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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선물 / 전 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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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5:10-20
"하나님의 선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생길만큼 한해 중 가장 풍성하다는 추석 명절을 지냈습니다. 반갑고, 즐겁고, 행복하셨는지요. 아마 그런 격언이 붙게된 것은 이때가 결실과 추수로 인해 가장 풍요로운 계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꼭 물질이 넉넉해서만이 아니라 그 풍성함을 서로 더불어 나누려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격언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던 달밝은 한가위 밤에 서로를 생각하며 추수한 볏단을 몰래 옮겨다 주던 형제의 마음, 바로 그 마음이 이 한가위의 정서를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도입되고 점차 물질만능시대가 되어가면서 피부에 와닿는 한가위 풍경이 예전같지만은 않습니다. 분명 물질적으로 더 넉넉한 시대를 살면서도 삶이 넉넉하지 못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고, 이전보다 더 여유없고 각박한 삶을 사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세상 사람들처럼 만족과 감사보다 불만과 짜증섞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불만과 짜증은 주로 물질의 결핍과 비례해서 나타납니다. 이웃과의 비교, 남과의 경쟁 속에서 더 갖고, 더 채우기 위한 치열함이 삶인 것처럼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는 더욱 부가 목적이 되는 경쟁과 쟁취의 시대, 살벌한 전쟁터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경제적 성취가 인생의 지상과제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시대가 바로 오늘 우리들의 시대입니다.
그럼 '모든 길은 경제로 통한다'고 할만큼 돈의 위력이 대단한 이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 복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부의 축적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한 부자처럼 '내 영혼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내 곡간을 헐어 더 크게 짓고 거기에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쌓아두었노라...' 이것이 현대인이 부르고 싶어하는 개선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이 노래를 18번 삼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님은 그 부자의 인생을 가리켜서 '어리석은 인생'이라 하시니 어찌된 것입니까?

전도서가 기록되던 주전 3, 4세기 또한 오늘날과 같이 경제적 성취가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던 시절이었습니다. 정치 경제적으로는 프톨레미 왕국, 사회 문화적으로는 헬라 문화의 영향권 아래에서 '세계화'에 몰입되어 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니까 전도자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비슷한 사회 경제 문화 환경 속에서 그 시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갈등했던 사람입니다.
사실 '세계화'라는 말이 우리에게 그리 호감가는 단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계화' 운운하더니 얼마 가지않아 IMF를 맞았고 경제가 꼬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외의 문화적 혼란 또한 얼마나 어지럽습니까? 유대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밀려오는 헬라 문화의 우월감과 낙관주의가 팽배해져 가면서 부유한 유대의 상류귀족들은 최고의 것들을 경쟁적으로 더 많이 소유하려 했습니다. 소위 '명품족'이 탄생한 것입니다. 저들은 헬라적 사고와 관심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였고 부의 축적과 사회 계층의 상승 욕구를 강하게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경제력 획득과 사회적 성공에 대한 욕구는 헬라왕국의 귀족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금력, 권력, 쾌락의 맛을 알았고 그 정점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성공인생'이었습니다.
그리고 '헬라화'라는 시대 정신에 휩싸여 세계를 향한 진출과 성공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유대의 젊은 세대들조차도 거기에 심취해 그 무한한 기회와 가능성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져 갔습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이 권력과 금력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그것을 얻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절에 신앙과 삶의 문제로 갈등하던 한 현인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전도자입니다. 그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 인생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진정한 삶은 어떤 것일까?...' '삶의 참의미는 무엇이고 그 가치는 무엇일까?...' 전도서는 바로 그 현인이 모든 인생의 가장 큰 관심인 부의 문제를 어떻게 고민했고 또 그 해결책을 어떻게 찾았는가를 보여주는 자기경험적 기록입니다.

