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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치고 싸매시는 분 (시 1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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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고치고 싸매시는 분
본문 : 시편147:1-4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 만족과 불만이 교차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하거나 훈련을 하거나 공부를 해도 성적이나 성과가 오르지 않는 것은 슬럼프가 왔기 때문입니다. 건강이나 성과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상태나 영적 상태도 슬럼프에 빠지거나 침체가 올 때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실망스럽고 낙심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실망시키는 요소가 정말로 많습니다. 여러 가지 환경이나 사람들, 그리고 어떤 때는 자기 자신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실망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때에는 침착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평하거나 욕하기가 쉽고 침체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불행하게 될 가능성만 커지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자라면서 아무런 상처도 없이 자란 분들이 있습니까? 아마 작든 크든 자라면서 갖는 상처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성장하는 가운데 겪는 아픔 없이 자라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한 번도 넘어져 본적도 없고 다쳐서 피를 흘려본 적도 없고 아파서 병원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크게 다쳐서 병원에 가서 큰 수술을 받아본 사람은 좀 드물겠지만 혹 살다 보면 연필 깎다가 칼에 다치기도 하고, 부엌에서 일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또 넘어져 뼈가 부러지기도 하고, 허리를 다치면 상당기간 누워있기도 하고, 이런 아픈 경험들을 우리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체적인 상처보다 우리에게는 더 깊은 상처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숨은 상처를 어떻게 치료하실까요? 숨은 상처란 무엇입니까? 아직도 자신에게 계속 상처를 주는 기억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숨은 상처는 없습니까? 아직도 계속 고통을 주는 옛 기억은 없습니까? 여러분은 버림받은 기억이나 여러 가지 학대를 당한 기억이나 신체적이나 심리적, 혹 성적인 학대를 당한 적은 없습니까? 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로부터 조롱을 당한 기억이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은 기억은 남아있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은 누구에게나 남모르는 상처가 있습니다. 육체적인 상처가 아니고 마음의 상처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일 없이 보이도록 감추고 있을 뿐이지 누구나 살아오면서 생기는 마음의 상처들이 있는데 그저 숨기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마음의 상처, 정신적인 상처는 육체적 상처보다 고통스럽고 치료도 힘이 들고, 극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어쩌면 평생에 어두운 그림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고치신다는 말씀입니다. 3절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상심한 자는 마음이 깨지고 상처 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마음을 고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상심한자를 고치시며 상처 난 마음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메시지의 주제요 결론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망하고 무너져서 포로로 잡혀가는 상처를 입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회복하신다는 약속 때문에 회복하시며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노래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이 마땅함을 선포한 뒤(1절), 그 이유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쓰러진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시는 자로 찬양됩니다(2절). 이것은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오고 예루살렘이 재건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의사로 묘사됩니다(3절). 그들을 치신 하나님이 다시 그들을 고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무한하셔서 하늘의 별들을 일일이 세시고 그들의 이름을 아시며, 따라서 하늘의 별들을 다 관장하시는 분이십니다(4-5절). 목자가 자기 양을 모두 알듯이, 하늘의 별까지 일일이 세시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의 환난을 일일이 아시며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때리시고 어루만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사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고치시고 싸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하고 깨진 마음을 고치시고 싸매시는 하나님이 오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치유와 회복의 희망이 있습니다. 신약에 예수님의 사역은 메시야적 사역이었고 그 사역의 진정한 의미는 치유와 회복이었습니다. 그래서 각색 병든 자를 고치시며 귀신들린 자를 온전케 하셨으며 그를 만나는 자마다 삶이 변하는 회복의 은총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의 절정은 십자가를 통한 치유와 회복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그 무엇으로도 고칠 수 없는 죄의 저주와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회복하사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의 마음과 가정에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여러분을 치유하고 새롭게 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내적 치유

내적 치유는 과거에 발생했던 좋지 못한 사건의 기억이나 어린 시절에 우리가 당한 상처 혹은 과거에 지은 특정한 죄 등이 감정적 혹은 정신적인 병의 원인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적 치유'를 '과거의 상처의 치유'(Healing of  Past Hurts)혹은 '깊은 차원의 치유' 또는 '기억의 치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쓰라린 과거 기억을 포함한 정서적 심리적인 상처들은 우리 자신이 저지른 죄악 또는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한 피해 때문에 생기게 됩니다. 이러한 과거 상처들이 치유되면 속사람(Inner Man)이 과거의 감정의 노예로부터 해방될 때 회복됩니다. 따라서 과거에 받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은 신체적이고도 가시적인 치유와 분명하게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일반적으로 내적 치유(Inner Healing)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내적 치유는 해방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마음의 상처로부터 해방되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내적 치유는 기억의 치유입니다. 보통 사건 자체는 한 번의 상처를 입히지만 그 사건이 계속 상처를 주게 됩니다. 실로 기억은 강한 힘이 있어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이 어느 정도 기억의 고통을 무디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그것을 완전히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내 보여야 한다

우리들 중에는 과거의 불쾌한 감정이나 원한이나 비통함을 잊지 못해서 그것 때문에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비하느라 항상 심신이 피곤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현재에다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과거에 집착하므로 항상 피로에 지쳐있습니다.

