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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말 / 전 1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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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말(전12:9-10)


우리나라 말 중에 경상도 말이 가장 경제적이라고 합니다.
경제적이란 말은 말을 줄여서 한다는 말입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줄여서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예를 들어서 "할머니 오셨습니까?" 하는 말을 경상도 사람들은 할맨교? 하면 됩니다.
"네가 그렇게 하니까 내가 그러는 거지 네가 안 그러면 내가 왜 그러냐?" 하는 말을 "니그카이 내그카지 니안그카믄 내그카나... " 로 줄여서 합니다.
어떤 경상도 사람이 자기들이 가장 경제적인 말을 한다고 자랑하고 있는데 이것을 충청도 사람이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충청도 사람들은 자기들이 더 말을 경제적으로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서 말하기를
남자와 여자가 같이 춤을 추는 카바레 같은 곳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춤을 신청할 때 보통 표준말은 "한 곡 추시겠습니까?" 라고 하는데 경상도 사람은 "출까예?"라고 하지만 충청도 사람은 "출튜"하면 된다고 합니다.
또 섭섭하다고 말 할 때도 표준말은 "섭섭합니다."라고 하고 경상도 사람들은 "섭섭하네 예"라고 하는데 충청도 사람은 "섭휴"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충청도 사람이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제적인 말을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경제적으로 하느냐 얼마나 단축하며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만 말(言)을 주셨습니다.
인간들은 그 말을 통해서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고 그 말을 통해서 문명을 발달시키기도 했습니다.
만약 인간들에게 말이 없었다고 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문명을 이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말란 소리와 다릅니다.
소리는 공간을 진동시키고 한 순간에 사라집니다.
그러나 말속에는 지속적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죽은지 수 백년이 되었어도 그 말이 아직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있고 감동을 주고 감화를 주고 있습니다.
또 말(言)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줍니다.
잠언 15:1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말하기에 따라서 사람을 분노하게도 하고 분노한 것을 잔잔하게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말을 잘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 성도답게 말을 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아름다운 말"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말만 한다면 문제 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말을 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정치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아름다운 말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가정이 평화롭지 못합니다.
특별히 우리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아름다운 말을 할 줄 알아야 진정한 이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고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은지 수 십년이 되었는데도 도무지 말을 할 줄을 모릅니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을 얼마나 기분을 나쁘게 하고 얼마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말하는 것부터 배우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이 진정으로 온전하게 신앙생활을 하려면 말하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아름다움 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크신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아름다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1,첫째는 아름다운 말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아름다운 말"이란 히브리말로는 "다브레 헤페츠"라는 말인데 이는 기쁨이 되는 말을 의미합니다.
기쁨이 되는 말이란 상대방의 기호에 맞게 아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복과 기쁨이 되는 말을 의미합니다.
말이란 발설하면 듣는 사람 육신에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에 도달이 됩니다.
그래서 그 말하는 것에 따라서 기뻐할 수도 있고 슬프게 할 수도 있습니다.
즐거워 할 수도 있고 분노 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에도 가끔 신문 지상에 오르고 내리는 사건 중에 하나가 사소한 시비 끝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많은 인명피해를 낳게 하는 사건입니다.
얼마 전에는 후배가 말을 불손하게 한다고 해서 선배가 후배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모두 말 한마디 잘못해서 나타난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말이란 일단 하면 그대로 되어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말을 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오늘날 큰 기업체에서 신입 사원을 뽑고 그들을 교육시키는데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성공한다" 라고 하는 말을 수 없이 반복시키는 교육을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로상 데리고 나가서 크게 외치게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용기가 생기고 새로운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속에는 환경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부정적인 말을 하지말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안될지라도 안된다는 말을 하지말고 된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못하겠다 안되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믿기만 해라 그러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계신데 이분은 사모님이 생각날 때마다 "나는 아내를 죽인 살인자입니다"라고 회개하고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본래 이 목사님의 사모님은 오랜 지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8년 동안 사모님의 병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일어난다 하면 일으켜 주고 눞겠다고 하면 눞혀 주고 일어나겠다고 하면 일으켜 주고 그리고 시간 시간마다 약을 다려서 주었습니다.
