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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의 생활 / 벧전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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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의 생활
벧전 4:7-11

  오늘은 베드로전서 4장 7절에서 11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7절을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라고 기록한 다음에 삶의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의 생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의 생활"이라고 정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어느 정도 훈련시키신 다음에 둘씩 짝을 지어서 이스라엘 나라 곳곳으로 전도하러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 저런 말씀을 하신 끝에 "너희가 이스라엘 나라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습니다(마 10:23). 제자들은 '우리가 이스라엘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해서 인자가 오신다고 했으니 주님의 재림은 우리 당대에 있겠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동네를 다 다녀봐야 자기들의 평생이면 다 다닐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 사도가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편지하면서도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 왔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쓴 것은 2,000년 전입니다. 그 때 벌써 제자들은 자기들의 살아 생전에 예수님이 재림하는 말세가 온다는 긴장감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말세라고 합니다. 오늘날이 말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세에는 이런 징조, 저런 징조가 나타나리라 하신 그 말씀이 거의 다 이루어졌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기 까닭입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따라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기도하는 생활 (7-)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다가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한 도시에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아주 오만불손한 법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는 불쌍한 과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과부에게는 철천지원수가 하나 있었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그 원수를 갚을 재간이 없습니다. 과부에게 꼭 갚아야 할 원수가 있다는 것은 자기 남편을 때려죽인 원수가 아닐까 생각되어 집니다. 남편도 매맞아 죽었는데 여자가 어떻게 그 원수를 갚겠습니까? 그래서 자기 보다 힘이 강한 즉 원수 보다 힘이 강한 그 법관의 힘을 빌려야합니다. 원수를 갚아 달라고 아침에도 간청을 하고 저녁에도 간청을 했습니다. 오늘도 간청을 하고 내일도 간청을 했습니다. 1년 365일 날마다 그리고 해마다 찾아가서 간청을 했습니다. 이 법관은 하나님을 몰라보는 사람입니다. 공의도 정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너무 간청하기에 번거로워서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못 견디겠다'하여 원수를 갚아 주었습니다. 이 말씀 끝에 예수님께서 결론으로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 밤낮 부르짖는 성도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올 때 즉 재림할 때 이 과부와 같은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첫째로 기도는 응답이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오만불손한 법관에게 과부가 가서 그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그 법관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과부가 법관에게 응답 받기까지 얼마나 애를 먹습니까? 오랜 후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응답이 그렇게 쉬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도하다가 절대로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밤낮 부르짖는 성도의 기도에 대해서 반드시 응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말세가 되면 과부처럼 기도하는 성도를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세의 징조 중의 하나가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말세가 되면 성도들이 기도하기를 쉬기 까닭에 믿음이 엉망이 되므로 기도해야 된다고 기도를 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7절을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을 보면 기도에 대해서 3가지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었으니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을 만나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해야만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고 믿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얼빠진 사람처럼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신차리고 열심히 기도하고 믿음 생활을 뜨겁게 하라는 뜻입니다. 세 번째는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근신이라는 말은 self control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조절하라는 것입니다. 정욕을 따라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놀고 싶을 때 다 놀고 언제 기도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자제를 해 가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것은 명령이지 권면이 아닙니다. 그렇기 까닭에 명령은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나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다가 쉬면 죄라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말해 볼 것도 없습니다. 기도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말세이기 까닭입니다. 지금은 미처 버린 세상이기 까닭에 정신 차리라는 것입니다. 자기 욕망과 쾌락과 자기 정욕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기를 자제하면서 기도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본문의 가르침입니다.
