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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 / 행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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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행9:31)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제가 어떤 책에서 읽은 글을 잠시 소개해 드립니다.
그 언제일지는 몰라도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6시가 되어도 동편이 밝아 오지 않는다.
7시가 되었는데도 아직 캄캄하다.
정오가 되었는데도 오밤중인 것처럼 어둡고 좀처럼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다.
청아한 아침 새들의 지저귐은 들을 수가 없고,
음산하게 올빼미의 우는 소리가 들리고,
박쥐가 푸드득 날으는 소리에 소스라친다.
멀리서 들리는 여우의 긴 울음소리가 음산하다.
암흑과 같은 오후에 그는 호롱불을 켜 들고 교회로 갔다.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두려움에 떨고들 있고,
한 편에서는 울면서 기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앞에서 목사님이 찬송 부르기를 시작했다.
모두가 따라서 불렀다.
부르고 또 불렀다.
불안한 마음이 좀 가실 것 같았다.
모두 기도하자고 했다.
어떤 이는 조용히, 또 어떤 이는 큰소리로 기도했다.
모두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동안
동편이 훤하게 밝아 왔다.
붉은 태양이 떠올라 왔다.
검은 하늘이 붉어졌다가 파란색으로 변해 갔다.
이제 세상은 다시 밝아졌다.
모두가 일제히 환성을 올리며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양하라,
만물을 지으신 여호와께 소리 높여 찬양하라.
큰소리로 찬양하고는 서로가 부둥켜안고는 춤을 추며 기뻐했다."

물론 누군가가 가상적으로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언뜻 들으면 황당한 소리같이 들리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무엇인가 깨달음을 주는 이야기인 줄 압니다.
오늘 우리는 새해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마음가짐으로 새해 첫 주를 맞이하셨습니까? 어제 떠올랐던 태양이 그저 오늘도 떠올랐을 뿐이라는 식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맞이하셨습니까? 물론 내일이면 또 다시 태양은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우리가 그 태양을 다시금 볼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또 그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서 살아갈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새해 첫 주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우리에게 귀한 생명을 주신 것이 우리 마음대로 살라고 허락하신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생(生)은 곧 명(命)입니다. 그래서 생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명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값있고 보람있게 살라고 금년 한 해 우리에게 또 귀한 생명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지혜 있는 자가 되어서 세월을 아끼며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금년도는 하나님이 또 우리에게 귀한 표어를 주셨습니다.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교회"입니다. 행9:31의 말씀입니다. 여기에 보면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 몇 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 자신들이 그러한 모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보십시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여기에 보니까 초대 교회의 모습이 다섯 가지로 아름답게 묘사되었습니다. 첫째로, "평안하여"입니다. 둘째로, "든든히 서 가고"입니다. 셋째로, "주를 경외함과"입니다. 넷째로, "성령의 위로로"입니다. 다섯째로, "수가 더 많아지니라"입니다. 금년도 우리 교회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초대 교회는 평안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우선적으로 평안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는 곳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아야 우리 자신들이 평안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평안할 수 있고, 우리가 그 축복 속에서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시끄럽고 평안하지 못하면, 우리가 그 축복을 어디에서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는 일이 제대로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교회는 최우선적으로 주님의 평강이 넘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초대 교회가 어떻게 그토록 평안할 수 있었는지, 본문을 다시 보십시다. "그리하여"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 본문 앞에서 초대 교회가 평안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 보면 사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 사울이 본시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교회를 몹시도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자가 아니고, 교회를 허는 일에 열심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가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종이 되었습니다. 복음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담대하게 나아가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복음을 힘차게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과 사귀기를 원했지만,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그를 믿어주지 못했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저 사람이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저러지? 교회 안까지 들어와서 또 무슨 음모를 꾸미려고 저러나? 왜 우리를 몽땅 잡아가려고 그러나?" 그런 생각이 왜 안들겠습니까?
그래서 누가 사울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사이에서 다리를 놓아주었습니까?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믿어주었습니다. 그의 과거를 따지지 아니했습니다. 그를 변화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 왔습니다. 사울을 대신해서 사울의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제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기쁜 마음으로 사울을 받아 주었습니다. 그의 모든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평안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사울에게 있었던 변화가 먼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모르게 교회를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마귀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과거의 사울처럼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허는 일에 열심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주님의 몸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힘써 교회를 지키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에게는 바나바와 같이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고 용납해 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과거를 따지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나를 용납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 사람의 과거도 묻지 아니하시고, 그대로 용납해 주시는 것입니다. 나를 변화시킨 하나님이 왜 그 사람인들 변화시키지 못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떤 사람의 과거를 자꾸 들추어 내면서 흉보고 헐뜯고 비난합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교회가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바나바와 같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어야 합니다. 용납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의 놀라우신 평강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할 것입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 그 넘치는 평강을 우리의 가정과 생업이 풍성히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금년 한 해 주님의 놀라우신 평강이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초대 교회는 든든히 서 나아갔습니다.

사람이 너무 평안하면 해이해지기 쉽습니다. 영적으로 느슨해지기 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든든히 서 가는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회는 잠자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살아있는 교회였습니다. 역사하는 교회였습니다. 힘있는 교회였습니다. 권세 있는 교회였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 얼마나 핍박이 많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믿음 위에 굳게 섰습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돌에 맞아 순교합니다. 고통이 너무나 심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환하게 빛났습니다. 얼마나 그의 마음이 평안했으면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얼굴이 천사와 같았겠습니까? 심지어 그는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들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사랑해 주었습니다. 스데반은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지없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엄청난 핍박 속에서도 그는 흔들리지 않고, 신앙 위에 굳게 섰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비천한 여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수많은 유대 교회 지도자들이 다 모인 공회 앞에서 그는 큰 소리로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 것인지 한 번 판단해 보아라!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말할 수밖에 없노라!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더 마땅하니라!"
