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듣는 마음 / 왕상 3:4-11

  • 잡초 잡초
  • 602
  • 0

첨부 1


듣는마음
열왕기상 3:4-11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솔로몬입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12-13절). 어떤 왕도 솔로몬 왕과 같은 그런 부와 영광을 누린 사람이 이 땅에 없습니다.
솔로몬은 왜 이런 복을 받았을까요? 하나님 앞에 예배를 잘 드리므로 받았습니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4절). 일천 번제는 천번의 번제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번제는 히브리어로 'hl;[o'인데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서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하여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요, 온전한 헌신과 경건의 표현입니다. 번제는 재물을 불살라서 향기로 드리는 제사로서 우리 전 마음과 뜻을 다 불살라서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런 제사를 천 번 드렸습니다. 일천 마리의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제사를 드림으로 전무후무한 복을 받게 됩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올 때도 온전한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늦게 오면 안됩니다. 예배시간 전에 와서 기도로 준비해야 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옷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와야 됩니다. 헌금도 집에서 미리 정성스럽게 준비해가지고 와야 합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하나님은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가장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구하라"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할 때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이미 받은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6절)

솔로몬은 은혜를 기억하되 부모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최고의 은혜가 부모를 통해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전체가 다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입니다. 외모, 성격, 지혜, 모든 것이 다 부모를 통해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라고 말씀하신 것은 부모를 통해서 나타난 은혜를 기억하는 솔로몬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잘나서 공부하고, 내가 잘나서 출세하고, 내가 잘나서 복받은 줄 압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복은 다 부모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상처까지도 부모로부터 받아서 이것을 은혜로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기 출신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불륜 관계로 맺은 밧세바의 아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받은 왕의 자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통해 준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알고 있는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하고 묻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부귀도 구하지 않고, 왕의 영광을 구하지도 않고, 원수를 멸하는 능력을 구하지도 않고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은 히브리 말로 '['mevo bl'라는 말인데 'bl'는 '마음'이라는 뜻이고, '['mev'는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마음은 듣는 마음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자식이 지혜로운 자식입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 지혜로운 학생입니다. 교회에서는 목사님 말씀을 잘 듣는 성도가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들으면 살고 듣지 않으면 망한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많은 것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듣는 마음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마음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다윗이 받았던 마음입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이것은 겸손입니다. 순종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듣는 마음을 순종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10절).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말입니다.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11-12절)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준다고 약속하십니다. 솔로몬은 이 마음을 받아서 잠언서, 아가서를 썼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이 어떻게 지혜롭게 살 수 있는가, 어떻게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는가, 어떻게 허무한 삶 속에서 바르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태리 밀라노 집회를 인도하고 거기서 500km를 달려 앗시시를 찾았습니다. 그곳은 제가 평소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그 땅 이곳 저곳을 돌아봤습니다. 앗시시는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성 프랜치스코가 1182년 9월 26일에 태어나 44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던 곳입니다. 그는 기독교 전 역사를 통해서 가장 위대한 성자요, 종교적 천재요, 종교적 낭만주의를 일으킨 성인입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을 노래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모든 인간을 사랑한 성자였습니다.

저는 프랜치스코가 밟았던 길, 기도하던 굴, 새들과 노래하던 숲속, 하나님을 찬미하던 산책길, 그를 기념하는 성당, 그가 죽은 자리까지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그가 앗시시 고을들을 바라봤던 산 위에 앉아 '성 프랜치스코가 위대한 성자가 된 비밀이 뭘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그때 저에게 이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렇다, 그는 듣는 마음을 가졌구나."
성 프랜치스코는 듣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었으며, 형제들의 아픔과 그 마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내면의 깊은 음성에 귀 기울이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믿음입니다. 사람의 소리를 듣는 마음은 사랑입니다. 자기 소리를 듣는 마음은 소망입니다.

성 프랜치스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들려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을 들었기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가 되었습니다.
자식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효자와 불효자입니다. 효자나 불효자나 다 부모님으로부터 상속을 받습니다. 족보를 받습니다. 부모를 닮습니다. 그런데 불효자는 한가지를 못받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못받습니다. 재산도 알고, 생긴 얼굴도 알고, 족보도 아는데 부모의 마음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효자입니다.

