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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음을 아름답게 하라 (창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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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아름답게 하라(창 50;1-3)

지난 16일 유명한 사람 한 명이 죽었습니다.
아프리카 최대의 독재자 이미 아민(Idi Amin)이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마귀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조국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살지 못 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망명하여 살다가 죽어 고국으로 시신이 돌아가지 못 하고 그 곳에 묻혔습니다.
우간다는 밀톤 오보테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싱가포르를 방문하고 있을 때 그는 구데타를 일으켰습니다. 1971년 1월이었습니다. 아민은 군인이었고 프로 권투 선수였습니다. 1946년 군대에 입대하여 1962년 참모총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51년부터 1960년까지 우간다 헤비급 권투 챔피언으로 있었습니다. 아민은 스스로 자칭 <빅 대디>(Big Daddy)라고 불렀습니다. <아프리카의 순수한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정권을 잡자 말자 오보테 측의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8년 동안 통치하면서 그가 죽인 정적이 최소 30만명에서 최고 50만명이 됩니다.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조금만 그 쪽과 관계가 있으면 죽여 버렸습니다.

정적 시체를 잔인하게 다루었습니다. 예를 들면 호수에 악어밥으로 주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자기 아내도 토막 살인하였습니다. 가장 정적이라고 생각하면 목을 베어 자기 방 냉장고에 넣고 만족한 웃음을 띠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한번은 꿈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꿈에 신이 내게 나타나서 아프리카를 흑인의 나라로 만들라고 하셨다. 동양계, 백인계는 다 나가라>
모두 추방하였습니다. 상권을 장악하던 그들을 몰아 내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제를 파탄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아민의 정치는 한 마디로 공포 정치였습니다. 조금만 마음에 안 들면 죽였습니다. 그의 공포 정치는 오래 가지 못 하였습니다. 1979년 8년만에 축출당함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5명의 부인, 50명 자녀를 데리고 리비아, 이라크 등을 전전하였습니다. 약 70 정도가 유랑생활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독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돈이 많아 아코디언 연주, 낚시질로 호화스럽게 살다가 지난 7월 18일 고혈압, 신장병으로 입원하였습니다. 8월 16일 죽었습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우간다에 전해지자 온 백성이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였습니다. 축제를 벌였습니다. 우간다 정부의 공식 성명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민의 죽음은 좋은 일이다. 그의 죽음과 장례는 나쁜 과거의 종말을 의미한다. 잘 죽었다>

그러나 여기 반대되는 죽음이 있습니다.
야곱이 70명의 식구를 데리고 가나안에서 애급으로 와서 피난살이를 하였습니다. 본문은 야곱이 죽는 장면입니다. 야곱이 죽자 너무나 귀하게 그를 여겼다는 증거를 몇 가지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요셉이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를 넣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창50;1-3)

1. 몸을 미이라로 만들었습니다.
미이라로 만들었다는 것은 최고 대우입니다. 모 택동이 미이라로 되어 있습니다. 스타린, 김 일성도 미이라로 되어 있습니다. 최고로 여기는 자세입니다. 애급 사람들은 나그네인 야곱을 최고로 대우하여 주었습니다.

2. 향 재료를 야곱 몸에 넣는 데 40일 걸렸습니다.
미이라로 만들었다는 것도 최고의 존경이지만 40일간 향재료를 넣었다는 것은 엄청난 대우를 한 것입니다. 야곱의 몸을 신처럼 취급하였다는 증거입니다.

3. 70일 동안 애곡하였습니다.
3일장을 지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70일 장을 지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장례 중에 최고 긴 장례입니다. 3일장을 지내고도 지치는 데 감히 10주동안 장례를 지냈습니다.
아민처럼 죽으면 박수를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처럼 온 국민이 70일동안 애곡하는 죽음도 있습니다. 너무나 대조적인 죽음의 모습을 우리는 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그 심판은 하나님 심판대에서 받는 심판입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사람들의 심판도 있습니다.
태어날 때보다 죽을 때가 중요합니다. 어디서 태어나느냐고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는 더 중요합니다. 태어날 때는 여기 저기에서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러나 죽을 때에는 대통령이 죽습니다. 군인이 죽습니다. 운동선수가 죽습니다. 목사가 죽습니다. 태어날 때는 모두 아이가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다 다르게 죽습니다.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슬퍼하고 애도하는 야곱과 같은 죽음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자식을 잘 길렀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죽었을 때 미이라로 만들고, 40일 동안 향을 넣고, 70 일동안 애급 백성들이 애곡한 것은 아들 요셉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애급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이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어 애급을 당시 최고 부강국가로 만들었습니다.

