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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산 소망 / 벧전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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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소망 (벧전 1: 3-12)


키에르게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소망, 꿈, 비젼이 없는 인생을 죽음에 이르는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망 중에도 죽은 소망이 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산소망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산소망을 이루어 가야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벧전서를 기록한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바르게 선포 할 수 있습니다.
(벧전 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당시 상황은 로마시대로 네로의 박해가 심한 시대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많은 핍박으로 죽음과 고난을 당하는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산 소망이 였습니다.
이 소망으로 이겨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은혜가 무엇이며 이은혜가 왜 산 소망인가?

본문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벧전 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예수를 땅에서 하늘에 옮기신 하나님, 죽은자를 부활시킨 하나님,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이 있게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의 산 소망이며 구원입니까?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는 것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한 개인으로 죽고 한 개인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교회의 머리로, 우리의 대표자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에서 우리가 죄에대하여 죽었고 예수의 부활에서 우리도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며 산소망입니다.

예) 겨울의 나무 이야기 봄 새싹, 꽃, 생명이 없는 나무는 불가능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산소망은 무엇십니까?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않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 쇠하지 않습니까? 하늘에 간직 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늘과 땅하면 헬라철학처럼 이원론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예수의 부활에서 어신 새로운 질서를 하늘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조상들의 묘실, 땅에 들어간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라고 합니다.
옛 질서에서는 죄, 사망이 왕 노릇하므로 모든 것이 썩고 부패하여 더러워졌고,
쇠하였지만 예수의 부활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벧전 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말세: 예수님의 재림으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구원이 말세에 나타
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땅에 있지만 예수와 함께 하나님 보좌에 앉아있고 하늘에 속한 백성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은 잘 나타나 있지 않지만 말세에는 얼굴과 얼굴을 보는 것처럼 확실히 나타날 것입니다. 이 구원을 얻도록 본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능력을 입은 것이 무엇입니까?
능력: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것 등이 아니라 예수를 죽음가운데 부활시킨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을 능력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6절에 너희가 믿음으로 서있으므로 기뻐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 금 . 용광로 불순물 제거 .. 정금 처럼 고난을 통하여 정금같이 믿음의 순결과 겸손을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벧전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 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본문이 기록되는 당시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사도를 통하여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보지못하나 그를 기뻐하며 즐거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영혼하면 육체를 제외한 나머지가 아니라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벧전 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핀 것이 무엇입니까?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 메시야가 언제 올 것인가? 언약한 그 사건 이것을 찾고 찾았습니다. 선지자들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여 제자들까지도 예수가 부활하기 전 까지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11절에 증거하는 것처럼 예수의 고난 죽으심과 부활이였는데 아무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로 말미암아 교회를 위한 것임을 12절에 증거하고있습니다..

(벧전 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천사도 살펴보기를 원한 이 구원이 얼마나 존귀하며 탁월한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소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인만 구원받을 정도가 아닙니다. 유대인만 구원 받을 정도가 아닙니다. 이방인인 우리리가 이 존귀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이 은혜는 무엇입니까?
구약의 선지자들이 찾고자 했으나 찾지 못한 은혜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했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로 나타내시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입히신 은혜로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긍휼을 나타냄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하나님을 대항했던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값진 은혜입니다.
우리는 전에 육신의 정욕으로 산 악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이 세상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 영광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이 영광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에서 저주 받으심으로 주어진 영광이요 은혜입니다.
창세전부터 아버지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저주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피조물로 낮아지신 저주!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사람의 조롱 거리가 되신 저주1
죄의 삯은 사망으로 마땅히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예수는 기쁨으로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고난 받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도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고난주간 한 주간 따라오라고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지금교회는 봉사하기에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복 받고 천당 갑시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
기도하면 다 들어주십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고난을 받는다 라는 것은 기도가 부족한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 신앙이 없는 사람 등으로 믿는 형제의 판단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지체 한 몸을 깨고있습니다.
또한 잠시 잠깐 고난 당하는 것은 오합지졸의 군사를 정해 부대로 훈련시켜서 크게 쓰시려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의 대부분의 신앙 표현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주님 오시도록 까지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계속 대항하며, 죄와 사망은 계속교회를 무너뜨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가운데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우리의 고난은 초대교회상황처럼, 네로 박해의 시대처럼, 일제시대 때처럼, 살기 위하여 생사를 걸어야 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배교의 시대가 없습니다.

교회가 핍박과 환란과 고난이 있기 때문에 배교의 시대가 아니라.
지금은 교회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라는 의미로 그렇습니다.
개인의 믿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세우신 교회가 세상과 구별이 없습니다.
이처럼 비참하게 교회가 파괴된 시대가 없습니다.
예) 세습제도, 선거철 교회가 한 개인을 위한 유세장이 됨 등

그러나 우리가 소망가운데 낙심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망과 죽음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붙드시고 그의 강한 오른 손으로 이끄셔서 그의 거룩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소망이 있으며 교회를 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땅에 속한 백성이 아닙니다.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닙니다. 구약의 나라와 왕들은 다 죽었지만 이왕은 사망과 죽음을 영원히 끝내신 전능한 왕이십니다.
이 나라인 교회를 무너뜨릴 권세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린양의 피로 구속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선을 위하여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예수께서 순종 하심으로 그 뜻을 이룬 것처럼 주님의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현재 믿음으로 살지 아니할것 같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현재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지 못한다면 상급이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 ---- 하나님 앞에서 너를 시인
부인 ---- 부인
이것이 우리의 경고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재림 하시면 음부와 사망의 권세가 그 앞에 무릎을 꿇을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광을 바라보고 고난 중에도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는 자는 그의 부활에 참여하면 썩지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되어 예수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 할 것입니다. 이 산 소망으로 늘 승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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