시간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시간에 대한 진지함 가운데 위인은 태어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의 손실을 가장 슬퍼합니다. 모든 자원은 축적할 수 있습니다. 지적 자원, 관계 자원, 물질적 자원, 그리고 영적 자원은 축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 자원만은 축적할 수 없습니다. 시간과 나이는 붙잡을 수 없습니다. 다만 잘 관리해야만 합니다. 시간 관리는 과거 관리입니다. 과거에 집착해 있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입니다. 과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톱으로 톱밥을 켜는 사람과 같습니다. 충만한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과거를 잘 관리해야 하고 또한 충만한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미래를 잘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충만한 현재를 산다는 것은 현재에만 집착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진지하게 살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미래를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이 충만한 현재 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 그것을 잊어버리려 하고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합니다. 음주, 마약, 외도로 풀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합니다. 대개의 경우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는 분한 마음을 혼자 속으로만 쌓아 두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별일 없는 것 같지만 내면 상태는 마치 흔들어 놓은 콜라병처럼 부글부글 꿇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폭발하면 또 다른 많은 상처를 내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준 고통과 모욕과 분노와 괴로움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에 대해 정직해야 합니다. 먼저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자신의 고통스런 현실을 인정해야 하고 이것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주님 앞에 아픈 마음을 내어놓으면 치료하시는 주님이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솔직히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힘듭니다. 아픕니다. 괴롭습니다. 자존심이 상합니다. 이런 마음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구체적으로 주님 앞에 아픈 마음을 내어놓으시면 치료하시는 주님이 해결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보고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고통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 분이 나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시며 나와 함께 애통해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만이 상처 난 나의 마음을 회복하실 수 있습니다.

다윗은 회개의 시 시편51편에서 고백합니다. 시편51편16-17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비록 자신의 범죄로 상처를 받았지만 죄의 모습 그대로 겸손히 주께 나아가 내어놓으면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받으시고 치유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교만하게 의로운 사람보다 상한 죄인일지라도 겸손히 주께 나와 마음을 내어놓으면 회복하시고 치유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모든 고통을 순화할 수 있는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진실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울증에 시달리면 안 됩니다. 진실로 기도할 수 있는 성도라면 화병으로 고통당해도 안 됩니다.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믿는 성도라면 원수 맺고 원수를 갚는 어리석은 삶을 살수 없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께 나아가 마음을 내어 놓으십시오. 하소연하듯이 주님께 내어놓으면 이미 우리고통 아시는 주님이 치유하심을 믿습니다.


어제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나에게도 예외는 없다” 라는 박 집사님의 글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안녕하세요? 2000년 9월 18일에 서울대학 병원에서 영암의 성도님들의 간절한 기도 속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은 박인애 집사입니다. 3년 동안 꾸준히 정기 검사를 받았건만 세상에서 가장 끔직하고 잔인한 한마디, 박인애 씨? 요즈음은 의학이 많이 발달해서 초기 정도는 치료만 잘 받으면 완치 가능합니다. 선생님이 겁에 질린 내 모습에 일단은 안심을 시키고 잠시 후에 “유방암 초기입니다.” 라는 엄청난 말을 듣고, 두려움과 절망감 ,상실감, 외로움 ,무서움 등 등, 왜 ? 나에게 소설이나 드라마나 남에게나 있을 것 같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다니 많이도 울고 아파하고 속상해 하면서 나에게 예외는 없음을 배웠습니다. 암과의 싸움은 100 미터 달리기가 아니며 자신이 지칠 정도로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며 이제 고독한 마라톤 레이스의 주인공으로 가장 힘든 코스를 달려야 함을 알았습니다. 이 레이스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의사는 내게 잘 달릴 수 있는 작전을 코치해 줄 것이고 나의 가족은 중간 중간에 힘을 실어주는 시원한 물을 한 잔씩 건네 줄 것이며 이 힘겨운 레이스를 달리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내 양 어깨에는 죽어도 친구하기 싫은 암이라는 무거운 돌이 들어 있는 배낭을 짊어지고 달려야 하며 내가 열심히 달릴 때 이 배낭을 벗어 던지는 자유함을(완치)얻게 될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 배낭은 결승선까지 지고 가야 하기에 열심히도 투병에 임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 싸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최선을 다할 때 승리의 기쁨을 소유할 수 있기에 버거운 마라톤을 시작했을지라도 비록 다리를 질질 끌고서라도 고통 가운데에도 완주를 하리라는 각오와 결심 속에서 투병여행을 시작한지 벌써 만 3년 이라는 시간이 흘러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감사함과 기쁨이 제 마음과 삶 속에 늘 샘솟고 있음을 고백 드립니다.

