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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전 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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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전3:1-15
제목 :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그것은 끊임없는 반복입니다.

때가 되면 봄이 가고 여름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이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도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은 때가 있습니다. 또 수레바퀴를 보면 수레바퀴 살대가 때로는 맨꼭대기에 올라가는 때가 있고 때로는 가장 아래로 오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행복이 있을때가 있지만 고난의 때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즐거울때 행복할때가 아니라 어려울때 고난의 때가 문제가 됩니다. 남들은 모두 잘 사는 것같고 나만 불행에 빠진 것같은 현실을 맞이할때가 있습니다. 캄캄한 터널을 통과하는 것같이 앞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절망스러웁고 미래가 너무 어두워보일때가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는 삶의 고난의 상황에서 목숨을 끊는 자살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사회에서 한시간당 1.5명꼴로 자살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남여노소가 따로 없습니다. 젊은 사람 늙은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물론 자살을 하는 가장 주된 외적이유는 돈문제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돈이 없다고 모두가 자살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있어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현실을 바라볼때 당면한 삶의 현실이 100% 만족한 사람이 있습니까?
현재의 우리들의 삶에 만족해서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우리는 삶이 100% 만족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가 삶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지금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오늘 본문 솔로몬이 지은 전도서에서 저자 솔로몬은 우리에게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삶의 환경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삶의 지혜는 동일하게 필요하고 요구됩니다. 어두운 현실,힘든 현실,고난의 현실이 내 앞에 있습니까? 과연 어떻게 이겨내어야 합니까?

1. 지금 현재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9-10절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여기 본문에서 솔로몬은 일하는 자 즉 인생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때의 수고와 노고는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애쓰고 힘쓰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이 현재에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다고 할지라도 그 일은 우연히 벌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간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다양한 때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인생들에게 일어나는 갖가지 삶의 정황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여기 솔로몬은 2절이하에 서 인생의 여러 때를 설명하고 있습니다.인생에서 일어나는 이때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상황입니다. 솔로몬때나 지금때나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인생은 날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심을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습니다. 죽일때가 있고 치료시킬때가 있습니다. 헐때가 있고 세울때가 있습니다. 울때가 있고 웃을때가 있습니다. 슬퍼할때가 있고 춤출때가 있습니다. 돌을 던져버릴때가 있고 돌을 거둘때가 있습니다.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때가 있습니다. 찾을 때가 있고 잃을때가 있습니다. 지킬때가 있고 버릴때가 있습니다.찢을때가 있고 꿰멜때가 있습니다. 잠잠할때가 있고 말할때가 있습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전쟁할때가 있고 평화할때가 있습니다.

여기 인생의 이런 때를 내가 임의적으로 주장할 수 없습니다. 전쟁과 평화가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과 미움이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할수만 있다면 죽고 싶지 않고 슬퍼하거나 미워하거나 전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도 우리 중에 인생을 통제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는 상황이 어떤 때의 상황이든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가 무엇일까요? 금언 중에서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금언은 ‘오늘’이라는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다하겠다는 뜻입니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라도 오늘이라는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살아서는 안됩니다. 때로 나이가 들어가면 너무 ‘과거’에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뒤에 있는 과거는 잊어버려야 합니다. 또 어떤 경우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에 너무 집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미래에 빠지면 결국 현실도피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이라고 하는 현실이 비로 힘이 들고 어려운 때일지라도 오늘이라는 현실에 최선을 다해서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솔로몬은 어떤 사람입니까?
지혜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혜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받은 지혜가 솔로몬의 삶을 풍성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받은 지혜는 과거를 위한 것도 아니고 미래를 위한 것도 아니고 바로 솔로몬의 현재를 위한 축복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정치를 하던 현실세상 또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시도 하고 미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의 현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볼때 젊을 때가 있고 늙을때가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 다닐때에 빨리 내가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었을때 공부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많은 젊은 사람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빨리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을때가 있습니다. 또 이미 나이가 든 입장의 어른들은 10년만 젊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보다 더 새로운 나를 준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나이가 들었는데 젊어보이기 위해서 이상한 옷차림과 머리를 하는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서 젊으면 젊은이답게 살아야 합니다. 늙으면 늙은모습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내 인생에 지금 고난이 올때 고난을 맞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고난이 오는데 자꾸 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고난을 맞이하면 그 고난은 이미 고난이 아닙니다. 어떤 고난이 오고 어떤 문제가 오더라도 이것은 내가 현재에 맞이할 것이라고 한다면 최선을 다하는 고난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나는 그 고난이 힘이 들고 나에게 너무 어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감당할 만한 삶을 허락하십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에 믿음의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인본주의적 최선을 다하는 것이 신본주의적인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믿음버리고 최선을 다하는 삶은 결국 후회가 남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현재의 삶은 축복의 미래를 낳습니다.

