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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빈 그물 속에 오신 예수님 /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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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빈그물 속에 오신 예수님
주용수  [성경본문] 눅 5:1-11
     

  오늘 본문의 배경은 게네사렛 호수입니다. 게네사렛 호수는 풍요의 바다, 최고의 바다라는 말입니다. 옉수님 당시에는 이 갈랄리 바다가 고기반 물반이었습니다. 그물을 던지면 각종 고기가 다 잡혔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막 지대입니다. 그런데 그 사막 가운데 이런 호수가 있으니 널마나 좋았겠습니까? 사람들은 이곳에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 풍요의 바다, 최고의 바다에 그물을 던졌는데 잡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바다가 저를 외면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날 억수로 재수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그랬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이 어장에 비유해 봅니다. 우리는 때때로 수고합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는 무엇이든지 잘되기를 바라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때때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나올 때가 있습니다.
5절을 봅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나이다"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탄식을 얼마나 많이 해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누가 알겠습니까?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주님은 이때 베드로에게 오셨습니다.
5장 3절입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주님은 우리의 어려운 때에 오십니다. 베드로는 평생에 주님이 위급할 때마다 오시는 경험을 하고 삽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기도하고 계시고 제자들이 따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풍이 불었습니다. 제자들이 모두 다 일엽편주 배 한척에 몸을 기대고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대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제자들이 유령이라고 소리를쳤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내니 안심하라" 바다를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언제 오십니까?
우리가 어려울 때에 오십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할 때에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빈배를 육지에 대고 허탈에 빠져 있을 때, 구멍난 영혼을 깁고 있을 때에, 상처난 육신을 끌어 안고 고통으로 시달릴 때, 우리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말할 때에 주님은 찾아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오십니까? 
주님은 우리의 영혼에 맑은 가락이 울려 나게 하시기 위해서 오십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화를 맛봅니다. 우리 영혼에 맑은 갉이 울려나는 것입니다. 광풍이 바뀌어 사랑의 물결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문제투성이인 우리의 가정에 오십니다. 오셔서 혼자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주님은 상처투성이인 우리의 영혼에 오십니다. 오셔서 손이 안가는 상처를 어루만져 해결해 주고 가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좌절한 마음에 오셔서 새로운 용기와 힘을 부어주시고 가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빈그물에, 허탈한 심령에 오셔서 채워 주시고 가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빈낚시, 텅빈 내생활에 오셔서 넘치게 히시고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어떻게 우리를 채우십니까?
첫째로, 말씀으로 채우십니다. 
5장 1절입니다.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5장 3절입니다.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이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은 말씀으로 먼저 채우십니다. 사람이 말씀으로 채워지기 전에는 치료되지 않습니다. (어느 할머니 전도)
사람이 말씀으로 채워지기 전에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밀씀으로 채워지기 전에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말씀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 사람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에덴이야말로 사람에게는 최고의 땅이요, 풍요의 땅이요, 축복의 땅입니다. 사람에게 에덴 만한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땅을 계속소유하기 위해서, 이 축복을 계속 누리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계명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로 17절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래서 얻은 저주가 세가지입니다.
1)땀의 저주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수고해야 먹습니다.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아야 먹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2)가시나무와 엉겅퀴의 저주입니다.
창세기 3장 18절입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심는다고 다 먹는 것이 아닙니다. 땅이 방해를 합니다. 원치 않는 가시나무가 납니다. 엉겅퀴가 납니다. 예수님은 농부가 잘때에 원수 마귀가 가라지를 뿌리고 간다고 했습니다. 방해가 생깁니다. 길을 잘 가는데 강도를 만납니다.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잘 살려고 하는데 나쁜 친구가 꼬입니다. 돼지라도 쳐서 먹으려고 하는데 기근을 만나고 나쁜 주인을 만나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먹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3)죽음의 공포입니다.
3장 19절입니다.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죽도록 일해서 얻으면 무엇합니까? 풍년이 되어서 곡식을 거두어둘 창고가 부족해 창고를 짓고, 창고마다 가득 곡식을 채워 놓으면 무엇합니까? 하나님이 오라시면 가야 합니다. "그러면 창고의 곡식은 뉘것이 되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먼저 베드로의 마음을 말씀으로 채웁니다. 
1절입니다.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에게 말씀으로 채우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눈에 뜨입니다.
2절입니다.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이때 빈그믈을 거둔 허탈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저를 치료하기로 하셨습니다. 저를 축복하시기로 하셨습니다. 빈그물을 채워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저를 변화시키기로 하셨습니다. 사람을  그래서 베드로를 제일 좋은 앞자리로 인도하십니다.
3절입니다.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베드로의 배를 빌리셨습니다. 당연히 베드로는 배에 앉아있습니다.맨 앞자리입니다. 말슴이 끝나기 가지 꼼짝이 없습니다. 그렇게 베드로를 잡아두시고  베드로에게 말씀을 넣어주십니다.
