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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사로와 헤롯의 애가 / 예레미야 애가 3:22 ~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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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사로와 헤롯의 애가

구약의 말씀: 예레미야 애가 3:22 ~ 24
주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주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신실이 큽니다."
나는 늘 말하였다. "주는 내가 가진 모든 것, 그러하기에 주께 내 희망을 건다."

구약의 말씀: 예레미야 애가 3:31 ~ 33
주께서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주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우리를 괴롭히거나 근심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본심이 아니다.

서신서의 말씀: 사도행전 12:20 ~ 23
그런데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에게 몹시 노여움을 사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뜻을 모아서, 왕을 찾아갔다. 그들은 왕의 침실 시종 블라스도를 설득하여 그를 통해서 헤롯에게 화평을 청하였다. 그들의 지방이 왕의 영토에서 식량을 공급받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지정된 날에, 헤롯이 용포를 걸쳐 입고, 왕좌에 좌정하여 그들에게 연설하였다.
그 때에 군중이 "신의 소리다.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하고 외쳤다.
그러자 즉시로 주의 천사가 헤롯을 내리쳤다. 그것은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벌레에게 먹혀서 죽고 말았다.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 11:38 ~44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하게 여기시면서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문은 돌로 막혀 있었다. 예수께서 "돌을 옮겨 놓아라"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다가 말하였다. "주님,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어서 벌써 냄새가 납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사람들이 그 돌을 옮겨 놓았다. 예수께서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시는 줄 압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둘러선 무리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하고 외치시니, 죽었던 사람이 나왔다. 손발은 천으로 감겨 있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매여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서 가게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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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계절이 되어서, 들판에 나갈 때마다 감격을 맛보게 됩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하늘은 높은 천고마비 시절, 여러분에게 큰 복이 있으시길 빕니다.
들판을 거닐면서, 씨앗이 봄에 파종되어서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 것을 볼 때마다 경이롭기가 그지없습니다. 제가 최근에 전문 서적 하나를 읽었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식물의 생장에 관한 것인데, 뿌려진 씨앗이 땅에 묻혀서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 맺기까지, 필요한 자양분 중에 땅에서 얻는 것은 전체 자양분의 10%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자양분은 땅 위에 있는 바람과 태양과 공기와 또 우리 인간들의 보살핌, 이것들이 90%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좋은 열매, 좋은 곡식을 거두려고 하면, 땅 아래도 좋아야 하지만, 땅 위의 환경이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요즘에 이런 분석 하나 내놓은 걸 읽어 봤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사건들이 무수하게 전개됩니다. 어떤 사건은 그냥 묻혀지기도 하고, 또 어떤 사건은 생기자마자 확대되어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라는 것을 저울추에 달아보면, 그 가운데 사건의 팩트(fact) 곧 사실을 구성하는 요소 자체는 10% 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그 사건의 반향, 파장, 관심, 의미, 해석이며, 이런 것들이 다 합해져서 우리가 말하는 사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 있는 사실의 구성요소는 10% 밖에 안 된다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생각한 것은, 10%와 90%의 차이라니 엄청나구나 하는 것과, 또 하나는 나머지 90%라고 하는, 사건과 관련된 모든 파장들이 어떻게 연관되는가, 누가,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어디서, 왜 일을 저질렀기에 그것이 사건이 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다 사건이라고 하지 않으며, 또 모든 사건들이 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고 보는 사건들을 추려서 역사라는 것을 기록합니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역사라는 것을 영어로는 history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성들 하는 말이, 역사는 남자의 역사밖에 없느냐고 따집니다. history 는 his-story 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성의 역사라고 하자, her-story라고 하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남성의 이야기든 여성의 이야기든 사실은 그 둘이 나눠질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역사입니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사실적 구성요소, 곧 facts 를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거기에 따라붙는 의미와 해석과 파급 효과까지를 합하여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역사관"이 없는 역사는 없습니다. 독일말로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Historie 라고 하고, 반응과 파급효과를 다 합쳐서 "의미 있는 역사"를 Geschichte 라고 하여 둘을 구분합니다. 어쨌든 있는 사실 그대로의 사건이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 도전도 하고 의미도 주는 역사가 문제입니다.
