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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풍성한 삶을 위한 비결 / 딤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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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4:1-5
"풍성한 삶을 위한 비결"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 밤낮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정성이 갸륵해서였는지 하루는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더니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어디어디에 가 있으면 도사가 그리로 지나갈 터인데 그에게 긴말할 것 없이 '그 보물을 나에게 주시오'하고 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날이 밝는 대로 백발 노인이 꿈에 일러 준 장소에 서 있자니 과연 바랑을 짊어진 도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다짜고짜 말하기를 '그 보물을 나에게 주시오' 했습니다. 그랬더니 도사는 말없이 바랑을 뒤져 주먹만한 다이아몬드를 꺼내 들고는 '이것 말이요? 그럽시다. 자, 가지시오'하고는 던지다시피 안겨주고 가던 길을 휘적휘적 걸어갔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다이아몬드를 얻었으니 이제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 그는 서둘러 도사가 가는 길의 반대쪽으로 내달렸습니다. 행여 처음 먹은 마음이 달라져서 도사가 보물을 돌려달랄까봐 겁이 나서 바삐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걷다보니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이 두려워졌습니다. 혹여 내 보물을 빼앗아가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한나절을 도망치듯 달려가던 이 사람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뭔가 꼴똘히 생각을 하더니만 급히 발길을 돌려 도사가 사라져 간 쪽으로 달려갑니다. 그 날 밤 수소문 끝에 도사가 묵고 있는 여관에 도착해서는 네 활개를 벌리고 자고 있는 도사를 깨웠습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도사는 눈을 부비며 일어납니다. '아니, 왜 그러시오? 보물을 가져가고선 왜 또 날 찾아온게요?' 그러자 그 사람은 품에서 다이아몬드를 꺼내 도사에게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것 소용없소. 당신이 도로 가지시오. 그 대신에...' '그 대신에, 뭐요?' '그 대신에 이런 보물을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내어 주고도 아무렇지 않은 당신의 그 부요함을 내게 좀 주시오. 나는 이것보다 그것을 더 갖고 싶소...'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참으로 부요한 삶을 산다는 게 뭔가를 새삼 깨우쳐 주는 말씀입니다. 부요한 삶, 풍성한 삶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요? 물질의 풍성함일까요? 우리 세대가 불행한 것은 물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가지고도 불안해하고 넘치는데도 불만족해 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요?...
믿음 안에 살면서 새삼 깨닫는 진리는 '행복이란 현실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생각 속에 있다'는 발견입니다. 일찌기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사람을 가리켜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로 사람은 생각함으로 사람이요 또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겠습니다. 즉 사람은 누구든지 그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고 또 그 '갈대'라는 표현처럼 그 생각이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자꾸 이리 저리 흔들리며 바뀌어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사실 행복은 '생각 속에서 즐기는 것'입니다. 행복은 현실 속에 있지 않고 의식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좋은 물건을 받았다고 해서 다 기분이 좋은 건만은 아닙니다. 받고서 즐거울 수 있지만 또 찜찜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순수한 마음으로 건네 준 선물이라면 그것으로 인해 기분이 썩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의도를 깔고 반대급부를 요청하며 건네주는 뇌물로 인해서는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해 하기도 하며 사는 겁니다. 생각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행, 불행을 경험하기에 생각이라는 것, 의식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인생의 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풍성한 삶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재산이 많고 물질이 풍성하고 소유가 넉넉한데 행복이 있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으로, 어떤 의식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느냐에 행복이 달려있다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풍성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지십니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껴지십니까?...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적 권면의 성격을 띤 편지글 중의 일부입니다. 그는 3절에서 이렇게 권고합니다. "네가 목회하는 교회 안에 결혼을 금하고 금식을 명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음식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교회 안에 금욕적인 가르침으로 다가오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영을 들먹이며 나온다는 것이고 그게 진리인양 주장하며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 영은 속이는 영이요 저들의 교훈은 사탄의 가르침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음식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으로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아 먹으면 된다'고 권면합니다.