히딩크는 우리 축구를 세계 4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온 국민이 환호하였습니다. 히딩크 고향 네델란드까지 난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최고 대우를 하여 주었습니다. 명예 한국인입니다. 칼기는 죽기까지 칼기를 탈 때에는 무료입니다. 각종 혜택이 주어졌습니다. 만일 그 때 히딩키 감독 아버지가 우리나라에서 죽었다면 굉장한 장례를 치루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7년 풍년이 계속 될 때에 앞으로 7년 흉년이 올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7년 풍년에 곡식들을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선각자의 시계는 5분 정도가 빠릅니다. 만일 무슨 일이든지 5분후만 알 수 있어도 놀라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7년을 알고 대비하였습니다. 애급 주변 다른 나라는 모두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애급으로 양식을 사러 오는 일이 생겼습니다. 애급 한 나라만 당당하였습니다. 애급의 자존심을 온 세상에 당당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정치를 잘 한 요셉의 인기는 지상 최대였습니다. 그 때 아버지 야곱이 죽으니까 온 애급이 70일을 애곡하였습니다.

아들을 잘 두었기 때문에 죽음이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의미심장한 말이 있습니다.
<정승이 죽으면 사람이 없어도,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사람이 많이 온다>
자식을 잘 기르면 죽음이 아름답습니다.


2. 기도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도하다가 다리를 절게 된 사람은 야곱 한 사람뿐입니다. 야곱이 얍복강 가에 기도할 때였습니다. 천사가 앞에 나타났습니다. 야곱은 천사를 붙들고 밤새 씨름을 하였습니다. 야곱은 천사를 결사적으로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천사는 견디다 못 하여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뼈가 어긋났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천사를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2;26)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이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그리고 야곱을 축복하였습니다. 그 후 야곱은 축복을 더 받았습니다. 그 후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성경은 우리에게 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창32;31)
야곱은 기도하다가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 몸의 변화

기도하다가 평생 다리를 절었습니다. 애급에서도 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애급이 다리를 절룩거릴 때마다
<기도하다가 저렇게 되었지>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몸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2) 이름의 변화

야곱은 기도하고 나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야곱이란 이름대신 이스라엘이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야곱을 그 후 이스라엘이라 부른 적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다 야곱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다가 죽을 때 쯤 되었을 때 이스라엘이라고 성경에 등장됩니다.

창세기 47장 29절에서야 비로서 <이스라엘의 죽을 기한이 가까우매>라고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야곱이 죽자 요셉의 명령으로 야곱의 시신을 맡은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야곱은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야곱은 죽을 때쯤되어 기도할 때 받은 이름을 찾고 있습니다. 기도하던 순간을 뚜렷하게 기도하고 죽는 모습을 확실히 볼 수가 있습니다. 평생 기도하였던 흔적은 죽기 직전까지 효과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하며 살았기에 야곱의 죽음은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죽음이었습니다.
나는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레 런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웨슬레가 기도하던 마루는 파져 있었습니다. 무릎 자국이었습니다. 그 자리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후 우리 지방 목사님들이 영국을 가게 되었을 때 나는 감리교 목사는 감리교 탄생 자리를 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마침 휴일이라 못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나는 담당자를 조용히 설득시켰습니다. 그래서 그 방까지 몇 명이 가본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요한 웨슬레가 죽었을 때 너무나 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 걱정이 되어서 새벽에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기도 많이 한 사람들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들어 주십니다.
야곱이 죽을 때 기도하다가 받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찾고 죽는 모습은 우리에게 주는 것이 많습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찬송가를 지은 남궁 억 장로님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는 죽을 때 내 시체를 과일나무 밑에 파묻으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기도하던 자리를 가보았습니다. 산기슭이었습니다. 온 동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이 남궁 억 장로님이 기도하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앉으면 온 동네가 다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늘 기도하던 장로님이 죽자 온 나라가 떠들썩하였습니다.
평생을 기도하다가 세상을 떠나면 아름다운 죽음이 됩니다.


3. 사랑하며 죽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사랑하며 죽는 사람을 사람들은 몹시 사랑합니다. 야곱은 죽으면서 세 가지를 사랑하였습니다.

