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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크리스천 코드(살전 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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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코드(살전 5:12~18) 


성경을 보면 곳곳에서 독특한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코드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타를 배울 때 먼저 코드부터 배웁니다. G, C, A 코드…. 코드를 익히고 난 후 줄을 잡으면 소리가 화음이 되어 나옵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코드가 있습니다.

◆ 하나님의 코드 창조, 말씀, 약속, 구원
하나님의 첫째 코드가 창조입니다. 이 세상은 결코 진화한 것이 아닙니다. 우연히 생긴 것도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천지와 그 사이 만물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사고 방식은 하나님의 코드는 창조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언제나 창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흙으로 사람을 빚으사,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있는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놓고 보면 기독교의 특징 하나는 말씀이라는 코드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어라’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성경이고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중심으로 모든 것의 기준을 삼고 마지막 권위로 삼습니다. 우리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방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최고 권위를 가지고 때문에 혼돈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록된 말씀을 믿고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성육신하시는 성령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독특한 기독교인의 신앙 고백입니다.
또 하나 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특징은 ‘약속과 구원의 코드’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에 빠져 죽게 된 모든 인간들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의 코드 가운데 독특한 것은 ‘희생’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자신을 한 알의 밀알처럼 썩어지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 세상의 코드 무신론, 진화론, 유물론
성경에는 하나님의 코드가 있는데 세상에도 나름대로 코드가 있습니다. ‘무신론 코드’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마치 닻을 잃어버린 배와 같은 것입니다. 배가 떠다녀도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가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풍랑이 일 때 배가 묶여 있어야 하는데 줄이 끊어진 것과 같습니다. 인생에서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습니다. 인생에서 스스로 자신이 의미요 목적이며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자신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코드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과 과학 그리고 지성으로 기준을 삼습니다. 학문 과학 이성 경험을 중시하고, 경험이 없거나 이성에 맞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겁니다. 세상의 코드는 영이 없기 때문에 물질적인 유물론입니다. 모든 것을 항상 물질적으로 해석합니다. 
세상의 코드는 진화론을 숭배합니다.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운명론에 젖어 있습니다. 진화론도 나름대로 코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화적 사고 방식이 그것입니다. 그들은 생명을 조작합니다. DNA로 생명을 조작할 수 있으나 생명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절대 생명을 만들지 못합니다. 다만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필연이 아니고 우연이라고 주장합니다. 목적이 없기 때문에 생명보다 물질을 우선 생각합니다. 
불교에도 나름대로 코드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동그란 원은 시작도 끝도 없이 계속 되는 ‘무’라고 규정합니다. 그래서 불교의 코드에는 ‘은혜’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다만 ‘해탈’이라는 개념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도, 절대자가 주는 위로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불교에는 계시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셨다’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득도해 신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거니까 많이 힘듭니다. 불교 코드에는 창조, 비전, 개혁, 역사, 구원 등이 없습니다. 무한한 ‘무 ’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계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이슬람 코드는 ‘성전’입니다. 그들의 코드 자체는 전쟁입니다. ‘코란’이 아니면 죽음입니다. 나의 편이 아니면 모두 원수입니다. 이슬람 코드에 또 다른 중요한 것은 ‘복수’입니다. 사랑과 용서 그리고 생명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그래서 자살 폭탄 테러를 일삼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교육시키지 않고 모든 여자들의 얼굴을 가리게 만들고 오로지 ‘인샬라’, ‘알라’만 찾으며 인간을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월드컵을 치렀습니다. 새로운 응원 문화가 생겼습니다. 한순간에 붉은 티셔츠가 ‘레드 콤플렉스’를 몰아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정서는 붉은 것만 봐도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붉은 것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색하고 좋아합니다. 
성경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크리스천 코드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데살로니가 전서에 크리스천 코드가 있습니다. 네 가지 코드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2, 13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 크리스천의 첫째 코드 ‘공동체’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말씀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입니다. 기독교는 개인주의를 배격합니다. 하나님도 개인이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도 공동체입니다. 공동 조상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도 개인에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120명에게 공동으로 임했습니다. 기독교의 존재 양태는 언제나 공동체입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실패자, 어리석은 자나 누구든지 교회의 본질은 서로 끼고 사는 것입니다. 잘난 사람들끼리, 똑똑한 사람들끼리, 어떤 특별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존재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기독교는 서로 같이 함께 더불어 사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중에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어리석은 사람, 병든 사람, 서로 안 맞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랑 안에서 귀중히 여기고 ‘너희끼리 서로 화목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분열을 일으키고 편파당을 만든다면 크리스천의 코드가 없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인의 가장 큰 특징은 화해입니다. 고발하고 투쟁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코드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슬림의 코드입니다. 기독교인의 코드는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격려하고 화목하는 것입니다. ‘너희들끼리 서로 화목할 뿐만 아니라 서로 귀중히 여겨라’고 말씀하십니다.
사회 구성의 가장 기본 단위는 가정입니다. 가정에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기독교의 독특하고 유일한 코드입니다. 다른 종교는 대부분이 계급적이지만 기독교는 하나를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14절 말씀에 공동체에서 지켜야 할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이 말씀이 순의 원리입니다. 온누리교회의 핵심적인 본질은 순에 있고, 공동체에 있습니다. 공동체는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좋은 사람, 싫은 사람, 기준에 맞거나 맞지 않는 사람 등 다양합니다. 
