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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의심하였느냐? / 마 14: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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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왜 의심하였느냐?
성경본문 : 마태복음 14장 22~33절

왜 의심하였느냐?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마태복음 14장 22~33절) 

<목회기도>
 
생명 주신 하나님,
예배드리는 자리에 있게 하심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고가 많고
유명 기업인이 자살하고, 성적하락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많고,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을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심판하실 하나님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리는 사람들의 교만을 꺾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불안하고 힘든 세상에서 살다 예배드리러 왔습니다.
저희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살면서 받은 상처와 아픔은 어루만지시고 싸매 주시옵소서.
하나님, 부족한 종의 성도들을 위한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기둥교회 성도들의 가정과 일터가 평안케 하시고
사고 많고 어려움 많은 군대에 가 있는 믿음의 아들들을
상함이 없는 은혜로 붙들어 주시옵소서.
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 객지에 나가 있는 이들에게서도
평안의 소식만 들려오게 하시옵소서.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회복과 일어남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부족한 종을 세우셨으니 권능의 손으로 붙잡으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여러분, 평안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배 시간에 드린 헌금봉투에 기도제목이 적혀 있습니다.
매 주일 재무부에서 헌금을 정리하고
기도제목이 적힌 봉투를 모아 제 책상 위에 올려 놓습니다.
봉투에 적힌 기도제목을 읽어보면 살기가 어려운 분들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힘들게 버티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래도…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야 합니다.
 
 
자살은 죄입니다.
 
자살은 죄입니다. 죽지 말아야 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하루 평균 36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생활고를 비관한 생계형 자살부터 재벌 총수의 자살에 이르기까지
자살 신드롬은 계속 확산 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자살은 책임회피의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을 때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 일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부모로서, 남편, 아내로서, 자녀로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맡겨진 일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잘 감당해야 함에도
자살하는 것은 모든 것을 책임회피하는 일입니다.
▶자살은 살인죄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나오는 십계명 중에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생명 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도 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살은 살인죄입니다.
▶자살은 불신앙의 죄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생명과 모든 존재를 주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저런 인간은 죽어야 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못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이 다른 사람을 향해 '죽어야 돼'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 권한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합니까?
밝고 희망에 찬 내일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면 됩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에게 "힘을 내세요."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 힘내세요.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잖아요.  ♬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말씀을 전하시는 곳마다
수 없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마14:13).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여자와 아이 외에도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예수님은 모여든 사람들 중에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해가 저물어 날이 어두워지는데도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왔던 어린아이 하나가 내놓은 떡(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거기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본문 마태복음 14장 22절에 보면
"예수께서 즉시(immediately) 제자들을 재촉하사"(마14:22)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즉시'라는 말은 '긴박하게, 빠르게'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 모여든 사람들을 보내는 동안 제자들은 배로 떠나게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하고 좋아했겠습니까?
그런데 왜, 그 일이 있은 후… 밤이 되었는데…
즉시/재촉하여 제자들을 떠나게 하셨을까요?
요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요6:14~15)
 
사람들은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을 임금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빨리 떠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의 생각(예수님을 임금 삼으려는 생각)과
하나 될까봐 그러셨는지 재촉하여 배를 타고 떠나게 하셨습니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
 
본문 23절에 보면 제자들을 보내신 예수님은 산기도 하러 가셨습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마14:23)
예수님께서 그 밤에, 가라고 재촉하셔서 보낸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고 있었으나…
호수는 평안치 못했습니다. 풍랑이 일었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좀 특별한 지역에 있습니다.
그 호수는 지형적 특수성 때문에 종종 거센 광풍이 몰아 치곤 했습니다.
수면은 서쪽 지중해 수면보다 약 180미터 낮고,
동쪽 골란고원보다는 1200m낮아 사면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사발 모양의 움푹 들어간 곳에 있는 호수입니다.
그곳은 사막지대라 낮 동안에 뜨거워졌던 열기와
밤이 되면서 북쪽에서 헐몬산에서 내려온 찬 공기가 만나면서
갈릴리 호수에 2m가 넘는 풍랑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비전 성경사전 참조>
 
 
당시에는 요즘처럼 큰배가 없었습니다.
2000여 년 전 호수에서 고기 잡는 배가 크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니까 2m가 넘는 파도는 작은 배들을 뒤집어엎을 만큼의 큰 파도였습니다.
 