이렇게 8년 동안 계속하고 있는데 조금도 병의 차도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날인가 그 날도 똑같이 약을 다려서 사모님께 드리는데 그 목사님도 인간인지라 은근히 짜증이 나더랍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이렇게 중얼 중얼 거리면서 사모님께 약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요행하게도 그 사모님이 그 약 사발을 받아 마시다가 "억" 하며 쓰러지더니만 그대로 죽고 만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그것을 보고 "내가 아내를 죽어라고 했기 때문에 죽었다"고 방성대곡하며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뒤로 수년이 흘렀는데도 만나는 사람마다 "나는 내 집사람을 죽인 사람이요" 자책하며 괴로워 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 한마디 잘못해서 평생동안 후회하면서 살겠습니까?
아니면 말씀에 있는 것처럼 아름답고 은혜로운 말을 힘쓰며 살겠습니까?
그러나 아름다운 말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힘 써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칭찬하는 말, 위로하고 권면하는 말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고하고 애를 써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아름다운 말, 은혜로운 말을 위해 힘을 쓰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말을 하기 위해 애를 쓰고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2,둘째는 마음이 아름다워야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생각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합니다.
마음 속에 미움이 있으면 미움을 말하고 사랑이 있으면 사랑을 말합니다.
말이란 생각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취한 사람이 술주정으로 하는 말에도 평소 마음 속에 담고 있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하는 것마다 시비를 걸고 문제를 삼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밀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배가 고프면 저것을 잘라먹을까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왜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고 비난했습니다.
회당에서 한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준 것을 보고 병든 사람을 고쳐 주었으니 참 감사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왜 안식일에 병자를 낫게 하느냐 하고 문제를 삼았습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저희들을 책망하십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12:34,35)"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악하기 때문에 악한 말을 합니다.
마음이 쓰레기통처럼 지저분한데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미움으로 가득한데 선하고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말을 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만 아름답게 하면 저절로 그 말하는 것이 아름답고 행동하는 것이 아름답게 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힘이 있습니다.
그 말 한 마디가 사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악한 말을 하고 포악한 말을 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말, 선한 말이 사람을 감동을 시키고 변화시킵니다.

요 8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의해서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여인을 비난하고 욕하고 당장이라도 죽일 듯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자신의 죄를 깨우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바리새인들은 마음에 가책을 받아 다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또 현장에 남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라고 하셨습니다.
이 간음한 여인의 이 후에 대한 행적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여인은 과거를 청산하고 예수만 믿으며 새롭게 살아갔을 것입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부정적이고 남을 비난하는 말은 서있는 사람도 넘어지게 하고 멀쩡한 사람도 시험에 들게 만듭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말, 은혜로운 말은 절망한 사람에게 소망을 줍니다. 넘어진 사람을 일어나게 합니다.
특별히 범죄하고 타락한 영혼들에게는 아름다운 말 한 마디가 그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하는 합니다.

제가 설교 시간에 몇 번 "고 재봉"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고 재봉은 자기의 상관인 대령인 일가족 6명을 도끼로 죽이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과 감옥에 있었던 분이 새문안 교회 안수 집사 이 인수씨라는 분입니다.
이 인수 집사는 당시 육군 대령으로 당시 계엄 사령관인 장도영씨 비서로 있었는데 장 도영씨가 실각하면서 이 분도 감옥에 갇히게 되어 죽게 될 운명에 있었습니다.
그 분이 옥 중에서 고 재봉과 같이 있으면서 일어난 일을 간증하는 것을 직접 들었습니다.
고 재봉은 일가족 6명을 죽이고 육군 형무소에 수감이 되었는데 누구도 고 재봉 어떻게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잔악하고 포악해서 교도소 간수들까지도 두려워했고 형무소장도 꺼려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 재봉을 예수 믿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밖에서 성경책을 수없이 넣어주었지만 책을 모두 다 찢어 놓고 코를 풀고 화장지 대용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런 그가 성서 공회에서 보내는 성경책 한 권을 받아보고 녹아졌습니다.
안 국선 목사님은 고 재봉에게 성경을 보내면서 "나도 당신과 같은 죄인이었습니다."라고 하는 쪽지를 써서 성경책 속에 끼어 보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흉악하고 포악한 사람이 그 작은 쪽지를 보고 녹아져서 예수를 믿게 되었고 죽을 때는 세례도 받고 교도소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까지 했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포악한 사람을 변화 시켰습니까?