주변에 규모 없이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감정적으로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권면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약한 자들을 위로하고 도와 주라, 힘이 없는 자들을 북돋워 주라, 모든 사람들에게 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공동체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로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가 사람의 공동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기독교 코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이 말씀에서도 개인적인 삶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코드를 누르면 음악이 나오듯이 기독교의 독특성, 크리스천의 코드를 짚으면 기막힌 연주가 연출됩니다. 13절에?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절에 ‘권계하고 안위하고 붙들어 주고 오래 참으라’, 15절에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항상 선으로 대하라’는 크리스천의 코드입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들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느끼게 됩니다.
전도한다는 것은 ‘예수를 믿어라’, ‘하나님을 믿어라’고 말하기 전에 나의 삶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얼굴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느껴야 되는 겁니다. 크리스천이 말, 생각, 행동, 돈 씀씀이 등에서 남들과 다른 이유는 코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 둘째 코드 ‘기쁨’
우리는 12~15절 말씀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공동체에서 서로 하나 되는 코드를 찾았습니다. 16절 말씀에 새로운 코드가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라’. 이 말씀을 잘 해석한 것이 빌립보서 4장 4~7절 말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독교인의 독특한 코드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기쁨의 코드는 외형적인 게 아니라 내면적인 것입니다. 진짜 기쁨은 내면적인 것입니다. 지워도 지울 수 없고 막아도 막을 수 없는 내면의 기쁨은 저절로 솟아나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은 크리스천이 갖는 독특한 코드입니다. 이런 기쁨은 주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고 또한 영원한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환경에 상관없이 기뻐할 수 있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 셋째 코드 ‘기도’
세 번째 코드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고 있기에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하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미래가 있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또 희망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절망과 좌절과 패배가 있을지라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가능성을 만들어 주고 미래를 열어 줍니다. 기도는 희망을 만들어 주고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기도가 노래요, 대화요, 찬송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의 몸 속에는 ‘기도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너무나 많은 기도를 발견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강조한 것이 기도였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면서 낙망하지 말 것을 어떤 과부를 예로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기적을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방법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의 모델’을 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 속에 기도의 코드가 심어지기를 축원합니다. 18절 말씀을 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 넷째 코드 ‘감사’
네 번째 코드는 감사입니다. 시편을 보면 감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 영혼아 감사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감사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가 있었는데 모두 고침을 받아도 한 사람만 돌아와서 감사했습니다. 감사라는 것은 십일조이고 귀중한 것은 모두 십일조에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고 있으면 어떤 불평도 내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절망, 좌절, 실패도 감사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도가 있어서 미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쁨이라는 코드가 있기 때문에 항상 충만합니다. 죽는 순간에도 우리는 감사합니다. <찬양의 능력>이라는 책에 이혼하면서 감사하여 재결합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쩌면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는 것은 재앙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만든 재앙도 있지만, 인간이 스스로 만든 재앙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재앙이라는 것은 지진 등 천재지변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재앙은 인간 스스로 만드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재앙을 축복으로 바꾸는 것은 감사입니다. 자식이 죽었을 때 감사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감사하십시오. 평생 일군 기업이 무너졌을 때 감사하십시오. 원하는 자리에 가지 못했을 때 감사하십시오. 그 감사는 천국을 만들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가 코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설계도, 계획, 방법, 비밀이다. 이렇게 살기만 하면 인생은 펴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가 결혼식 때마다 하는 설교는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말씀입니다. 앞으로 누가 결혼해도 설교를 바꾸지 않겠습니다. 그 말씀으로 똑같은 얘기를 많이 했는데, 설교할 때마다 은혜 받는 사람은 신랑 신부가 아니라 제 자신입니다. 믿음이라는 코드! 희망이라는 코드! 사랑이라는 코드!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부부 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꾸는 꿈이고, 서로 약점과 실수를 감춰 주는 사랑입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음이 나옵니다. 두 손으로 코드를 누르면 모차르트 음악도 나오고 베토벤 음악도 나옵니다. 코드대로 누르면 좋은 음악이 나옵니다. 잘못 짚으면 다른 음악이 나오게 됩니다. 또 바이올린도 정확한 코드를 켜야 좋은 음이 나옵니다. 믿음이라는 코드, 희망이라는 코드, 사랑이라는 코드, 그 코드를 붙잡고 있으면 병이 들었건, 사업이 망했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건 그리고 원하는 것이 전부 깨졌건 간에 코드대로 즐거운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 행복 코드 8가지
성경에 행복의 코드 8개가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깨끗한 자, 화해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천국은 그런 사람의 것입니다. 그 코드대로 누르기만 하면 천국은 우리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코드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한 달 반 정도 머물다 돌아옵니다. 헤어지기 섭섭해서 얼굴 한번 보고 설교하고 싶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번 여름을 위대하게 만듭시다. 무덥고 습기가 많은 날씨에 짜증도 나겠지만 창조적인 여름을 만들 수 있습니다. 8월 한 달, 유치부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성도들이 큐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큐티 노트에 자신의 신앙 여정을 기록하는 축복을 갖길 원합니다.
올해 8월에는 감사, 기쁨, 기도, 믿음, 희망, 사랑의 코드를 눌러 보십시오. 큐티 노트가 누구에게 전해져도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록으로 남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도들을 축복해 주시고
여름 한달 동안에
하나님의 위대한 연주가
삶을 통해 이뤄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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