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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회를 놓친 사람 / 히 12: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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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기회를 놓친 사람
< 본 문 > 히12:16~17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미국에 알래스카 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면적의 7배나 되는 큰 땅입니다. 그곳은 석유, 금광, 삼림 등의 자원이 매우 풍부합니다.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입니다. 그런데 이 땅은 본래 러시아의 영토였다고 합니다. 제정 러시아가 국토가 너무 커서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8년 동안 교섭을 벌인 끝에 1867년 미국에 매각한 것입니다. 그 당시 매각 금액이 720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 엄청난 가치와 비교하건대 껌 값도 안 되는 액수입니다. 당시 이 일을 성사시킨 러시아 공사는 쓸모없는 얼음 땅을 잘 처분했다고 황제로부터 큰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후일의 역사는 그 일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증거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로서는 생각하면 할수록 후회막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흘러간 역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은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 가운데 비일비재하게 재현됩니다. 사소한 것들 때문에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놓쳐버리는 우매한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도 보니까 그런 사람이 등장하죠. 에서입니다. 그는 이미 자기 손에 들어 있던 큰 축복과 영광의 기회를 놓쳐버린 사람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일이요 본인으로서는 두고두고 후회막심한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이런 어리석은 일이 결코 생기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에서의 이야기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축복과 영광의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회를 꼭 붙잡는 지혜로운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사람 : 에서

에서는 이삭의 쌍동 아들 중 장남입니다. 그 동생이 야곱이죠.
본문 16절은 에서에 관해 아주 간단히 설명합니다.
“ ... 한 그릇 식물을 위해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 ... ” 그 자세한 경위가 창25:27~32에 나옵니다.

에서는 동생 야곱과 아주 대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창25:27 “ ...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 ...” 에서는 사냥꾼으로 매일 들판을 누비며 살았습니다. 반면 야곱은 집안일을 돌보며 경건한 생활을 하며 살았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에서는 육신적인 사람이고, 야곱은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에서가 사냥 갔다가 허겁지겁 돌아옵니다. 몹시 허기지고 지쳐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우리 말로 팥죽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우리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죠. 적갈색 편두콩으로 끓인 진한 수프입니다. 그걸 본 에서는 빨리 한 그릇 달라고 졸라댑니다. 그러자 평소 형의 장자권을 부러워하던 야곱이 기회다 싶어 장자권을 팔라고 요청합니다.
창25:31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야곱은 장자권이 얼마나 좋은지 알았습니다.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본래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형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하는 교활한 인간입니다. 후에는 어머니 리브가와 아버지 이삭을 속여 축복 기도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의 이런 못된 점을 고치시려고 20년 이상 고난과 연단의 과정을 겪게 하십니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야곱은 믿음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영적인 눈이 떠집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분별력이 생깁니다.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정말 좋은 게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반면 에서는 믿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영적인 눈이 떠지질 않았습니다. 당연히 영적인 안목이 없고 올바른 가치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이 정말 좋은 것인지, 무엇인 정말 중요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쉽게 야곱의 요구에 응합니다. 창25:32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이것은 에서의 일생일대의 실수였습니다. 이로써 에서는 큰 기회를 놓치고 만 것입니다.


[2] 에서가 놓친 기회 : 장자권에 포함된 특권

그러면 에서가 놓친 기회는 무엇일까요? 당시 장자권은 여러 가지 특권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1) 가족을 통솔하는 가부장권
(2) 다른 형제보다 두 배의 재산을 상속하는 권리(신21:17)
(3) 영적 특권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가나안 땅, 믿음의 조상, 천국 소망)을 계승하는 권리 등입니다.

에서는 이 엄청난 특권들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린 것입니다. 팥죽이 그의 식도를 통해 내려가는 순간 장자권에 포함된 모든 특권들도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그는 결국 이 땅의 축복도 내세의 영생도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만회의 기회조차 잃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야곱이 아버지에게 축복기도까지 받고 나서 그제서야 자기도 축복해 달라고 야곱에게 애걸복걸합니다.

창27:34 “에서가 그 아비의 말을 듣고 방성대곡하며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창27:38 “에서가 아비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의 빌 복이 이 하나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 이전에 돌이켰다면 혹시 만회가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아무리 후회해 봐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의 안타까운 모습을 본문 17절은 뭐라고 묘사합니까?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의 기업을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결국 에서는 그 후 어떻게 됩니까? 이삭의 예언을 통해 잘 나타납니다.

