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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 축복 하옵소서 / 창 32: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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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 32:21-32
설교제목 : 내게 축복 하옵소서 

  오늘은 『내게 축복하옵소서』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26절을 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오늘 본문은 문제아 야곱의 일생을 말해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는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겪으면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의 일생을 정리하며 은혜를 받겠습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첫째, 그는 욕심꾸러기였습니다.  꾀가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하여 해산할 때 야곱은 먼저 나오는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야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발꿈치를 잡는 자’ ‘속이는 자’라는 뜻입니다.  남의 발꿈치를 잡는다는 것은 악착같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야곱은 형 에서를 속였습니다.  아버지 이삭도 속였습니다.  나중에 자기의 외삼촌 라반도 속이는 자가 되었습니다.
 
  나이 많아 늙어진 아버지 이삭은 형 에서에게 축복기도 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때 야곱은 어머니 라헬과 함께 가지고 있는 꾀를 총동원하여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기도를 가로채었습니다.  그는 목소리를 형 에서처럼 꾸몄습니다.  털을 붙여 팔목을 위장하였습니다.  감쪽같이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기도를 받아내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의 인생을 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을 얻을 수 있다면, 돈을 버는 일이라면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수 주일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행동한 것을 합리화합니다.  나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도 남의 발꿈치를 잡고 늘어집니다.  속이고 살아갑니다.  이것은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잘못에 빠지면서 핑계를 잘합니다.  변명을 잘합니다.  남을 물고 늘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걸어갈 바른 길이 아닙니다. 


  둘째, 야곱은 믿음의 부모님 슬하에서 성장했으나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고 믿지 못했습니다.  장자의 권리는 매우 중요한 권리입니다.  집안의 대표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시대를 족장시대라고 합니다.  족장이란 민족의 대표를 말합니다.  왕이 되는 자리입니다.  에서는 왕이 되는 자리를 가볍게 동생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죽 한 그릇에 넘겨주었습니다.  그것은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못한 자의 잘못된 모습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자기의 실수는 생각지 않고 동생을 해하려 했습니다.  이것도 인간이 가져야 할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야곱은 형을 피해서 외삼촌이 살고있는 밧단아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형을 피해서 집을 떠난 야곱이 하늘을 지붕 삼고 돌을 베개삼아 드러누웠던 벌판이 유명한 벧엘 광야였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떠난 고향이었습니다.  서글프고 불안하고 초조하였습니다.  그날 밤 야곱은 그리운 부모님과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향에는 하나님도 계시고 아버지 이삭도 계시는데 이곳 벌판에는 나 혼자만 있구나’라는 것이 야곱의 독백이었습니다.  야곱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고향에만 계신다고 믿은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고향에만 계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우리 조상의 하나님으로만 믿는 분은 계시지 않습니까?  목사님의 하나님, 장로님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고 계시는 분은 없으십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막연히 하나님이 계시겠지, 어디엔가 계시겠지! 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분은 안계십니까? 

  이날 밤 야곱은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고백이 있습니다.  창세기 28장 1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즉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는 그날 밤 하나님의 계시(啓示)를 보았습니다.  고향에만 계시는 줄 알았던 하나님을 고독한 망명길인 벧엘 광야에서 만난 것입니다.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지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고향에는 형 에서가 그를 죽이려고 이를 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외삼촌이 살고있는 하란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고향에는 형 에서가 그를 죽이려고 이를 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다고 그가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그는 야곱입니다.  간사한 자, 속이는 자 야곱이었습니다.  사기꾼입니다.  교회 한번 나왔다고 갑자기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때 성령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과거의 습관을 버리게 됩니다.  변화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외삼촌 집에 가서 20년 동안 양치는 목동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20년 동안에도 그는 외삼촌 라반을 속이는 일을 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동안 결혼도 했습니다.  자녀들도 얻었습니다.  재물도 얻었습니다.  그 재물은 외삼촌을 속여서 얻은 재물이었습니다.  사기꾼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성공했습니다.  많은 물질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20년 동안 형  에서의 노여움도 많이 없어졌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을 이끌고 고향을 향하여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세상일이 전부 내 계획과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을 데리고 떠난 그의 고향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고향 가까이 왔을 때 야곱은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그를 마중 나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때 야곱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20년 전 고향을 떠났을 때 가졌던 불안과 절망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때는 고향을 등지고 도망치는 입장이었습니다.  자기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과 재산을 이끌고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형 에서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처자식을 이끌고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400명이나 되는 형의 군인들과 싸울 수 있는 힘도 없었습니다.  야곱은 절망을 느꼈습니다.  좌절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새로운 해결점을 찾았습니다.  이제까지는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인생을 살았습니다만 지금은 길이 없습니다. 

