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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비옵는 것은 / 요 17: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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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가 비옵는 것은
본문 : 요한복음 17:9~26

이번 제2회 전교인수련회 2박 3일 기간 중 마지막날인 세쨋날 아침 로비에 앉아 쉬고 있는데
나이가 유치부 정도되는 어린 여아(女兒) 한명이 다가와 제 명찰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임정석 담임목사구나!"

이번 수련회는 이렇게 좋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동안 잘 몰랐던 교우들이 강당에서 복도에서 식당에서 운동장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이렇게 서로 교제하며 지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한 교회 공동체 속에 있으면서도 모르며 지냈던 교우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부분을 많이 해소(解消)하였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주님의 몸이라 부릅니다.

몸이란 머리를 중심으로 다 붙어 있으면서 서로 각종 정보가 연결되는 것이 바로 몸입니다.
그래서 팔이 아파도 온 몸이 아프며.. 발이 아파도 온 몸이 아프며 힘든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는 바로 그런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기도로 유명한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불리우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지상에서의 사역(使役)을 다 마치고
내일이면 십자가를 지고 인류구원을 위한 대속(代贖)의 길을 걷기 직전 
마지막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바로 그 시간에 맨 먼저 이렇게 기도합니다(17:1).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이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칠 때 아버지께서 영광(榮光)을 받으실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榮華)롭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또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5)

솔직한 기도입니다.
자신의 죽음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영화롭게 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이제 3년 동안 정성껏 기른 제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합니다.

- 저희가 하나 되게 하옵소서(11절)
- 저희에게 내 기쁨을 충만하게 하옵소서(13절)
- 저희를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옵소서(15절)
-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17절)
- 세상으로 믿게 하옵소서(21절)
- 세상으로 알게 하옵소서(23절)
- 저희로 보게 하옵소서(24절)

오늘은 이 예수님의 기도 7가지를 중심으로
그 의미가 무엇인지.. 말씀을 깊이 상고(詳考)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로, 맨 먼저 11절 말씀입니다. 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이상하게도 예수님의 제자들 각각은 예수님과는 그런대로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 서로서로는 그동안 하나 되지 못하였는데
이점을 예수님은 안타깝게 여기시고 하나되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궁금증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왜 제자들은 하나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이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꼭 그렇게 제자들이 모두 하나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되지 않아도 각자 각자가 신앙생활 잘 하면 안되는 것입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험하고 악한 이 땅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려면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탄 마귀와 싸워 이기고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기려면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일 하는 데에도 혼자 하는 것 보다 힘을 모으면 더욱 좋기 때문에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는 알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되기가 실제적으로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 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는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하나가 될 수 있는가 하면 각자가 다 자기의 뜻을 접고.. 주님의 뜻을 품으면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 뜻 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무슨 말씀입니까
바로 여기에 하나됨의 비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구체적인 사안(事案)을 다룰 때 그 때마다
주님 뜻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하면서 모두가 자신의 뜻을 접으려고 서로 노력하기만 하면
하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뜻 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됨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는 에베소 교우들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에베소서 4:1-4) 

예수님의 두번째 기도는 13절입니다. 다함께 보시겠습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두번째로 제자들이 기쁨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사실 그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도 참 기쁨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이제 곧 세상을 떠난다 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마지막 만찬을 거행할 때도 제자들은 불안 속에 떨었으며
이제 곧 군병들에게 잡히고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목전에 둔 지금도 그들은
불안과 공포 속에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기쁨과는 상관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예수님은 오히려 태연자약(泰然自若)합니다.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기쁨이 어떤 기쁨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옵소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난 후 함께 모여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서
그제서야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기쁨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사도행전 13:52)

무슨 말씀인가 하면 전혀 기뻐할 수 상황이 아닌데도 기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렇게 기뻐할 수 있게 된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기쁨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기쁨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상황이 어떠하든지... 상황에 관계없이 기뻐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찬송가 452장에 보면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1 주는 귀한 보배 참 기쁨의 근원 참된 내 친구
  갈급한 내 마음 주를 사모하여 목이 탑니다
  흠이 없는 어린양 그 품 안에 괴롬 없어 더 바랄 것 없네
2 주의 품에 안겨 편히 쉬는 나를 누가 해치랴
  땅이 흔들리고 모두 떨지라도 겁낼 것 없네
  죄와 지옥 물결이 우리들을 덮치어도 주는 피난처라
3 기쁨의 주 예수 우리 함께 하니 슬픔 없어라
  하나님의 자녀 폭풍 속에서도 평화로와라
  아무 일을 만나도 주 안에는 기쁨 있네 주는 나의 보배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이 참 기쁨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참으로 귀한 보배이며.. 우리의 참된 친구라는 것입니다.