아름다운 마음에서 나온 말 한 마디입니다.
돈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세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말 한 마디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말은 엄청난 능력이 있고 힘이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셋째로 그러면 어떤 말들이 아름다운 말들입니까?
내가 아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이 아름다운 말입니다.
내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하는 말이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99마리의 양보다 길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백 마디 옳은 말을 했다 할지라도 한 마디 말이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실족하게 했다면 그것을 더 마음 아프게 생각하십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의 하는 말에 옳은 것만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얼마나 형제나 자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내 입장에서 말하는 것보다 남의 입장에서 말을 해야 하고 나를 위한 말보다 남을 배려하는 말을 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까 "하면 할수록 좋은 말 10가지 "란 글이 실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마음을 넓고 깊게 해주는 말로서 "미안해" 라는 말이 랍니다.
미안해! 미안해! 이 말이 사람의 마음을 넓게 해주고 깊게 해 준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미안해" 한 마디만 하면 얼마든지 해결 될 일을 몇 푼도 안가는 자존심 때문에 그 말을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둘째는 겸손한 인격의 탑을 쌓게 하는 말로서 "고마워"라는 말이랍니다.
큰 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일하는 것을 보면 "고마워" 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소리를 들을 때 일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요 새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셋째는 날마다 새롭고 감미롭게 하는 말은 "사랑해"라는 말이랍니다.
외국 사람들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사랑해"라는 말을 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인데도 "사랑해"라는 말를 못해서 문제가 됩니다.넷째로 사람을 사람답게 인정해 주고 자리를 잡게 해주는 말은 "잘했어"라는 말이랍니다.
칭찬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와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는 크게 다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서로가 "잘했어"라고 칭찬해 줄 줄 아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섯째로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말로서는 "내가 잘못했어"라는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데는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잘못해놓고 부득 부득 잘했다고 우기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섯째로 모든 것을 덮어 주고 하나가 되게 해주는 말은 "우리는"이라고 하는 말이랍니다.
"너"하고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말입니다.
우리라고 할 때에 하나가 되는 것을 느끼고 동질감을 느끼게 합니다.
일곱째로 세상에서 가장 보배로운 말은 "친구야"라는 말이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를 다시는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고 하셨습니다.(요15:15) 친구라고 할 때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친구라고 할 때에 가장 귀한 것을 주고 싶기도 하고 받고 싶기도 합니다.
여덟째로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자신감을 주며 그 사람을 쑥 쑥 자라나게 하는 말은
"네 생각은 어때"하는 말이랍니다.
내 주장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주장이 100% 옳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주장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네 생각은 어때" 라는 말은 "너를 인정한다." "너 없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을 때 자기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자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아홉 번째 항상 새롭게 하는 말은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자"하는 말이랍니다.
예수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처음 사랑을 찾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처음의 믿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처음의 순수했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처음 것을 잃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열 번째 가장 따뜻하고 행복하게 하는 말은 "너를 위해 기도할께"라는 말이랍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기도해 주는 것보다 더 귀한 말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군대에 갈 때 어머니께서는 안방에 계셔서 밖으로 나와 보지도 않으셨습니다.
자식이 군대를 간다고 하는데도 무덤덤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께서 대문을 나아가는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매일 새벽마다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는 줄 알아라"하는 말씀입니다.
그 때는 별로 신앙이 없던 때인데도 그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할게"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우리 주변에는 아름답고 귀한 말들이 너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아름답고 귀한 말들을 다 외면하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 또는 실족케 하는 말을 아무 생각도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12:36-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제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고 했습니다.
장차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 그때 우리가 평생 살면서 해 온 말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평생 포악한 말만 했습니다.
그러면 포악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평생 동안 조금도 남을 배려하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자기 입장에서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배려를 받지 못하고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말만했습니다. 의롭고 은혜로운 말만 해 왔습니다.
그러면 좀 부족하고 온전치 못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아름다운 상급을 받게 될 것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모두 아름다운 말을 해서 하나님께 큰 축복과 은혜를 입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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