이고 무서운 것입니다.
                                  <국민일보 2003. 7. 14. 참조>
 
여러분의 코가 얼굴에 있기에 보기 좋은 것이지,
제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떨어져 있다면 흉칙한 것입니다.
제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러분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여러분이 지켜야 할 저마다의 자리가 있습니다.
남편의 자리, 아내의 자리, 학생의 자리, 일해야 하는 자리…
그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벗어날 때 추하고 더러운 것이 됩니다.
 
유다서 1장 6절에 보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천사라 할지라도 자기 처소를 지키지 않으면 용서치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맡고 있는 그 자리, 비록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자리,어머니의 자리, 아내의 자리, 남편의 자리,
공부하는 자리, 봉사하는 자리… 그 자리를 잘 지키며 사시기 바랍니다.
누가 뭐래도 어떤 일을 당해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는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고전15:58).
따라서 하십니다.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왜냐하면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알기 때문입니다.
"…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전15:58)
여러분이 땀흘리고 애쓰고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되지 않습니다.
크든지, 작든지…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일이라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면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요 귀한 일입니다.
 
본문 41절에 보면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하는 일이라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막9:41) 했습니다.
잠언 19장 17절에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해 신앙생활하고, 봉사하며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들 각자의 형편에 따라 만나 주시고
각자의 형편에 따라 다르게 받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기 다르게 만드시고, 각기 다르게 태어나게 하시고
다르게 살게 하시고, 다른 것을 귀히 여기시며 다른 것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도 않으시고
                              (삼상16:7, 마22:16, 행10:34, 벧전1:7)
하나님은 우리가 옷 입은 것을 보고 차별하여 귀히 여기지도 않으시고
                              (딤전2:9, 약2:1~9)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헌금의 액수로 칭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막12:41~44, 눅21:1~4)
가난한 과부가 자기에게 있는 두 렙돈을 드린 것을 보고
예수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
 
여러분, 지난 맥추감사절에 어떤 예물을 드리셨습니까?
저는 맥추감사절 보고를 받고 어떤 한 분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정말 어렵게 사는 분이었습니다.
물론 그분이 드린 헌금은 다른 사람에 비하면 적은 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그분이 드린 예물은
자신이 먹고 사느냐 마느냐를 판단할 만큼 중요하고 큰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생활이 넉넉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그분만큼 드리지 못한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이 드렸는가 하는 액수를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이 옷 입은 것을 보고 말하고
말하는 태도를 보고, 행동을 보고 함부로 정죄하여 말합니다.
'좋은 분, 나쁜 놈, 버릇없는 녀석, 건방진 놈…'
여러분, 다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십니까?
교회 일에 대해서도 함부로 '이것 틀렸고, 저것도 틀렸다.'라고
함부로 이러쿵 저러쿵 말합니다.
우리는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대학의 졸업식장에서 학생들이 차례로 졸업장을 받고 있었다.
순서가 진행되는 것을 바라보던 한 축하객에게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다.
어느 학생이 한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채
한 손으로 졸업장을 받고는 총장과 악수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혀를 찼다.
"참 세상도 많이 변했군. 저렇게 건방진 학생도 있으니.
이 학교는 4년 동안 무얼 가르쳤단 말인가?"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재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그게 아닙니다. 저 분은 사고로 한 팔을 잃고
대신 의수를 하고서 4년 동안 훌륭하게 학교를 다닌 학생입니다."
그러자 축하객은 얼굴을 붉히며 함부로 말한 것을 부끄러워했다.
                                  <국민일보  2003. 1. 14. 참조> 

 
우리들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어느 곳에 서있든 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리를 지키며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든든히 서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어제 예쁜 꽃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지의 매 장마다 색깔이 다른 6장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예쁜 여자가 보낸 것이 아니라 군대에 간 '강완규'라는 청년이 보낸 편지입니다.
여러 내용이 있지만 그 중에 한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청년이 유격훈련을 받는 중에 장기자랑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군인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자기의 장기를 보여 주는데....
강완규청년은 "하나님 저들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가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다른 군인들이 "오 할렐루야"하며 장난 섞인 함성을 지르더랍니다.
그날부터 그 청년의 별명은 "할렐루야"가 되었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목사지만 그랬던 적도 없고, 지금도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그 청년이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얼마나 분명하고 확실한 믿음인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100일 휴가를 나가면 멋있게 인사드리겠습니다.
광고해 주십시오. 믿음 소망 청년들은 저한테 편지 쓰라고…>
 
여러분, 한 젊은이가 훈련을 받으면서도 자기의 믿음을 표현하고 지켰습니다.
다른 군인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보기에는 열성분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활 속에서 이 청년처럼 예수의 향기를 내며 사십니까?
 
우리는 쉽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겁니다.
체면, 자존심, 지키지 않아도 될 자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영생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피흘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봉사를 하는지 사람들은 몰라 줘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부모 형제로서 땀흘리고 애쓰며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사는 것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혹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향해
'하지마, 그렇게 하지마'하며 여러분의 빛되고 소금된 삶,
예수님 이름으로 사는 삶을 제재한다 할지라도…
이름이 드러나지 않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아도…
여러분이 처한 환경에서… 변함 없이…
예수 이름으로 빛되고 소금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에 예배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나님! 우리들의 생각으로, 우리의 판단으로
성령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능력 행함을,
예수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을 방해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시고
혹 이름이 드러나지 않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더라도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살든지 예수의 향내를 풍기며
예수 이름으로 사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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