전도자는 먼저 '인생에 있어 부가 무엇인가'를 사색합니다. 모든 인생들이 혈안이 되어 좇는 저 부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그는 10-12절에서 부의 속성을 표현하는 속담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속담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다"는 겁니다. 부라고 하는 것은 결코 만족될 수 없고 오히려 인간의 욕심을 증가시키는 속성이 있다는 겁니다. 부가 아무리 많이 축적되더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또 돈을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 '충분하다', '이젠 됐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즉 전도자는 채워지지 않는 부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지적하면서 그것은 먹으면 먹을수록 갈증을 느끼는 '바닷물 같은 것'임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부에 관한 그 당시의 전통적인 가치는 '부란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선물'로 간주되었습니다. 부는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복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건 틀림없는 말입니다. 그런데 전도자는 그러한 부의 개념에 새로운 관점을 하나 더 부연합니다. 그것은 '부가 하나님의 선물이되 그러나 만족되지 않는 부는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만족할 줄 알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건 결코 하나님의 선물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부와 관계된 속담을 이어갑니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전도자는 재산이 늘어나면 느는 것만큼 그것을 소비하는 주변 인물들이 함께 증가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부를 자신이 누리는 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그 부를 소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획득한 부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는 그 부의 축적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결국 부의 축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소비도 증가하고, 부가 쌓이는 만큼 나가는 곳도 많으니 그 애씀이 다 헛수고가 아니냐는 겁니다. 정작 부의 주인은 그 열매를 즐길 기회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부를 소유한 사람이 맛보는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기껏 그의 눈으로 자신의 재산을 볼 수 있는 것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그것이 무슨 유익이냐며 '그게 다 헛된 일'이라고 사람들이 대단하게 여기는 부의 의미를 축소시킵니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부가 결코 축복일 수 없는 셋째 이유를 1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노동자는 숙면을 취할 수 있지만 부자는 불면에 시달린다는 것입니다. 왜 부자가 잠 못이루는 걸까요? 그것은 재산증식에 과도하게 몰두하기 때문이거나, 재산의 손실에 대한 불안 때문일 수도 있고, 또 지나친 과식으로 인한 소화불량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어쨋든 부자는 가난한 자보다 불안의 요소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부자라 하더라도 그 어떤 이유에서건 잠조차 못들고 불면으로 고생한다면 그는 인간에게 부여된 행복의 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전도자는 이러한 부와 관련된 세 가지 속담을 통해서 부와 만족의 관계는 결코 비례하지 않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부가 행복한 인생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반드시 가치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부를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혈안이 되어 다른 것에 다 눈멀어가면서 찾고 있느냐는 안타까움을 그는 토로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이고 목표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겁니까? 어떻게 하든지 부를 모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사는 우리들 아닙니까?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게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끼쳐줄지도 모르면서 그저 그것을 목표로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 아닙니까?...

전도자는 이제 13-17절에서 앞의 속담 속에 담겨진 그러한 부의 부정적 속성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열거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재물이 인생에게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무엇인지, 그 병폐가 무엇인지를 하나 하나 짚어갑니다.
부의 첫 번째 병폐는 '재물이 오히려 그 소유주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7절에서 전도자는 부를 좇는 자의 한평생이 근심과 병과 분노로 특징지어진다고 말합니다.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 불면에 시달리고 불안해 하고 근심케하는 삶을 바로 그 부가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숙면과 평안과 안식을 주는 게 아니라 그 반대의 것들을 인간들에게 제공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병폐는 15절에서 보듯이 자신이 수고해서 얻은 재물을 필요한 때 사용하지 못하고 또 죽을 때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그렇게 아둥바둥 긁어모아봤자 결국은 풀린 손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고 돌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많은 재물을 수고하여 얻었음에도 죽을 때는 정작 빈손일 수밖에 없는 인생의 허무를 알라고 전도자는 외칩니다.

힘들여 얻은 부를 모두 뒤에 남겨야 하는 일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것을 고스란히 놓고 가는 인생이 얼마나 아쉬움이 크겠습니까? 그걸 가져가겠다고 금고 열쇠를 꿀꺽 삼킨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만은 결국은 고스란히 다 놓고 가는 게 인생인 겁니다. 그러니 부를 모으기 위한 수고와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겁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지닌 재산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계속 쌓는 일에만 집중하는 인생들이 많더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의 속성을 재빨리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제가 서울 영락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 그 교회 어느 권사님 내외분이 회갑연을 하면서 이런 인사말 하는 걸 들었습니다. '저희 내외는 이북에서 내려온 후 좀더 잘먹고 잘살아보려고 죽기살기로 재물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제법 부를 모으고 난 오늘엔 잘 먹을래야 잘 먹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 내외는 당뇨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기껏해봐야 보리밥 한덩어리밖에 먹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재물의 덧없음을 깨닫고 저희 모든 재산을 순교자 기념관 부지로 기증합니다...' 그래서 세워진 것이 바로 경기도 용인의 순교자 기념관입니다.
