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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연에 대한 인간의 사명 / 창 1: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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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창 1:26-28
▶ 제목 : 자연에 대한 인간의 사명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라는 찬송가를 참 좋아하는데, 특별히 밖에 나가서 하나님의 지으신 솜씨를 보게 될 때 그 찬송이 나오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 우리가 자연만물을 볼 때에 자연스럽게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이란 그러한 역할을 합니다. 곤충기를 쓴 파브르는 자연이란 제 2의 성경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데,  비록 제한적이지만 자연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크심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연이 만들어진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자연이 말할 수 없이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가는 곳에는 환경파괴가 있습니다. 인간이 가면 물, 공기, 땅이 오염이 되고 환경이 망가져 버립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죄에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났을 때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자연만물을 망치는 존재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연을 지키고 보호하는 자연만물의 관리자로 세우셨습니다. 본문이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28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책임과 사명을 주시는 장면입니다. 26절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우리 인간을 만드시고 우리로 하여금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셨습니다.

‘다스린다’는 말은 자칫하면 독재자들이 위에 군림하고 권세를 부리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원래 ‘다스린다’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다스린다’는 말은 섬긴다는 뜻으로 보살피고 가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만물의 청지기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생물들,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돌보는 청지기로 만드셨습니다.

28절에 인간에게 복을 주시면서 명령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소위 말하는 문화명령이 세 가지 단어로 나옵니다.

첫째는 땅에 충만하라, 둘째는 땅을 정복하라, 셋째는 땅위에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는 말씀이셨습니다.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만물을 다스리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을 만드셨는데, 그 인간에게 우선 생육하고 번성해서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땅의 각처에 살아서 땅을 다스리는데 충분한 종족번식을 생각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 인간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많아졌지만 땅에 충만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땅에 골고루 퍼져 있어서 땅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인간이 범죄 타락하고 난 후에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은 곳에 살아서 인구집중 현상이 나타나며 도시가 세워졌습니다. 인간문화는 발달했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만물은 파괴가 되고, 우리나라만 해도 수도권 일대에 인구가 집중되어 자연이란 것이 거의 훼손되어 없습니다.

얼마 전에 우면산 살리기 운동인 national trust가 있었는데 우리가 사는 이 지역에도  산이 조금 있을 뿐 짐승들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땅에 충만하도록 하셨는데, 충만하지 못하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모여서 살고 있는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집중해서 모여 살면서 범죄도 생기고 많은 환경파괴가 생기고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땅에 충만해서 정복하라 하셨는데, ‘ 정복하라’는 말이 많은 오해를 일으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복하라는 것을 마치 폭군이 옆의 나라를 침략해서 그 땅을 빼앗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정복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복이란 말의 원래 의미는 Culture: 경작하는 것, 가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culture에서 agriculture 농사라는 말이 나왔고, culture라는 말 자체가 문화라는 말입니다. 진정한 문화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연만물을 잘 가꾸고 경작하는 것 ,이것이 땅을 정복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그 자연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을 통해서 더 돋보이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어떤 사람이 정원을 가꾸는데, 나무도 심고 꽃도 심고 연못도 만들어 고기도 살게 하고 여러 짐승들을 있게 하여 아름다운 정원을 꾸몄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그 정원을 돌보도록 책임을 준 것입니다.

정원사의 책임은 그 만들어진 정원을 잘 가꾸면서 돌보고 그것이 유지되어 아름다움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그러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모든 생물들을 다스릴 것을 명령하셨는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란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다스린다는 말도 독재자가 자기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원래 다스린다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 그래서 다스리는 것에는 섬기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를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우주를 독재자와 같이 자기 욕심에 의해 움직이는 분이 아니시고  어떤 면에서는 이 우주를 섬기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들에게 다스림의 진정한 모델은 섬기는 것에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렇듯이 만물을 다스리라는 말씀도 만물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잘 가꾸고 돌보고 잘 보존되도록 책임을 주신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통틀어 볼 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자연만물의 청지기로 세우셨습니다.

청지기는 누구입니까? 청지기는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연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자연의 한 부분이면서 이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책임을 맡은 관리자인데, 만일에 이것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인류가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만물을 어떻게 다스려왔습니까?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은 자기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들을 마음대로 더럽히고 쓰고 자연만물을 훼손하고 파괴하고 오염시키고 만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정원을 가꾸도록 세운 청지기가 그 주인이 맡겨 주신 책임을 다 하지 않고 열매가 나면 다 따먹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짐승들도 잡아먹으며 짓밟아서 더럽게 만들어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는 동식물들을 훼손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범죄한 인간들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책임을 잊어버리고 이와 같은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도 그 안에 있기 때문에 자연의 파괴로 인한 모든 결과를 누리게 됐고 우리들이 함께 망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인류가 만들어 놓은 핵무기가 우리를 수 십 번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환경오염으로 인해서 지구는 종말을 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성층권의 오존층이 지난 10년간 남극의 상공에서 절반이 파괴되었고, 칠레 상공에서는 1/4이 엷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불소화합물을 비롯한 각종 대기오염물질과 성층권을 날아다니는 군사용 초음속 비행기등 때문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전혀 대기오염을 방출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대기 중에 방출해 놓은 오염물질만으로도 오존층은 상당량이 더 파괴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존층을 파괴할 오염물질은 앞으로도 계속 배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는 석탄과 석유, 이것도 매장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인류는 마침내 다 쓰고야 말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쓰게 되면 대기중의 탄산가스가 지금보다 5배나 더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구의 온도가 평균 10도가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구의 빙하는 다 녹아 버리고 해수면이 60미터 올라가게 되어서 세계 대부분의 농경지와 거주지는 바다에 잠기고 맙니다.

