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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골리앗이 왔다 ‘다윗’은 어디에 ? / 딤후 2:15, 행 13: 21~22, 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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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이 왔다 ‘다윗’은 어디에 ?
본문 : 딤후 2:15, 행13: 21~22,눅16:9

저는 온누리교회에서 60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후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감사했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여러분을 바라보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슬렘 땅에 남아 있는 사랑하는 하나님 백성들을 대신해 여러분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알제리에 있는 크리스천 형제들, 방글라데시와 인도네시아에 있는 형제들, 여러분이 선교사를 보낸 터키 형제들을 대신해서 문안을 드립니다.
여러분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고난받는 모슬렘 지역 백성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최근에 ‘세례를 주었다’는 이유로 순교한 이란계 목사님 일곱 분이 계십니다. 미망인이 돼 홀로 남아있는 사모님들이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안타깝게도 회교권 국가에는 아직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회교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외된 종족입니다. 다메섹 지역 교회와 바그다드에 있는 형제들을 대신해서는 드릴 인사가 없습니다. 브루나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에 있는 팔레스타인계 아랍인들을 대신해서도 여러분께 드릴 문안 인사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세계 선교를 위해 애쓰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앞에는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이번에 ‘선교한국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선교를 하려는 청년·대학생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젊은이들과 비전을 나누며 ‘하나님 왕국’을 회복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나야 하는 ‘두 가지 사건’을 강조했습니다.

● ‘하나님 일꾼’으로 헌신하는 사건
첫번째 사건은 디모데후서 2장 15절에 있습니다.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희어져 추수하게 된 곡식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며 세계선교에 도전하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대부분 크리스천들은 코 앞에 닥친 문제,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마음을 쏟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모든 성도를 향한 더 큰 계획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어린 제자 디모데에게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말합니다. 이 편지를 쓸 당시 바울은 투옥돼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번 옥에 갇혔습니다. 이제는 풀려나지 못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교수형을 당할 거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감옥에 매여 있는 바울에게 근심이 생겼습니다. 자기가 죽는 것에 대한 근심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본향에 가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걱정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이 죽은 후 구속역사를 이어 복음을 증거할 디모데와 같은 젊은이들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을 힘써 하나님 앞에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삶의 마지막 점을 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는 그 날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차 예수님을 대면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그날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저는 예수님에게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 하였도다”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는데 네 불신앙 때문에 못 하였구나”라는 말씀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약하고 어려움 당하고 힘들어하는 죄인들을 사용하신다’는 말로 학생들을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에 예수님을 보는 그날에 집중하라. 자신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드리기를 힘쓰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대면할 때 주님은 모든 수고를 기억하시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회한의 눈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쁘다는 이유로 영원을 위한 삶에 투자하지 못한 후회의 눈물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은 복음을 부끄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기 힘든 약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디모데가 살던 당시 헬라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종교를 믿을 수 있어?”라며 비웃었을 지도 모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 하나님 위해 탁월한 기준 세운 다윗
우리가 어떻게 ‘인정된 일군’으로 주님 앞에 드릴 수  있습니까? 사도행전 13장 21~22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사울과 다윗, 두 사람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실패했고 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성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한 ‘사울’이라는 사람을 주셨습니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언어 구사 능력도 탁월했습니다. 그는 우등생이었습니다. 정말 타고난 지도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울은 정말 위대한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어떤 일들을 시키실 때마다 사울은  “하나님! 제게 더 좋은 생각이 있는데요”하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에게 맞춰서 해석했습니다.
22절에는 우리를 놀라게 하는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사람을 더는 사용할 수가 없구나”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사울 위에 다윗을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13장 36절을 보십시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사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22절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 그 사람은 내 모든 뜻을 이루는 사람이다”라고 밝힙니다. 여러분 생애를 통해 하나님 뜻을 이룰 수 있습니까? 죄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닙니다. 목사님들은 여러분이 다윗처럼 범죄하지 않도록 기도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은 간음죄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살인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나쁜 아버지가 아닐 겁니다.
다윗은 범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어떻게 정결케 할 수 있는 지를 알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일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골리앗은 키가 3미터나 되는 거인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이 참 신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저주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병사들이 화가 나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까? 아닙니다. 작은 소년 다윗이 골리앗의 말을 들었습니다. “바알이 참 신이고 하나님은 참 신이 아니야”라는 말에 참을 수가 없어 골리앗에게 나아갔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아간 동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에게 많은 상금을 지급했습니다. 둘째로 골리앗을 쓰러뜨리면 왕의 사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동기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다윗의 참된 동기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미스터 골리앗! 내가 너를 쓰러뜨릴 거야. 이것을 통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알게 될거야. 온 세상이 이 땅 위에 하나님 외에 참 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라며 골리앗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소년 다윗은 당시 모든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였습니다.

