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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 막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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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마가복음 10장 46~52절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히 여기더라" (마가복음 10장 46~52절) 
<목회기도>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죄와 허물이 많아 부끄럽지만
회개하며 정성으로 드리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무덥다고, 휴가라고, 이런 저런 이유로 주일 성수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에 소홀히 했던 여름을 회개합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열심을 품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회복하게 도우시옵소서.
하나님, 지난 7월초부터 시작된 여름행사가
몽골선교단이 귀국함으로 모두 마치게 되었음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말씀의 씨를 뿌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거두시옵소서.
이런 저런 일에 참여하여 섬기고 봉사한 이들
모두의 땀흘림, 물질의 봉사…
더 많이 더 크게 할 수 있는 복으로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오늘 예배 참석 못한 이들
믿음이 없어서 오지 못한 이들, 병들어 오지 못한 이들
군대에, 외국에 있는 이들, 저들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말씀 전하는 부족한 종,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고
목소리에 기름 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은 8월 18일입니다.
여러분 중에 오늘이 '특별한 날'인 분도 계시고
'일상적으로 지나가는 평범한 날'인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제가 군 생활을 한 지 2년이 되었을 때니까…
1976년 8월 18일에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UN군 소속 미군 2명을 도끼로 죽이고
9명은 중경상을 입힌 [8.18 도끼 만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군대 전체에 비상이 걸렸고, 제가 속한 부대에서도 실탄을 지급할 준비를 하고
일어날 지도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있던 부대에서는 머리카락 앞부분을 조금 자르고,
손톱을 깎아 봉투에 담고, 거기에 군번과 이름을 적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나 시체를 못찾게 되면
그것으로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지금 햇빛 정책을 쓴다고 하지만… 솔직히 저들의 속을 모르겠습니다.
하루 속히 통일이 되어 북쪽에 기둥교회 지교회를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1976년 8월18일 북한은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에서
나무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UN군 소속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는 국제적 만행을 자행하였다.
8월 18일 상오 10시 45분경 UN군 11명 (한국군 5명,미군 6명)이
한국노무자 5명과 함께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UN군측 제 3초소 근처에 있는 미류나무 가지를 치고 있을 때
북한군 30여명이 접근하여 가지를 치지 말라며 시비를 걸었고,
합법적인 절차를 따른 것임을 설명하던 미군장교의 뺨을 때리면서
더 이상 자르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이에 미군장교가 항의하자 북한군은 초소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30여명의 증원부대와 함께 폭력을 행사, 도끼로 미군 보니파스 대위와
발레트 중위를 내리쳐서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하고
9명의 한·미군 장병에게 중경상을 입히는 한편,
UN군 트럭 3대와 초소를 모두 파괴하였다.
사건 발생 후 미국 포드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은
모든 책임을 북한이 져야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주한 미군사령부는 데프콘 3 (전투준비태세) 명령을 내렸으며
또한 미국방부는 이날 밤 주한미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한
긴급조치로 오끼나와 등지의 전폭기 대대 및 해병대를
한국에 급파하고 항공모함 레인저호와 미드웨이호를
한국해역으로 이동시키는 등 강경한 대응태세를 취하였다.
 
21일 새벽 7시 UN군은 데프콘 2(전쟁돌입상태)하에서
문제의 미류나무 절단작업을 단행하였다.
한·미양국의 강경한 태세에 김일성은 인민군 총사령관 자격으로
21일 하오 스틸웰 UN군 사령관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옆의 분들과 "비에 피해는 없으셨습니까? 평안하십니까?"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허다한 무리들이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 생긴 일입니다.
그것은 '같은 관점에서 보았다'는 의미에서 <공관복음>이라고 하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모두 소개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을 기록한 것이지만 기록자에 따라 조금씩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 마태복음 10:29~34 에는 '두 소경'
- 마가복음 10:46~52 에는 '소경 바디매오'
- 누가복음 18:35~43 에는 '한 소경'의 이야기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세 군데에서 소개되는 이야기는 정황상으로 볼 때 같은 내용입니다.
오늘 저는 마가복음의 말씀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여리고 성 밖에 앉아 구걸하던 거지 디매오의 아들 소경 바디매오는
디매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바'자가 붙은 이름은 '~의 아들'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돌로매"라는 이름은 '돌로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때는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신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전하셨던 천국 말씀, 예수님이 베푸신 사랑,
베푸신 기적에 대해서 전해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눈은 감았으나 열린 귀로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롬10:17).
 
[귀가 보배]라는 말은 귀한 말입니다.
[귀가 보배]라는 말은 지혜로운 말이고, 성경적인 말입니다.
 