또 산성비로 인해서 북유럽과 북미에서는 많은 호수와 산림이 이미 죽어 가는데 그 피해는 더 커지고 있습니다. 사막의 면적은 해마다 놀라울만한 속도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지난 세기에만 해도 전국토의 절반가량이 산림이었지만 지금은 산림의 면적이 1/4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륙에서는 산림이 있어야 비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산림을 없애니까 비가 안 오고 사막이 더욱 늘어가는 악순환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이웃인 이북과 중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것 때문에 해마다 가뭄이 일어나고 홍수가 나고 경작을 못하여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지구의 종말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느라고 애쓰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자멸할 길을 가고 있으니까 그냥 놔두면 인간들은 심판을 받고 멸망을 받게 되어있는데, 하나님이 일을 안 하셔도 이 지구와 인류는 멸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굉장히 두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인류의 종말을 얘기합니다만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고 자연환경의 파괴를 보면 불을 보듯이 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런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먼저는 우리가 회개해야 됩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연에 대한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시켰던 것에 대해서 회개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윤리문제에 있어서는 회개할 줄 알지만 말없는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갈등이 생기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자연만물을 주셨는데, 자연이 사람처럼 말을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을 향해서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연에 대해 죄를 짓고 있는지 그 죄 값을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죄도 회개해야겠지만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죄 인줄 알고 회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영적인 지각부터 가져야 하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환경친화적인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특별히 공장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돈벌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형편이 있는 분들도 있지만 자연에 대한 우리의 사명을 알고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죄짓는 일이며 그것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일임을 안 다음에는 우리들이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데 관계된 일은 포기해야 합니다.

오래된 일이지만 저희 집에서 양돈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양돈을 해서 한때는 수입이 좋았었습니다. 한참 잘될 때 군청에서 환경문제 때문에 옮겨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양돈장을 지키고 있는 책임자가 돈을 쓰면 해결이 된다고 제안을 하여 의논을 하게 됐습니다. 기도하면서 내린 결론은 그동안 하나님이 주셨던 것으로 만족하고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만두라는 sign으로 알고 할 수 없이 사업을 접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도 사업을 하시고 공장을 운영하시는 가운데 환경파괴를 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양심으로 생각할 때 오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환경친화적인 일을 해야 됩니다. 내 욕심을 충분히 못 채워도 그 정도로써 하나님 앞에 회계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으로써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태도에 있어서 지극히 적은 것부터 환경보호를 위해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교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차를 가지고 다녀서 주차장을 확보하고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기오염 주범이 자동차 공해 때문인데 주차장을 넓게 가지려는 생각보다는 주일날은 성도들이 차를 안 가지고 오는 모범을 보여서 걷는 운동과 대중교통 이용에 힘쓴다면 주차장을 넓게 만드는 것보다 더 쉽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지만 우리 마음속에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쓰레기를 버리는 문제에 있어서도 예의와 에티켓을 떠나서 하나의 도덕적인 문제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생각할 문제라는 점입니다.

얼마 전 한 장로님과 등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장로님이 산을 안내하며 올라가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산에 오르는 사람들 중에 세 종류가 있는데, 한 종류의 사람들은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무엇을 버리고 흘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버리지는 않지만 버려진 것을 절대 줍는 일은 안하고 등산만 하는 사람. 세 번째 종류의 사람은 버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이 버린 것을 주워가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자연을 사랑하고 나라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아나바다운동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과 전기, 기름과 종이도 할 수 있는 대로 아껴쓰 는 삶의 태도,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인 줄 믿습니다.

또한 나눠 쓰고 바꿔 쓰는 운동도 필요한데, 언젠가는 물건 나눠 쓰는 센터를 설립해서 남서울교회가 환경운동에 모범을 보이길 원합니다.

종이컵에 이름을 써서 가능한 하루에 컵 하나 쓰는 운동이라든지, 언젠가 모임을 가지면서 식사를 하게 되는데 예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도시락을 먹게 됐습니다. 예쁜 그릇에 담긴 식사를 기분 좋게 잘 먹었는데 물리학자 장로님이 플라스틱 그릇이 환경에 오염을 끼칠까 생각을 하면 걱정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가까운 분식점에서 친환경적인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적은 것에서부터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가 적극적으로 환경운동에 앞장서야 할 줄 압니다. 교회들이 그동안 소극적이였는데 필요할 때는 앞장설 줄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 우면산 살리기 운동이 있었을 때 우리 교우들이 대거 참여해서 남서울교회가 환경 살리는 운동에 있어서 열심히 있다는 칭찬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환경오염과 환경파괴의 주범이 인간이고 그 인간들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마음, 범죄한 심령이 문제이기 때문에 정말로 우리가 환경보호를 원하면 인간개조부터 되어야 합니다.

인간개조는 복음으로 밖에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알게 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만물을 이해하는 것이 달라지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며 환경을 사랑하고 지키는 일에도 앞장서게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미래학자인 탐싸인이 21세기의 우리 그리스도인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환경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연만물을 다스리는 청지기적인 사명을 가지고 그동안 그렇게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적은 것에서부터 실천하며 교회적으로 할 일을 하고 무엇보다도 인간을 개조하는 복음운동에 더 힘을 써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연에 대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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