● 모슬렘 깨울 ‘다윗’을 찾습니다
저는 ‘선교한국대회’동안 학생들에게 “골리앗이 지금 다시 돌아왔는데, 이 세력을 쓰러뜨릴 다윗은 어디 있는가?”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회교권에는 하나님을 참으로 경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예수님이 참 신이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지 않았다”고 세뇌를 받습니다. 아주 사악한 유대인들이 구약성경을 바꾸었다고 말합니다. 아주 나쁜 크리스천들이 신약성경까지도 바꾸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쓰레기 같은 책으로 생각합니다. 모슬렘은 ‘모하메드’를 통해 하나님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실들을 접하면 여러분 마음이 어려워지지 않습니까?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저는 40년 동안 모슬렘 세계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장기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입니다. 제가 어떤 기도회에 참석한 후 하나님이 주신 일입니다. 저는 ‘예쁜 자매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잘못된 동기를 품고 기도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모임에는 자매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슬렘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형제들만 모인 기도모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임에서 ‘조지 보어’라는 스무 살 청년이 제게 “당신은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할꺼야?”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남은 나라가 어디인지를 물었습니다. “리비아, 리비아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저는 리비아가 어떤 나라인지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철야기도에서 제 눈을 여시고 저의 꿈이 얼마나 작은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분이 저 같은 사람도 사용하신다는 사실에 감격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천 명의 장기 사역자들이 모슬렘 국가에서 사역하도록 돕는 도구로 저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실은  모슬렘 지역에서 선교하는 대부분이 서양선교사들입니다. 문제는 대부분 모슬렘 국가들이 서양 사람들에게 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바그다드에 미국 선교사를 보낼 수 있을까요? 레이건 대통령이 카다피 대통령 관저에 폭탄을 터뜨린 후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최근 ‘투르크메니스탄’이라는 나라에서는 모든 서양선교사들이 철수했습니다. 오직 네 가정의 선교사들이 지금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그들은 바로 한국 선교사들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한국 선교사들은 서양 사람들이 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란과 같은 나라도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 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입니까? 하늘 아래 구원받을 도리가 예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은 과장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선교프로그램을 지원합니다.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그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에게서 “잘하였도다”라는 말을 듣기 원하십니까?

● 천국 사건
우리 생애에 일어나야 하는 두 번째 흥분되는 일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 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예수님은 “너희를 영원의 처소로 인도할 수 있는 친구를 사귀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좌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들을 때 거기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각 나라와 족속과 민족의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 보좌 앞으로 나올 것을 말합니다.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어떤 성도가 다가와서 여러분을 뜨겁게 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눈을 들어 희어져 추수하게 된 곡식, 영혼들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저희 나라에 선교사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 선교사가 삼촌에게 얘기하고 삼촌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예수님 보좌 앞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영원히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인생의 한 부분을 헌신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장 15절은 말합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빌립보서는 선교사들을 도운 교회에 보내는 감사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15절에서 “나의 고난에 동참하는 빌립보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교제(참예)라는 말은 ‘모든 일을 함께 진행하는 가까운 관계’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은 선교사를 파송하셨습니다. 저는 한 성도님께 선교사들이 어디서 사역하고 있는지를 여쭈었습니다. 그분은 “전 세계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장로님께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가 어디서 사역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아프리카에서는 어느 지역에서 어떤 종족을 위해 사역하고 있는지도 질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파송한 선교사들이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사역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한 가정이 선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선교사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릴 수 있습니다. 기도제목도 나눌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17절에서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하고 말합니다.
우리는 장차 주님이 주실 영원한 상급을 얘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면류관을 원합니까? 무게가 15kg 정도인 금면류관을 원하십니까?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고 싶은 한 가지는 그 면류관이 바로 ‘영혼들’이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은 “여러분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받을 면류관들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면류관은 여러분을 영원의 처소로 인도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프린터로 출력한 어떤 용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용지를 들고 서 있을 겁니다.
제가 들고 있는 용지에는 저를 교회로 인도한 자매님 이름이 적혀 있을 겁니다. 저를 철야기도에 인도했던 형제님 이름도 적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힘껏 도왔던 OM국제 총재 ‘조지 보어’목사님 이름도 기록 돼 있을 것입니다. 아마 중국사람과 일본 사람과 터키 사람들이 들고 있는 용지에 여러분 이름이 적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아프가니스탄과 아랍, 걸프에 있는 나라들에 영적 부흥이 필요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에도 말레이종족을 위한 가정교회가 하나도 없습니다. 브루나이에도 크리스천 두 명이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소말리아에는 5~6명의 크리스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슬렘 땅의 영적 부흥을 위해 누군가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중국인 5%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습니다. 저는 회교도 5%가 주님 앞에 돌아와 경배할 것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그 일을 위해 여러분에게 뭔가를 보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모슬렘 땅 영혼들이
주님 앞에 돌아올 수 있도록
부족한 우리를 사용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온 땅에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도구로
우리를 사용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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