사람은 어떤 소리를 듣는 가가 중요합니다.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범죄합니다.
친구를 잘못 만나면 그 친구 소리 때문에 나쁜 길로 갑니다.
그러나 믿음의 소리를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여러분, 믿음의 소리를 내는 사람, 감사하며 사는 사람,
항상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과
가깝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잘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디매오는 사람들에게서 예수님에 대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 기적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 소망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 생명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 그 분을 만나면 삶의 전환점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막힌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리를 지른 바디매오
 
그러던 어느 날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가
자기가 사는 지역을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능력을 가지셨다는 분이, 그 기적을 행하신다는 분이 지나가신다는 소리에
길이시고 진리이시고 생명이신 예수님을 뵐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질렀습니다.
바디매오는 그냥 대화하듯이, 책을 읽듯이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바디매오는 큰 목소리로 소리 소리 질렀을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으면
주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겠습니까.
 
여러분 가운데도 교회에서 "주여 주여"라고 크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향해
"시끄럽다"고, "기도하면서 소리는 왜 지르냐"고,
"유별나게 기도한다"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정지어 말해서는 안됩니다.
다급해지면, 안타까워지면, 갈급해지면… 소리 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을 겪어 보세요. 소리 지르게 됩니다.
 
바디매오는 다급해져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하며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바디매오가 부른 예수님 이름 앞에는
메시야적 칭호 "다윗의 자손"이 붙어 있습니다(사11:1, 10, 렘23:5~6, 겔34:23~24).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 예수로,
나사렛 동네에서 자란 예수로 생각하고 말하였습니다.
바디매오가 듣기도(47절)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들었습니다.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구세주이신 예수여, 우리를 살려 주실 분,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입니다.
 
사실 '목수의 아들 예수, 나사렛 사람 예수'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도 2000여년 전 유대 땅에 살던 사람 예수,
로마의 통치에 방해가 되어 십자가에 처형당했던 예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에서 살았던 예수,
목수의 아들로 예수…를 아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 예수, 메시야인 예수,
구세주이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캄캄한,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를 불렀던 바디매오같이
여러분도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똑같은 소리를 듣고, 똑같은 설교를 들었다고 같은 반응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고, 어떤 사람은 투덜거립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가는데 기분 좋고 신나는 말은 안하고…
했던 얘기 또 하고…, 성경얘기 누가 모르나…
역사적이고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얘기, 새로운 얘기 좀 하면 안되나…"하며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성경말씀을 들으러 오는 곳입니다.
똑같은 소리를 들어도 예수님의 소리로,
똑같은 설교를 들어도 하나님의 소리로 받아 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믿음이 생긴 바디매오처럼
오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기고, 기적을 품은 사람,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마음을,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열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알고 들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에 대해 자신의 가슴 속에 품었습니다.
"그분을 만나야 돼.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은 구원자이시고 메시야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일을 쉽게 이룰 수 없었습니다.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 지르자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꾸짖었습니다.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눈뜬 사람…,  예수님을 보고 있는 사람…, 예수님을 만난 사람,
예수님의 주변에 맴도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못 만나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바디매오의 욕망을 짓눌렀습니다.
 
사실 이것은 기독교의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되는
중요한 문제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 믿은 사람, 먼저 예수님을 만난 사람,
예수님과 사촌쯤 되어 보이는 사람, 예수님과 가까워 보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려는 보통 사람들을 방해를 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지치고 곤한 사람들이,
눈감아 세상을 볼 수 없는 답답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할 때…
먼저 믿은 사람들이, 먼저 아는 사람들이, 눈 뜬 사람들이
예수님을 못 만나게 방해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도 처음으로 예수 믿고 교회에 나와
감격적으로 예배 드리려는 사람에게 먼저 믿은 사람들이 상처를 줍니다.
먼저 나와 봉사하기 시작한 사람, 오래 된 사람들이
새롭게 온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목사, 장로, 권사들이 화목하고 평안하지 못하여 다투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이 교회에서 발길을 옮기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믿은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소경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소리지르는 것을 보면
"예수님 만나고 싶으세요? 이리 오세요."하며 친절하게 소경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갈 것 같은데, 사람들은 소리지르는 소경을 향해
오히려 시끄럽다고 잠잠하라고 꾸짖으며 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각 부서에서 먼저 믿은 사람들, 먼저 나와 자리를 잡은 사람들
새롭게 주님을 만나려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안내자가 되셨습니까?
새롭게 주님께 다가서려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믿으려는 사람들을 좋게 영접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익숙해서, 잘 알아서, 너무 친하고,
너무 편하고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바디매오는, 예수님 곁에서 잠잠하라고 하며 접근을 막고
소리를 잠재우려는 사람들의 힘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디매오는 "더욱 심히" 소리 질렀습니다.
꾸짖는 자들의 책망에 상관없이 더욱 심히 소리지른 바디매오의 간절함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해가 생기면 포기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이 "안하면 그만이지"하며 포기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쉽고 간단합니까. 그만두면 됩니다.
포기하지 않으려니까 속상하고,
포기하지 않으려니까 땀흘리는 것이고, 눈물 흘리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포기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에 대한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를 부르라", "저 사람을 부르시오"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어진 기회도 누리지 못하는데
바디매오는 기회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방해가 있어도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바디매오와 같은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나는 저 사람 때문에 안해. 이 사람 때문에 안해."하며
사람 때문에, 사람의 방해 때문에 주저 앉고 포기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 예수 이름으로 섬기는 것은
사람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참 이상합니다. 예수님이 소리 지르던 바디매오를 부르시니까
조금 전까지 바디매오를 꾸짖고, 책망하며, 잠잠하라던
사람들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습니다.
49절에 보니 "안심하라(Be Strong!), 일어나라(Get up),
            너를 부르신다(Jesus is calling for you!)"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반응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이 응답하시면…, 하나님 마음에 합하여 하나님이 불러 주시면…
사람들도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문제는 우리의 소리가 얼마나 간절하며 얼마나 진실한가 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찬송이, 감사가, 봉사가 하나님께 들려지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시는가 그것이 문제이지
사람들이 우리를 아는가 모르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디매오는 뛰어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그렇게 목메어 부른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소리에
바디매오는 뛰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 나오기 위하여 다른 특별한 준비가 필요 없었습니다.
50절에 보니 겉옷을 벗어 던지고 나왔습니다.
속옷 위의 걸치는 겉옷이 아닙니다.
유대 팔레스타인 지역의 겉옷이라는 것은 벗으면 속살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입은 것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옷입니다.
거지인 바디매오에게 있어서는 재산 목록 1호인 귀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고,
무거운 짐이 되는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어 던졌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예배 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기 위해서
벗어 놓은 것, 포기한 것, 내던진 것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들은 과연 예수님 앞에 나오면서
자기 만족의 겉옷, 체면의 겉옷, 자존심의 겉옷, 학문의 겉옷,
신분의 겉옷, 생활의 겉옷, 돈의 겉옷…이런 겉옷들을 벗어 던지셨습니까?
 