과거에도 그랬습니다만 최근 우리 세계사를 보면, 스캔들과 같은 부정적인 사건들도 있었고, 또 긍정적이고 좋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닉슨 대통령이 탄핵을 받아서 대통령 직을 사임하게 된 사건의 이름이 "워터게이트"입니다. 아마 그때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에는 전부 "게이트"(gate)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 같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탄핵은 면했지만, 탄핵 직전까지 간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을 "지퍼게이트"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도 게이트라는 말이 들립니다. 우리 언론에서 벌써 금융사건을 일으킨 어떤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아무개 게이트"라는 말이 나옵니다. 사건의 파장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게이트라는 말은 문 가운데에서도 큰 대문을 가리키는데, 대문을 잘못 열어놓았더니, 문제가 생긴다는 뜻으로 이 말이 사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우리말로는 게이트라고 할 만한 사건을 "풍"(風)이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선거 때 등장했습니다만, 총풍(銃風)도 있었고 세풍(稅風)도 있었고 병풍(兵風)도 있었고, 이 "풍"자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풍자가 붙여지면 이거 큰 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아주 좋은 풍이 하나 생긴 것 같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일년 내내 쌀을 풍족히 먹어도 3,000만 석이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쌀이 풍년이 아니라도 연간 3,200만 석이 됩니다. 200만 석이 남습니다. 남는 것을 정부가 수매하려면 수매가를 놓고 농민과 갈등이 벌어집니다. 또 수매를 해도, 이 200만 석은 따로 저장을 해야 하는데, 저장하는 데 돈이 듭니다. 그런데 요즘 야당 제안이, 이 200만 석을 수매가도 농민들에게 더 많이 줄 겸, 고난 당하는 북한에 먹을 것도 줄 겸, 북한에 주자는 것입니다. 여당에서 좋다고 화답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상생 정치 하나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 풍을 무슨 풍이라고 부르냐 하면, 쌀풍, 그러니까 미풍(米風)입니다! 그런데 하는 일들이 너무 보기에 좋아서 아름다울 "미"자를 써서 미풍(美風)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게이트도 좋은 게 있을 수 있고, 풍도 좋은 게 있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감사함으로 가슴에 새길 수 있는 사건, 또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진절머리나는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 항상 일어납니다.
이천 년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오늘 성서 본문에 두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 당시에 사건 하나가 있었고, 예수께서 돌아가신 뒤에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먼저 예수 이후의 사건 하나를 소개합니다. 당시 유대 땅을 통치한 것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총독을 보내서 직접 통치를 했으나, 처음에는 유대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서 간접 통치를 했습니다. 그때 대리통치자로 있었던 사람이 헤롯 왕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본문에 짧은 이야기 하나가 있는데, 헤롯 왕의 죽음에 관한 기사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헤롯이 왕으로 있으면서, 성서에는 분봉왕이라고 되어있습니다만, 엄청난 농토를 소유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농토에서 소작 일을 하고 살았습니다. 소작농으로서 지주에게 엄청난 양의 소출을 바쳐야 했을 뿐 아니라, 로마 제국에 세금도 바치고, 헤롯 왕가에도 바치고, 성전세도 바칩니다. 그런데 흉년이 들면, 소작농들은 세를 제대로 바칠 수 없어서 지주에게 크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불이익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 불이익이 너무 커서, 농민들이 헤롯에게 선처를 요구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로와 시돈에 있는 백성들이 침실을 지키는 보좌관을 통해서 헤롯에게 화평을 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헤롯이 이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백성들을 모았습니다. 헤롯이 연설대에 섰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헤롯의 마음을 녹일 양으로, "왕이 하시는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신의 음성입니다." 하고 소리칩니다. 최고의 아부입니다. 헤롯은 기고만장하여, "짐이 국가니라"라고 했던 프랑스의 루이 14세처럼, "내가 하는 말은 하늘의 음성이니라" 하고 얼마나 교만했는지, 이어지는 기록에 보면, 천사가 와서 헤롯이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는 것을 보고, 헤롯을 내리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헤롯은 벌레에 먹혀 죽었습니다. 이 기사가 사도행전에 헤롯에 관하여 나오는 기사입니다.
