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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기뻐하라 (시 3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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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여호와를 기뻐하라
성경본문 시편 37:1-11

설교내용 

사람의 말은 경우에 맞는 말이 있고 맞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말인데도 경우에 맞지 않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신은 살아있는 부처입니다.” 이런 말은 좋은 경우에 하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아주 흐뭇해합니다. 그렇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좋은 일 하는데 와서 “당신은 살아있는 부처입니다”라고 하면 어울리지 않습니다. 99살 되신 할머니를 문병 가서 “할머니 100살까지 사세요” 하는 것은 안 맞습니다. ‘꼭 1년만 살다가 가세요’라는 말입니다. 대머리 신사를 보고 “참석해 주셔서 빛났습니다” 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출감하는 죄수를 보고 “꼭 다시 한번 들러 주세요” 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입니다.

  기쁨의 장애물을 버리라

  오늘 성경을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우리가 쉽게 성경을 읽지만 이 말의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여호와께 기쁨을 돌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걱정도 팔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불행은 습관의 문제다” 그러니까 걱정도 팔자다 라는 말은 습관하고도 관계가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 사람의 속성과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학자들이 ‘인식차단’이라는 실험을 이야기합니다. 구멍을 두 개 내어서 사람이 두 눈으로 안에 있는 그림을 보게 하는데 한 쪽은 아주 슬픈 표정을 한 사람의 그림과 한 쪽은 아주 기쁜 표정을 한 사람의 그림을 동시에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개를 동시에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식에 따라서 슬픈 감정을 가진 사람은 슬픈 그림이 잡힌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는 사람은 기쁜 그림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두 개가 같이 보이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기쁨이라는 영역과 슬픔이라는 영역, 부정적인 영역과 긍정적인 영역 이 두 가지가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개가 습관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하게 치우칠 뿐이라” 분을 그치라,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이런 말을 거듭거듭 합니다. 불평하고 투기하는 것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려면 우리 안에 있는 불평, 투기, 분, 노 이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대체로 고전음악을 하신 대가들은 다 신앙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서도 프란츠 요셉 하이든 같은 사람은 우리에게 좋은 간증을 들려줍니다. 이 사람은 백곡 이상의 심포니를, 80곡 이상의 소나타를, 또 거대한 두 개의 오라토리오를 남겼는데 하이든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작곡할 때 늘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리하면 내 마음에 기쁨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마치 악보에 음이 춤추는 것 같고 내 마음도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다시 말하면 곡이 좋아서 내가 기쁜 게 아니고 내 마음에 기쁨을 가지니까 좋은 곡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든의 음악이 기쁨을 표현한 것이 많습니다. 기쁨을 가지니까 악보가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인다는 이 하이든의 고백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대부분 사람이 기뻐하는 것은 결과로 얻어지는 것을 가지고 기뻐합니다. 이것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복권, 마권, 놀음 이런 것을 통해서 어떤 결과가 좋았다, 내가 횡재를 했다 하는 그 기쁨은 오래가지도 못하고 그 기쁨은 질적으로 불순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횡재한 돈을 관리할 수 있는 참된 기쁨이 그 사람 속에 본래부터 없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그 마음에 아주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횡재가 되면 그건 전부 불순한 도구로 쓰여지기 때문에 본인을 패망의 길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가 우리 사회에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결과에 매인 기쁨이 아니다

  4절에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바뀐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 안합니다. ‘내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기뻐하겠다’ 이게 세상논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소원이 이루어져야 기뻐하는 게 상식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정 반대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 마음에 감사를 안고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우리 기도가 감사의 기도로 묻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감사가 없을 때는 우리 기도에 감사와 반대되는 감정이 묻어 나오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 기도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은 기쁨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할 때는 기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는 게 먼저 나옵니다. 염려를 안고 기도하면 내 기도에 염려가 묻어 나옵니다. 그래서 기도에는 염려가 묻어 나오지 않도록 염려를 다스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이것은 우리의 신앙행위 이전에 갖추어야 되는 신앙의 근본자세이며 또한 아주 긍정적이고 근본적인 신앙의 모습을 우리에게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말씀은 첫 번째로 여호와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더 근본적인 의미는 여호와 그분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은 문학적인 표현으로 하면 내가 여호와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지는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가진다는 말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러나 문학적으로는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23편 1절이 이 말씀을 해석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다”라는 이 말은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의 해석입니다. 여호와가 내게 목자가 될 때, 그 분이 나의 소유가 될 때, 주인이 될 때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 분을 소유하는 것, 그 분을 기뻐하는 것, 그 분을 송두리째 차지하는 그런 개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런 자리까지 우리 마음이 안정을 하지 못하고 항상 세속적인 논리에 우리 마음이 사로잡혀서 여호와를 소유하는게 아니라 엉뚱한 세상 것들을 붙잡고 혼돈하고 방황할 때가 우리에게 많이 있습니다.