20년 목회생활에 이런 분들을 몇분 만났습니다. 자기의 전재산을 교회의 자라나는 세대들 중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써달라는 분, 사회봉사관 건축을 전담 지원해서 그 건물에 자신의 삶을 아로새기는 분 등등... 그게 바로 행복과 보람있는 생이 아니겠습니까?
에머슨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살기위해서 준비는 하나 정말 삶답게 살아보지는 못한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 주어진 행복을 다 흘러버리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전도자는 바로 이러한 인생의 어리석음을 발견한 겁니다. 주어진 현재를 누리며 살지 못하고 확실치도 않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리며 사는 겁니다. 그렇게 살다 죽음이 덜컥 다가오면 그제서야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미련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겁니다. '더 살고 싶다'며, '더 살아야 한다'며, '이렇게 가기엔 내 생이 너무 억울하다'며...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일까요?...

전도자는 부를 좇는 인생이 겪는 좌절과 의문을 깨닫고 그 문제를 풀려고 애썼던 사람입니다. 그 또한 큰 사업을 벌여보기도 하고 재물이 주는 쾌감을 만끽하기도 했던 자입니다. 그러나 그게 다 바람잡는 일이요 헛된 일이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거기에 진정한 인생의 행복이 있는 게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경험해 본 전도자는 부의 한계와 부정적 속성을 지적한 후 진정 행복한 삶을 위한 그 대안을 18-20절에서 제시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인생의 참의미는 지극히 단순한 곳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어진 것을 먹고 마시며 자신의 일을 즐거워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주어진 일상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갖고 사느냐에 행불행의 갈림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18절 말씀을 보면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은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충분히 누리는 생이 복된 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현재 나에게 주신 것들을 한껏 즐거워하며 만끽하며 사는 겁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알고 이에 만족하고 즐거워하고 누리는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19절에서 바로 그것이 인생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은 아닙니다. 그 부가 하나님이 주신 복이 되려면 내가 그 소유에 만족해야 합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채 결핍만을 아쉬워하며 재산을 모으는 일에 혈안이 되고 그 일에 심취해 사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좌절과 허탈과 후회만을 가져올 뿐입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서는 결코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서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18절과 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바...',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은 인간이 지닌 모든 소유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많든 적든 하나님이 주신 현재의 소유에 만족하고 즐길 수 있을 때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즉 '생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은 현재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을 때 맛보는 은총인 것입니다.
어떻게 재물을 다 똑같이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건 공산주의에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재물이란 각각 다르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일단은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안그러면 한 달란트 받은 자와 같은 운명에 처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문제는 불만에 휩싸였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의 삶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깨닫기 전에는 신앙의 세계에 들어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궁핍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그리스도 예수, 능력주시는 그 분 안에서 배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산다는 것은 바로 주어진 현실을 긍정하며 사는 능력 안에 사는 겁니다. 그럴 때 그 자유 속에서 우리 또한 바울처럼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주님은 당신께 유산 분배를 거들어줄 것을 요청하는 한 사람에게 '누가 나를 너희의 재물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에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경고하시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앞서 소개한 그 부자가 오늘날 물질지상주의 시대에 있어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겠지만 주님은 오히려 그를 가리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 속에는 하나님과 이웃이 상실되고 오직 자기 자신만이 부각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너무 낭비하며 살아서도 안되지만 너무 아둥바둥하며 사는 것도 지혜로운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도 적당히 쓸 줄도 알고, 나눌 줄도 아는 게 행복한 삶의 비결입니다.