창27:39~40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 ”

한 곳에 정착해서 농사지으며 편하게 살지 못하고 유랑 민족으로 척박한 땅을 유리방황하면서 호전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이 역사 속에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섬기는 일도 생깁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모든 육적, 영적 축복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소탐대실’(小貪大失)입니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다가 정말 크고 소중한 것을 놓쳐버렸습니다. 그는 순간의 쾌락을 위해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눈 앞의 적은 물질의 이익을 위해 신령한 은혜를 놓쳐버렸습니다.

성경 보면 에서와 같은 어리석인 인물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에게 주신 반면 교사들입니다.

예> 롯 - 세상의 물질과 향락을 찾아 소돔성에 갔던 롯 ... 오히려 자기 모든 것을 잃고 망하게 됩니다. 죄악의 도성 소돔에 유황불 심판이 내려질 때 재산도 명예도, 가족도 ... 겨우 목숨만 건지게 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더라면 그 역시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올랐을 텐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예> 아간 -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전리푸에 손을 대지 말도록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탐이 나서 시날産 외투 한 벌과 금 덩어리와 은 덩어리를 장막 밑에 숨겨둡니다. 나중에 들통이 나고 그 결과 자기 자신과 가족들 전체가 아골 골짜기에 끌려가 불에 태워져 처형됩니다. 그까짓 물질 때문에 일족이 멸망을 당한 큰 비극입니다.

예> 게하시 - 엘리사 선지자에게 아람의 나아만 장군이 찾아왔다가 요단 강물에 일곱 번 목욕한 후 문둥병에서 깨끗하게 고침을 받게 됩니다. 감격한 나아만은 선지자에게 사례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거절합니다. 돌아가던 나아만 일행의 뒤를 따라간 게하시는 물품을 요구하여 가로챕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엘리사가 저주함으로 게하시는 문둥병자가 되고 맙니다.

예> 데마 - 바울의 측근이었던 데마는 고난과 핍박 외에 세속적인 기준으로 아무런 소득이 없자 실망한 나머지 바울 곁을 떠납니다. 만일 그가 바울과 함께 계속 고난에 동참했었더라면 하늘나라의 큰 영광을 공유했을 텐데 말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바울은 만년에 그를 추억하며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합니다.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

성경은 이렇게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경고합니다.

빌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약5: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안타깝게도 오늘날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순간의 향락이나 몇 푼의 돈 때문에 정말 소중한 것들을 놓쳐버립니다. 범죄하고, 비리에 연루되고, 가정 파탄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살인과 자살까지 하고 ...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풍조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조차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번은 신문에서 대학 교수가 쓴 컬럼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대학의 수시 모집 면접에서 그 교수님이 학생에게 질문을 했답니다.
“학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랬더니
서슴없이 “돈입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예상치 못하던 대답이라 교수님이 오히려 당황해서 되물었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까?” 그랬더니
당당하게 “아뇨, 돈이 제일 중요합니다. 돈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요.”
물론 돈이 필요하지만 물질만능주의 사고에 빠진 그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한심합니다.
소탐대실의 인생을 살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3] 야곱이 얻은 기회 : 우리가 붙잡을 기회

우리는 정말로 중요한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 기회의 문에 열려있을 때 그래야 합니다. 야곱이 붙잡았던 장자권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영적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 자녀의 권세입니다. 그것은 다른 아무 조건도 필요없고 오직 믿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예수=구세주)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생각해 보십시오! 전능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산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 자녀의 권세에는 어떤 특권들이 포함되어 있을까요?

