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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으로 삽시다(단 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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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믿음으로 삽시다(단 3:13-18)
 
우리가 믿음하면 많이 들었고 또 우리가 주님을 믿기 때문에 교회에 나옵니다. 그러나 실상은 믿음에 대하여 잘 행하지 못할 때도 있고 불신앙으로 살 때도 많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는 '오직 믿음'이라는 말로 종교개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만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도와 가정과 교회의 기둥과 같습니다. 교회를 버티고 있는 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 귀한 믿음의 집은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기둥이 든든하지 못하면 다른 것이 다 있어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를 고를 때 기둥감은 따로 고릅니다. 똑바로 섰느냐? 든든하냐? 아무 것이나 기둥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든든해야 그 믿음과 함께 모든 것이 든든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바른 길을 걸어가려면 모든 것이 바를지라도 그 길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배우고 잘 났다고 해도 잘못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믿음의 길은 배웠다고 못 배웠다고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가진 것이 있다고 해도 혹시 없다고 해도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걸아가는 길입니다. 믿음은 마치 터와 같습니다.
(시 18: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뇨"
(시 62:6)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여기서 '실상'이라는 말은 기초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터 위에 우리의 집을 짓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 믿음 위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하나를 보시고 가정을, 세계를 축복하시고 하나님이 쓰시는 거룩한 종으로, 제사장으로 하나님이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은 아래로, 땅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땅에 것으로 살아야 하지만, 영은 위로, 하늘로부터 왔기 때문에 위의 것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유 1:20)에서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에 착공하여 1970년 7월 7일에 완공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터를 잘 안닦고 대충 세워서 보수비만 해도 몇배나 더 들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터만 잘 닦았더라면 그런 도로를 몇 개 세우고도 남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닦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성도는 다른 것보다 믿음을 개발하고, 믿음의 금광을 캐내야 합니다. 믿음은 보화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금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옛날부터 부유하고, 권력있는 사람들이 금을 많이 사용했던 것은 금의 특징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하는 것은 금이 아닙니다.
(376장 4절)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 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믿음이 왜 귀합니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하는 것은 쇠입니다. 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결국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쓰시지 않습니다. 꾸준히 한 길을 걸어가야지 조금 힘들다고 포기하고 낙심한다면 자신의 믿음을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전에는 잘 믿다가 지금은 믿음이 약합니까? 그것은 전에도 믿음이 아니고 지금도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렇게 값싼 싸구려가 아닙니다. 염려가 되십니까? 흔들립니까? 치우치십니까?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모든 두려움과 염려, 걱정, 근심을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 세 청년이 나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사람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느브갓네살 왕이 자기를 위하여 두라평지에 금신상을 만들었습니다. 60규빗(약 30m)되는 금신상을 세워놓고 나팔과 피리와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금신상에게 절하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다 절해야 합니다. 국무총리, 장관, 국회의원, 공무원, 백성 다 절해야 합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모두다 절을 하는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절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협상하지 않습니다. 적당히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느브갓네살 왕 앞으로 끌려 왔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갈대아 사람이 찔렀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마 이 사람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을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14-15절)

세 명의 청년은 말합니다.
(단 3:16-18)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나님은 바로 이런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우리 인생이 어떠한 경우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풀무불의 위협 속에서도 이길 수 있는 것은 내게 믿음이라는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만이 해결 할 수 있는 것이지 타협하고 절을 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넘어갈 수 있어도 하나님 앞에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제가 군생활을 할 때 저희 선배가 제 밑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식사 시간이었는데, 군에서는 제가 고참이지만 사회에서는 선배이기 때문에 저에게 소주 한잔을 주는 것입니다. 저도 크리스챤이었고 그분도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같은 믿음 사람끼리 이럴 수가 있나? 생각이 들어 그 술잔을 쳐버렸습니다. 나는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에 술을 먹을 수 없다고 분명히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제대를 하고 지금도 가끔 만나는데 별로 말도 안하고 사이가 지금도 안좋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지금도 먹지 않을 것입니다. 슬쩍 한잔 먹을 수 있지 않느냐? 제 믿음의 양심상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믿음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물도, 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도 창조하셨기 때문에 믿는 자를 불이 해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물을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이 만드신 물의 피해를 입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산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보호를 받는 것이지 그 산을 두려워해서도 안되고, 그 산이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시 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3-6)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은 빛도 창조하시고, 어두움도 창조하셨습니다. 낮과 밤도 창조하셨습니다. 사는 것과 죽는 것도 하나님이 만드셨으며, 모든 법을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오직 하나님이요 그 외의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한 손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실패하지 않게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막상 어려움에 도달하면 다릅니다. 성도의 특징은 늘 두렵고, 연약해 보이지만 막상 일을 만나보면 담대해지는 것이 성도입니다. 불이 두렵지만 막상 불을 만나면 담대해집니다. 이것이 산 신앙입니다. 저도 어릴 때 밤길을 걸으면 무섭습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옆에 묘지가 있었고, 또 교회 바로 앞에 공동묘지가 있어서 밤으로 혼자 기도하면 무섭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뭔가 보이면 끝까지 가서 기어히 확인합니다. 비록 어려운 상태이지만 담대해 질 수 있는 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살게 되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위하여 그 아들을 보내주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주시고, 그 믿음대로 하나님은 그 뒤를 따르며 내 믿음의 생각과 고백을 언제나 도와주시고 믿음대로 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신실히 믿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성도입니다.