▶ 히브리서 12장 1~2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얽매이기 쉬운 것을 벗어 버리지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예수님 앞에 선 바디매오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What do you want me to do for you?)
바디매오는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짧고 분명히 답했습니다.
 
여러분,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기적을 베푸신 분이,
능력이 많으신 분이, 물 위를 걸으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신 분이…
갖가지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이
"내가 무엇을 해 주었으면 좋겠소?"라고 했을 때
거지 바디매오에게 필요한 것이 "보는 것" 뿐이었겠습니까!
제 생각에 거지인데 '돈'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신다고 옷을 집어 던지고 왔으니 '새 옷'도 필요했을 것이고
길가에서 구걸하던 거지니 집도, 직장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단지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답했습니다.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우리들이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한 가지만 해결되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해결되는 데
거지가 눈을 뜨게 되면 돈도 벌 수 있고, 집도 지을 수 있고,
직장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을 알고 있는데…
우리들은 모두 다 필요하다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가장 중요한 "한 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갖기 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기도 제목에 '이것도 달라, 저것도 달라'
달라는 것이 너무 많아 하나님도 답답하실 것입니다.
어떤 글에 "세상의 크리스챤들이 달라고 기도하는대로 다 주려면
하나님도 파산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말에 동감입니다.
 
▶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기도는
"하나님 일단 이 모든 것을 줘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가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나머지는 자동으로 해결해 주시겠다고 하는데도
우리는 필요한 것을 먼저 달라고 요구합니다.
 
▶ 시편 23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했는데
우리는 "내게 부족함이 없으면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겠습니다"고 합니다.
한 가지를 바르게 구하면 될 것을,
엉뚱한 다른 것을 구하고 사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방학이 있습니까?  공부에 방학이 있습니까?
학교에서 방학을 하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 것 뿐이지
배움을 그만두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여러 권의 책과 잡지를 읽고,
인터넷으로 여기 저기 발표된 논문을 살펴 보았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겠습니까!
더욱이 신앙생활에 방학은 없습니다. 여름이 되었다고 쉬어서는 안됩니다.
 
미국의 미네소타 주 레드레이크 풀스에 있는
성 요셉 공동묘지(St. Joseph cemetery)에서
어느 가을에 이색적인 공고를 신문에 게재했습니다.
"11월 15일부터 겨울 3개월간 문을 닫겠사오니
그 사이에 죽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 마을의 목사님이 다음 주일 설교 제목을
교회 게시판에 즉시 써 붙였습니다.
"죽음에는 휴일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에는 휴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운행하시는 이 세상에는 휴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 지키며 성실하게 바르게 살다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언제나 주님을 만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찾았던 바디매오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즉시 예수님을 쫓는 자,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환경이 좋아졌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소경 바디매오는 눈을 뜨자마자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기둥교회에도 생활이 나아지면 신앙생활을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경이 좋아졌다고 해서 믿음도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디매오처럼 믿음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주님을 부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방해와 장애를 극복하는 신앙생활 되시기 바랍니다.
겉옷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소원을 이루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응답 받는 삶을 산다면,
범사에 매 순간 순간 말에나 일에나
다 주님을 따르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을 아뢰십시오.
매일 매 순간 주님을 따르는 자가 되십시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소경 바디매오같이 주님을 부르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듣고 그치는 자가 아니라
말씀대로 살려고 결단하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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