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마 6:11]

  • 잡초 잡초
  • 296
  • 0

첨부 1



Subject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마 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태복음 6장 11절)

지난 주일에는 고통의 환경에 있을 때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의 고통의 문제가 경제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오늘은 우
리 그리스도인들이 먹는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를주님이 가르쳐
준 기도문을 통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주기도문의 구성을 보면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관계되는 것이고,
둘째는 사람과 이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고는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
룩히 여김을 받으옵시고, 나라가 임하옵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
서도 이루어 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세상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하라고 하
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세상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그것을 바르
게 구하도록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제목을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인간사 중에서 제일 먼저 바르게 구할 것이 있다면 먹는 문제입니다.

1. 그래서 인간에 관한 첫 구함으로 가르쳐 준 것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하루의 먹을 밥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일을 가장 등한하게 여길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돈 많이 벌게 해 달라, 사업이 잘 되게 해 달라, 공장이 잘 돌아가게 해
달라 등등의 큰 문제는 기도하면서도 정작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주기도문은 한낮 주문처럼 외우고 있을 뿐, 그것을 본래
의 의미대로 전혀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생활에만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육체적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고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뜻하는 것은 <생명>은 하나님께 있음을 의미합니다.
영, 육의 건강이 모두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심에 눈이
어두워 어리석은 부자처럼 창고만 늘릴 생각들만 합니다.
그래서 있는 자는 더 벌어 쌓아두려고 하고, 없는 자들은 그야말로 일용할 양식
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자본주의가 낳은 약점입니다.

칼 막스는 공산주의 이론을 펴면서 한 말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
으로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물욕의 탐심은 끝이 없다는 뜻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본주의가 기독교 신앙과 결합되었기에 오늘의 선진국가들이 되
었습니다.
서구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모두 기독교 신앙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그것
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만일 자본주의 사상이 기독교의 일용할 양식에 대한 신앙과 결부되지 않는다
면, 오늘 우리 사회일각에서 보는 것 같은 끝없는 양극화 현상으로 서로의 갈등
만 조성할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탐심으로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탐심으로 눈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하나님 없는 물질은 결국 자신 하나만을 위해 쓰다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를 만들어 놓게 됩니다.

2. 그러면 일용할 양식이란 말의 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헬라어로 <에피우시온>이란 말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여기에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뜻에 대하여 성서 신학자들은 몇 가지 견해들이 있습니다.
① 첫째, '일용할'이란 것은 '오늘을 위한' '매일 매일'이란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오늘을 위한 양식을 주소서' 또는 '매일 매일의 양식을 주소서'라
는 뜻이 됩니다.
이 기도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루치의 양식만을 주셨던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백성들은 하루치만의 양식을 거두라고 하였는데, 내일 혹시 만나가 나리지 않
을까 싶어 걱정하여 이틀치 사흘치를 거두었는데 다 썩어버렸습니다.

대신 안식일 전날에는 배나 거두게 하고 안식일에는 쉬라고 하였는데, 어떤 사
람들은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나갔다가 하나도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
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굶어 죽이지 않으신다는 것이고,
그것을 믿고 매일매일 살도록 하려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 미래를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② 둘째로 '일용할'이란 것은 '필요한 만큼'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위에 것이 <시간>적인 의미가 있다면 둘째 것은 <소유>의 의미가 있습니다.
즉 '오늘의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주소서'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여기에 의문이 생깁니다. 
오늘의 필요한 만큼이 어느 정도인가?
지구상의 각 나라들의 형편이 다 다릅니다.
미국 사람들의 하루 필요한 일용할 양식과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의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하루 필요한 일용할 양식은 다릅니다.

이런 점에서는 표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각 시대마다 종사하는 일이나 사람의 위치에 따라 그 필요가 다 다릅니다.
과연 '어느 정도가 우리의 분수이고, 어느 정도가 욕심일까?'
이 문제에서는 사람과 사람을 비교해서는 해답이 안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한 정도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물질이 인간에게 필요하지만 그것을 탐하면서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은 끝없는 인간의 탐욕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물질의 종이 되지 않도록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③ 셋째로 '일용할'이란 '다가올 그날을 위하여'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즉 '다가올 그날을 위한 양식을 오늘날 주소서'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한글 성경번역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 같이 보이지만, 주기도문 전체
의 맥락에서 보면 통하는 말입니다.
즉 앞서의 기도들이 모두 미래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양식을 구하는 기도도 역
시 종말을 바라보는 미래 지향적인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말을 풀어서 보면, '하나님의 그날을 위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오늘도 먹고살게 하소서'라는 뜻이 됩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의를 위하여 살아갈 수 있
도록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는 뜻이 됩니다.

이것은 더욱이 '오늘날 우리에게...'라는 말과 연결 지어서 생각할 때, 나 혼자
만의 밥그릇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 세상 모든 곳에서 비어있는 밥그릇에도 채
워달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밥그릇에 밥이 가득 차는 미래를 가져오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서 내가 오늘 밥을 먹게 하소서'라는 뜻이 됩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뜻은 매우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모두 이런 기도대로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어제도 하루밤 사이에 살인사건이 서너 건이 생긴 뉴스보도를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마에 붉은 띠를 두르고 노동자들이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칩
니다.
모두 왜들 그렇습니까?
따져 보면 제 밥그릇 때문이요, 밥그릇에 대한 공정성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봅
니다.
이것을 미화하여 사회정의니, 사람 대우니 하는 말을 쓰는 것뿐입니다.
<일용할 양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일용할 양식이 나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그것
이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대로 사는 것일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가르쳐준 그대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① 영, 육간의 생명은 일용할 양식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
니다.
② 그리고 매일 매일 하나님이 우리를 기르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③ 그리고 단순히 먹기 위한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
럼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다가올 그날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
여 오늘의 필요한 먹을 양식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④ 그리고 이것은 나 하나만의 양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모든 사람의 밥그
릇에 밥이 골고루 채워지는 그런 날을 위해 살기 위하여 <일용할 양식>을 구해
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만일 주기도문대로만 산다면 우리 사회  는 정치개혁이니, 사회복지니
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치신 그 뜻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면 그야말로 복지사회가 될
것이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는 입술로는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면서도 일용할 양식
이 아니라 몇100년 몇1,000년의 양식을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것이 바로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공산주의가 나온 원인이 바로 기독교인들이 주기도문처럼 살지 못했기 때문에
저들은 낫과 망치로 밥그릇을 나누어 먹도록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당시의 사람들을 향해 외쳤던 말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
니다.
'부한 자들아 들으라! 너의 품군의 울부짖음이 내 귀에 들리는 도다'라고...
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지혜를 배우라' 고 하였습니다.
모두 일용할 양식에 대한 바른 이해를 못한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말한 줄 압니
다.

이제 우리 모두 일용할 양식을 주실 하나님 앞에 바른 자세를 가지고, 단순하
게 한 그릇 밥만 축내는 사람들 되지 말고, 그날을 위해 오늘도 하루에 필요한
양식을 구하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