의사는 항상 흰가운을 입고 환자를 진찰하듯이 성도는 믿음을 옛날에 한번 믿고, 한번 배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늘 믿음의 이야기를 하고, 늘 믿음의 옷을 입고, 늘 믿음의 발걸음을 걸으면서, 늘 믿음의 생각을 가지면서, 하는 일마다 모든 만나는 일마다 믿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어려운 것도, 좋은 것도 믿으면서 살아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는 믿음이 필요없습니다. 믿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보증입니다. 왜냐하면 늘 하나님을 보고 사니까! 눈과 눈으로 보고, 하나님의 영광 중에 거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기 때문에 믿음은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땅에서는 믿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땅에 있는 날 동안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믿음을 보시고 응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이런 믿음이라는 관계로 이어져 있습니다. 내가 믿으면 내 믿음대로 됩니다!

(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막 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획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수 3장)에 보면 요단강을 건너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을 두 번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가는데, 홍해는 그들의 믿음으로 건넌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하나님은 여호와이신 줄 알리기 위해서 건넜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은 다릅니다. 기도해서 건넌 것이 아니고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물어 잠기자 하나님은 그들의 최고의 믿음을 보시고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요 2장)에 보면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마리아는 자기 아들이지만 이분이 메시야인 줄 알고 부탁합니다. 그때 (4절)"내 때가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십니다. 이말은 아직 내가 기적을 행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병든자를 고치며, 하늘나라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왔지 혼인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시킵니다. 이 마리아의 믿음 때문에 기적이 앞당겨졌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바꾸신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살펴보았듯이 (마 15:21-)에 보면 가나안 여인이 나옵니다. 내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는데 고쳐달라고 합니다. (24절)"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고 말하십니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계획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이방인입니다. 수루보니게 족속입니다. 헬라인입니다. 그러나 이 이방 여인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방인으로 은혜를 받은 몇 사람 중 한 분이 바로 이 여인입니다.

제가 전에 성가대 지휘를 할 때 성가대원들에게 물었습니다. '일주일 있다가 죽는다고 예언을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분이 실컷 쓰고 놀다가 가겠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믿음만 있으면 물 위를 걸을 수 있고, 15년을 더 살 수도 있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저는 전에 직장을 구할 때 두 가지 조건만 만족하면 들어갔습니다. ① 주일날 쉴 수 있는 곳 ② 수요예배 나올 수 있는 곳, 이 두가지 조건만 맞으면 아무 곳이나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그곳이 기도로 얻었느냐는 것입니다. 그저 내가 대충 생각해서 얻은 것은 아닙니까? 주님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람을 사귈 때에도 아무나 사귀면 안됩니다. (고후 6:14)에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이 시대가 어렵습니까? 왜 자살률이 급증합니까? 우리나라가 40, 50대 여성 대비 남성 자살률 세계 1위(여성의 3.3배)라는 것입니다.

왜 시대가 혼란합니까? 문화는 점점 발달하는데, 왜 게임 때문에 젊은 청년이 자살합니까? 모두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구를 사귈 때에도, 결혼할 때도 믿음을 보아야 합니다. 어느 대학 나왔느냐? 얼마나 가졌느냐? 외모는 잘 생겼는가?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어느 교회 다녔느냐? 교사, 성가대 했느냐? 성령받았느냐? 구원받았느냐? 예수가 나의 구주인줄 믿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믿음의 결국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병이나 고침받고, 물질이나 얻고.... 이것은 후차문제입니다.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믿음의 결과, 종착역은 천국이요 구원입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여의도에 가면 63층 빌딩이 있습니다. 이 빌딩은 최순영 장로님이 건설했는데, 이 빌딩은 처음에는 15층으로 허가가 났습니다. 그러니 이미 하나님께서 63층으로 주실 줄 믿고 터를 닦을 때부터 63층을 세울 수 있는 터를 닦았습니다. 30층과 60층은 기둥도 3배 이상 커야 하고, 밑의 재료도 3배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터 닦는 방법부터 다릅니다. 시건축과도 서울시장도 15층이상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고 1년내내 지하실 공사만 했습니다. 터만 닦고 있었습니다. 시에서는 빨리 지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63층을 주실 줄 믿고 지하실 공사만 1년 이상 했습니다. 그당시 돈으로도 100억이나 들었습니다. 지금으로는 1,000억 이상일 것입니다. 일본에서 쇠를 수입하여 한 개 30톤이나 하는 것으로 연결합니다. 법으로는 안됩니다. 그러나 믿었습니다. 경호실장을 만나고, 대통령을 만나도 안됩니다. 장로님은 "아무래도 않되겠습니다." 그때 권사님은 "각하가 안되게 해도 더 큰 각하(하나님)가 지금 되게 하십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지 두달 후 대통령이 경호실장에게 죽고 곧바로 허가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허가가 63층으로 나와도 기초를 15층으로 했더라면 63층으로는 못 짓는다는 것입니다. 기초가 있었기 때문에 2년이 다되서야 허가가 나왔지만 바로 지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믿고 살아야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 내 것이 되는 것이지 지금 안 믿고 살다가는 앞으로 하나님께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이제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믿음위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얻은 이 놀라운 구원을 생각하며 잠시 세상에서 받는 어려움을 이기며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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