여기에 두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1)때때로 주님이 우리를 꼼짝 못하게 잡아두시는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직분을 주신다든지, 일을 시키신다든지..... 어떤 분이 교회를 떠나기로 작정했습니다. 모든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목사님도 마음에 안들고, 교회도 다니는 것이 시큰둥하고, 무엇 보다도 여선교회 화장이 만에 안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덜컥 여선교회장을 시켜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한사코 사양을 합니다만 목사님이 한해만 하라고 하셔서 한해만 하고, 여선교회 회장직을 놓으면 교회를 떠날 참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마지막 봉사라고 생각을 하니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하다 보니 은혜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감화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에서 하는 것과 뒤에서 보는 것은 차이가 납니다. 이분이 미워하던 전 회장을 이해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그리고 미워하던 사람들과는 화해를 합니다. 1년이 지나서 저에게 고백을 하는데 "그때 여선교회 회장을 안시키셨더라면 저는 큰일날 뻔 했습니다" 하는 소리를 듣고 제가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꼼짝 못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때가 은혜의 때입니다. 꼼짝 못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최순례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는데 신태수 씨에게 꼼짝 못합니다. 다 들어 줍니다. 그래서 새벽 기도하는 분이 다르구나 했습니다. 꼼짝 않고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꼼짝해야 더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2)앞자리가 금자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앞자리를 금자리, 중간 자리를 은자리, 뒷자리를 동자리, 맨 뒷자리를 똥자리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금자리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타신 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베드로를 금자리에 인도하시고, 말씀을 넣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4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예수님은 베드로의 텅빈 마음이 말씀으로 충만해지자 비로소 기적을 행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의 자리가 기적의 자리입니다. 말씀이 없이는 기적이 없습니다. 말씀이 없이는 성령이 오시지 않습니다. 말씀이 충만하지 않고는 성령의 충만도 없습니다.
3)순종의 자리가 축복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6절입니다.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제 베드로의 위치가 바뀌는 것을 보십시오. 베드로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말씀이 충만해진 순간!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아멘하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순간! 자리가 바뀝니다. 일터가 바뀝니다. 그믈이 바뀝니다.
가난한 자리가 풍성한 장소, 실패의 장소가 성공의 장소, 좌절의 장소가 희망의 장소로, 저주의 장소가 축복의 장소로 바뀝니다. 땀흘리고 수고해도 가시덤불만 내던 장소, 아무리 뽑고, 가꾸어도 가라지만 무성하던 장소가 엄청난 축복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시편 128편을 기억하십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의 실패한 자리를 왜 축복으로 채워주십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1)시몬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기 위해서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10절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무엇이든 정도가 있는 법입니다. 사범대를 나오면 선생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도입니다. 법대를나오면 파검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도입니다. 의대를 나오면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에도 정도가 있습니다. 성도로써 잘 풀리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면 신앙의 정도는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2장 38절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이 성도의 정도입니다. 성령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떵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 성도의 정도인 것입니다.
2)우리가 여기서 잊지말고 기억해야 하는 한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경꾼인가? 기적의 주인공이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말씀은 허다한 증인들의 이야기를 빼놓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놀랍니다. 주님이 기적을 일으킬 때마다 놀랍니다. 병자를 일으킬 때마다 놀랍니다. 귀신을 내어 쫓을 때마다 하나님게 영광을 도립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기적의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구경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적의 당사자들은 자기를 버립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작정합니다.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은 예수를 몇 년이나 믿었습니까? 아직도 구경꾼입니까? 직접 내게 나타나 나를 변화시키는 기적은 못보셨습니까? 내년에는 꼭 이 기적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빈그믈을 씻고 있을 때에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그것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나는 못합니다" 버팅길 때에,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네가 그것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라" 
사르밧 과부에게 엘리야가 물었습니다.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주님은 내가 가진 것으로 역사하시기를 바라십니다.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은 있다고 말하는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 싶으십니다. 이 대답을 할 때에 우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됩니다.
기적을 구경만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적을 직접 경험하는 사람뿐이 아니라,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1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다른 복음서에는 "네가 장차사람을 낚는어부가 되리라"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가능성을 크게 보시는 분이십니다. 지금은 우리가 빈그물이라도 하나님이 채워주시면 우리는 주님의 위대한 일꾼이 됩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빈깡통이라는 말에 우리는 얼마나 충격을 받는지 모릅니다. I.M.F 한파로 우리 서민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모릅니다. 내년에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소식이 우리의 소망마저 끊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빈그믈을 축복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영적으로 채워져야 하겠습니다. 말씀으로 채워져야 하겠습니다. 성령으로 채워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르밧 과부처럼 이 마지막 기름과 밀가루로 떡을 만들어 먹고 죽게되었을지라도 능력의 엘리야를 만나야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참으로 우울한 1997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좀 산다고 교회가 비었었습니다. 좀 산다고 자동차 끌고 다 나갔습니다. 교회에 빈자리가 늘어났었습니다. 교회가 비니까 우리의 생활이 비게 되었습니다.내자리가 비니까 내 생활이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십니까? 교회가 제자리 걸음을 하면 나라는 뒤로 갑니다. 이제 다시 주일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예배당을 채워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해야 할 것입니다. 뜨거운 기도와 밤을 새는 찬양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 55장 6절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예레미아 33장 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으면 우리 민족의 살길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물론 지금이 위기입니다. 하지만 지금이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다시 뛰어 제 2의 기적을 만드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믈 가득이 낚아야 할 것입니다. 두배에 가득 채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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