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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그리스도만 자랑하라 (빌 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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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리스도만 자랑하라 (빌립보서 3장 1~11절) 


인도네시아 정글에서 35년 동안 선교를 하신 존 윌슨 선교사님 부부와 점심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어떻게 그토록 오래 석기 문화권에서 선교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힘은 두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주님께서 당신들을 선교사로 불러 주셨다는 ‘소명’이 35년 동안 그곳에서 일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합니다. 둘째, 안식년을 마치고 그 땅으로 다시 돌아갈 때 갈등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현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샘물처럼 솟구쳐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고 합니다.
소명과 사랑! 이것이 그분들로 하여금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가게 하는 준거가 되었습니다. 이분들 이름이 이 세상에서는 유명하지 않아도 하나님나라에서는 영원토록 빛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마음에 있는 준거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고난과 갈등  속에 있을 때 신앙을 올바로 세우는 준거, 신앙의 나침반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본문 속에서 ‘세 가지의 준거’를 이야기합니다.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바울은 삼갈 것 세 가지와 행할 것 세 가지를 말합니다. 특별히 ‘삼가라’는 단어를 세번 반복합니다. ‘삼가라’는 것은 경계심을 품고 유심히 관찰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세 종류의 사람을 삼가하라는 명령이라기 보다는 구원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유대주의자들을 세가지 관점에서 묘사하는 것입니다.

▶개들을 삼가라
첫번째로 바울은 개들을 삼가고 성령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라고 명령합니다. 당시 초대교회의 가장 큰 적은 유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 복음’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록 십자가의 복음을 들었다고 해도 육체의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의 완성에 이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가만히 교회에 들어와 상하고 지친 영혼에게 접근해 유혹하거나 넘어뜨리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과 구원의 완전성을 부인하는 유대주의자들을 향해 ‘개와 같다’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당시 개들은 떼를 지어 거리를 활보하거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먹을거리를 훔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 개들은 관리가 소홀해서 더러웠고 심지어 질병도 옮겼습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거지 나사로가 부자의 대문 앞에서 아픈 몸으로 구걸할 때 그 헌데를 ‘개들이 와서 핥았다’고 했습니다. 불결한 개들이 나사로를 괴롭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신명기에는 창기와 개를 동일시 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나라에 결코 녹명되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요한계시록도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을 개로 표현합니다. 바울은 겉은 화려하나 속이 썩을 때로 썩고, 곪을 대로 곪은 유대주의자들을 ‘개’라고 일컬었습니다.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성경의 진리를 대적하는 이단들이 많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말세를 부르짖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제 2의 예수라고 주장하는 이단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거짓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교회의 복음으로는 구원을 얻기에 부족하다고 합니다. 결국 자기네 복음이 있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우리는 그처럼 ‘다른 복음’을 말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이 결국 무엇을 얘기하는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이 있고 경건하게 살아도 구원을 다르게 설명하거나 단계적으로 설명하거나 특별한 계시를 주장한다면 그들은 개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을 미덕으로 삼기에 원수까지 사랑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 용서하고 용서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교리를 말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용서에 앞서 ‘진리의 교훈’을 선포해야 합니다. 바른 진리를 선포할 때, 거짓이 사라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세례 요한을 배워야 합니다. 그가 광야에서 예수님이 오실 것을 외친 것처럼, 유대주의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하고 담대히 외친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진리를 이 시대를 향해 담대히 외쳐야 합니다.