현재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의 주된 특징이 무엇입니까?
정직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현재에 잘못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너무 거짓말을 밥먹듯이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현재를 어떻게 하든지 모면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럴듯하게 말을 하면서 속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런 헛된 지혜로 속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정직하게 현재를 살아야 합니다.학생은 학생으로서 정직해야 합니다. 시험칠때 남의 답을 커닝해서는 안됩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국산품인지 수입품인지 정직하게 팔아야 합니다. 공무원은 정직하게 세금을 거두고 법을 집행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왜 정직하게 현재를 살아가기가 어렵습니까? 고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일화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안의사 집안이 뼈대 있는 집안이었습니다.그의 아버지가 매우 아끼던 벼루가 하나 있었습니다. 평소 ‘건드리지 마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아끼던 벼루였습니다. 소년 안중근은 붓글씨 쓰기를 좋아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의 좋은 벼루로 먹을 갈아쓰다가 그만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안의사의 몸종이 ‘도련님 도련님 이거제가 그랬다고 아뢰십시오. 저는 맞는데 이골이 난 사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안중근이 ’아니다‘면서 아버지에게 솔직히 이야기합니다.’아버지 제가 손대지 말라고 한 벼루에 손을 댔다가 깨뜨렸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안중근 의사가 솔직하게 아버지에게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호되게 맞았습니다.
종아리가 피범벅이 된 안중근 의사를 종이 찾아와서 말을 했습니다. “도련님 왜 사실대로 말씀드려서 그렇게 맞습니까? 제가 그랬다고 하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 것을 말입니다”라고 하자 안중근 의사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아프지만 마음은 편하다”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은 비록 몸이 힘이들고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편합니다.


2. 영원을 사모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11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현재의 시간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들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되 그 마음의 초점은 영원이어야 합니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현실의 불만족은 영원을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현실을 영원 속에서 바라볼때에는 잠깐의 경점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시면서 인간의모든 삶을 주관하신다면 지금이라고 하는 현실 속에서 발생한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나간 과거시간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현실에서는 고난이 지나고 나면 우리에게 많은 유익이 된 경우가 있습니다. 또 반대로 현실에서 축복이라고 했던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행복한 현재는 어떤 현재입니까?
물질을 많이 얻은 현재가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에 정몽헌 현대회장이 자살하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또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죽음으로 인해서 다른 것은 몰라도 분명하게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물질 자체가 현재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명예가 권세가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솔로몬은 해아래 가장 많은 부와 명예와 권세를 소유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국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짦은 인생동안 쓰는 돈이 주는 기쁨 명예가 주는 쾌락 권세가 주는 쾌락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마음 깊은 곳까지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인데 역사에서 대개 자식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모들이 물려준 재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벌어서 얻은 것들은 귀하게 여기지만 물려받거나 공짜로 얻은 것들은 헛되게 사용됩니다.그리고 마음까지도 망가지게 됩니다. 교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현재라고 하는 삶에 인생의 행복은 그 마음에 영원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하듯이 학생들에게 교사가 필요하듯이 우리 인생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누가 하나님을 찾고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인생에서 자기 한계를 경험하고 난 뒤입니다.나라고 하는 우상이 항복해야 비로서 하나님이 보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복이 됩니다. 고난 속에서 영원을 보게 된다면 그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오늘이라고 하는 현재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전도서 12장 1절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행복한 사람이신 것을 믿습니까? 내 몸과 마음이 영원을 사모할 때 이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면서 얻는 기쁨은 본능적으로 얻은 것과는 질적으로 근본이 다른 종류의 복입니다.