그들은 외적인 핍박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 위에 굳게 섰습니다.
그들이 외적인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든든히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내적으로도 그만큼 탄탄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모이면 열심히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찬양도 뜨거웠습니다. 사도들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배웠습니다. 그들은 사랑도 풍성했습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모든 재물을 통용하면서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열심히 구제도 했습니다. 그들은 온 백성의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초대 교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습니다. 방언의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 뒤에 보면 애니아라는 중풍병자가 나음을 입은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비다라는 여성도가 죽었다가 다시금 벌떡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초대 교회는 온갖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는 권세 있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힘있는 교회, 권세 있는 교회, 든든히 서 나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 산정현 교회를 신축하고 나서 헌당예배를 할 때 이러한 세 가지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첫째, 오, 하나님이여! 이곳은 하나님이 계신 전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둘째, 이곳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셋째, 아무리 수가 많아도 바람 한 번 불면 다 날아가 버리는 쭉정이가 모인 곳이 아니고, 수야 얼마가 되든지 간에 알곡들로 채워지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쭉정이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알곡이 되어야 합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아니고, 반석 위에 든든히 서 있는 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금년 한 해 주 앞에서 든든히 서 나아가는 귀한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는 주를 경외함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교회의 권세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앞에서 두려워할 줄 알았습니다. 그 두려움은 경건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신령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코람 데오(Coram Deo), 곧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서 있다"라는 신전의식에서 나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행5:1이하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자기의 땅을 팔았습니다. 팔고 나서 돈을 보니까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탄의 유혹이 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일부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가 다 인양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바쳤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는 아나니아의 마음 속에 있는 사탄의 역사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아나니아를 책망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성령을 감히 속이느냐?"
그러자 아나니아가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버렸습니다. 그의 심장이 멎어버렸습니다. 젊은이들이 그의 시신을 메고서 장사하러 나갔습니다. 한 세 시간쯤 지난 뒤에 그의 아내 삽비라가 자기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줄 모르고서 태연하게 들어왔습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땅값이 이것뿐이냐?"
"예, 이뿐입니다."
베드로가 또 그를 질책하였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고자 하느뇨?"
그 순간 삽비라도 고꾸라져 버렸습니다. 그의 영혼이 떠나가 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보고 들으면서 어찌 그들이 주를 경외하는 마음을 갖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현대 교회에 있어서 가장 큰 약점 가운데 하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식어져 있습니다. 마치 교회에 모이는 것을 하나의 친교 단체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생각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경배 드리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올라와야 할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내가 만나고 돌아간다." 이와 같이 주를 경외하는 마음이 금년 한 해 우리 모두에게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초대 교회에는 성령의 위로하심이 있었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가의 다락방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요14:16의 말씀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보혜사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하늘 나라로 가심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똑같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행1:8의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약속하신 그대로 제자들은 오순절을 기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매 순간마다 성령의 손길을 강하게 느끼면서 살았습니다. 성령의 위로하심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그리할 때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많은 것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또 배웠습니다. 제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갈란다." 그러면서 그물을 들고 디베랴 바닷가로 가버렸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부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해서 도무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는 달라졌습니다. 하루에 삼천명씩 오천명씩 그의 설교를 통해서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웅변적으로 잘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성령의 위로하심이 그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에게도 성령의 위로하심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더 이상 벙어리 신자가 아니고, 담대하게 입을 열어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가운데 첫번째인 사랑이 풍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금년 한 해 성령의 위로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해서 우리 모두가 사랑의 마음을 품고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을 실천하며 서로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섯째로, 초대 교회는 놀랍도록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본문 제일 끝 부분에 보니까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믿는 자의 수가 삼천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오천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수는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말하자면 초대 교회는 구원의 방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했던 것입니다.
물론 초대 교회 성도들이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데 절로 교회가 부흥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도 그런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저 우리끼리 똘똘 뭉쳐서 신앙 생활을 잘 하고, 주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가 고이 다시 오신 주님을 맞이합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들끼리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교제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인 "너희는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라"는 이 사명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강압적으로 핍박을 통해서 흩어 놓으셨습니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께서 주신 사명을 그들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교회가 본문에 있는 말씀처럼, 온 유대와 더 나아가서 갈릴리와 사마리아에까지 비로소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사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부터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담대하게 나아가서 복음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남들이야 자기를 변절자로 부르든지 말든지 상관할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에게 미친 사람이라고 흉보든지 말든지 상관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만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혼자만 마음에 품고서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그를 통해서 수많은 이방인들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많은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복음의 열정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나 혼자만 가슴에 품고 살지 맙시다. 우리의 입을 열어서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의 사랑을 외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더 확장되어 나가고, 우리 교회가 구원의 방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초대 교회는 평안했습니다. 든든히 섰습니다. 주를 경외했습니다. 성령의 위로하심이 함께 했습니다. 놀랍게 부흥하는 교회였습니다. 이 다섯 가지의 아름다운 초대 교회의 모습이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우리들의 모습이 또한 우리 교회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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