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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에서 실패했거든 / 마 26: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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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실패했거든(마26:31-35) 

마 26:31-35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어떤 회사에서 사람이 필요해서 신문에 모집광고를 내었습니다. 그 광고를 보고서 7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시험을 쳐서 그 가운데 적당한 사람들을 뽑기로 했습니다.
시험은 간단했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색달랐습니다. 지원자들은 차례대로 줄을 서서 한 사람씩만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시험장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양 사방 벽에 큰 거울이 하나씩 걸려있을 뿐이었습니다. 지원자들은 그 거울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거울 위에 쓰여있는 질문에 맞으면 "예," 아니면 "아니오"라고 답안지에 적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첫번째 거울은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거울에 비친 이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두번째 거울은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여하에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세번째 거울은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까?"
마지막 네번째 거울은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만일 당신이라면 이 사람을 채용하겠습니까?"
그것이 시험의 전부였습니다. 시험을 다 치르고서 시험장 밖으로 빠져 나오는 사람마다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앉아서 수군거렸습니다.
"참, 싱거운 시험도 다 있네. 사람을 뽑으려면 정정당당하게 시험을 쳐서 실력으로 뽑아야지. 어린 아이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뭐야?"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 있는 듯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드디어 합격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70명 가운데 단 한 사람만 합격하고, 나머지 69명은 모두 떨어졌습니다. 합격한 사람은 네 가지 질문에 모두 솔직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회사는 자기의 실력을 뽐내면서 큰 소리치는 사람을 원치 않았습니다. 정직한 사람을 원했습니다. 자기의 부족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을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 줄로 생각했다가 넘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잘난 척 하다가 낭패를 당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기 위해서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큰 소리 쳤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그렇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그들 모두는 그 날 밤에 예수님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비록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렸지만, 예수님은 결코 그들을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말씀대로 다시 사신 후에 먼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넘어진 제자들을 다시금 일으켜 주셨습니다.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제야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들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그들은 잘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그들은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겸손해 졌습니다. 그리해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예수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그들에게 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기꺼이 주를 위해서 순교하는 담대한 신앙인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실패가 바뀌어서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실패가 성공으로 바뀌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제자들이 실패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그 원인을 살펴보면서 함께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제자들은 무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몰랐습니다. 성경 속에 이미 예언된 십자가의 사건도 몰랐습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했는지도 몰랐고,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해서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또한 마귀의 시험이 얼마나 무섭고 강한 것인지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기 자신들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만하다가 실패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맹인이 건넛마을에 있는 자기 친척집을 찾아갔습니다. 한참 놀다보니까 밤이 깊었습니다. 그는 부랴부랴 돌아올 채비를 하고서 친척집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친척이 맹인의 손에 초롱불을 들려주었습니다. 맹인은 그의 친척이 자기를 놀리는 줄 알고 화를 벌컥 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나를 놀리는 것입니까? 내가 앞을 못 보는 맹인인줄 알면서 이게 무엇입니까?"
그러자 친척이 그를 달래면서 말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왜 자네를 놀리겠는가? 이것은 자네가 보면서 가라고 주는 것이 아니고, 캄캄한 밤중에 마주보고 오는 사람이 자네와 부딪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주는 것일세. 자네가 이것을 들고 있어야 앞에서 오는 사람이 자네를 피해서 갈 것이 아닌가? 그러니 짐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들고 가게나."
그제야 맹인은 왜 친척이 자신에게 초롱불을 주는지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조심조심하면서 밤길을 걸어서 집으로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중간쯤 왔을 때입니다. "꽝!"하면서 앞에 마주보고 오는 사람과 부딪혀 넘어졌습니다. 맹인은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그는 부딪힌 사람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아니, 도대체 당신은 앞도 안보고 다니시오? 이 초롱불이 당신 눈에는 안보인단 말이오?"
그러면서 초롱불을 마구 흔들었습니다. 그제야 부딪힌 사람은 맹인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맹인이셨군요. 그래서 초롱불이 꺼졌는데, 그것도 모르고 안심한 채 걷고 계셨군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그와 같았습니다. 자기들의 초롱불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겠다는 생각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모든 것을 환하게 아시는 분이십니다. 31절 말씀을 보십시다.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슥13:7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라든지, 그 날 밤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는 일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다 아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뿐만 아니고 예수님은 현재 가룟 유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곧 제자들이 자기를 다 버릴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할 것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또 32절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지만, 사흘 뒤에 다시 살아나실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그곳에서 제자들을 만날 것임도 알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과거의 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일, 미래의 일까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하려고 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성경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마귀의 시험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지도 몰랐습니다. 자기 자신들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이길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내 실력을 믿고 큰 소리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힘을 의지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의지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실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 힘을 의지하지 마십시다. 주님의 손을 붙들고 주님을 의지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제자들은 자만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잠16:18의 말씀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이 앞서갑니다. 뒤에는 반드시 패망이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넘어졌습니다. 왜 넘어졌습니까? 살펴보면 우리의 마음 속에 거만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교만했습니다. 그래서 넘어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제자들이 특별히 베드로의 교만했던 모습을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조차도 부인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했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그러자 베드로는 또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틀리고 자기가 옳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관한한 베드로는 예수님보다도 더 잘 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교만이 어디 있습니까?