  마이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맨 아래쪽 선반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엎드리는 사람만이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선반이 층층으로 되어 있는데 그 맨 아래쪽 선반에 하나님의 선물 즉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 혹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위에 있으면 손을 들거나 서서 끄집어내면 됩니다. 제일 아래 쪽 선반에 있기 까닭에 반드시 엎드리지 않으면 꺼내거나 받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 또는 도움을 받으려면 반드시 엎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엎드린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기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의 선물이 있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밤낮 부르짖는 성도들의 간구를 들어 주지 않겠습니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야하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우리가 말세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고 믿음 생활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여러분, 기도를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사랑하는 생활 (8-9)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말세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징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징조들 중에 하나가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메마르고 미움이 판을 친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24장 12절에 보면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가 주님이 재림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들도 돈 몇 푼을 놓고 칼부림을 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형제지간은 돈을 가지고 계산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칼부림하고 싸우고 죽입니다. 사랑이 다 식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불법이 성하기 때문입니다. 불법이 무엇입니까? 법을 어김으로 사랑이 식어진다는 뜻인데 이 법은 우리나라 법을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입니다. 율법은 폐한 것이 아니라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 법을 열 가지로 축소시킨 것이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첫째 계명에서 넷째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요, 다섯째부터 열 번째까지는 사람에 대한 계명입니다. 이것을 축소시키면 두 가지가 되는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에서 네가지 계명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에서 다섯째부터 열 번째까지 여섯가지 계명이 나옵니다. 이것을 펴놓으면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또 좁히면 10계명이 되고 이것을 더 좁혀 놓으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됩니다. 이것을 한 단어로 만들면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을 우리가 무서워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주신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법은 사랑의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 알바가 아니다. 이 법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라고 하여 그 법을 무시하거나 저버리게 되면 사랑이 식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나 몰라라 하니 하나님을 사랑할 리가 없고 이웃에 대해서도 내 알바 아니라 하니 이웃을 사랑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진다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돈 몇 푼 때문에 형제를 몰라보고, 부모와 자식을 몰라봅니다. '저 늙은이가 왜 죽지 않고 살아 있나'하면서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까? 이렇게 사랑이 식어지는 것이 말세의 징조 중의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는 이런 때 사랑이 가장 필요하다고 하여 성도들에게 사랑의 생활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8절에서 9절을 보면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라 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그 유대인 중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말세이기 까닭에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사랑이 아니냐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첫째 열심으로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셋째사랑은 죄를 덮어주기 까닭에 남의 죄를 들추는 사랑이 아니라 남의 죄를 덮어주는 사랑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묵인하고 조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의 허물에 대해서 나팔을 불고 떠들고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넷째 대접하는 사랑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세상 살 맛이 난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믿음이 있다면 이런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되 뜨겁게 해야 합니다. 사랑을 하되 나는 받기만 하고, 너는 주기만 하는 사랑이어서는 안됩니다. 서로 베풀고 서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즉 사랑의 교제를 말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랑이 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남의 죄를 덮어주는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남을 대접하는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대접을 받고 싶지 않습니까? 가는 곳마다 인정받고 싶지 않습니까?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사람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왜 이렇게 빨리 죽지 않느냐고 하면서 손가락 꼽지 마십시오. 시어머니도 며느리를 미워하지 말고 사람 대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인격적인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믿는 사람의 집에도 사랑이 식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세에 사랑의 생활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로 주시는 하나님이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요구하시는 생활입니다.
  예루살렘에 지은 솔로몬 성전 터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 가서 자기 아들 이삭을 제사드린 곳이 바로 지금의 성전 터입니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뒤에 여부스 족속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 살았습니다. 바로 그 터에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라고 하는 사람이 자리를 잡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고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인구조사를 하고 얼마나 하나님 앞에 혼이 났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가서 거기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돈을 주고 그 밭을 샀으므로 그래서 다윗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 땅에서 제사 드리고 다윗이 용서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 그 땅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지금은 예루살렘에 성전터와 담벽만 남았지만 바로 그 터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할 때 자기가 알고 샀는지 모르고 샀는지는 몰라도 그 터를 샀고 아들로 하여금 예배당을 짓게 하였습니다. 성전 터를 사서 하나님께 바치고 복받은 다윗입니다. 성전을 지을 때 내가 터를 사서 바친다면 복받을 일이 아니겠습니까? 400년을 내려가면서 다윗 왕통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그 왕통은 예수를 통해서 영원한 왕통이 됩니다.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그 땅에 대한 전설입니다.