결혼과 음식에 대한 상반된 견해가 디모데가 목회하는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정하신 좋은 것이요 음식 또한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풀어주신 좋은 것이라는 입장과 결혼은 악한 것이요 금식하지 아니하고 음식을 때마다 먹는 것은 영성생활에 합당하지 않다는 입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정적 시각이요 하나는 긍정적 시각입니다. 이런 갈등과 마찰이 교회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사도는 긍정적 사고에 손을 들어줍니다. '결혼도 좋은 것이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은 것이다. 결혼을 금할 필요가 없고 음식을 못먹게 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무엇을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펴느냐 하는 겁니다. 그 이유에 대해 사도는 '그것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남녀가 하나되는 결혼도 창조시에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것이요 음식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먹고 취하여 더욱 번성하고 창대케 되라고 주신 선물로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으면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수용'이 풍성한 삶의 전망을 여는 열쇠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숙한 신앙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무엇으로 '성숙한 신앙이다 아니다'를 가름하십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신앙이 바로 성숙한 신앙이요 복받을 신앙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고 긍정하는 신앙'입니다.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야할 이유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 유익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악까지도 선용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걸 믿는 것이 바로 올바른 신앙입니다. 신앙을 빙자하여 자기 주장이나 자기 경험을 절대시하는 것은 병든 신앙이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버릴 것이 없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돌아보면 우리들은 옛날에 참 많은 것을 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 재활용해서 쓰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옛날 버린 것들 중에 보물이 참 많았습니다. 저희도 도자기, 고가구 등이 꽤 있었는데 그거 다 거저주다시피 팔았습니다. 강냉이 장수한테 강냉이 몇 바구니 받고 다 줘버렸습니다. 그 귀한 유기그릇을 닦을 필요 없다는 이유만으로 스텐그릇과 1:1로 바꾸었습니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인생에 버릴 것이 없다는 의식, 주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소중하고 귀하다는 의식을 갖고 사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고난과 아픔까지도 내팽개쳐 버려서는 안됩니다. 그게 다 복의 씨앗입니다. 우리가 때로 시련을 겪습니다. 시련 중에 가장 힘든 시련은 자식으로 인한 시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실 때 자식으로 시험하셨겠습니까? 그게 제일 고통스러운 것이요 견디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가장 약한 아킬레스건이 바로 자식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과 아픔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일 때 거기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통전적인 가족의 치유가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처럼 내 신앙이 우뚝 서는 걸 발견합니다. 내 마지막 우상이 허물어져 내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기에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시인은 노래한 게 아니겠습니까?
힘들다고 버려서는 안됩니다. 버겁다고 떨쳐버려서도 안됩니다. 그걸 알처럼 품고 계속해서 굴리면 거기서 놀라운 새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기 보다 자기중심의 자리에서 생각하려 들기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불평과 원망 속에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전기, 전축, 전화라는 큰 공헌을 인류에게 남겼습니다. '빛과 소리의 발명'은 참으로 가장 위대한 발명입니다. 이것은 눈과 귀의 확대로 문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을 아주 싫어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싫어했을까요? 그건 바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에디슨을 미워했습니다. 왜냐하면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 저들은 잔업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기가 없을 때는 해만 지면 작업 끝이었는데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 해가 져도 불을 켜고 작업을 하게 되니 그로 인하여 사람들은 에디슨을 미워하고 원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을 미워한 노동자들의 태도가 합당한 것입니까? 전기로 인해서 얻는 유익이 얼마나 많은데... 죽어가는 사람을 살립니다. 반딧불 아래서 책을 읽던 학생이 환한 불빛 아래서 더 많은 책을 잃고 지식을 쌓아 인류역사에 공헌합니다. 전기로 인해 얻는 유익이 너무도 많지만 나에게 이런 불편을 주니 미워한다는 저들의 태도가 합당한 것입니까? 이게 바로 인간입니다. 사람이 자기중심에 갇혀버리면 불평과 원망에 익숙해지게 되고 자기중심을 벗어버리면 감사와 긍정에 익숙해지게 되는 겁니다. 감사함으로 받질 못함으로서 우리는 풍성한 삶을 놓치고 사는 겁니다.

미국 교계에 유명한 오르가니스트로 해피니스 조운스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미국 LA의 가든 글로브 처치에서 목회하는 로버트 슐러 목사는 100만불이 넘는 세계적인 오르간을 하나님께 봉헌하면서 그 처녀 연주를 이 해피니스 조운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는 이런 간증이 따라다닙니다.