  기쁨을 만드는 지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믿음 좋은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참새가 날라 가다가 그만 실례를 했는데 그 배설물이 이 사람 머리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난처합니다. 기분 나쁩니다. 불평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 좋은 사나이가 무엇이라고 말한 줄 아세요? “아휴, 다행이다. 하나님께서 황소를 날지 않도록 지으신 것이 감사하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사고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이 말씀이 우리 안에서 생명의 말씀이 되고 우리의 신앙의 감정으로 자리를 잡으면 그 성도가 하는 말 이상으로 우리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첫째, 우선 할 것부터 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기뻐할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먼저 할 일부터 먼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가운데는 우리가 여호와를 기뻐하는데 장애물을 일으키는 요소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불평하는 일, 투기하는 일, 분노하는 일을 버리라고 거듭거듭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은 여호와를 기뻐할 수 있는 근거가 우리 안에 있는데 불평이 너무 강해 가지고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너희 안에 불평, 불만, 분노를 다스리면 여호와를 기뻐할 수 있는 근거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상담전화의 대부분은 부정적이고 불평하는 이야기입니다. 안 된다는 이야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근간에 우리 교단의 일로 회의를 여러 번 합니다. 그런데 이 회의를 해보면 꼭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 회원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만 끝에 가서는 안 되는 것 아니냐’ 이런 식입니다. 아주 피곤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어려운 여건 중에서도 우리 교단을 인도하는 손길을 분명히 봅니다. 돈 10억을 못 구해서 안절부절 할 때는 정말 절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40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전달을 하고 모두가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제 안 되는 것 아니냐’ 그런 의견들이 자꾸 돌아다니기 때문에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니까 어느 교회에서 10억 융자를 받아서 우리에게 전달하고 두 교회가 융자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 교회가 공동의회를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 교회별로 잘 안 되는 교회가 많으니까 노회 단위로 1억씩만 평균 잡아도 34억이다, 노회별로 해보자는 이런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되게 하는 역사가 나오는데도 안 된다는 논조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이 감정을 우리가 단순히 가지는 게 아니고 우리 체질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다”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 날고 뛰는 범죄가 있으면 이 범죄를 다스리기 위한 기발한 수사기법이 있습니다. 거짓말 탐지기 뿐만이 아닙니다. 곤충을 가지고도 범인을 찾아내는 수사기법도 있습니다. 체면술이나 애완견, 훈련견을 가지고도 합니다. 그 다음 유전자 감식을 가지고도 합니다. 엄청난 첨단장비들을 가지고 범죄와의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문(聲文)이라는게 있습니다. 우리 손의 지문이 각각 다르듯이 소리에도 그 소리가 다 다르답니다. 그것을 자료로 입력해서 범인을 잡는데 쓰여진답니다. 또 뇌 안에도 지문이 있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의 뇌를 갈라서 그 안에서 있는 뇌 지문을 갖고 범인을 색출해 낸다는 것입니다. 입술부위도 각각 다르다고 합니다. 정맥, 걸음걸이, 귀 모양이 다 다르다고 합니다. 이 우주 안에 하나밖에 없는 당신들의 귀입니다. 귀하게 여기십시오. 내가 갖고 있는 이목구비가 우주 속에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함부로 관리하지 마십시오. 글을 쓰는 것도 다 다르고, 타이핑 습관도 다 다르다고 합니다. 이런 수사기법이 동원되어도 여기를 뛰어넘는 날고 뛰는 범죄들이 계속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기쁨을 관리하라

