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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믿는 자는 / 요 6:2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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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나를 믿는 자는
본  문  요한복음 6:24~35 (신153)

무더운 여름철을 지나고 있다. 땀도 많이 흘리기에 물도 많이 마신다. 우리의 몸에 70% 가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 수분은 물과 소금이 어느 정도의 비율을 유지해야 하는데 땀을 통해서 수분이 빠져나가면 소금기가 많아진다. 그러기에 물을 빨리 보충 시켜서 물과 소금의 비율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음식을 짜게 먹으면 밥을 먹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물을 마시게 된다. 몸 속에 짠 음식을 통해서 소금기가 많아졌기 때문에 물을 보충 시켜서 물과 소금과의 비율을 일정하게 맞추기 위함이다. 술 안주를 짜게 만든다고 한다. 짠 것을 먹으면 몸에 소금의 비율이 많아서 목에는 갈증을 더욱 느끼고 짠 안주를 먹으면서 자꾸 술을 더 많이 마시라고 짜게 만든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시다가 한 여인을 만나신다. 우물가에 물을 길러 나왔다. 예수님께서 목이 말라 물을 달라고 말씀하시자 사마리아 여인이 “어떻게 유대인이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왜냐면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게 물을 달라고 하는 자가 누구인줄 알았으면 너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었으리라”고 하셨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성경에서 나타난 목마른 갈증은 단지 불편한 정도가 아니다. 갈증은 곧 생명을 위협하는 표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던 중에 르비딤에 장막을 쳤다. 백성이 마실 물이 없어서 소란이 일어났다. “백성이 모세에게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이곳에서 목말라 죽게 하는가?” 목이 마르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때 연합군과 독일군이 서로 싸우다가 길을 잃고 사막에서 헤매게 되었다. 이들은 목마름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신기루를 보게 되었다. 마치 물이 넘실대는 오아시스처럼 보였다. 연합군이나 독일군이나 할 것 없이 그 오아시스에 뛰어들었지만 그것은 물이 아니라 모래였다. 군인들은 허탈감에 빠졌고 그 목마름을 이들을 더 큰 고통으로 몰아갔다.

목마름은 단지 우리가 사는 동안 불편한 정도가 아니다. 목마름은 죽음과 생명의 분깃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대전 때에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떨어졌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죽으면서 그들은 물, 물, 물하면서 물을 찾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공원에 커다란 분수대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실컷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수님도 십자가 상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 중에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다. 목이 마른 갈증은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주는 물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것은 곧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을 표현하는 말씀이 있는데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물은 사람에만 연관되는 것이 아니다. 식물에도 마찬가지이다. "식물이 오래 사는 비결"이라는 글 속에 담긴 지구상에 가장 오래된 나무의 이야기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식물은 캘리포니아 화이트마운틴에 있는 '브릿슬콘 파인'이라는 소나무과 종류의 나무다. 최고 나이가 4,600세다. 바빌로니아 문명이 BC 2600년이고 이집트왕조가 BC 1300, 알렉산더 대왕 시대가 BC 300년이고 보면 '브릿슬콘 파인'은 정말 오래된 나무다. 어떻게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는가? 가장 중요한 관건은 어떻게 물을 공급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 나무 가지나 나뭇잎이 별로 없고 몸통 전체가 뿌리로 이루어져 있다. 나무의 생명은 물을 어떻게 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가지나 잎이 많을수록 수분을 많이 끌어 올려야 하고, 그만큼 수분 증발량도 많아진다. 엄밀히 말하자면 뿌리가 먹여 살려야 하는 식구가 많은 셈이다. 몸통 전체가 뿌리로 되어 있기에 충분한 양의 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

이같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목마르지 않게 생수를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은 내가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영원히 죽으을 보지 아니하리라. 육신은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을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 죽은 뒤에도 심장을 잃어버리면 영생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죽은 뒤에도 심장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간직하면 영생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부자나 권력자들이 죽은 뒤에 심장을 못 훔쳐가도록 수많은 노예들을 동원하여 큰 피라미드를 쌓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심장은 작은 유리병 안에 따로 넣어서 장사를 지냈다. 이집트 박물관에 가보면 심장을 넣었던 유리병을 많이 보게 된다.