교인 중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중표 목사를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굴도 알고, 이름도 알고, 설교도 알지만 마음을 모릅니다. 그래서 저의 깊은 정을 못느끼는 성도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도 드리고, 찬송도 부르고, 헌금도 합니다. 그런데 수십년 동안 다녀도 예수님과 마음이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안타까이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

프랜치스코는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날에는 거리를 방황하며 호탕하게 살았습니다. 또한 전쟁터에 나갔다가 사로잡혀 1년동안 포로생활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가 23세 때 성 다미엔 성당 십자가 밑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프랜치스코야, 너는 내 집을 수리하라 내 집이 무너져가고 있다." 처음에 그는 성당을 수리하라는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돌을 모아다가 성당을 수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내 집을 수리하라." 비로소 그는 그 음성이 건물을 수리하라는 것이 아니라 프랜치스코 자신을 수리해서, 무너져가는 기독교를 바로 세우라는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프랜치스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자기를 고쳤습니다.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마 10:10). 그는 말씀을 듣고 즉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외투도 벗어버리고 남루한 옷을 입고 일생을 한 벌 옷으로 사는 걸식 수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에서 장사를 했고, 이태리에서 포목상을 해서 큰 재산을 일군 앗시시의 대부호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자신이 애써 모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나누어주면서 거지처럼 살아갈 때 그의 아버지는 배신과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들에 대한 재산상속권을 박탈해달라고 법정에 제소하였습니다. 재판하는 날 앗시시의 모든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법정에 모여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주교가 법정의 재판관이었는데 최종 판결을 이렇게 내렸습니다. “성 프랜치스코. 그대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남을 구제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그 재산은 그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즉시 프랜치스코는 자기 몸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모든 옷을 다 벗어버리고 법정에 알몸으로 섰습니다. 주교는 안타까이 여겨 자기의 겉옷을 벗어다가 그에게 덮어주었습니다. 그때 프랜치스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로 삐에트라 베르나도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로 부르겠습니다." 그는 막대한 아버지의 재산을 포기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등지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의 음성을 들은 사람

일반적으로 수도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고 심산유곡으로 들어갑니다. 별세의 첫 단계는 떠남에 있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앗시시의 지형은 신기하였습니다. 깊은 산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세상이 잘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앗시시라는 도시는 하나의 큰 산처럼 생겼는데 마을로부터 산으로 깊이 들어가면 그 산정으로부터 세상이 품에 들어오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수도한다고 세상을 떠난 만큼 더욱 세상을 넓고 깊게 보게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성 프랜치스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떠남의 별세를 이루었지만 수도에 정진하면서 세상을 보았고 거기서 들려오는 민중들의 고통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둥병자를 돌보았고, 가난한 자들을 사랑으로 돌봐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의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깊은 산속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에 정진하고 있을 때 묵상 중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히 임했습니다. 순간 마음속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내가 산 속에 들어와 이렇게 수행만 해야 하는가? 아니면 세상에 나가 주님의 일을 해야 되는가?” 그는 그를 따라 수도하던 제자 마태오를 불렀습니다. "마태오야, 내가 산속에 남아서 수도를 해야 할 것인지 나가서 일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생겼다 그러니 신실한 두 사람 실바스 형제와 클라라 자매에게 가서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물어봐다오." 마태오의 전언을 따라 두 사람은 기도를 한 후 성 프랜치스코에게 이렇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프랜치스코를 오직 한 분만을 위해 만들지 않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성 프랜치스코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옳도다. 주의 뜻을 따라 내가 마을로 내려가리라.' 그리하여 그는 수도를 정진하다가 일어서서 마을로 내려가서 전도도 하였고,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성 프랜치스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을 떠난 별세의 수도사일뿐만 아니라, 형제의 음성을 듣고 세상 속으로 돌아와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별세의 성자가 된 것입니다.

귀로 듣는 사람은 청중이고 마음으로 듣는 사람은 제자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들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곳이 천국입니다. 내 음성을 들어줄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기도입니다.

자기 영혼의 깊은 간구를 들은 사람

성 프랜치스코는 하나님께서 내면의 영혼이 소원하는 바 그 깊은 간구를 들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여, 내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내려주옵소서. 첫째, 내가 영혼과 육신의 고통 속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맛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둘째, 주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그토록 큰 고통을 참으실 수 있었던 불타는 사랑을 내 안에도 간직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성 프랜시스는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날개 넷이 달린 천사였는데, 프랜치스코에게 가까이 와서 두 날개로는 날갯짓을 하며 날았고, 날개 두 개는 몸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천사의 몸에 십자가의 거룩한 상흔이 각인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성 프랜시스는 마음속에 타오르는 듯한 뜨거운 감동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즉시 프랜시스의 몸에도 상흔이 생겼습니다. 손과 발에는 못 자국이, 옆구리 오른쪽에는 창자국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피가 흘러 내리는데 아무리 붕대를 감아도 피가 멈추지 않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성 프랜치스코는 전무후무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의 마음을 담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흔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앗시시는 오직 성 프랜시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역사적 도시였습니다. 그의 유적지와 그를 기념하는 물건을 파는 곳 외에는 관광을 위한 구경거리는 물론 음식점조차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재산은 유리관에 넣어져 보관된 일평생 입고 다녔던 옷 한 벌뿐이었지만, 수 백년이 지난 오늘도 앗시시 곳곳에는 성 프랜시스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담아 믿음, 사랑, 소망으로 유일한 행복, 축복,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