  그런데 여호와를 기뻐하는데 방해되는 것들이 자꾸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자꾸 발생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밤에 자는데 마귀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농부가 곡식을 심었는데 그 곡식이 잘 되는 밭에다가 마귀가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비유는 아주 현실감이 있습니다. 마귀는 잡초밭에 가라지를 안 뿌립니다. 허허벌판에 가라지를 안 뿌립니다. 곡식을 심어 놓은 밭에 뿌립니다. 마귀는 은혜받은 성도를 건드리지, 은혜 못 받은 성도는 마귀도 폐기한 사람입니다. 은혜받은 자를 마귀가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를 마귀가 가까이 합니다. 성도가 은혜받고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그 성도에게 마귀가 가라지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 가정에 마귀가 유혹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섬기는데 이상하게 이런 갈등, 저런 갈등이 일어날 때 “주여, 감사합니다. 마귀가 나를 자꾸 건드리는 것 보니까 내가 주님 편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예수 잘 믿고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마귀가 건드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할 사람에게 여호와를 기뻐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전략 앞에 우리가 절대로 넘어가면 안됩니다.

  이제 성구 세 곳만 확인합시다. 3절에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5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로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 성구는 따로 있는 것 같지만 문맥상으로 다 연관성을 가집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여호와를 기뻐하라,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라”는 앞의 명령은 우선적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은 우리말로 ‘누림’이라는 말이 있는데 여호와를 기뻐할 때 누가 좋습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는 그가 좋은 것입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맡기는 것은 앞의 복잡한 수속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짐을 맡길 때도 그렇습니다. 짐을 맡길 때도 맡겼다는 보관증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맡겼다는 절차가 있어야 짐을 맡기고 가는 것입니다. 짐 맡기는 수화물 자동저장소에서도 짐을 넣고 열쇠로 잠그고 내가 열쇠를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짐을 맡긴 것입니다. 맡긴다는 것은 그만큼 앞의 수속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여, 내 생명을 주께 맡깁니다.” 이 기도를 섣불리 하면 안됩니다. 앞의 절차가 지금 하나도 신앙으로 안되어 있는데 무엇을 맡긴다는 것입니까? “선을 행하라” 먼저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의 행위를 요구합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기뻐함이 누려집니다. 거기에서는 주님께 못 맡길 짐이 없습니다.

  기쁨과 선행

  우리가 말씀의 문맥을 이렇게 함께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뻐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선을 행함이 따라야 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 전적으로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계속 누려지는 것입니다. 앞에 있는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이 한마디를 가지고 전부 답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라, 기뻐하라, 맡기라 이것이 묶어져서 은혜의 사실로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미국이 잘 사는 이유에 대하여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근면성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뉴욕주립대학 교수가 이 말을 했는데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근면성은 해석을 하면 청교도 신앙정신이라는 것인데 이것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가정과 자손과 미래를 다 맡기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우리 앞에 보여주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청교도 근면성이라는 것은 바로 오늘 이 말씀에 나타나는 여호와를 기뻐하고, 선을 행하고, 여호와께 맡기는 이게 바로 청교도정신의 근간입니다. 그들이 그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한국의 유명한 지도자 목사님 한 분은 미국을 다녀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국에는 방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너무 방이 많다, 다방, 찜질방, 노래방, 전화방, PC방…” 여러분 집에 잠자는 방 외에 다른 방에 너무 관심 갖지 마십시오. 우리는 안 가도 될 방에 가서 너무 시간낭비하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근면성, 이것을 높이 평가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우리가 쉴 때는 쉬고, 부지런히 자기 할 일을 해야 됩니다. 교회봉사, 열정적으로 좀 섬겨보십시오. 끌려 하지 말고, 밀려하지 말고, 정말 앞서서 한 번 해보십시오. 어정어정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청교도 근면성이 오늘의 미국을 지탱하고 있다 라는 말은 우리가 그대로 배워야 될 말입니다.

  맺는 말

  한국의 예수믿는 성도들이 부지런하게 살고, 주님을 위해서 부지런하게 섬기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안될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걸음걸이가 느립니다. 좀 빨라야 됩니다. 긴장이 있어야 되고 열정이 있어야 됩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몰두하는 면이 있어야 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이 말씀에 반드시 먼저 들어야 될 말씀은 불평하지 말라, 투기하지 말라, 분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두어야 여호와를 기뻐하는 믿음이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잡초를 제거해야 곡식이 크듯이 우리 신앙생활에 잡초를 다스리고 관리할 줄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방치하고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데 그 주의 은혜가 우리의 생애 속에서 열매를 맺어서 영광을 드러낼 것인데 잡초 때문에 못하고 있다 하면 얼마나 애석한 일입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라.” 이것을 우리 신앙생활에 새로운 표어로 붙잡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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