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우리는 다같이 주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 출 14:1-12, 롬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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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출14:1-12, 롬14:1-12, 마18:21-35
제목 ; 우리는 다같이 주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는 사랑하는 사람 자신
이 더 행복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또한 남을 용서하면, 용서함을 받는
사람보다는 용서하는 사람 그 자신이 더 행복한 법입니다. 그러기에 우
리가 주께로부터 열심히 용서와 사랑을 배워 실천해야 하는 것은, 그 누
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바로 우리 자신이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어느 교회에 다니고 있는 안집사라는 분에 관한 이야기입니
다. 이분은 ‘직장전도훈련’에 참가해서 아주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분입
니다.
어느 날, 직장에서 회식을 갖게 되었는데, 상급자가 자꾸 술을 권했습
니다. 하지만 안집사는 기독교인으로서 양심상 술을 마실 수 없었습니
다. 계속 술을 거절하자, 상급자가 화를 내면서 갑자기 안집사에게 술을
뿌렸습니다. 안집사는 너무나 속이 상하고 기분이 나빴습니다. 술을 마
시지 않는다고 해서 여러 사람 앞에서 봉변을 당했으니, 얼마나 창피하
고 분했겠습니까?
안집사는 며칠간 회사에 나가지 않고 분을 삭이다가 결국 회사를 그
만 두기로 했습니다. 사표를 내기 전에, 그는 산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억울하게 봉변을 당하여 서럽고 분한 마음과, 막상 직장을 그만 두려니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해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하던 중에 그는 주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는 그 정도의 봉변을 당했다고 해서 그토록 분하게 여기며 억울하
게 생각하느냐? 나는 모든 이에게 멸시천대와 고난을 받았고, 너를 위해
십자가를 지었다.”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자, 그는 ‘침 뱉음을 당하
고, 저주와 욕설과 채찍을 맞으면서도, 아무런 반항이나 변명도 없이 묵
묵히 십자가를 지고서 골고다의 길을 걸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
게 되었습니다. 그까짓 봉변을 당했다고 해서 직장까지 그만두려했던 자
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는 자존심을 버리고 눈물로 회개를 했습니다.
그는 산에서 내려와 그 다음날에는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집사
에게 봉변을 주었던 그 상급자는 그 일로 인해서 징계 받을 처지에 놓
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안집사는 그 상급자의 구명을 위해
힘썼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안집사가 적극 나서서 그를 돕자, 결국 회사
에서는 그에게 내리려던 징계를 철회하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봉변을 주었던 그 상급자는 안집사의 관용과
사랑에 감동이 되어서 기독교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
금은 ‘직장선교회’ 한 지부의 지도자가 되어서 그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명심보감 정기편(正己扁)에 ‘만사종관(萬事從寬)이면 기복자후(其福自
厚)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
하면, 그가 받을 복이 점점 더 많아진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면, 그 복은 바로 그 자신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지 못할 경우, 그런
사람은 그가 이미 받았던 복까지도 다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주님, 형제가 내게 죄를
지었을 때에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면 되겠습니까?”하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
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다음, 이런 예화를 들려주셨습
니다.
옛날 어떤 임금이 연말이 되자 채무관계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런데 한 신하가 1억을 빌려갔는데, 그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그 신하에게 ‘그가 가진 재산을 다 팔
아서라도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신하는
임금에게 엎드려 절하면서 “제발 조금만 더 참아 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라고 애걸했습니다. 임금은 그 신하가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겨져서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그의 빚을 다 탕감해주었습
니다.
그 신하는 너무나 기뻐서 기절할 정도였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서는
전답은 물론이요 마누라와 자식까지 다 팔아도 모자랄 판인데, 단 한 푼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가 그렇게 기뻐하면
서 집으로 가던 중에, 그에게 백만 원의 돈을 빌려가고서 갚지 않고 있
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신하는 친구에게 ‘당장 내 돈 내 놓으
라!’고 다그쳤습니다.
친구는 조금만 여유를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신하는 인정
사정 보지 않고 친구를 감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사실 자신이 임금님
으로부터 탕감 받은 돈에 비한다면 친구가 자신에게 빚진 돈은 몇 푼
되지도 않건만,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구를 감옥에 집어넣은 것
입니다.
임금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서 몹시 화가 났습니다. 다른 신하들이
그 신하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겨 임금님께 알렸던 것입니다. 임금은
그 신하를 불러들였습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겨 모든 빚을 다 탕감
해주었으니, 너도 남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게 아니냐? 어째서 그토
록 인정머리 없이 행동할 수 있는가?”하고 추궁하면서, 임금님은 그 신
하를 감옥에 가두고 마지막 한 푼까지 다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신하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도저히 다 갚을 수
없는 빚을 다 탕감 받는 은혜를 입었다면, 다른 친구의 작은 빚쯤은 그
냥 눈감아줄 수 있을 법한데, 그 신하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큰 은혜를 담아둘 만한 마음그릇이 준비되지 않았던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그 신하와 비교할 때, 과연 우
리는 얼마나 너그럽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내 아까운
돈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의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실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만 하겠습니까? 또 벼와 사과
가 자라게 하고 잘 익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적당한 비와 햇볕을 주
셨는데, 그 삯을 내놓으라고 하신다면, 우리는 얼마나 내놓을 수 있겠습
니까? 사실은 우리의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것일진대, 당장 그 생명을 내
놓으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옹졸하거나 쩨쩨한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걸 내놓으라고 하실 분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
구하시는 것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빚진 것
을 갚을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고,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을 쉽게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바울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먹는 것이나
날짜와 같은 아주 사소한 문제로 서로를 정죄하며 갈등을 일으킬 때가
참 많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며, 그분만이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실 수 있다(롬14:4)’고
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주로 먹는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했는데, 음
식을 가려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난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먹는 사람은 음식을 가려먹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면서 ‘무엇을 먹든지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먹는다면 나쁠 게 없다(6)’
고 했습니다.