  작년에 전방에 있는 군부대를 방문하여 세례를 베푼 일이 있었습니다.  부대장과 하는 이야기 가운데 제일 심각한 문제가 군복무중인 젊은이들이 너무나 가볍게 목숨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외출 나갔다가 귀대시간이 조금 늦어 책망 받을 것이 무서워 자살해버린다는 것입니다.  금번에 발표된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루에 36명이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자살하면 그 영혼은 영벌에 들어갑니다.  영원히 벌받는 자리입니다.  영혼은 죽음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죽을 용기 있으면 그 용기로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길이 막혀 고생하는 분 계십니까?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분 계십니까?  새로운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야곱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문제해결의 첫째 방법은 혼자 있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을 보겠습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야곱은 20년 동안 처자식과 같이 있었습니다.  종들과 같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혼자 있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혼자 있을 때 나를 찾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고독하고 슬플 때 나를 찾아 주십니다.  얍복강 나루터에 홀로 남아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얼마나 반가왔겠습니까?  누군줄 자세히는 몰랐으나 그는 붙잡았습니다.  그와 씨름을 했습니다.  26절입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것이 야곱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야곱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의 자존심, 체면, 체통, 위치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붙잡았습니다.  세상적인 말로 표현한다면 물고 늘어졌습니다.  천사인 그는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나를 놓아라”  “나는 놓을 수 없습니다.”  야곱은 말했습니다.  그는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환도뼈는 엉덩이뼈를 말합니다.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었습니다.  위골되었다 하는 말은 뼈가 제자리에서 어긋나 맞지 아니함을 말합니다.  야곱은 그의 뼈가 위골되어도 천사를 붙잡고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과 3절입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는 자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부르짖는 자에게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야곱의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27절과 28절입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사기꾼 야곱이었습니다.  간교했던 야곱이었습니다.  거짓말쟁이 야곱이었습니다.  속고 속이는 인생을 살았던 야곱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발꿈치를 잡고 늘어지던 야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이름이 바뀌어 승리의 사람, 하나님을 이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성도 여러분!  부러질 것이 부러지고 나서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씨름할 만큼 씨름한 후에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땀 흘릴 만큼 흘린 후에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데 이스라엘이 된 것이 아닙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고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는 “내가 하나님과 싸워 이겼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을 하나님이 살려주셨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셔서 그에게 새 이름을 주셨다는 고백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을 만난 흔적으로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되었습니다.  환도뼈는 몸의 중심을 잡는 뼈입니다.  그 뼈가 위골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만난 증거로 평생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새 이름을 얻게 된 흔적이 그의 몸에 나타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바울사도는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름을 바꿉시다.  불신자가 변해서 믿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만이 변하여 겸손한 사람이 됩시다.  게으른 사람에서 부지런한 사람으로 변합시다.  부정적인 사람에서 긍정적인 사람이 됩시다.  저주받은 영혼이 변해서 구원받은 새 사람이 됩시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새 사람으로 이름을 바꿉시다.  나약하고 어리석고 성장 못한 우리 영혼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합시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우리의 환도뼈가 부러져야 합니다.  부러질 것이 부러져야 합니다.  그리고 씨름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이제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는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이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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