▶진리로 예배하라
외치기 위해서는 먼저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에는 진리가 담겨 있습니까? 저는 온누리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뜨겁습니다. 참 신비한 교회입니다. 어떻게 보면 ‘온난리교회’ 같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를 다시 한번 보십시오. 바른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새롭게 나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무엇이 온누리교회를 이처럼 올바로 세웁니까? 저는 ‘큐티’라고 확신합니다. 예수님께서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신 것처럼 진리의 음성을 가슴에 담기 위해 머물러 있는 믿음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 개인의 영혼을 진리로 정화시킬 뿐만 아니라 온누리교회를 견고히 세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8월은 큐티를 새롭게 하는 기간입니다. 밥은 굶어도 큐티는 굶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나쳤으면 다시 하십시오. 그리고 한달동안 ‘생명의 삶’에 영혼의 일기를 기록하십시오. 삶이 바뀔 것입니다.
개들을 삼가하라고 말하면서 바울은 무엇을 주장합니까? 3절을 보면 ‘성령으로 봉사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봉사라는 단어는 그냥 일을 하거나 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 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절은 영적 예배에 대해서, 2절은 그 예배가 가능한 방법을 말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할 때, 영적인 예배가 가능합니다. ‘큐티’로 그렇게 예배할 수 있습니다. 큐티는 내 지식으로 성경을 보는 게 아닙니다. 그날 그 시간에,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음성을 듣는 것이 묵상이요, 큐티입니다. 2만 명의 성도가 매일 동일한 본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들을 때, 그 공동체는 정말 강한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2만 명의 성도가 한목소리로 함성을 외칠 때, 세상이 변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큐티를 하고 서로 나눔으로 진리가 더욱 풍성한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을 삼가라
두번째로 바울이 제시하는 신앙의 준거는 무엇입니까? 행악자들을 삼가하고 예수만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을 행악자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 율법주의자들은 스스로 정의의 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의 모든 세칙까지 어김 없이 지키려는 열심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열심히 율법을 따르는 삶이 왜 악입니까? 그것은 출발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도 그런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십자가’를 깨닫고 인간의 의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추악한 죄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경험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4~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는지 일곱가지로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그 중 네가지는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받았고 세가지는 자신이 이룬 것입니다.
첫째로 그는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세월이 흘러도 응답이 없자 사라의 유혹을 받아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결국 이스마엘과 이삭이 아브라함의 후예가 되었습니다. ‘8일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말은 이스마엘의 후예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13세에 할례를 받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약속의 후예이지, 인간의 법적인 근거를 통해 얻은 후예가 아닌 것을 강조합니다.
둘째로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족속’이라고 말합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싸워 이겼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낼 때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렇게 빼어난 중에서 또 빼어난 자요”라고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베냐민의 지파’를 언급합니다. 이 지파는 열둘 중에서 엘리트로 꼽혔습니다. 유다 지파와 함께 다윗의 혈통을 이었고 바벨론 포로 후 성전과 성벽을 재건할 때는 베냐민 지파가 앞장섰습니다. 또 바울의 옛 이름이 사울이었는데, 베냐민 지파의 첫번째 이름인 사울왕의 이름과 같습니다.
넷째로 “나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다”라고 합니다. 당시에 유대 사람들은 디아스포라로 모두 흩어져서 살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도 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살았습니다. 이들은 흩어져 살면서도 모국어를 잃지 않고 믿음의 순수성,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식들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히브리말을 할 정도로 순수한 혈통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뿐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으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바리쉬’ 즉 ‘분리하다’라는 의미가 있는 단체입니다. 이들은 율법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바리새인이라고 말할 때는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진정한 유대인’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바울은 바리새인 중에서도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열심’을 가장 중요한 종교적 요건으로 생각했습니다. 시편에 “주의 집을 위한 열심이 나를 삼켜 버렸나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한 열심으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합니다. 죄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율법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행함으로 죄를 가리우고, 자신의 의를 세워 완벽하게 했다는 뜻입니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 조금도 빈틈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 앞에서 어느 누가 “내가 당신보다 더 나은 유대인이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둠에서 빛으로
이렇게 철저히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 했던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을 만납니다. 홀연히 하늘에서 밝은 빛이 바울을 두릅니다. 그는 땅에 바짝 엎드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이 대답합니다. “주여, 뉘시옵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이 소리를 듣는 순간 바울의 모든 것은 바뀌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 바울은 다른 세계를 경험합니다. 칠흙같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것입니다. 어떻게 그 차이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헬렌켈러는 생후 6개월 후, 병으로 귀가 멀고 말을 못하게 되고 눈까지 멀고 말았습니다. 설리반 선생님은 손을 이용해 헬렌에게 언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괴팍한 헬렌은 잘 따르지 않습니다. 어느날 설리반 선생님과 실갱이 후에 헬렌은 목이 말라 펌프에서 물을 마셨습니다. 펌프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을 마시는 순간, 그녀는 “물”이라는 단어를 끄집어 냈습니다. 그녀가 처음 깨달은 단어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헬렌은 끊임없이 사물의 이름을 묻습니다. 어찌 그 세계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언어의 세계에서 비언어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바울은 십자가를 경험하고 알았습니다. 십자가 안에 놀라운 세계가 가 있구나! 이 안에 온 우주가 있구나! 이 안에 온 생명이 있구나! 이 세상 어떤 것도 그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7~9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그 무엇이 이 진리보다 강합니까? 그 무엇이 이 진리보다 가치가 있습니까? 주님보다 더 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1931년 미국의 한 보험회사에 다니는 세일즈맨이 MBC에서 하는 라디오공개노래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그가 들려준 저음의 바리톤은 전 국민을 매료시켰습니다. 그는 갑자기 유명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어두웠습니다. 아들이 출세할 기회를 얻었지만 어머니 역시 기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책상 위에 조그만 쪽지를 놓아 두었습니다. 밀러라는 부인이 쓴 성시가 적힌 쪽지였습니다. 어머니가 놓고 간 성시를 읽던 그는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고 멜로디가 솟아올랐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결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토마스 아퀴나스는 “저는 그리스도만을 원합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나의 진리이고 나의 생명이고 나의 삶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에 참된 만족은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진정한 만족을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진정한 만족을 주기 위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즐거워하며 자랑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소원을 묻는다면 여러분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되십시오. 주기철 목사님, 이영도 목사님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삶에 상상하지 못했던 하늘의 신비함이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비밀을 알았기에 마지막으로 ‘손할례당을 삼가고 육체를 자랑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할례는 언약의 표일 뿐 언약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참된 할례는 육체가 아닌 마음에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삶은 겉이 아닌 내면에 있습니다. 진정한 생명은 하늘 아버지에게서 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성령으로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육체를 자랑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참 할례당이라.” 여러분은 참 할례당이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만 자랑하게 하옵소서.
십자가를 알았사오니
모든 것을 가지고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십자가에서 출발하며
모든 끝이 십자가에 있게 하옵소서.
저는 그리스도만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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