헤롯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 그것은 이런 저런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일제에 식민지가 되기 전에 이완용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 일제와 협력해서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운 사람, 그 이완용을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봅니까? 굳이 답변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유대 백성이 헤롯을 어떻게 봤겠습니까? 헤롯은 이완용보다 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완용 당시 나라가 넘어가는 이런 상황에, 고종황제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불신과 좌절의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불신과 좌절이 얼마나 깊었느냐 하면, 주변에 있는 시종들도 믿지 않고, 몇 안 되는 미국 선교사 부인들이 해다 주는 밥만 먹고 음료만 마시고, 그 외에는 일체의 접촉을 끊었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이야기입니다만, 이 과정을 통해서 오늘의 서울대학병원이 된 광해원이 생겨났고, 세브란스 병원도 생겨났고, 미션스쿨들도 생겨났고, 그것이 복음의 확대가 위로부터 일어나는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의 기독교 역사를 아래로부터 시작된 역사라고 합니다만, 이것은 상류계층으로부터 협력도 받은 기독교의 일면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물론 하류계층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도 많았습니다. 동학농민혁명 때 동학도들이 승승장구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만, 끝내는 일본의 신식 군대에 패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았고,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이런 역사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십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도망 다니던 동학 농민들에게 피할 곳을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게 누구냐 하면, 예수 믿던 사람들, 서양의 선교사들이 동학농민들을 숨겨주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동학과 서학은 서로 다르지만, 당시에 서로 도와주곤 했기 때문에, 1907년 나라를 빼앗긴 뒤 기독교가 그 슬픔 위에서 대부흥운동을 일으켰을 때, 새로운 결신자(決信者)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위로부터는 나라를 잃은 설움 때문에 의지할 곳이 없었던 사회 지도층이 신자가 되었고, 아래에서는 동학농민운동 때 함께 했던 많은 농민들이 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위로부터의 교회, 아래로부터의 교회, 이렇게 해서 한국교회가 출발하였습니다. 지나간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이런 출발이 지금도 우리 사회의 교회 구성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헤롯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헤롯은 살아 생전에 자기가 고용한 많은 사람들, 분노와 좌절이 응축된 사람들에게 한번도 사랑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결국 군중들은 "신의 소리다,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하며 그의 교만을 부추겼습니다. 천사가 내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벌레에 먹혀" 죽게 했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이것은 "헤롯게이트" 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위대했던 왕, 엄청난 힘을 가졌던 왕이 드디어 벌레 먹혀 죽다." 아마 유대 땅 전체를 풍미했던 소문이었을 것입니다. "헤롯게이트," 벌레만도 못했던 인간 헤롯의 이름은 이때부터 악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또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헤롯과는 정반대의 삶을 산 사람이 있었습니다. 평범한 인간 나사로! 그의 누이 마르다는 동생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만 아니라, 어떻게 가정 경제를 이끌어야 할지, 식구들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착하기만 했던 나사로의 죽음이었기에, 그 죽음의 행렬을 따르던 많은 유대인들이 슬피 울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입니다. 너무 울고 슬퍼서 그 광경을 보던 예수님까지도 눈물을 흘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착하게 살았던 나사로의 주검, 예수께서 지금 그 주검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누이 마르다가 얘기합니다. "선생님께서 일찍 와 주셨더라면 동생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을…왜 이제 오십니까?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예수의 말씀입니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 문을 열어라."
유대 땅의 무덤 문은 돌문입니다. gate라는 말로 표현하자면, Stone Gate입니다. "돌문을 열어라." 문을 열자, 나사로한테 "나오너라." 그랬더니 나사로가 살아서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벌레에 먹혀서 죽고, 한 사람은 나흘 동안 시체로 썩다 살아나서 예수 앞에 와 있습니다.
두 사람의 신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환경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죽음에 관련된 상반된 판단입니다. 헤롯이 죽게 된 것, 곧 천사를 통해 헤롯을 치신 것은, 헤롯이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깔아뭉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벌레를 통해서 죽게 해야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에 있는 나사로를 살리신 기록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마르다야, 내가 언제 말하지 않았느냐. '나를 믿어라.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다' 하고 말하지 않았느냐." 마르다가 그 말씀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으면 벌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면 죽은 자도 살아납니다. 오늘 두 사건의 차이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하면 높이는 것이고, 어떻게 하면 짓밟는 것입니까?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말씀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느니라." 믿는 일과 영광을 위하는 일, 두 가지가 합쳐지면, 나사로 사건과 같은 사건이 생깁니다. 믿음이 사라지고 영광이 짓밟히면, 헤롯 사건과 같은 사건이 벌어집니다.