  성전을 짓는데 왜 하필이면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입니까? 비록 전설이지만 거기에는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라우나 형제는 그렇게 우애가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의좋게 살았습니다. 농사를 거두어들인 다음에 형이 "동생은 결혼해서 아직도 아이가 없으니까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쌀가마니라도 쌓아 놓고 돈이라도 버는 재미로 살아야지"라고 생각하고는 타작해 놓은 곡식가마를 밤에 둘러메고 동생의 낟가리에다 갖다 놓았습니다. 동생은 "형님은 부모님도 모시고 자식들도 많으니까 양식이 많아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고는 곡식 가마를 들고 가서 형의 낟가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분명히 가져다 놓았는데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도 형이 동생 낟가리에 가져다 놓는가하면 동생은 형의 낟가리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하루는 이상하다 하여 밤중에 둘이서 각각 자기 낟가리를 지켜보았습니다. 그 날 밤에 무슨 일이 있었겠습니까? 저마다 지켜보고 가져다 주지 않으니 그 날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 서로 곡식가마를 지고 가다가 한 가운데서 형제가 만났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 있었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아라우나 형제에 대한 전설이었습니다. 그렇게 의좋은 형제가 사는 그 땅에 하나님의 집을 지어 바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형제의 사랑, 너와의 사랑을 그렇게 기뻐하사 열납하신다는 뜻입니다. 말세는 사랑이 식어지는 때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사랑, 이웃 사랑을 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권고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셋째, 영광을 돌리는 생활 (10-11)
  사람들에게는 삶의 목적이 많습니다. 공부하는 목적, 결혼하는 목적, 아들 딸을 낳는 목적, 돈을 버는 목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만 돈을 벌고 믿는 사람들은 가난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성공해야 하는 목적, 우리가 잘 살아 있어야 되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목적이 많은데 그 중에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냐 라는 것입니다. 제일 되는 목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즉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 중에서도 첫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삶의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일평생 살아가는데 하나님께 영광 될 일이 하나도 없다면 그 삶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자식 중에 부모에게 영광이 되는 자식이 있지 않습니까? '저 집의 자식은 참 멋있다. 아버지 어머니가 얼마나 기쁠까'라고 하여 아버지 어머니에게 영광이 되는 자식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저놈은 뉘집의 아들인지 부모가 속상하겠다'라고 하여 부모에게 큰 수치요, 걱정거리가 되는 자식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받을 영광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자식을 통해서 아버지가 받을 영광이 있다면 참 복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을 통해서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챙피한 것뿐이라고 하면 받을 영광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삶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전서 10장 31절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는냐 먹지 않아야 되느냐 할 때 우상의 제물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즉 먹든지 마시든지 상관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상 제물 문제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저 분 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라고 하는 영광이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0절에서 11절을 보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신자들에게 '너희들은 봉사를 할 때 첫째로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라. 둘째로 봉사를 하기는 하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 충만을 받고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봉사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절대로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본문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나의 능력으로 봉사하면 힘들어 못하고 아까워서 못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처음도 봉사요, 나중도 봉사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이 너희 까닭에 영광을 받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봉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10년이나 교회를 나오고 또는 20년, 30년 동안 예수를 믿었다고 하면서 신앙의 연조를 꼽습니다. 또 그 연조를 자랑해도 단 한번의 봉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받을 영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20세기의 성자라고 하는 슈바이처 박사는 자기의 좋은 것을 다 가지고 아프리카 콩고에 가서 오고웨이 강가에 병원을 짓고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후원금을 받아 굶주리는 콩고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서 병만 고쳐 주어서는 안되겠는지라 또 다시 본국에 돌아와서 이곳 저곳 다니면서 모금을 했습니다. 한번은 자기 고향 알자스에 가서 모금을 하기 위해 갔습니다. 고향 사람들이 자기 고향에서 세계적인 성자가 났으니 얼마나 반갑겠습니까? 슈바이처 박사가 기차를 타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전부 기차역으로 나아갔습니다. 슈바이처 박사쯤이면 1등칸을 타고 오겠지 생각하고 기차가 멈춘 다음에 1등칸을 찾아보았더니 없었습니다. 그러면 2등칸을 탔는가 싶어 2등칸을 찾아보았더니 역시 없었습니다. 마지막 3등칸을 찾아보니 그 곳에서 내렸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박사님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그렇게 이곳 저곳 다니고 일하시려면 피곤하실 텐데 1등칸을 타고 오셔야지 왜 3등칸을 타고 오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슈바이처 박사가 "4등칸이 없어서 그랬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4등칸이 있었으면 4등칸을 탔을 텐데 4등칸이 없어서 3등칸을 탔다는 말입니다. 슈바이처 박사 자신은 그렇게 아끼고 검소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쥐어짰습니다. 아프리카 인들을 위해서 모금한 돈을 자기를 위해서는 쓰지 않았습니다. 후원금이 거두어 지는 대로 가져다가 먹여주고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이런 봉사 까닭에 슈바이처를 통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을 받으셨는지 모릅니다. 말세를 당한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이렇게 봉사의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해야하는 생활은 첫째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말세에는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세의 징조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만나 보시고, 하나님께 도움을 받으시고, 믿음 생활 잘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랑의 생활입니다. 말세에는 불법이 성하므로 사랑이 식어 집니다. 사랑이 메말라집니다. 우리는 말세가 될수록 더욱 열심을 내어 서로 사랑하고 허물을 덮어주고 대접하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셋째 영광을 돌리는 생활입니다.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말세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생활을 살아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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