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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종일관한 신앙태도의 중요성 / 히 6: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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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한 신앙태도의 중요성 / 히브리서 6:11~12

오늘 세례식을 거행하고, 또 금년 마지막 달의 첫 주일을 맞는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시고 세상 사람과 구별해서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고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각자 예수 믿은 동기도 다르고 믿게 된 과정도 다양하지만, 동일한 것이 있다면 배후에 우리를 불러내신 하나님의 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를 세상 사람과 구별해서 예수 믿도록 하셨을까요? 우선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을 얻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에 가서 그분이 누리는 생명과 모든 지복을 그분과 함께 영원토록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만 해도 황홀하고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또 현실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 창조자와 구원자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짧은 한 생을 살 동안 가장 고상한 목적 가운데 살도록 부르셨고 그러한 삶을 명령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 드리는 것입니다. 이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궁극적인 목적으로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현실적인 목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사람이 되도록 하고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듯이 구원을 얻는 신앙생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생활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저 가만히 앉아 믿기만 하면 자연적으로 돌아가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어도 4, 50년 후에나 이런 사건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장 세상이 뒤집어져서 우리가 함께 하나님 앞으로 부름을 받는다면 모르지만, 자연 법칙에 의해 앞으로 살 기간을 계산해 보면 하나님의 구원은 그 때쯤에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짧은 인생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면 30년, 50년이란 기간은 실로 긴 세월입니다. 아마도 수십 년에 이르는 인생 길을 걸어갈 동안 우리가 겪어야 될 시련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고비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문에까지 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어떤 환란이 기다리는지 모릅니다. 어떤 슬픔과 고통을 맛볼지 모릅니다. 또 얼마나 화려한 인생을 살지 모릅니다. 하여튼 예측할 수 없는 인생 길입니다. 이런 길을 걸어가면서 마지막 구원을 우리가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기 위한 신앙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매일매일의 삶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 삶을 살려고 할수록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은 점점 우리를 유혹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별의별것을 다 접하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저만큼 가버립니다. 어떤 욕구 불만이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주 몰입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란 종교적 구호로 전락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점점 바빠지고 경쟁도 살벌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멀어지고 맙니다. 모든 것이 나의 생각 속에서 맴돌고, 다음 목적을 향해 뛰다 보면 10년, 20년이 지나가 버립니다. 이런 유혹 많은 세상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도 만만치 않고 천국까지 가는 길은 더욱 험난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변덕이 많은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유혹이 없을 때는 교회도 열심히 나오고, 성경도 읽어보려고 애를 쓰고, 안 믿는 사람을 만나면 전도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어떤 유혹이 와서 자신도 모르게 '꽝!' 하고 쓰러져 버리면 성경도, 기도도 팽개쳐 버리고 나중에는 술도 한 잔 마셔보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버립니다. 한 마디로 신앙생활에 일관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가 한 생을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오늘 2부, 3부에 간증하시는 분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어려서 학습 받고 40년 만에 세례 받는 형제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예수 믿는 것과는 남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암이 들고, 사업이 망하고, 이제는 모든 것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리자 '주여!' 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신앙생활 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좋을 때, 마음이 뜨거워질 때, 그리고 설교에 감동을 받으면 잘 해 보다가 이내 잘 안되거나 마음이 식어버리고 감동이 식어지면 옛날로 돌아가 기가 일쑤입니다. 이렇듯 일관성 없이 변동이 심한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자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런 신앙생활에 젖어 있는 분이 있습니까? 기분에 따라, 여건에 따라 신앙생활 하는 분들은 오늘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지고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신앙태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것은 신앙생활 하는 데에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변덕이 심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조령모개(朝令暮改) 식으로 아침 저녁으로 말을 바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습니까? 인간관계가 다 파괴되고 맙니다. 변덕이 심해 믿을 수가 없으면 아무도 자기 곁에 오지 않습니다. 사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원칙과 목적이 분명하고, 보기에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믿어줄 만할 때 그 사업이 잘되는 것이지, 기분대로 사업한다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어떤 브랜드에 대해서 자기도 모르게 쉽게 선택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전자제품 하나를 사도 어떤 브랜드라고 하면 별 다른 생각없이 쉽게 구매를 합니다. 그 브랜드 제품을 사서 몇 년 써보다가 다시 새로 사야 되면 자연스럽게 발길이 그곳으로 갑니다. 곧 '그 브랜드는 항상 질이 좋다. 고객을 만족시키는 상당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뢰도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는 브랜드는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식사를 하러 갈 때도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지는 식당이 있습니다. 수많은 식당들이 즐비한 길거리를 지나면서 하필이면 그 식당을 자주 애용합니까? '그 식당에 가면 내 입에 맞는 음식이 있다, 잘 해 준다.'는 나름대로의 신뢰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 식당이 일관성 있게 고객을 대접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이런 일관성을 요구하는데, 하물며 '구원을 받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매우 고상한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가짐과 태도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칭찬을 듣겠습니까? 그러므로 일관성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일관성이란 변덕스러운 기분이나 갑작스러운 변화, 일시적인 유행과는 거리가 먼 꾸준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내 기분이나 세상 돌아가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나와는 무관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자세는 꾸준해야 합니다. 항상 동일해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곁길로 가게 하는 세상에서 모든 유혹에 맞서 낮이고 밤이고 제자리에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일관성입니다. 오늘은 물론이고, 내일도 어제처럼 나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는 것, 이것이 일관성입니다. 그저께 하나님 앞에서 한  행동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곤해 하고 짜증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태도, 이것이 일관성입니다. 신앙생활은 이같은 태도를 견지할 때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자신이 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항상 일관성을 가지고 대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찾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필요할 때에도 항상 그분은 그 자리에 계시고,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분을 찾으면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일관성입니다.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우리를 향해 그와 같은 일관성을 가지고 자신을 찾기를 원하시고, 또 자신을 경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일관성이 있습니까?