복음성가 가운데도 이 와 비슷한 찬양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와 같은 때엔"이라는 찬양입니다.

1 이와 같은 때엔 난 기도하네 조용히 기도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엔 손 높이드네 손 높이드네 주님께
2 이와 같은 때엔 난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님께
  이와 같은 때엔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무슨 말씀입니까?

상황이 좋아서 기도하고 노래하며 손을 드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전혀 상관없이..
오히려 상황은 힘들고 어려운데도 기도하고 노래하며 손을 높이 든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믿음의 진수(眞髓)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것은... 이렇게!!
어떤 상황에서든지 믿음 안에서 자유하면서 노래하며 살아가도록
아니 더욱 적극적으로 기뻐하며 살아가도록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예수님의 세번째 기도는 15절입니다. 다함께 보시겠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세번째로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였습니다.

이 기도를 보면 제자들이라고 할지라도 악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예수님은 바로 이점을 내다보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희미하게 신앙생활 하다가 악에나 빠지는 그러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죄와 악을 능히 이기며 살아가는 강한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우리라고 하는 존재는 어떤 죄도 항상 이길 수 있는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떤 상황에서도 악에 빠지지 않는 강한 존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여 주시옵소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생활을 솔직하게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로마서 7:18-21)

무슨 말씀입니까?
사도 바울과 같이 훌륭한 믿음의 사람에게도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다음 예수님의 네번째 기도는 17절입니다. 다함께 보시겠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좋기는 좋지만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목표를 바라보면 너무나도 높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맨 처음 하나님의 형상(image)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생각은 대체적으로 이런 것들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

다 맞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것들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을 설명하는 이미지(image)라는 것인데
이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은 맨 처음에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이미지를 따라
거룩하게 창조되었고 사랑이 풍성하게 창조되었으며 정의롭게 살도록 창조되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좋은 형상들을이 부서지거나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을 믿고 믿음 안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과제는
바로 이것, 거룩함의 회복이라는 점입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지난 주간 전교인수련회 장소로 사용하였던 세종수련원 대강당의 앞부분
양 옆에 걸린 액자의 세로로 쓴 붓글씨를 기억하십니까?

거기에는 이러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 "건전한 가치관 확립" "조화로운 인격 도야(陶冶)"

물론 좋은 글귀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탄이 저절로 나오는데
건전한 가치관 확립이라는 것은 적절한 좋은 표어입니다.

그리고 조화로운 인격 도야(陶冶)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주의가 극치를 달리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인격이야말로
적절한 좋은 표어입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목표를 그 정도로 세워서는 안되고 그 이상의 목표를 세워야 하는데
그 이상의 목표란 "건전한 가치관 확립"에서 "그리스도적 가치관 확립"으로
그리고 "조화로운 인격 도야"에서 "그리스도적 인격 도야"로 승화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승화시켜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다시 잃어버렸던 거룩함을 회복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다음 예수님의 다섯번째 기도는 21절입니다. 다함께 보시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 다섯번째 기도는 지금까지의 기도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였는데 이것은 세상을 위한 기도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제자들이 하나 되게 하옵시고 기쁨 충만케 하옵시며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옵시고,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했는데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자로 믿게 해 달라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저는 이 기도가 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들에게 복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번 전교인수련회에서 둘째날 특강 강사로 오신 김종선 장로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이 세상을... 감(感)으로만 살아가면 비극이요, 생각하며 살아가면 희극이요
믿음으로 살아가면 로망스(romance)다."

아주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다음 예수님의 여섯번째 기도는 23절입니다. 다함께 보시겠습니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이 여섯번째 기도도 지금까지의 기도와는 조금 다른 세상을 위한 기도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랬다는 것을
세상이 좀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기도는 앞의 기도와 이어지는 일맥 상통한 기도입니다.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세상을 사랑해서 그런 것임을 알게 하옵소서"

참 중요한 기도이며..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일곱번째 기도는 24절입니다. 다함께 보시겠습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의 이 마지막 기도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로서 "봄"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제 곧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하는 자기를 앞에 두고 힘들어하고 있는 제자들이
딱 한번만 그 영광을 보기만 하면.. 그 어떤 어려움도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이기에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믿음이 무엇이냐? 참 믿음이 무엇이냐? 기쁨이 무엇이며 참 기쁨이 무엇이냐?
그리고 그것들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이냐?.. 아주 중요한 질문이며 근원적인 질문인데...
이 모든 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고... 오직 그 안에.. 모든 보화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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