시간은 흐릅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 해도 뒤돌아보면 고난이 곧 은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6개월 만에 이 것 저 것 검사를 받고 어제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으로 향한 저의 마음은 두려움 보다 담대함과 편안함이 앞섰습니다. 왜냐하면 늘 부족한 나에게 매일 아침 기쁨 속에서 주님의 미소를 발견케 하시고 언제나 동행하시는 그분이 함께 하심을 믿기에 분명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제 차트를 보시고 박인애 씨? 아주 좋습니다. 저도 기쁘군요. 이제 이 지겨운 병원 좀 한참 있다 오십시요. 다음 검사는 언제 받나요? 네 일년 후에 오세요.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매 순간 순간마다 사랑과 은혜를 체험케 하심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여기에 있기까지 내 옆에서 항상 위로와 격려해 주는 남편과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조금만 피곤해 보여도 걱정하는 미국 출장중인 남편에게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내 주위에서 사랑의 마음을 전하셨던 분들, 특히 목사님들과 영암의 가족들, 투병 가운데 위로와 소망의 편지와 카드를 보내 주셔서 저에게 사랑과 힘과 용기를 듬뿍 안겨 주셨던 성도님들, 항암치료에 좋다며 보내주신 식품과, 홍삼, 고가의 상황버섯 ,꿀 ,무공해 쥬스와 과수원에 부탁하셔서 무공해 과일을 보내 주신 따뜻한 마음들, 항암 주사 맞고 빠진 머리에 쓰라고 보내준 모자와 스카프, 입맛 돋우라고 정성 드려 직접 담가 가지고 온 맛있는 김치 등 등. 이렇게 많은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전해주신 사랑의 빚을 언제 갚을지 너무 송구스럽습니다. 교회학교 교사와 여전도회 회장 직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협조와 사랑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영암의 성도님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사랑과 관심이 있었기에 이렇게 저의 건강이 회복케 되었음에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투병하시며 고통 속에서 힘들어하시는 성도님들! 힘내십시오. 주님은 늘 우리 곁에 계시며 함께 하십니다. 영암의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어 향기 그윽한 열매를 많이 거두어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올 가을은 나뭇잎처럼 고운 빛깔의 행복으로 다가 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고 성전이 무너진 것을 보고 성전에 계신 하나님보다 바벨론 신(말둑)이 더 위대하다고 믿었습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하고 포로된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불순종하고 우상 숭배했기 때문에 바벨론을 이스라엘을 때리는 징계의 채찍으로 쓰셨던 것뿐인데 마치 하나님이 바벨론 신보다 무능한 것으로 잘못 인식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약속하신 대로 70년 만에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에 모으시며 그들의 상한 마음을 고치시고 상처를 싸매셨습니다.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과 풍요를 경험했던 그런 신앙적 기억과 풍습과 행동과 습관으로 바꾸십시오. 한마디로 우리의 생각을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생각을 바꾸라

우리 인간의 머리는 테이프 레코더와 같습니다. 우리의 두뇌는 5가지 감각. 즉 후각. 시각. 청각. 촉각 그리고 미각을 통하여 경험한 모든 것을 남김없이 녹음합니다. 사람들의 말도 모두 녹음합니다. 사람들의 두뇌는 정말로 놀라운 녹음기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진실 된 것이든 거짓 된 것이든 모두 녹음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거의 가정환경, 문화적 배경, 종교적 배경에서 녹음된 잘못된 인식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스스로 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받았던 상처나 아픔이 녹음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나도 모르는 중에 계속 내 생활에서 재생이 됩니다. 거절당한 상처가 재생되어 겉잡을 수 없는 분노에 쌓이게 됩니다. 버림당한 상처가 녹음된 사람은 항상 또다시 버림당할 두려움이 그를 지배합니다. 아주 불신앙적인 마인드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불신앙 문화와 불신앙적인 매너가 뛰쳐나옵니다. 인생은 무서운 녹음기입니다. 나의 과거를 녹음하여 어둡고 아프고 괴롭던 과거의 상처를 반복하여 재생하므로 나를 무너지게 합니다.

이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이 낡아빠진 녹음 테잎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바꾸고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의 테잎으로 바꾸십시오.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바꾸는 것보다 더 선명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과 풍요를 경험했던 그런 신앙적 기억과 풍습과 행동과 습관으로 바꾸십시오. 한마디로 우리의 생각을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까요?