제가 전도사로 지내던 85년부터 86년까지 2년간 시골에서 담임목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시골사는 분들의 삶이 돈은 있는데도 그걸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겁니다. 버섯 등의 특용작물을 하고 양계니 양돈이니 하면서 제법 사는 가정들이 꽤 있었는데 그 생활이 참 그랬습니다. 꼭 검소하거나 근검절약해서가 아닙니다. 부를 활용하며 사는 방법을 모르더라는 겁니다. 그저 땅, 저축... 그것밖에 모릅니다. 그 두 가지가 아니라도 생을 즐기며 누리는 방법이 여러 가지인데 그걸 못하는 겁니다.
저는 음악을 좋아해서 오디오를 한조 들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오디오라는 게 비쌀수록 좋은 소리를 내주기 때문에 자칫하면 과용할 위험이 없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남들보기엔 사치스런 취미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거의 돈 한푼 안들이고 좋은 음악을 즐깁니다. 왜냐하면 오디오를 저축개념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오디오 기기 값이 몽땅 하면 한 400만원 정도 됩니다. 책과 더불어 저의 재산목록 1호입니다. 그런데 이건 현금과 마찬가지입니다. CD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필요하면 그냥 동호인들 장터에 내놓으면 금방 현금이 됩니다. 그러니 사실은 돈 한푼 안들이고 음악을 듣는 겁니다. 환금성이 강합니다. 한때는 조금 좋은 기기로 듣던 때도 있었는데 애들 자취할 방얻어줘야된다고 해서 그것들 팔아 좀 저렴한 기기로 바꾸고 남는 돈으로 자취방 값을 냈습니다. 이것도 삶을 즐기는 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이게 안통합니다. 오로지 땅문서, 집문서, 은행통장만 쥐고 발발 떨면서 삽니다. 그러니 그 삶의 질이 높아질 수가 없는 겁니다.

좀 즐기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저 '없다, 부족하다' 불만과 짜증 속에 살지 마시고 지금의 내 삶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고 감사하고 긍정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이게 중요한 겁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그건 안믿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인생'입니다.
전도자는 인생의 즐거움을 자신의 수고와 주어진 몫 안에서 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자신의 노동과 수고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것, 즉 일상을 통해 삶의 즐거움을 한껏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이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너무 염려함으로써 현재 있는 것조차 즐기지를 못합니다. 만족함으로 현재 누릴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왜 그것들을 다 놓치고 사는지요. 자신의 일에 기쁨을 가지지 못하고 짜증과 불평과 원망 속에 살므로서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선물을 놓치며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에 주어진 것을 감사하며 그것을 먹고 마시며 자신의 일에 기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야 할 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빵 한조각을 앞에 놓고 감사하는 노인의 그림을 보셨습니까? 누가 그 노인의 그 기쁨과 만족을 빼앗을 것입니까? 현재에 만족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 때 그 인생은 진정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영생의 길이 어디냐고 부푼 마음으로 주님을 찾아왔다가 슬픈 기색을 하고 돌아선 부자청년 말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이 부자 청년 같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도 다 압니다. 재물에 그런 위험과 부정적 속성이 있는 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의 축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은 재물이란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없이는 이 세상이 운영되지 않습니다. 돈없이 어찌 삽니까? 우리 시대의 금전의 힘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니 알지만 그래도 나는 재물을 선택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반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부를 가진 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재물이 결코 생의 만족이나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평화와 쉼 대신 오히려 불안과 불면증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죽음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더 많은 것을 축적하려는 욕심과 불만족을 경계해야 합니다. 아무리 벌고 벌어도 만족이란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현재를 만족할 줄 모르고 사는 것처럼 어리석은 삶이 없는 겁니다. 더 소유하려는 지나친 욕심과 노력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건강한 것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내 몫을 불만족스럽게 여기는 것은 불신앙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채워질 미래도 주셨지만 그에 앞서 현재의 모든 것도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현재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이미 하나님에 의해 충분히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도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심이란 것이 무한대라서 만족하며 산다는 것이 어렵겠지만 그래도 현재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이를 즐거워하고 사는 것이 생을 하나님의 선물로 누리는 비결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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