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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짓이 없는 믿음 / 창 5:21-24, 딤후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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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거짓이 없는 믿음             
성경말씀: 창 5:21-24, 딤후 1:1-8       

사도 바울에게 가장 친근하고 귀중하고 사랑스러웠던 사람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였습니다. 디모데는 평생 바울을 위하여 협력자가 되고 동역자가 되고 후임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개척적인 사람이어서 한마을에서 전도하여 얼마쯤 기초가 잡히면 다른 지역으로 가는데 개척한 교회는 언제나 디모데가 맡아서 목회를 했습니다. 디모데는 내성적이고 조직적이고 행정적이고 지극히 목회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을 선교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디모데는 목회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바울이 외향적인 사람이라면 디모데는 내성적인 사람이고바울을 앞에선 사람이라 한다면 디모데는 뒤에서 바울을 돕는 중요한 임무를 감당했습니다.

오늘 읽은 디모데후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거침없이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피 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이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바울은 아버지요 디모데는 아이들이며 선교적으로 바울이 아버지요 디모데는 아들이고 목회적으로 바울이 아버지이고 디모데는 아들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무척 사랑했고 디모데도 바울을 사랑했습니다. 가장 고상하고 가장 높은 사랑이었습니다.

3절에 보면 바울이 기도하는 가운데 디모데를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기도 중에 생각하는 사람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할 때 생각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귀한 사랑은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마다 그 사람을 언제나 빼놓지 않고 항상 심지어 식사기도 할 때도 생각하고 기도하고 잠자리 기도할 때도 위하여 기도하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칼 바르트의 심리적 표현에 의하면 생각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워하는 것 자주 생각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은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사랑입니다. 마주 보면 행복합니다. 마주 볼 때 행복하면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 앞에서는 무슨 말이라도 다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 앞에서는 나의 비밀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진솔하게 말하게 됩니다. 마음이 열립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쉬지 않고 디모데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밤낮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디모데를 생각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잠시도 잊지 않습니다. 기도하려고 고개를 숙이면 언제나 디모데가 생각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기도할 때 생각나는 사람 기도할 때 마다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 기도할 때 마다 그 이름을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3절 끝에 하나님께 감사하고라고 했습니다. 디모데를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녀를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게 되어야 그게 사랑입니다. 하나님 저런 원수를 왜 저한테 보내주셨습니까 한다면 사랑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도 하나님 왜 하필 저 사람하고 만나서 이렇게 고생을 하게 하십니까 하게 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게 됩니다.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생각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그게 사랑입니다. 생각할 때마다 분하고 기도할 때 마다 한이 맺힌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감옥에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기도할 때 마다 그 이름을 기억하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4절 끝에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함이니 라고 했습니다. 요약해서 말하면 기도하고 감사하고 기쁨이 가득한 것이 사랑입니다.

5절 이는 너의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고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평가하기를 네 속에 있는 믿음은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은 진실한 믿음입니다.

진실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지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는 듯 하더니 없어 졌다면 그것은 거짓 믿음입니다. 그리고 사람 앞에 나타내려고 하는 믿음은 거짓 믿음입니다. 디모데의 믿음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믿음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정직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거짓 없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거짓이 없는 믿음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바르게 믿으면 진실되게 믿으면 순종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그 속에 진실한 믿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쉽게 순종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이 없는 믿음은 행동이 있는 믿음이고 열매가 있는 믿음이고 헌신이 있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 이하에 보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 즉 거짓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믿으면 행동이 따르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집에 있는데 누가 불이야 한다고 합시다 불이 낮다고 하는 그 소리를 믿는 사람은 밖으로  나갈 것이고 안믿는 사람은 안나갑니다. 그런데 믿고도 안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잘못된 사람입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는 믿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대로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행동하지 않을 수 없고 헌신하지 않을 수 없고 순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가리켜 참 귀한 믿음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오늘 읽은 창세기 5장21절에서 24절에 보면 에녹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는데 므두셀라는 969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22절에 보면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습니다. 24절에 보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에녹을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짧게 기록이 되었으나 에녹에 대한 전설은 많습니다. 그 중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에녹은 인류 중에서 가장 먼저 모피의 털과 기름을 뽑고 가죽을 부드럽게 하고 재단하고 바느질도 해서 옷도 만들고 신발을 만들었습니다.

에녹은 글을 쓰는 펜을 만들고 가죽을 가지고 종이를 만들어서 거기에 글을 쓰기도하고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기술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선하고 진실하고 의롭게 살았습니다. 당시에 점점 죄가 많아지고 죄가 가득하고 죄로 인하여 망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는데 그런 속에서 에녹은 깨끗하고 경건하고 진실하게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천사가 와서 에녹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너를 오라고 부르신다 그 때 에녹이 천사에게 말하기를 내가 세가지 소원을 말하려고 하는데 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말해보아라 첫째 소원은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줬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죽는다 죽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하고 좀 일 깨워 주고 싶습니다. 천사가 대답하기를 그렇게 해라.

