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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개발해야 합니다.(약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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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해야 합니다.(약 5:13~16) 

우리 중에 문제가 없는 분계십니까?
살아가노라면 여러 가지의 어려운 일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13절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또 14절에서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우리의 생활 속에는 너무나도 여러 가지의 고난이 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실패자로 방치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13절은 보세요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기도하라 병든 자가 있느냐? 믿음으로 기도하면 병든 자를 구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에이 에에이! 목사님!
저도 하나님께 구했는데요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구하면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못 받았을까요?
약 4:2-3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전기에서 휴즈가 끊어지게 되면 아무리 스위치를 켜도 모터는 돌아가질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아무리 하나님을 부르짖으면서 마치 바알과 앗세라처럼 제 몸을 찢고 상하게 할 찌라도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기 원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소경 바디매오를 기억하세요.
예수님께서는 두 눈을 뜨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내가 네 눈을 능히 뜨게 할 줄을 믿느냐?"
그 때 소경의 대답은 매우 단순했습니다.
"다같이! 주여! 믿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는 "매 믿음대로 되라"하셨고, 그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경의 눈은 뜨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묻습니다.
소망의 성도들이여!
모든 문제들이 해결 받기 원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다시 한번 아멘!
그렇다면 제일 먼저 바디매오 같은 확신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확신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확신을 상실하면 무슨 일에든지 위축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어진 기회마저도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나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가지면 확신을 가지면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엄청난 힘과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롬 1:17에서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산다"한 것입니다.
또 히 11장에서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기억하세요!
기도는 분명히 내가 내 소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기도는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어떤 문제든지 해결해 주신다는 이 확신! 이 믿음을 자꾸만 자꾸만 개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경은 두 눈이 떠지고 싶어서 예수님께 나왔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 소경의 마음과는 너무나도 다른 행동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 불러봐도 대답이 없어요!
예수님 불러봐도 대답이 없어요!
예수님 불러봐도 대답이 없어요!
예수님 불러봐도 대답이 없어요!
예수여! 나사렛 예수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

아무리 아무리 내 생각과 다를찌라도 소경은 절대로 예수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질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확신. 믿음의 모습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사람들을 살펴보세요.
예수님과 얼마나 얼마나 가까이 지내든지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 나의 목자라고 불렀습니다.
사도바울은 빌 4:19에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고 했고
다윗은 시 23장에서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는 십일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이 십일조는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을 측정하는데 매우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 3:10에서 "너희는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로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십일조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한다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앞다투어서 다 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왜 못합니까?
그들에겐 하나님의 축복이 그들의 10분의 1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믿으시면 아멘!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의 쓸 것을 왜 채우시지 못하겠습니까? 채우시고도 남을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주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낮에는 졸지도. 밤에는 주무시지도 않으십니다. 낮엔 해가 상치 못하며 밤엔 달이 해지 못하도록 세상 끝 날까지 지키시며 함께 해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마치 이복 아버지처럼 대하고 있단 말입니다. 주님은 물어 보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다같이!
하나님! 나의 하나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 확신을 개발해서 탕자까지도 끌어안아 주셨고 문제 해결사이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 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지난 한 주간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몇 시간이나 기도하셨습니까?
저는 목사이면서도 내 자신이 너무나도 무력한 존재임을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난 누나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지 만일 내 위의 사람이 형이었다면 난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을 쓸모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또 자신을 비참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무력한 사람. 불쌍하죠.
필요 없다는 사람 정말 불쌍하죠.

그러나 진짜 진짜 무섭고 불쌍한 것은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기도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까?
구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 기도입니다.
찾으면 찾을 수 있는 힘이 바로 기도입니다.
두들기면 열리게 하는 능력이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채워주는 것이 바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못하는 것처럼 비참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기도 안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은 참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며 의무이기도 합니다.

종교 개혁자 M. Luther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나는 나의 마음이 가장 평안하다"
약 6장에서는 "모든 성도를 위해 기도하라" 하였습니다.
제가 몸이 너무나도 아팠을 때에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어떤 분은 금식하면서 기도해 주신 분도 계십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담임목사님이 어려운 일을 당하시자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침대에서 자지 않고 맨 마루바닥에서 자면서 기도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저는 저를 위해 눈물로 애쓰며 기도해 주신 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분들의 기도는 저에게 힘이 솟구치게 하였습니다.
용기가 솟구쳐 났습니다.
한 교회를 개척해서 20년 넘도록 교회를 이끌 때
왜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왜 어렵고 힘든 일들이 없었겠어요?
그런데도 오늘 제가 여기에서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분들의 기도 때문이라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왜? 병든 사람에게 찾아가서 기도합니까?
기도하면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낙심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왜 기도합니까?
새로운 용기가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왜 상을 당하신 가정에 가서 기도합니까?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새 힘을 줍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매우 중요한 한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15절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아니죠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치료하리니"해야 문장의 내용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치료하리니"가 아니라 "구원하리니"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질병으로 시달릴 때 다 고쳐 주시진 않았습니다.
어떤 전도지를 보니까?
이 부흥회에 오면 "썩은 이가 금이빨로 바뀐다"하는 문구가 있더군요.
아마 그 교회엔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분이 계신가 봅니다.
아니에요!
하나님은 언제나 무슨 질병이든지 다 고치진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사도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없대 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했지만 가시는 그대로 나두셨습니다.
그러나 그 가시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 병을 가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병을 다 고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질병 때문에 우리가 좌절에 빠지거나 절망으로 쓰러지게 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그 연약함 때문에 우리를 더욱더 강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에게도 그 귀신을 내 쫓기 전에 그 아버지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강화된 믿음 위에 아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같이!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이 나갈 수 없느니라"
기도는 하나님과 그 뜻과 목적에 온전히 헌신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기도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기도는 믿음을 개발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특권이 있습니다.
기도는 누구든지 할 수 있고
기도는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소경도 기도로 주님께 나아갔습니다.
그 누구든지 기도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간음죄를 저질렀던 다윗은 기도의 무릎으로 하나님께 다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날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다 하나님께 나아가 위로를 받으며 새 힘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소망의 성도들이여!
믿음을 더욱 개발시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낮 예배에서 저녁예배로, 새벽기도에서 철야 금식으로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개발시켜 나아가십시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네 믿음대로 되라"는 응답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다가 내 문제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어려움까지도 해결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무더운 8월에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확신을 개발하십시다.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네 소원대로 되라는"주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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