이 복을 빨리 찾는 사람이 지혜자입니다.그래서 전도서 기자인 솔로몬은 젊었을때에 이 복을 찾으라고 권면합니다.전도서12:1에 “너는 청년의 때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 무낙이 없다고 할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을 기억하여 경외하라고 합니까?
그것은 바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행복이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참된 기쁨이 오직 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만족이 오직 주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교회 교인중에 부도가 나서 극심한 물질의 어려움을 만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분에게 그렇게 말을 합니다. “세상 복은 잃었지만 진짜 복을 얻으셨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본문의 솔로몬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그는 본래 믿음이 좋았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변질되어 많은 돈과 큰 명예와 높은 권세를 소유하고 그것으로 세상의 행복을 구했습니다. 수많은 여자들을 탐하고 육체의 기쁨을 좇았습니다. 이것은 솔로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처음 믿을때이거나 고난의 때에는 오직 영원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점점 변질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꾸 세상을 따라가고 육체를 따라가고 마귀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결국 말년에 솔몬이 무엇을 후회합니까? 영원의 복을 잃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2박 3일동안 서울에를 다녀왔습니다.
전에 학교를 다닐 때에는 항상 다니던 길따라 갔다가 길따라 돌아오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 비터뷰도 하고 나머지 시간을 이용해서 서울관광을 했습니다. 그래서 온가족이 차를 타고 서울에서 가장 부자동네라고 하는 강남일대를 돌아다녀보았습니다.

그리고 부자들이 애용하는 고급백화점에도 들어가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었습니다. 얼마나 멋있고 화려하고 좋은지 참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순간 나 자신이 세상적으로는 참 초라하구나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나의 순간 나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것같았습니다. 어느정도 단련되고 다져진 목사의 마음도 세상이라고 하는 현재 속에서 때로는 갈등하고 표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유혹받다가 맛이 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죄가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합니까?
첫사람 하와가 범죄할때를 보십시오. 보는 것에서부터 죄가 옵니다. 선악과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6:22절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라고 합니다.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합니다.

여러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땅에 것을 생각지 말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치 말고 돌이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먼저 잘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영혼이 잘되면 육체가 잘되고 범사가 잘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3. 자족하면서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13-14절
여기 먹고 마시고 수고하고 낙을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현재의 모든 평범한 삶이든지 고난의 삶이든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입니다.
전도서3장 22절에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이는 그의 분복이라“고 합니다. 여기 어떤 일이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분복“이라고 합니다.
여기 보면 ‘분복’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어떤 일이든지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나의 복입니다.
모든 배후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우리의 직업과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 배후에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즐거움으로 하는 것이 현재를 사는 지혜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저희 아파트에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가 있습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해당되시는 분 같습니다. 그런데 매일 아파트를 청소하시는데 층층마다 쓸고 닦고 하시는데 얼마나 깨끗이 잘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보면 즐겁게 하십니다. 그것이 힘들고 어려울터인데 아주 자족하시면서 즐겁게 하십니다.

이번에 서울에 가서 햄버거집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는데 60대 이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게에서 일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웃으면서 열심히 일을 하시는지 보기가 좋았습니다. 만일 그 나이에 일을 하면서 “왜 내가 늙어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불평한다고 가정하여 보십시오. 감사가 사라지고 원망하게 되면 불행한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현재에 주어진 일을 자족하면서 감사하게 일을 하는 사람이 지혜자요 현재를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현실을 맞이하여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분복이라고 믿으면서 살 때 감사하여야 됩니다. 분복이라고 믿고 감사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분복으로 믿고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흑인 민권운동가인 마틴 루터킹목사님이 한번은 미국의 수도 워싱톤에서 길을 가다가 젊은 흑인 청소부 하나가 청소를 하다가 청소도구를 내팽개치고 욕을 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그 청소부곁에 조용히 가서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형제여 그대는 하나님이 그대에게 맡겨주신 지구의 한모퉁이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쓸고 있다고 자긍심을 가질 수 없겠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일이든지 자족하면서 감사해야 합니다.
요즘 3D 직종을 피하고자 합니다. 더러운 일(Dirty),위험한 일(Dangerous),어려운 일(Difficult)입니다. 그래서 외국 사람을 데려다가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을 분복으로 믿고 즐겁고 감사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에 기쁨을 갖고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는 노동을 예배라고 합니다. 우리가 즐겁게 예배하는 것처럼 무슨 일이든지 노동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무슨 일이든지 교회일이든,집안인이든 직장일이든 자족하면서 감사하게 일을 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오늘 이라고 하는 현재의 때가 어떤 지경에 있을지라도 최선을 다하면서 영원을 사모하는 가운데 자족하는 기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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