(1) 자식 사랑
야곱은 죽기 직전에 12 명 아들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그리고 일일이 축복기도를 하여 주고 죽었습니다. 야곱이 축복한 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곱의 축복기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2) 조상 사랑
야곱은 죽으면서 요셉에게 이렇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선영에 장사하라>(창47;30)

조상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 옆에 눕고 싶어 하였습니다. 조상을 그리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요셉은 그 유언을 이루어 드리는 데 거창하게 이루어 드리는 장면이 성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70일 곡하기를 마치자 요셉이 바로왕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창50;4-5)
바로왕은 이 말을 듣고 어린아이들과 재산을 두고 떠나게 하였습니다. 요셉이 안 돌아오면 큰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야곱의 시체를 모시고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그 때 따른 장례 행렬은 역사상 없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거창한 행렬이었습니다.
바로의 모든 신하가 따라갔습니다(창50;7)
바로궁의 모든 장로들이 따라 갔습니다(창50;7)
애급 땅의 모든 장로들이 다 따라 갔습니다(창50;7)
병거, 기병이 따라 갔는 데 <심히 컸더라>(창50;9) 라고 하였습니다. 군대가 동원되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장례였습니까?

(3) 나라 사랑
야곱은 아무리 아들이 국무총리라 할 지라도 앞으로 자기 나라가 될 땅에 묻히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자기를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식을 사랑하고, 조상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한 야곱의 죽음은 아름다운 죽음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사랑하고 죽는 죽음은 아름다운 죽음이 됩니다.


4. 믿음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죽으면서 자기 몸을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고 죽었습니다. 그 진정한 이유가 무엇이었을 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갈데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예언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창15;13-16)

야곱은 400년이 지나면 자기 자손들이 이 땅에서 나갈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400년 후에 나간다는 것은 까막득한 미래입니다. 이제 겨우 17년 지났습니다. 야곱이 130살에 애급에 와서 147세에 지금 죽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약 400년 후에 이 땅에서 나갈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 때가 되면 후손들이 자기를 모를 것입니다. 자기 산소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니 미리 그 땅에 가서 묻혀 있겠다고 하는 야곱의 믿음은 놀라운 믿음입니다. 이런 죽음은 아름다운 죽음입니다.

야곱은 할아버지에게 주신 약속만 믿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하나님이 직접 주신 약속도 그대로 믿었기에 이런 유언을 한 것입니다. 형을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기도를 빼앗았다고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하였습니다. 벧엘까지 도망왔을 때 해가 졌습니다. 돌을 베개하고 누웠습니다. 그 때 사닥다리가 놓여졌습니다.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3-15)

가나안 땅을 자손에게 주신다고 하신 말씀을 야곱은 확실히 믿었습니다. 지금 애급에서 살고 있지만 이 땅은 영원한 땅이 아니라 임시 살고 있는 땅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살고 있는 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갈 땅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는 큰 믿음입니다. 먼 믿음입니다. 말씀을 믿고, 약속을 따르는 확실한 믿음입니다.
할아버지에게 주신 말씀, 자기에게 직접 주신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었기에 야곱은 그런 결단을 내리고 그렇게 유언하였습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야곱의 유언은 바른 유언이었습니다. 찬양받을 만한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죽어간 야곱의 죽은 그토록 빛나는 죽음이 되었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심리학자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수용소에 잡혀 있었습니다. 나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독일 다카호 수용소를 가 본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 끌려 오면 말합니다.
<너희들이 나갈 길이 하나 있다. 화장터의 연기가 되어 굴뚝으로 나가는 길 밖에 없다. 충성만 하라>
그런 곳에서 살아난 사람이 빅터 프랭클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치 수용소의 말할 수 없이 잔혹한 고문과 무서운 형벌, 비인간적인 학대 속에서 나를 생존하게 만든 것은 바로 소망 하나였다>
그는 나치의 끔찍한 고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무서운 고문의 시대가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 수용소에서 나가 내가 붙잡은 이 삶의 소망을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말해주겠다>
그는 끝까지 믿음으로 견뎠습니다. 드디어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는 후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삶에 대한 소망의 의미를 말하는 위대한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서 하루에 36명꼴로 자살하고 있습니다. 가난. 생활고와 실직, 학업성적, 사랑 실패를 비관하여 스스로 생명을 끊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꼭 두 가지 소망과 믿음입니다. 내일 더 잘 될 것이라는 소망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시도로만이 소망과 믿음을 줄 수 있습니다. 야곱은 400년 후에 일어날 일을 지금 믿으며 죽었습니다. 그렇기에 야곱의 죽음은 별처럼 빛나는 죽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의 죽음은 진정 성경 최고의 죽음이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죽음이었습니다. 어떻게 하고 죽으면 그렇게 아름다운 죽음이 될까요?
1. 자식을 잘 길렀기 때문입니다.
2. 기도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3. 사랑하며 죽었기 때문입니다.
4. 믿음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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