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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간의 실수와 하나님의 뜻 / 창 27: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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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7:27-29
인간의 실수와 하나님의 뜻 


(창 27:27-29)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인간의 실수와 하나님의 뜻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콩가루 가정'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콩가루처럼 부서지고 망가진 가정이라는 말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헤어지고, 자식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그러한 가정을 '콩가루 가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가족다운 모습을 잃어 가는 현상이 만연한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27장에 보니까, 이삭의 가정이 그런 콩가루 가정같이 되었습니다.
이삭의 가정이 얼마나 모범적인 가정이었습니까?
아버지 이삭이 얼마나 믿음의 사람이었으며 기도의 사람이었습니까?
또 어머니 리브가도 얼마나 믿음의 사람이었으며 순종의 사람이었습니까?
그런 부모 밑에서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음이 좋은 가정, 행복한 가정이 하루아침에 콩가루 가정같이 됩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자기의 뜻을 감추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속일 계획을 세우며, 두 아들은 서로 아버지 어머니 편으로 나뉘어서 서로 속이고 결국은 원수가 되고 맙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 가정은 하나님께서 장차 만복의 근원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선택한 가정이 아닙니까?
그들을 통해서 이 땅에 메시아가 태어나도록 뜻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그들 가정에는 불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다 연약한 인간들이요 실수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비록 예수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하지만 연약한 인생들이기 때문에    때로는 실수도 하고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다 이루어집니다.
비록 우리들이 실수하고 잘못해도 하나님의 뜻은 모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과 창세지 전체가 우리에게 전하여 주는 메시지입니다.
아니 성경 전체가 전하여 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보면서 이삭과 그의 가족들이 저지른 실수가 무엇이며 그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그 뜻을 이루어 가시는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가장인 이삭의 실수입니다.

창세기 27:1-4을 읽어봅시다.

1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3 그런즉 네 기구 곧 전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삭이 그 맏아들  에서를 불러 축복하려는 모습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그가 20년 동안 기도해서 리브가가 아이를 가졌을 때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둘째를 택하셨음을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왜  에서를 축복하려 합니까?
그것은 그가 그를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창 25:28에 보면,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자녀를 편애하면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런 편애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라면 더 큰 잘못이 됩니다.

우리가 요즘 TV에서 방영되는 태조 왕건을 보지 않습니까?
오늘 저녁에 마지막 회가 방영되는데, 백제가 망하고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백제가 망했습니까?
그 가정도 콩가루 가정이 되어서 망했습니다.
왜 콩가루 가정이 되었습니까?
그것도 아버지 견훤이 태자보다 금강을 더 사랑한 나머지 왕위를 태자에게 물려주지 않고 변칙적으로 금강에게 물려주려 했기 때문인 것으로 극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 또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 자체가 나쁜 것 아닙니다.
심지어 우리가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인간인지라 어떤 아이에게 더 사랑이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순리를 거스린다든지 하나님의 뜻을 어긴다면 크게 실수하는 것이고 큰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바로 그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런 실수를 할 수 있고 또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 있는데,  내가 원하는 대로 결정하고 순리를 거스리어 자신도 실패하고 다른 사람들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실수의 첩경인 것을 알아서,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것을 거절하고 내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것은 하지 아니 함으로 실수하지 않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을 이루며 순종하는 것이 형통한 길이고 실수하지 않는 길임을 깨달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이삭처럼 가정이나 교회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을 때, 또 직장이나 사회에서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진행시켜야 할 위치에 있을 때, 일을 내 감정대로 내 생각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훈련을 받아야 하겠고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서 오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리브가의 실수입니다.

5절 이하를 보십시오.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듣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와 자기와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안 듣는 줄 알았지만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그전에 하나님이 보고 듣지 않으셨겠습니까?
우리 말 속담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의 눈을 가리고 하나님의 귀를 가리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떳떳하게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리브가가 그 말을 듣고 에서가 사냥하러 나간 뒤에 야곱에게 말합니다.
네 부친이 네 형 에서에게 이렇게 저렇게 말씀하셨으니, 너는 내 말을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면서, 가서 염소의 좋은 새끼를 가져오라고, 그러면 그것으로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줄 터이니,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드려서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말합니다.
내 형 에서는 털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면 단번에 아실 터인데 그러다가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리브가가 말합니다.
그런 저주는 내게 돌리리니 내 말만 듣고 가져오라고.
그래서 야곱이 염소새끼를 가져왔고, 리브가는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리브가는 집에서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야곱에게 입혔습니다.
그리고 염소 새끼의 가족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그 만든 별미를 가지고 아버지에게 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철저한 기만행위입니까?
앞 못 보는 자기 남편을 철저히 속여서 야곱으로 하여금 축복을 받게 했습니다.
자기가 저주를 받을 각오까지 하면서 주저하는 야곱을 시켰습니다.
악처 중에 악처가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남도 아닌 자기 남편에게. 에서도 자가 아들 아닙니까?