1)기도해야 한다. "주님 저를 괴롭게 하는 과거의 나쁜 기억들을 제거하여 주시고 마음의 상처들을 씻어 주소서"라고 기도하므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다윗은 회개의 시 시편 51:10-12절에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 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이 기도가 여러분들의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것이다.

성경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면 채울수록 낡은 테이프를 지워버리기 쉽고 매 마음은 하나님의 신실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시편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11절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3)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갖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믿음에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를 거룩하다 하셨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흠이 없이 설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나를 흠 없는 존재(자녀)로 여기십니다. 흠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나의 흠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녹음되어 있는 낡은 테잎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완전히 바꾸십시오. 거기에 치유가 있고 회복이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 오셨습니다.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미래에 초점을 맞추라

즉, 과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씀입니다. 세속적인 상담가나 의사들이나 프로이드 심리학자들의 치료 방법은 과거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병력이나 과거가 당장 치료에 도움은 됩니다. 그러나 극적인 상처의 치료는 어렵습니다. 왜냐면 과거는 항상 상처를 회상시킵니다. 미래는 항상 소망을 줍니다. 기대감이 있습니다. 더더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획과 비젼에 초점을 맞추면 삶이 긍정적이 되고 적극적이 되고 기대감으로 소망이 넘칩니다.

과거는 나의 미래가 아닙니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과거에 집착하지도 머무르지도 마십시오. 이제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새 사람입니다. 나에겐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주님은 나를 치료하십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 분만이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할까요? 세상적인 방법은 잠시 완화시키는 진통제일 뿐입니다. 그것은 3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중독이 되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치료의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자아 평가

심리학자들은 여러분의 자아 평가는 여러분의 삶에 가장 중요한 사람이 여러분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느냐에 주로 달려있다고 거듭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기에 동의하십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을 바라보는 방식은 여러분의 삶에 중요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분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그 분이 여러분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말해 줄 것입니다.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결단하십시오. 누누이 들어 왔던 그것에 귀를 계속 기울이시렵니까? 아니면 이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진리에 여러분이 마음을 둘 것입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에 대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시고 숨은 상처를 치유해주리라 확신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 살다보면 인간은 인간에게 서로들 실망하게 되어있습니다. 서로들 실망하는 겁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기대려고 하지 마십시오. 사람에게는 위로의 능력이나 치료의 능력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사람 바라보고 불평하면 망합니다. 사람 바라보고 원망하면 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을 바라보고 모세를 신뢰하고 의지하다가 모세가 물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마다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기도하면 승리합니다. 주님 바라보면 승리합니다. 반드시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의미로 대화하는 관계

갓난아기를 키워보신 부모님들은 다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엄마와 갓난아기의 대화하는 모습을요. 엄마는 아기에게 계속 말합니다. 아기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엄마와 눈을 맞춥니다. 엄마의 소리를 듣습니다. 아기가 울기라도 하면, 엄마는 달려가면서 말합니다. 아유! 우리 아기 배고프니? 젖을 주어 봅니다. 그래도 웁니다. 그 다음에는 지저귀에 손을 넣어 봅니다. 아이구! 우리 아기 쌌구나! 지저귀 갈아줄게, 그리고 말합니다. 아이구! 이쁘게도 쌌네.

아기가 자라서 말을 배웁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하기 시작하면 얼마나 예쁜지요. 아기의 입에서 엄마라는 말 한마디 듣기 위하여 엄마는 얼마나 많이 아기의 귀에다 엄마라는 말을 해 주었을까요? 엄마가 해줄게, 엄마가 업어줄게, 엄마에게 오렴. 엄마 해봐, 엄마, 엄마! 수없이 아기에게 엄마라는 소리를 입력시켜야 아기의 입에서 엄마라는 말이 출력되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웃집에 놀러 갑니다. 이웃집에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에게 무어라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리 자세히 들어도 알아들을 수 가 없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옆에서 듣고 거의 대부분을 알아듣습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그 아이의 말을 통역해 주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엄마가 듣거나 그 아빠가 들으면 알아듣는다는 것입니다. 연결도 안 되는 말을 조각조각 내어 뱉어도, 그 아이의 부모는 그 말들을 다 이어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부모는 그 아이와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의 행동 하나 하나, 몸짓 하나 하나, 그 입에서 내는 소리 하나 하나가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언어라는 것입니다. 아이와 부모는 대화를 할 때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갓 난 아이의 엄마는 아기가 응애 하고 울어도 우리 아기 배고프구나! 라고 알아듣는 것입니다. 똑같은 울음소리에도 이 아이가 아픈 건지 배고픈 건지, 아니면 지저귀를 갈아달라는 것인지 압니다. 사랑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 된 하나님의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표현하지 못하고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우리의 고통과 깊은 마음의 상처를 고치시고 싸매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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