믿는 게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다음, 우리한테 "나를 믿으라, 그러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나사로를 살린 사건은 십자가 사건 이전입니다. 나사로를 통해서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 "믿어라," 이 말의 뜻은 이렇게 해석됩니다. "죽은 나사로의 죽음 속에서 앞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을 내가 함께 죽겠다. 그걸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걸 믿는다면 살아난 나사로는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를 대신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속에 저도 함께 죽겠습니다."
예수의 죽음 속에 내 죽음이 있고, 내 죽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있습니다. 나는 죽음 속에서 예수와 하나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첫째 선언입니다. 이 선언이 있으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고 이 선언이 없으면 영광이 없습니다.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나의 죽음은 나만의 죽음이 아닙니다. 예수의 죽음 역시 그분만의 죽음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그분만의 이야기, 그분만의 역사가 아닙니다. 그분의 역사는 내가 포함되어 있는 역사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나의 죽음은 똑같은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죽음 속에, 골고다 언덕의 죽음 속에 죄인인 내가 함께 죽어갑니다. "이 죄인을 받아 주십시오." 고통과 죽음으로 내던져진 내 삶 속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오셔서 함께 고통하고 죽어 주십시오. 이걸 저는 믿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첫째 되는 선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고 하거든 나와 함께 죽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려고 하거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예수는 우리와 함께," 이 선언을 오늘 예수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선언이 없으면 헤롯의 죽음과 우리의 죽음은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런 믿음을 선언하고 믿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사실 오늘 우리는 미국 테러 참사라는 초유의 비참한 사건 속에서 한 가지 공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테러라 이름하는 폭력은 무슨 이유에서라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누구에 의해서도, 무슨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근절되어 마땅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테러를 근절시키기 위해서 폭격과 전쟁이라는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견이 갈립니다.
자, 예수의 십자가를 보겠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유대교와 로마와 군중들이 공모한 하나님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러나 자기들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부정한, 하나님의 영광을 참담하게 만든 예수라는 사람에 대한 거룩한 전쟁의 선포입니다. 자기들 말로 이름하여 "성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하는 "거룩한 전쟁"이나, 그와 대비되는 아랍사람들이 말하는 "지하드"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을 예수한테 선포하였습니다. 그 예수한테, 하나님한테 바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테러사건입니다. 하나님이 테러를 받은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테러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테러를 받고 어떻게 응징했습니까? 유대인들이 조롱합니다. "당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거기서 내려와라. 십자가를 없애버려라. 하나님의 아들인지 보자." 예수는 잠잠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전쟁을 선포한 테러범들에게, 종교적 이념적 체제의 테러범들에게 보복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의 죄를 내가 받으마. 너희들의 죄를 내가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마." 죄를 끌어안고 대신 죽고, 죄의 원인인 죽음은 삼켜 버리고, 그래서 십자가에 달렸는데, 삼일만에 부활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테러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은 테러의 원인인 죄악과 죽음을 없애는 것이었습니다. 만약에 당시 젤롯당들이었다면 "폭격"하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폭격은 또 하나의 악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전체 세계는 참으로 괴롭고 슬픕니다. 어떻게 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까? 헤롯의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의 방법으로 한번 해결해 보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미국에서 발생한 사건을 놓고 "이것은 당신들의 사건이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사건입니다. 미국만이 테러를 당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당했습니다.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 "미국인들 당신들이 알아서 해결하시오. 폭격을 하든, 전쟁을 하든!"이라고 하는 것은 신앙인의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테러를 당한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테러의 원인을 없애신 것처럼, 지금 우리는 전쟁과 보복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평화를 찾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예수의 말씀입니다. "너희들의 고난과 슬픔과 죽음 속에 내가 함께 있겠다. 나와 함께 악의 뿌리를 뽑자. 죽음도 삼키자. 모두에게 구원을 베풀자." 이것은 나사로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나사로 사건을 오늘 예수의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헤롯의 사건은 아닙니다. 헤롯의 오만은 천사에게 맡깁시다. 그를 응징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맡깁시다. 지금부터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산 평화의 힘, 영원한 힘, 그것을 서로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의 죽음이 나의 죽음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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