그러면 리브가가 왜 그렇게 했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삭도 그런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삭은 리브가를 통해서 들었고 리브가는 직접 들었기 때문에 리브가에게는 그 확신이 더 컸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확신이 그로 하여금 이런 행동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목적은 바른 것이었으나 방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만일 리브가가 그런 방법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이삭을 막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목적을 위해 선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이삭이 실수로 에서에게 축복하였어도 하나님은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이 어그러질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리브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목적은 좋았는데 방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그런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세상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돈만 된다면 그 것이 이익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생각하지 않고  목적 지향적으로 사는 세상입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회정의를 부르짖는다는 사람들도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옳고 그른 것을 가리지 않고 합니다. 얼마나 과격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바르지 못한 방법을 쓰는 일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목적도 옳아야 하지만 방법도 옳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야곱의 실수는 무엇입니까?

어머니의 말을 듣고 아버지를 속인 것입니다.
물론 그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만 거절하지 않았기에 책임은 시킨 사람보다 본인에게 더 있습니다.
어머니가 시켜도 자기가 안 하면 되는 것인데, 야곱에게도 자기가 축복을 받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시키는 것을 받아 들였던 것입니다.

사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장자의 명분과 축복에 대한 집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명백한 사기 행위이고 고의적인 기만입니다.

여기 14절 이하를 보십시오.
14 그가 가서 취하여 어미에게로 가져왔더니 그 어미가 그 아비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15 리브가가 집안 자기 처소에 있는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취하여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
17 그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매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 (야곱이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자기가 에서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그 다음에 보면 한술 더 뜹니다.)20 이삭이 그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그가 가로되 (무엇이라고 합니까?)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는 하나님까지 팔아가면서 거짓말을 합니다)
(그 다음 24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가로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세 번씩이나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 가지고서 그가 그렇게 바라던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가 그렇게 집착하던 목적을 달성합니다.


그가 처음에 어머니께 걱정을 한 것은 그의 소극적인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장자의 축복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습니다.
그 집착이 이렇게 아버지까지 속여 가면서, 나중에는 하나님까지 들어가면서 거짓말을 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야곱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도 욕심에 사로잡히면 분별력을 잃게 되고 판단이 흐려져서 실수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축복을 받지 못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로 하여금 다른 방법으로 축복을 받게 하실 수 있습니다.
야곱은 집착은 강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다윗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리라는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왕은 되지 않고 오히려 어려움만 생깁니다.
사울 왕이 자기를 잡으려고 쫓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자기가 사울 왕을 죽일 뻔한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럴 때에 부하들은 빨리 죽이라고 합니다.
그래야 그가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때를 지나면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방법이 아니기에 그런 방법으로 왕이 되려 하지 않지요.

그래서 그는 사울을 살려 주고 하나님의 방법과 때를 기다립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기회를 놓치고 왕이 못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나중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왕이 되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고 메시아의 조상이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도 자기처럼 실수하시고 잘못 하시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야곱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도 그런 실수를 잘 저지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결코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코 늦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시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삭의 가족들은 다 실수했습니다. 다 잘못했습니다.
우선 에서는 자기의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는 잘못을 저질렀고, 이삭은 그런 에서를 사랑해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그에게 축복하려고 아내를 속이고 가족을 따돌리는 잘못을 범했으며, 리브가는 목적은 좋았지만 남편을 속이고 야곱에게 거짓된 방법을 가르친 잘못을 저질렀고, 야곱은 어머니의 말이 잘못되었지만 자기의 욕심에 집착해서 실제로 거짓말을 하면서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받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이런 그들은 그런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 톡톡한 값을 치르게 됩니다.
먼저, 이삭은 33절에 보면, 일이 그렇게 된 것을 알고 크게 떨었다고 했는데, 그 집안에 일어날 파탄을 미리 안 것입니다. 결국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콩가루 가정처럼 됐습니다.
그 책임과 고통을 누가 제일 많이 겪었겠습니까? 가장인 이삭 자신입니다.
그 다음, 리브가는 그 때문에 야곱을 먼 곳으로 보내어 영영 다시는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또, 야곱은 형 에서의 미움을 사서 집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서 그 때부터 20년 동안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했던 일과 똑같은 사기와 기만을 당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 이삭의 가정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삭과 리브가, 야곱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지켜집니다.
비록 야곱이 간교하고 흠과 티가 많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타향으로 보내셔서 20년 동안이라는 긴 세월동안 철저히 훈련을 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이름마저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야곱을 통해서 그의 열두 아들들을 다 하나님의 선민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이삭, 리브가, 야곱같은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은 실수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려도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이 말에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 의해서 차질을 빚으시고 바꾸어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처럼 불완전한 사람들, 우리처럼 실수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같지 않으심을 찬송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 뜻을 다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어 인간적인 방법을 취하기에 일이 더 어려워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그래서 죄도 잘 짖고 실수도 잘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십니다. 또 그 뜻을 온전히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구원을 얻습니다. 또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렇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댓가는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실수하고 죄를 지으면 그만큼 길이 멀어지고 그만큼 고생을 해야 하고 야곱처럼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한 목적을 위해 선한 방법을 사용하며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하시며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죄 짖지 않고 실수하지 않도록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목적만 옳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 방법도 옳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매사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낙심하지 마시고 묵묵히 그 연단을 받으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올바른 목적을 위해 올바른 방법을 택하며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다 누리는 우리 모두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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