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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름병의 교훈 / 왕하 4: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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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기름병의 교훈
본문:왕하 4:1-7

성경에는 과부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과부의 이야기를 보면 하나의 공통적인 현상들이 있는데 우선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에 선지 생도의 아내였다가 남편이 먼저 죽고 두 아들과 함께 어렵게 살아가는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사렙다 과부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사렙다 과부는 양식이 다 떨어져서 마지막 기름과 밀가루로 떡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고 하다가 엘리야를 만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리고 나인성 과부도 아들과 함께 살았지만 아들이 갑작스럽게 죽어서 장사를 지내려 가던 중 예수님을 만나서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과부들은 대부분 가난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과부도 남편이 물려준 빚으로 인해서 두 아들이 함께 종으로 끌려갈 위기에 놓였음을 줍니다. 사렙다 과부도 양식이 바닥나서 자식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는 남편을 잃고 고향에 돌아와서 사는데 얼마나 가난했던지 그의 며느리 룻이 남의 논에 가서 이삭을 주어서 그날 그날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에서는 과부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직분자들을 세우는 것을 보더라도 당시 홀로 사는 과부들은 생활고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처럼 산업화가 되지 않은 당시에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직업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과부를 보면 인간의 모든 불행을 다 짊어지고 사는 한 인생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였어도 그 어려움을 함께 나눌 남편이 없었고 가까운 일가 친척도 분명히 그 여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한없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혼자 사는 것도 힘들고 어려운데 자기의 힘으로 갚을 수 없는 빚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빚을 갚을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아무리 노력해도 그 빚을 갚을 소망이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요즘 카드 빚으로 인해서 어머니가 자식과 함께 자살을 하는 장면을 볼 때 빚이라는 것은 빚은 한 가정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제 채주가 여인의 두 아들을 종으로 삼고자 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엘리사를 찾아 온 것입니다.

1. 과부의 남편

엘리야 선지자를 이어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가 된 엘리사는 그의 스승의 뒤를 이어 여러 곳에 신학교를 세우고 선지 생도들을 양성하여 타락한 종교를 바로 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 나라 백성들에게 바로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선지 생도들은 가난한 상황에서 신학공부를 했습니다. 때문에 그 가족들은 따라서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남편은 신학을 공부하다가 아내에게 가난만을 물려주고 일찍 죽었습니다. 남편은 그녀에게 미래를 약속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빚만 물려주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남편은 빚만 물려주고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을 물려주고 갔습니다. 선지 생도의 아내가 엘리사에게 가서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고 했습니다. 남편은 겉으로는 빚을 물려주고 갔지만 그 아내는 엘리사 앞에서 당당하게 내 남편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였습니다. 그것은 선생님께서도 이미 알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던 것입니다. 사람을 말할 때 여러 가지로 그를 설명할 수 있지만 신앙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 물려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물려주고 떠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위나 명예를 물려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재주를 물려주고 어떤 사람은 기업을 물려주고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생도는 육신적으로는 자식과 아내에게 아무 것도 물려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빚만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을 물려주고 떠났습니다. 남편으로써 아버지로써 가장 무능력해 보였지만 믿음을 물려 준 것입니다.

여기에 과부는 남편이 물려준 빚으로 인하여 불행해졌지만 남편이 물려준 믿음을 붙잡고 그 불행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성경에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부자는 부는 물려주었으나 믿음은 물려주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 부자의 영원한 후회가 된 것입니다. 성도는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었다고 아버지 노릇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물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야곱은 열 두 아들을 죽기 전에 모아 놓고 하나씩 그들의 믿음을 따라서 축복했습니다.

2. 과부의 아들

과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들들은 과부에게 있어서 미래요 자신이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채주가 그 두 아들을 취하여 종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자신들의 무능력으로 자식이 종이 되는 것은 참으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엘리사에게 자신의 두 아들을 지켜 달라고 찾아온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두 아들이라는 말이 네 번 나옵니다. 이 말씀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두 아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두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엘리사를 찾아왔고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고 빌려온 병에다 기름을 붓고 기름을 팔아서 두 아들과 함께 생활하라 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여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심은 두 아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과부의 두 아들은 어머니의 영적 동역자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순종해서 이웃에 다니면서 병을 빌렸습니다. 조금 빌린 것이 아니라 빌릴 수 있는 한 많이 빌렸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엘리사가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했을 때에 여인이 물러가서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저는 부었더니 했습니다. 엘리사는 분명히 여인의 믿음도 시험해 보셨지만 그 아들들의 믿음도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자녀의 믿음은 순종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째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모든 자녀의 믿음을 말씀할 때에 순종을 믿음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믿음도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사무엘의 소년 시절의 믿음도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온전히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자녀의 불신앙은 불순종입니다. 마귀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를 봅니다. 압살롬을 봅니다.

자녀는 주의 일에 동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자녀를 말씀 순종의 동역자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우리 가정의 자녀가 하나님 말씀 순종의 동역자가 되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성경에 노아와 그 세 아들은 하나님 말씀 순종에 있어서 동역자가 되었고 그 가정은 세상을 구원하는 교회의 모형인 방주를 만든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도 말씀 순종의 동역자였습니다.

3. 과부의 이웃

엘리사는 과부에게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고 했습니다. 이 때 여인은 한 병의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때 엘리사는 여인에게 너는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빌되 조금 빌지 말라고 했습니다. 과부는 지금까지 이웃에 대해서 고마움을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부가 빚에 쪼들리며 살았지만 이웃은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과부는 이웃을 마음으로 원망하며 살기 쉬웠을 것입니다. 엘리사는 너의 가정이 축복을 받으려면 이웃의 도움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때에 이웃이라는 그릇을 사용하실 때가 많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도 나사로는 이웃이기도 했지만 부자의 가정에 복을 주실 수 있는 그릇이었습니다. 고넬료는 구제하였더니 하나님이 베드로를 그 가정에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이웃은 단순히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그릇으로 우리 곁에 두신 사람들입니다. 십계명에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 그리고 이웃에게 대한 계명입니다. 하나님은 이 과부를 축복하실 때에 이웃을 축복의 그릇으로 사용하시므로 이웃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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