하필, 그 날밤 제자들이 호수를 건너던 때 풍랑이 일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 중에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 잡으며 잔뼈가 굵은 어부 출신이 여러 명이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탄 배였지만 풍랑 속에서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24절).
갈릴리 호수를 잘 아는 어부 출신들도 어쩌지 못할 만큼 심한 풍랑이었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자기들이 가고 싶어 '가게 해달라'고 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재촉하여 가라고 명령하셔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명령대로 가는 길인데 풍랑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가는 길인데 고난 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에 맡긴 삶, 주님의 것이 되어 버린 삶,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아도… 때로는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풍랑을 만납니다.
바르게만 살고, 남에게 피해 안주고,
주일 성수하고, 십일조 철저히 하고,
평안을 깬 적 없이 어디서나 화평케 하는 자 되고, 봉사 잘하고,
목회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적도 없고… ,
그야말로 A급신자라 할지라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넘어집니다.
아플 수 있습니다. 아픕니다. 고통 당할 수 있습니다.
풍랑 만나고 눈물겨운 일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환란을 당할 때… ,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사람의 반응을 보면 신앙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르며... 달라서... 높으며... 높으니라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최선을 다하는데…
'왜 이런 일이 있을까?'
'왜 이런 일을 겪을까?' 하며 탄식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버리셨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냥 내 버려 두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향해 항변합니다.
"하나님,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왜 내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9)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우리의 뜻을 구한다 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눅22:42)
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을 먼저 보내고 산에 혼자 머물며 기도하시던 예수님은(23절)
고난 당하는 제자들의 상황을 다 아셨습니다.
얼마나 위태롭게 여기셨으면 사경에(四更, The fourth watch of the night -
        로마식 시간구분 방법인데 우리시간으로는 새벽 3시에서 6시까지의 시간이다)
예수님은 호수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얼마나 급하게 여기셨으면…, 제자들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셨으면…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풍랑과 싸우면서 고난을 겪던 제자들이 놀랐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유령으로 알았습니다.
"It's a ghost."[유령이다]하며 무서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럴 만한 상황이기도 하지요.
그 밤중에 풍랑 치는 호수 위에서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으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알고 소리질렀겠습니까?
 
 
즉시... 두려워 말라...
 
그때 예수님이 즉시(immediately)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마14:27) 
  "Take courage! It is I. Don't be afraid." - NIV -
  "Be strong! It is I. Don't be afraid." - The Simple English Bible -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범사에 주님을 만날 때 안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평안할 수 있습니다.
풍랑은 여전해도 주님이 계심을 확신하면 안전합니다.
 
예수님은 풍랑은 생각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풍랑은 아직도 있습니다.
풍랑 속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두려워 말라"는 말씀은
풍랑이 멎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풍랑 속에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가 당하는 갖가지 풍랑 속에서…
파도를 밟고 찾아오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경제적 풍랑, 건강의 풍랑, 수재와 풍재의 풍랑…을 밟고 오십니다.
 
바다는 풍랑이 있습니다. 호수도 풍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풍랑은 계속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일어났다가 사라지듯이… 우리가 겪는 풍랑도 '잠시'라는 사실을 아시고
참고 이기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나를 구원하소서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하신 예수님이 배에 채 도착하시기도 전에,
배에 오르시기도 전에 베드로가 소리칩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마14:28)
베드로는 "두려워 말라"하는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시어든"(Lord, if it's you.)
'정말 예수님이시라면…'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렇게 의심 많은 베드로에게 "오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내려 예수님께로 걸어갑니다.
그런데 30절에 보니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갈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고 바람을 보았습니다.
바람으로 인해 흔들리는 것을 보았고 바람이 일으키는 물결을 보았습니다.
파도를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무서워졌고 물 속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바라보고 걷는다면
부딪히는 바람도, 흔들리는 풍랑도 이길 수 있습니다.
고난의 풍랑도 밟고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바람이 일으키는 풍랑을 보고 두려워한다면 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 속에 빠지게 되자 당황한 베드로가 뭐라고 했습니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14:30)
    "Lord, save me."
    "주님, 살려 주세요. 건져 주세요."
이 베드로의 호소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 모두가…
똑같이… 부르짖어야 할 기도입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여, 우리 가정을 구원하소서."
  "주여, 우리의 자녀를 구원하소서."
  "주여, 내 일터를 구원하소서."
  "주여, 이 민족을 구원하소서."
 
 
왜 의심하였느냐?
 
베드로가 구원을 호소하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즉시(immediately)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마14:31) 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져 들어간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눈을 돌렸습니다.
        바람이 만드는 흔들림을 보았고 바람이 만드는 파도를 보았습니다.
또 하나는, 의심했습니다. 믿지 않았습니다.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예수님만 바라보고 하십시다.
신앙생활하다보면, 살다 보면 흔들리는 것이 많습니다.
바람이 만드는 물결, 파도… 같은 것을 보고 
바람 타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믿고 갑시다.
주님께 맡기고 바람과 파도를 가르고 가십시다.
주님께 맡기고 파도, 풍랑을… 우리의 발로 밟고 가십시다.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면 빠집니다. 잠깁니다.
예수님 아닌 것 때문에 바람 타지 마세요.
사랑의 주님, 능력의 주님에 대해 의심 들기 시작하면 빠집니다.
 