조운스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잘해서 16세에 음악대학에 조기입학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피아노를 잘쳐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실력을 닦았습니다. 그런데 중도에 그만 팔목이 상했습니다. 피아노는 팔목에 힘을 주고 쳐야하는 것이기에 팔목이 상하면 제대로 칠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낙심했고 또 한편으론 그것을 극복하느라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상한 팔목으로는 연주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제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십시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중 그는 음성을 듣습니다. '너는 손은 그렇지만 발은 성하지 않느냐?...'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발로 하는 음악이 무엇일까?... 발로 연주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녀는 오르간을 시작했습니다. 오르간 건반은 피아노처럼 그렇게 힘을 주어서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타건이 피아노처럼 힘이 드는 게 아닙니다. 이미 기교는 피아노를 통해 다 습득이 되었기에 그녀는 발을 연습해서 아주 훌륭한 오르가니스트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손목을 꺾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오르가니스트로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역경을 딛고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때에 하나님은 그녀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신 겁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자기중심을 벗고 감사와 긍정에 익숙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이게 풍성한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입니다. 이게 안되면 그는 결코 풍성한 삶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감사와 긍정에 익숙한 삶이 가능하게 될까요?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사도는 4절과 5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여기 그리스도인이 풍성한 삶을 살기 위한 네 가지 공식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는 의식을 갖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하신 세상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두 번째 풍성한 삶을 위해 가져야할 의식은 '감사'입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즉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여기에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지만 그러나 그 선의 세계 속에 악한 것이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속임수의 귀재인 사탄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분별력입니다. 우리는 순간순간을 분별과 선택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살전5:20절에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또 롬12:2절에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ㅇ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양약만 있는 게 아니라 독약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잘 분별해야 하는 겁니다.
정말 요즈음 우리들이 얼마나 선택과 분별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옛날에는 영화관만 하나 정하면 되었습니다. 내가 보고자 하는 프로를 상영하는 극장을 선택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릇습니다. 구미에도 하루에 다섯 프로를 상영하는 곳이 있더군요. 서울엔 수십개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있고 미국엔 스튜디어 28이라고 해서 스물 여덟 개의 영화를 상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TV 채널도 그렇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3-4개 채널이었던 TV가 요즘엔 수십개 채널이 되었습니다. 커피는 또 어떻습니까? 옛날엔 그냥 '커피 주세요'하면 되었는데 요즘에는 '카프치노, 비엔나, 모카, 헤이즐럿, 에스프레소, 카페 라떼 등등' 부지기수입니다.
이렇게 선택거리가 많다는 것은 분명 기쁨과 만족의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선택의 자유와 함께 주어지는 것이 바로 책임입니다. 얼마 전에 김천제일교회 헌신예배에 갔다가 예배 후 목양실에서 조목사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안수집사회장이 들어와서는 '목사님, 저희에게 맡겨주신 구제 건 말인데요. 우리끼리 잘 안되네요. 좀 오셔서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럽니다. 선택이란 게 쉬운 게 아닙니다.
이런 세상을 올바른 선택 속에 살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지녀야할 두 가지 필수적인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진다'는 것은 풍성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는 필수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풍성한 삶을 사는 세 번째 비결이요 기도가 또한 네 번째 비결입니다. 일반적 지식은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마음을 충만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과 습관과 운명과 가치를 개혁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추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생활, 신앙생활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사회학적 통계를 보면 넉달만 교회에 안나오면 완전히 안믿는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세상사람으로 되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알아듣든 못알아듣든, 기분이 좋든 나쁘든, 내키든 안내키든 하늘나라 백성은 교회엘 나와야 합니다. 사실 교회에 나올 때마다 다 은혜받는 건 아니지요. 어쩌다 공치는 날도 있고 졸다 가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나와야 합니다. 그게 다 어우러져서 은혜가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한 가지 좋아하는 것만 먹고 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때로는 신 것, 쓴 것, 단 것 등등 여러 가지를 다 맛봅니다. 그 모두가 어우러져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겁니다. 감기 걸려 입맛이 없다 해도 억지로라도 먹어야 합니다. 맛이 있건 없건 먹어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도 우리 귀에 쉽게 들려올 때가 있고 잘 이해가 안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프리즘을 통해 무한한 세계를 바라보게 되고 평소에 보지 못하던 깊은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말씀의 맛들인 사람치고 건강하지 않은 신앙인이 없습니다. 또 말씀의 맛을 알지 못하는 사람치고 건강한 신앙인이 없습니다. 시1편에 보면 복있는 자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악인의 꾀에 빠지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잘 보십시오.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악인의 꾀에 빠지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자가 복있는 자가 아니라 복있는 자가 거기에 물들지 않는 겁니다.