둘째로, 베드로는 자기가 다른 제자들보다도 더 월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신앙적인 면에서 다른 제자들과 다릅니다. 나는 절대로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남을 깎아 내리는 발상은 너무나 잘못된 생각입니다.
셋째로, 제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너무 과신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모든 제자들도 그와 같이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죽을 수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다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차라리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들의 부족함을 솔직히 시인하면서, "주님,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십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이 미국의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기 위해서 자기가 20년 동안이나 살았던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미국은 노예 문제로 인해서 위기적인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남쪽과 북쪽이 갈라지느냐? 그렇지 않으면 한 나라로 남아있느냐?"
이 정도로 심각할 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링컨을 전송하기 위해서 기차역에 몰려왔습니다. 그 때 링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나라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의 두 어깨 위에 놓인 짐보다도 어쩌면 제 어깨 위에는 더 무거운 짐이 놓여있습니다. 저는 언제 스프링필드로 돌아올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올 수도 없다는 심정으로 저는 지금 이곳을 떠나갑니다.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 워싱턴을 도우셨던 하나님의 손길이 저와 함께 해 주시기만 하신다면, 저는 실패 없이 이 시대적인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이 일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링컨은 겸손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그리해서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노예들을 모두 해방했습니다. 그 결과 링컨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손꼽히게 된 것입니다.
노예 해방과 관련해서 링컨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여성이 한 사람 있습니다. "Uncle Tom's Cabin(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라는 책을 써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토우부인입니다. 그는 글로써 노예해방 운동의 불씨를 모든 사람들에게 당기게 했습니다.
한 번은 링컨 대통령과 스토우부인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스토우부인을 보는 순간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링컨 대통령은 "Uncle Tom's Cabin"이라는 책을 쓴 스토우부인이 남성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기고, 여장부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까 너무나 가냘프게 보였습니다. 바람이라도 한 번 세차게 불면 날아갈 버릴 듯한 나약한 모습의 여성이었습니다. 몸도 왜소했습니다. 그래서 링컨 대통령은 자기의 솔직한 심경을 스토우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Uncle Tom's Cabin」을 쓰신 분이 이렇게 연약한 여성인 줄 몰랐습니다."
그 때 스토우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책은 제가 쓴 것이 아닙니다. 노예해방을 원하시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입니다. 저는 그저 잠시 그 분의 대필자가 되어드렸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하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고 하지 마십시다. 예수님을 언제나 앞에 모시면서 예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도록 하십시다. 그래야 무슨 일이든지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제자들은 담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큰 무리가 몽치와 검을 들고서 예수님을 붙잡기 위해 나왔을 때, 그들은 두려워서 모두 달아났습니다. 죽음을 무서워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 옛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독자 이삭을 내게 번제로 바쳐라."
아브라함은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히11:19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 지라."

아브라함은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지라도 얼마든지 하나님은 이삭을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기꺼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실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여러 번 죽었던 사람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죽었던 딸을 살리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죽었던 아들도 살리셨습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도 다시 살리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이 부족해서 죽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나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서 담대히 걸어가셨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32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자신이 다시 사실 것임을 확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담대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절로 담대한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주후 390년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의 황제 이름이 데호도시우스였습니다. 데호도시우스 황제가 잠시 데살로니가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때 데살로니가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로마의 통치를 반대하고서 독립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데호도시우스 황제의 장군 가운데 한 사람이 성난 폭도들에 의해서 살해를 당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데호도시우스 황제는 군인들에게 보복명령을 내렸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이 데살로니가 시민 수 천명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그래서 폭동은 진압이 되었습니다.
그 뒤에 데호도시우스 황제는 밀라노로 돌아왔습니다. 주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서 성전에 왔습니다. 당시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는 성전 문을 막고 못들어가게 했습니다.
"못들어갑니다."
황제가 물었습니다.
"왜 못들어갑니까?"
암브로시우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황제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무참한 시민을 학살하고 나서 감히 무슨 염치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만나려고 하십니까? 못들어갑니다."
그 때 데호도시우스 황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윗 왕도 죄인이었잖소?"
그 때 암브로시우스는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감히 황제가 다윗 왕의 흉내를 내려고 하십니까? 그렇다면 황제께서도 다윗 왕처럼 회개를 하셔야지요. 황제는 다윗 왕처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결국 데호도시우스 황제는 성전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자기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암브로시우스의 말을 달게 여기고, 8개월 동안이나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성탄절을 기해서 비로소 그는 교회의 공식적인 사면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는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황제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담대함을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주시기를 바랍니다.
왜 제자들이 실패했습니까? 그들은 무지했습니다. 교만했습니다. 담대하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떠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말씀대로 다시 사신 후에 먼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다시금 일으켜 주셨습니다.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자기 자신들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겸손해 졌습니다.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자기들도 이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했습니다. 수많은 핍박이 있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 바쳐 순교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실패가 바뀌어서 성공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믿음을 저버리고 예수님을 부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를 일으켜 주십니다. 우리를 다시금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너를 의지하지 말아라. 이제는 나의 손을 붙들고 나만 바라보며 나만 의지해라."
더 이상 우리의 연약한 모습과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예수님만 의지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걸어가는 우리들의 발걸음에 예수님이 주시는 축복과 승리가 언제나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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