그러나 연약한 우리는 어리석게도 바보처럼…
바람을 보고, 바람을 탈 수 있습니다.
바보처럼… 의심하여 믿음이 떨어져 고난의 수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살다 어려움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께 손 내밀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손잡아 주셔야 합니다.
돈이 손에 잡히고, 권세가 손에 잡혀도… 그것으론 안됩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손내밀기 전에
먼저 주님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십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베드로가 입으로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했겠습니까?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손을 내밀고…
우리도 손들고 해보십시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손 들고 찬양합니다.
♬ 주님여 이손을 꼭 잡고 가소서 ♬
  1.  주님여 이손을 꼭 잡고 가소서 /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2.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주님께 손내밀며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아 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세상에 손을 내밉니다.
오늘 <고신일목사>가 설교하지만…  <고신일목사>의 목소리를 통해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바다는 항상 움직입니다. 잔잔하지만은 않습니다. 바다에는 늘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흔들릴 수 있습니다. 파도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바람을 어떻게 맞는가!, 폭풍을 어떻게 견디는가!'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철저한 신뢰입니다. 철저하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히11:6).
크리스챤은 믿음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보는 책에는 글씨가 별로 없고 그림이 많이 있습니다.
왜지요? 봐야 배우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보는 책에는 그림이 거의 없습니다.
그림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여줘야 믿는다"는 믿음은 저급 신앙입니다.
바르게 믿고 수준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걸음을 정하시고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시고
바람을 그치게 하신 것을 본 배 위의 사람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마14:33) 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사람 중에 뛰어난 한 사람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라는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말해 줍니다.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예수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고…
      예수 믿음으로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범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야 합니다.
 
시편 37편 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시37:23) 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발걸음을 지켜 주십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고 했습니다.
지금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 애쓰고
하나님께 말씀대로 살면 결국 하나님께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도…, 주님 명하신 대로 가더라도…
풍랑 만나고, 고난 당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주 엎드러지지 않습니다. 일어납니다.
하나님 손에 잡힌 자라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 살면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아무리 눈물겨운 일을 당해도…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합니다"
잠언 24장 16절에 보면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잠24:16) 고 했습니다.
넘어지면 어떻습니까? 일어나면 됩니다. 일으켜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넘어져도 하나님 손에 붙들려 넘어졌느냐?
하나님의 손과 상관없이 넘어졌느냐? 가 중요한 것입니다.
 
고난당하십니까?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17)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했습니다.
이기신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레이놀드 그린(Raynold W. Green)이란 사람은
"인생 중에 가장 좋은 것들은 고난과 슬픔이라는 상자에 담겨 온다."고 했습니다.
(The very best things that happen in life are after wrapped in packages of difficulty or sorrow..)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들은
고난과 슬픔이라는 것으로 포장되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면서 고난과 슬픔의 풍랑이 다가오더라도… 참고 견뎌야 합니다.
여러분, 잘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 하루는 어떤 집에서 아들녀석이 누워 있는 아버지를 흔들며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 결혼하는데 돈이 얼마 들어?"
  아들의 질문에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글쎄, 사람마다 다 틀리겠지!" 그러자 아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아빤 엄마랑 결혼하는데 얼마 들었어?"
  그러자 아빠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습니다.
  "아직 알 수 없단다. 아직도 그 값을 계속 치르고 있으니까!"]
 
결혼하신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결혼하고 나니까 매일 매일 깨가 쏟아집니까? 매일 간지럽게 삽니까?
대부분의 집에서는 "내가 참으니까 살지, 내가 봐주니까 살지"할 것입니다.
여러분, 참는 사람이 있으니까 평안한 것입니다.
참는 사람이 있어서 화목하고, 참는 사람이 있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참지 못하면 이혼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평안과 행복도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참고 일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되는 것입니다.
값 없이 주어지는 평안이나 행복은… 없습니다.
그 값을 치루지 않으려니까 평안이 깨지고 가정이 깨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을… 의심하지 말고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고전15:58)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베드로가 들었던
"왜 의심하였느냐?"하는 책망의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합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일5:4)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바람 불고 풍랑이 일어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심하지 말고…
주님 바라보고 바람을 가르며 살고,
물결 치는 파도라도 파도를 밟고 사시기 바랍니다.
살다가 혹 빠질지라도 주님께 손내밀고 주님이 손잡아 주셔야 합니다.
믿음으로 주님께 손 내밀고, 바람을 가르고, 파도를 밟고 사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바람 부는 세상에 삽니다. 파도치는 세상에 삽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바람을 가르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파도를 밟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 없어 연약하여 때로 실족할 때가 있다 할지라도
정신을 차리고 주님을 향해 손 내밀고 건짐 받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왜 의심하였느냐?, 왜 의심하였느냐?"
책망 받는 불쌍한 자들 되지 않도록 연약한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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