두 번째 소원은 악한 사람들이 죽으면 얼마나 무서운 벌을 받는지 그것을 내가 지옥에 가서 보고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옥에 가서 보고 와서 죄를 지으면 이렇게 벌을 받는다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으니 지옥구경을 시켜주면 좋겠습니다. 세 번째 소원은 천국에 가봤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들은 천국에 가서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얼마나 영광스럽게 사는지 천국을 보고 세상에 왔으면 좋겠습니다 와서 세상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천사가 그렇게 해라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갔다 올수 있을찌 없을찌는 내가 잘 모른다 이제 가자고 해서 하나님 나라로 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에녹은 죽지 아니하고 하나님나라에 갔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 했다는 것 언제나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항상 하나님을 보는 듯이 살고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느끼면서 살고 죄악 세상에 살면서도 죄악에 물들지 않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지난 21일 목요일 신문에서 뜻 깊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병원에서 시어머니를 간병하는 한 며느리가 어느 날 시어머니의 소변을 받아 검사실에 갖고 가다 엎질렀습니다. 시어머니의 병은 소변 검사로 치료를 조절하는 병이었습니다. 핀잔을 듣기 싫은 며느리는 자기 소변을 받아서 검사실에 갖다 주었습니다. 얼마 후 의사가 시어머니에게 오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시어머니는 병이 나았다는 말로 알아듣고 좋아했습니다. 그 때 의사가 다시 말하기를 임신 하였습니다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기절했습니다. 며느리의 거짓이 탄로 나고 말았습니다. 거짓은 탄로 나기 마련입니다.

요즈음 새끼손가락만한 컴퓨터 칩 하나에 200권의 책이 들어가고 2000장의 사진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동안의 말과 행동을 바늘만한 칩에 다 기록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컴퓨터에는 개인의 일생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이 다 들어납니다. 거짓 믿음은 들어나고 맙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갖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짓을 싫어하시고 미워하시고 심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는 거짓이 통하지 않습니다.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완전히 거짓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에 진실함을 원하십니다. 거짓 믿음은 사실은 믿음이 아닙니다.

다음에 디모데의 믿음은 전통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5절에 이 믿음은 먼저 너의 외조모 로이스와 너의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너의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다고 했습니다.

디모데는 좋은 믿음의 유산을 이어 받았습니다. 가정적 전통을 가진 뿌리가 있는 믿음 혼자만의 믿음이 아니고 가족 전체가 믿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전통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모세는 자기 어머니 품에서 젖을 먹고 자랄 때 너는 유대 사람이고 너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어머니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후에 모세는 바로 왕의 궁전에 들어가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속에 유대 전통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신앙교육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떤 목사가 대학을 다닐 때 예수님을 믿었는데 그 전에는 세상적으로 살었습니다. 목사가 된 후에 가끔 포장마차 앞을 지나 갈때면 전에 가던 곳이라서 들어갈까 말까 들어갈까 말까 한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담배를 안 피우던 사람은 그런 일이 없지만 담배를 오랫동안 피우던 사람은 담배 끊기가 어렵고 또 끊고 10년이 넘고 20년이 넘어도 담배 냄새가 코에 들어오면 냄새 참 좋다 한대 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부터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나이 들어 믿었을지라도 예수님을 잘 믿고 자기 아들 자기 손자 다 어렸을 때부터 믿게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유명한 어머니입니다. 그는 예수 안 믿는 남편의 구원을 위해 16년 동안 기도하고 아들을 위해 30년을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예수 믿게 했고 아들을 성자가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이 말하기를 나의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의 젖과 함께 구주 예수의 이름을 마시고 자라나게 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젖도 먹게 하셨지만 구주 예수님의 이름을 먹게 해서 나를 키우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가 회심한 후 신앙에 깊이 들어간 다음에 한 말 가운데 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만약에 제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먼저 하나님의 자녀다운 어머니를 제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6절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안수했습니다. 믿음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안수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나의 안수함으로 너의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이 붙게 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안수 할 때 특별한 은사가 있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든 것 같습니다. 대체로 목사로 안수를 받든 장로로 안수를 받든지 집사로 권사로 안수를 받든지 안수 받을 때 감격하게 되고 눈물을 흘리게 되고 굳은 결심을 하게 됩니다.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끝까지 헌신하겠습니다. 굳게 굳게 다짐합니다. 그 때의 그 마음을 가지고 일생을 산다면 참으로 좋을 텐데 사람은 대체로 시간이 가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안수 받을 때의 그 은사를 다시 일어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감격 처음 헌신 처음 결단을 다시 일으켜서 철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기도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 이 편지를 쓴다는 말입니다.

다음에 7절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젊은이는 30만 명이었는데 아들과 남편을 일선에 보내 놓고 염녀와 불안과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은 미국에서만도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전혀 아픈데도 없는데 스스로 환자라고 단정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건강염녀증 환자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짐 길버트는 영국이 낳은 유명한 테니스 선수였습니다. 길버트가 5살때에 어머니를 따라 치과에 가서 치료 받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치료 받던 어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어린 길버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길버트는 자라서 유명한 테니스 선수가 되었으나 치과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런데 길버트가 치과 치료를 받아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는 치과에 가지 아니하고 치과 의사를 자기 집으로 오도록 해서 치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의사가 잡은 치료기가 입에 닿기가 무섭게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습니다. 두려움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고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능력의 마음이고 사랑의 마음이고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8절에 바울은 나를 부끄러워 말고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디모데가 아버지인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는 것을 생각하면 괴롭고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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