우리가 시종일관 하나님 앞에 성실하려면 몇 가지 실천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지런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그리고 12절에도 '게으르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이 부지런해야만 일관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도 말씀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부지런함이 없이는 우리의 행동을 시종일관 동일하게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100번을 결심해도 게으른 사람은 그 결심대로 실천하지 못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많은 분들, 특별히 젊은이들을 보면 게으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게으름은 망국의 병입니다.
예수 믿고 나면 그 게으름도 뿌리가 뽑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내 몸에 익었던 게으른 습관이 나중에는 파괴되어 버립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을 일컬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새로워졌는데 몸은 여전히 게으르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변화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이렇게 섬기겠다, 나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이렇게 매일 하겠다.'고 100번 일기를 쓰고 결심을 해도 게을러서 실천하지 못하면 그 다음부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사람을 미워하십니다. 개미보다 못한 사람으로 취급하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게으른 것을 팔자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고침 받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일사분란하게 신앙생활 하려면 부지런해야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바빠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뒤떨어지면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보다 시간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안 하므로 그만큼 시간이 남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그만큼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들과 똑같이 열심히 하면서 교회에 와서 성경 공부, 제자훈련, 각종 봉사, 예배에도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제대로 신앙생활 하려면, 그리고 사회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두 세 배로 부지런해야 합니다.
금년 초에 나는 이렇게 신앙생활 하겠다고 작심해 놓고는 12월에 이르러 그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 원인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게을러서 중도에 집어치웠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일관성 있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내해야 합니다. 12절에 보면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란 말씀이 나옵니다. 이 본문의 내용은 특별히 아브라함을 중심에 두고 하는 말인데, 15절을 보면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도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기 원합니까? 일관성 있는 신앙생활을 해서 구원받고 하나님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정말 오래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응답이 없어도 오래 참을 줄 알아야 됩니다. 예수를 잘 믿는데도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지라도 오래 참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인내심이 없이는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면 성격이 급해서 도무지 참지를 못합니다. 옛날에는 약이 없어서 손가락만 아파도 2, 3일을 끙끙 앓으며 견뎠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치통이 있어도 진통제가 없었으므로 이를 꽉 다물고 참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이가 못 견디고 쑥 빠져버리곤 합니다.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고통을 이기려고 하는 저항력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뚝심을 가지고 참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조금만 아파도 약 한 알만 먹으면 고통이 가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참는 연습을 도무지 할 틈이 없습니다. 자연히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어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생기면 참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생활 하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중단해 버리고, 성경을 읽다가도 별 다른 것이 없으면 참지 못하고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인내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약1:4)는 말씀도 있습니다. 인내하지 않으면, 끝까지 견디지 못하면 환란이나 고난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난 뒤에 숨겨놓으신 축복들을 다 놓쳐 버리고 맙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승리합니다. 끝까지 참으면서 걸어가는 자가 시종일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인내하면서 시종일관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자에게 우리 하나님은 축복해 주십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저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26:3) 쉽게 말하면 하나님 앞에 시종일관 견고한 자세로 신앙생활을 바로 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평강을 부어주시고, 또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축복을 받아 하나님 앞에 칭찬 받는 아름다운 주의 자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또 우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백성 삼고자 불러주셨는데, 우리는 험한 세상에서 시종일관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너무 게을러서 하나님 앞에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기도 하고, 인내하지 못해서 신앙생활에 변덕을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 일관된 신앙생활, 견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강의 축복을 누리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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