그 복이란 게 뭡니까? 바로 여호와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복입니다. 말씀이 즐거운 겁니다. 말씀이 행복의 원천인 겁니다. 그게 내 보물입니다. 내가 넉넉한 것, 좋은 것을 손에 쥐고 있어 스스로 행복하면 남의 것 기웃거릴 일 없는 겁니다. 오늘 여러분이 이곳에 왜 오셨습니까? 모처럼의 쉼의 날에 가고 싶은 데 많을 겁니다. 그러나 거기보다 여기가 더 행복하기에, 그곳보다 이곳이 더 중요하기에 여기 나온 겁니다.
말씀을 우리의 풍성한 삶을 가리키는 지도요 나침판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잘 살펴야 하는 겁니다. '한번 여행을 하려면 적어도 3개월은 준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갈 때도 미리 공부하고 간 것과 그냥 간 것과는 얻는 것이 다릅니다. 공부 안하고 온 사람들은 그저 '더워서 못살겠다', '음식은 왜 이러냐', '요단강이 뭐 이러냐' 투덜거리고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공부하고 가면 그 의미가 새롭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면서도 받아들이는 건 다른 겁니다.
지난 주간에 1박2일 일정으로 전반기 신앙테마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이 일을 계획할 때 망설임이 많았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다 여유없이 바삐 사는데 괜히 위화감느끼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우리 교우들만큼 여행과 쉼을 갖기 어려운 분들도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망설임 속에 첫 번째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의외로 설악산엘 못가보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한편으론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비행기타고 동남아다, 유럽이다, 카나다다, 호주다 하며 다니는 때인데 우리 땅마저 밟아보지 못할 정도로 현실에 매어 산다면...
이번에 가신 분들이 모두 다 좋아하셨습니다. 주일 지난 월요일이라 출발할 때는 모두들 몸이 안좋으셨는데 오실 때는 모두 다 아픈 몸들이 거뜬해지셨습니다. 일정을 좀 빡빡하게 잡았지만 그래도 뭐 그렇게 타이트하게 진행되지 않고 비교적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건 이번 여행의 가이드가 3개월을 준비한 가이드가 아니라 50년을 준비한 가이드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그곳에서 살았으니 뭐 그쪽은 훤합니다. 그러니 뭐 그리 헤맬 것이 없었던 것이지요.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그 인생을 결정짓습니다. 가장 좋은 일을 생각하고 가장 아름다운 일을 생각하며 사십시다. 말씀과 기도의 세계에서 우리는 가장 좋은 일, 아름다운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이 못보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다른 사람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보다 더 깊은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어거스틴은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믿는 것이요 그 결과로 믿는 바를 보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 감사가 넘치는 긍정적이고도 풍성한 삶을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골사는 한 엄마와 아들이 모처럼 시내 백화점엘 갔습니다. 너무도 화려한 시설과 장식 그리고 즐비하게 진열된 물건들을 보면서 엄마는 모처럼 신이 났습니다. 그 넓은 매장을 이리저리 다니느라 시간가는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와는 달리 자꾸 징징대면서 울기만 합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너 왜 엄마가 좋은 곳엘 데려왔는데 자꾸 징징대니?'하고 물었더니 아이의 대답이 이렇습니다. '엄마, 내 눈에는 지금 아줌마들 엉덩이밖에 안보여요...' 키가 작아서 아무 것도 보이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 좋을 것도 없고 즐길 것도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 아무 것도 못보니깐 징징대는 겁니다. 주님의 세계를 보지 못하니깐 불평과 원망 속에 사는 겁니다. 눈을 열어 주님의 선한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거기에 평화가 있고 자유함이 있고 여유가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져서 깊고 높고 넓고 긴 그 세계를 바라보며 사십시오. 거기에 바로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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