요컨대, 우리에게는 다른 형제를 비판하거나 업신여길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면,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이 행한 일을 하
나님께 아뢰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다른 형제의 허물을 말할 여유가 없습니다.
주님 앞에 가기 전에, 우리는 자기 잘못을 깨달아 그 죄를 회개하는 일
이 급선무입니다. 회개한 죄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영락
없이 그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이 지은 죄의 문제도 다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타
인의 죄를 논하거나 따지게 된다면,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은 죄일
지라도 다 무효가 되고 말 것입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주님의 예화가 바
로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의 잘못이나 허
물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
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우리의 본분
을 다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1.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가끔 인터넷을 통해서 물건을 구입할 때가 있습니다. 인터넷 시
장으로서는 ‘옥션’이 유명합니다. 옥션에서는 누구든지 물건을 내놓고 팔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옥션은 장터와 같습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옥
션에다가 이용료를 내고서 판매하는 가상(假想)적인 시장(市場)인 것입니
다.
소비자가 옥션을 통해서 물건을 구입하면 즉시 결재가 다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소비자가 물건을 받아본 후, 그 물건이 마음에 들어서 사
겠다는 결심을 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면, 그 때서야 판매자의 구좌에 소
비자의 돈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죄에 대하여 용서를 받
았지만, 내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만, 내 죄가 확실히 사함을 받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
해준 것처럼, 우리 죄를 용서해주십시오’하고 항상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로 결정하셨더라도,
우리가 타인의 죄를 용서해야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
는 확인 도장을 찍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를 발견하거나 허물을 보게 될 경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서, 그 죄를
따지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친한 친구라서 꼭 충고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 경우라도, 먼저 자기 자신부터 잘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
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애굽나라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애굽의 바로와 그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고 자숙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반성하기는커녕 이스라엘 사람들의 뒤를 추격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곱게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자존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
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모두 홍해바다에 수
장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너그러운 마음을 갖지 못하고 끝끝내
고집을 부리게 된다면, 애굽사람들처럼 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언
제나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2.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허물을 용서하고 덮어주어야 합
니다.
찬송가 479장 2절을 보면 ‘주가 죄를 살피면 누가 능히 서리요. 오직
주만 모든 죄 용서하여 주시니, 주님 앞에 떨면서 용서하심 빕니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남을 판단하면,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나 자신이 판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가 잘못을 했더라도, 그 잘못
을 크게 나무랄 것이 아니라 따뜻이 대해주어야 한다(롬14:1)’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명심보감 정기편(正己扁)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인용합니다. ‘이불문인
지비(耳不聞人之非)하고 목불시인지단(目不視人之短)하고 구불언인지과
(口不言人之過)라야 서기군자(庶幾君子)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귀로는
남의 잘못된 점을 듣지 말고, 눈으로는 남의 모자람을 보지 말고, 입으
로는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아야 군자라는 것입니다.
스위스에 사는 ‘안드레아’ 할머니는 남편이 죽자, 세상을 증오하게 되
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사람들과 툭하면 싸움을 일삼는 외고집장이 늙은
이가 되었습니다. 그의 비뚤어진 모습을 본 친구가 그 할머니에게 용서
에 관한 책을 선물했습니다. 할머니는 그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
다. 할머니는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용서해주게 되었고, 자신이
상처를 준 이들에게는 편지를 보내어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분노
로 가득 찼던 할머니의 마음이 사랑과 기쁨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습
니다.
이렇게 변한 할머니를 이웃사람들은 ‘해피’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해피 할머니는 88세에 알프스 정상에서 행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날아
프랑스 잡지의 표지 인물이 되었습니다. 3년 뒤에는 소형 비행기를 타고
험준한 산골짜기를 날아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죽기 전에는
전 재산을 교회와 사회에 헌납하여 주위를 더욱 놀라게 했습니다. 과연
용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묘약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 누구보다도 남을 용서
하고 사랑하는 그 사람 자신이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좁아서 쉽게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타인을
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깊은 불행에 빠뜨리게 되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타인을 너그럽게 용서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물론 그 용서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우리
의 죄를 다 용서하셨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허
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죗값을 치렀다고 적
은 그 장부에다가 확인도장을 찍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자기 죄 때문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기를 소원합니다. 물론 우리
의 모든 죗값은 주께서 다 치르셨기 때문에, 그 죄를 회개한 사람은 다
용서를 받았습니다. 다만, 아직도 타인의 죄를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미
결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그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 거
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쪼록 형제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심으로써,
훗날 주님 앞에 갔을 때에, 우리 모두가 천국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라는
심판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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