영생의 길은 단 한가지이다. 요한1서 말씀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주님은 근본적인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우리에게 죽지 않는 영생의 길을 열어 주신다.
다음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목마르지 않게 하신다는 말씀은 우리 인생에 참된 만족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목마름, 혹은 갈증은 우리 속에 타오르는 욕망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잘 되고,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 속에서 왠지 허전함을 느낀다. 어딘가 뭔가가 부족한 것이 있는 것처럼 느낀다.

어느 부자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여러 가지 계명을 잘 지키라고 말씀하자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그러면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네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청년은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나갔다.

이 청년은 자기가 갖고 있는 물질 때문에 오히려 주님을 떠나고 참된 만족을 경험하지 못하였다. 계속해서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다.
어느 신문에 대조적인 기사를 읽었다. 어느 결혼 정보회사를 통해서 A급 신랑 신부가 만나서 결혼했다. 명문대 대학원 출신이고, 신랑 신부가 외국 은행에 간부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수 천만원의 혼수품을 주고 받고 편안한 아파트에서 모든 것을 다 갖춰 놓고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족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지만 그들은 결국 3개월 만에 이혼소송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 기사의 제목은 “조건맞춤 신혼부부”이다. 조건이 모두 맞았지만 그 속에 참된 만족이 없어서 고통스러워하는 기사의 내용이다.

그런데 한 편에는 어느 40대 목사님의 기사이다. 이 목사님도 과거에는 대기업의 엘리트 사원이었는데 30대에 간암 말기의 판정을 받았다. 2년간의 투병 생활 중에 건강을 회복하고 신학을 한 후에 목사님이 되었다. 이 목사님은 컴퓨터를 통해서 암에 걸린 환자들에게 “예수님이 보내는 사랑의 편지”를 띄운다. 예수님의 손이 되어, 예수님의 입이 되어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람있는 일을 감당하고 있다.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 얼마나 만족스럽게 일을 하는지 모른다.
위의 두 기사를 비교해 보라. 모든 것을 맞춰 놓고 산다고 우리에게 참된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금 부족해도 고통의 아픔이 있어도 주님과의 관계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생수를 마실 때에 만족할 수 있다.
목이 말라서 갈증이 심할 때에 금을 가져다 준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목이 말라서 갈증이 심할 때에는 반드시 물을 마셔야 하는 것 처럼, 우리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목마름은 반드시 주님께서 주시는 생수로만 만족할 수 있다.
작년에 강릉 지방에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났다. 물 때문에 고통을 당하였다. 그곳에 있는 친구 목사에게 전화해서 필요한 것을 한 트럭 실어다가 갖다 주었다. 뭐가 제일 필요하니? 하고 물었더니 물을 많이 가져다 달라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하다. 물이 그렇게 많아서 물로 인해서 홍수가 났는데 마실 물이 없다니..... 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스럽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마치 물이 풍족한 시대와 같다. 그런데 진정 마실 물이 없는 때 같다. 우리를 만족시켜줄 만한 많은 재미있는 것이 많다. 각종 스포츠, 각종 게임, 다양한 동호회, 다양한 만남 등 주변에 물이 많은 것 같지만 오히려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줄 마실 물이 없는 시대에 사는 것 같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주님을 떠나서 스스로 만족하는 생활을 하지만 그것은 결국 터진 웅덩이가 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생수를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우리에게 참된 만족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나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생수를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오래 전의이야기이다. 사우디에서 온 관광객들이 호텔에서 수도꼭지를 빼갔다고 한다. 사우디는 물이 귀한 나라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수도꼭지에서는 틀기만 하면 물이 시원하게 나오니 얼마나 좋은가?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하도 신기해서 그것을 빼갖고 갖다고 한다. 자기 집으로 갖고 가서 수도꼭지를 틀어야 물이 나오겠는가?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려면 물을 공급해 주는 곳과 연결이 되어야 물이 나온다. 수도꼭지만 있다고 해서 물이 나올 수 없다.

믿음은 곧 하나님과 연결되는 방법이다. 믿음의 표현이 기도하고 말씀 듣고, 찬송하고 하나님께 바치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푼다. 이러한 일은 곧 하나님과 연결된 표현이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자.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되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실 줄로 믿는다.
이 생수를 마시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이 있고, 인생의 참된 만족을 경험하는 축복이 임할 줄로 믿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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