① 영생의 축복 :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온 천하보다 목숨이 더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26) 육신의 생명도 그럴진대 영혼의 생명은 얼마나 더 중요하겠습니까? 그것은 그 어느 것으로도 얻을 수 없고, 오직 나와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대속의 제물이 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 자녀요, 하나님 자녀에게 영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 로마의 우르반 대학의 설립자 필립 네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청년 시절 법대를 다니며 고학을 했습니다. 출세의 꿈을 안고 ... 이제 마지막 학기가 남았습니다. 그는 비누와 양초 등을 팔아서 마지막 등록금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느 집을 방문했는데, 노신사가 문을 열어줍니다. 서재로 안내하며 아주 칠절하게 대해줍니다. 식시까지 대접하면서 ... 부드러운 분위기 가운데 자연스레 대화가 이뤄졌습니다.
노신가가 질문합니다. “그래 졸업을 하면 무얼 할건가?" "예, 법관이 되어서 억울한일을 당한 사람들을 도울 생각입니다.”
“그래 좋은 일이군. 그러면 그 다음에는?”
“돈도 벌어야죠.”
“그 다음에는?”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해야죠.”
“그 다음에는?”
“저택도 구입해야겠죠.”
“그 다음에는?”
“여유가 생기면 자선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좋은 일이군. 그 다음에는?”
“세계 일주를 하고 싶습니다.”
“그 다음에는?” 노신사의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나중에는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결국 청년의 입에서 “그 다음에는 늙겠죠.”
그러자 노신사가 결정적인 질문을 합니다.
“그 다음에는?”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죽음이란 단어를 입 밖으로 감히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청년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립니다. 그때 등 뒤에서 외치는 노신사의 음성 ...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야! 그리고 천국의 영생, 아니면 지옥의 영벌이야!”
그날 밤 혼자서 고민하던 청년은 마침내 예수님을 영접하고 착실한 신자가 됩니다.
그 후 신학을 공부하고, 대학 설립자가 되어 신앙으로 후진을 양성하는 생애를 보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 저것 다 중요하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영생입니다. 그것은 놓치면 모든 것을 잃고 맙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믿음으로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얻어 영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② 인생의 승리 : 하나님 자녀들이 이 세상 살면서 누리는 특권은 승리의 축복입니다. 때때로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괜찮습니다.
왜 그런가요?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그렇죠.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는데 다른 어떤 것을 아까시겠습니까? 혹시 고난이 있다면 더 큰 유익을 위해 허락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 또 이렇게 당당히 선언합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여러분, 고난이 와도 겁내지 맙시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고난은 더 큰 축복과 승리로 가는 디딤돌이지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이 아닙니다. 이것이 하나님 자녀의 또 한 가지 중요한 특권입니다.


③ 하늘의 영광 : 사람들이 먹고 살만하면 그 다음에 생기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명예욕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명예는 금세 사라지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말 우리가 귀히 여기고 힘써 추구할 것은 하늘 나라에서 얻을 영광과 상급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심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굳굳하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얻을 하늘의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딤후4:7~8)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한번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앞으로 100년 후를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중 누구도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때도, 아니 영원토록 남아 있는 것은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니므이 평가입니다. 하늘의 상입니다. 그러므로 세사으이 반짝 인기와 영예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의 영광과 상을 위해 수고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 모든 특권을 그저 알기만 하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당장 믿음을 결단하고, 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일은 내 시간이 아닙니다. 오직 지금이 나의 시간이요 기회입니다.

고후6:2 “ ...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항상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알고 있을지라도 뒤로 미루기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회를 다 놓쳐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더 어리석고 억울한 일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죠. 인생의 미지막 순간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고 ... 그리고 지옥에서 d행하는 말이 있다고 ...
그것은 다름 아닌 “ ~할걸”이란 말입니다. 그때 가서 아무리 껄, 껄 해 봤자 후회막심할 뿐입니다.

우리 인생은 카운트 다운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고속 도로를 달랄 때 표지판이 나타나죠. 부산까지 XXX km, 광주까지 XXX km ...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남은 날이 XX년 ...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게 잇습니더 도로 표지판에 표시된 남은 거리는 정확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남은 기간은 단지 예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당장이라도 가야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만이 내가 스스로 컨트럴할 수 있는 ‘나의 시간’이요 ‘나의 기회’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두고 두고 감사하고 뿌듯한 인생입니까? 아니면 두고 두고 후회막심한 인생입니까? 어느 쪽이든 그것은 오늘 나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에서처럼 육신적이고 현세적이고 순간적인 욕망에 마음을 빼앗겨 좋은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 삶을 살지 맙시다. 우리는 비록 야곱처럼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라도 믿음의 눈을 떠서 주어진 좋은 기회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부디 영원한 생명과 축복과 하늘의 영광을 차지하는 인생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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