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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와 극복 / 사 37: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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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극복(사37:14-20) 

사 37:14-20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글을 받아 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놓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자로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왕들이 과연 열국과 그 땅을 황폐케 하였고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이들은 참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으로 주만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어렵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위기적인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때 우리가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뜻밖에도 교회 바로 앞에 큰 술집이 생겨났습니다. 그로 인해 교인들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교회를 왔다갔다하면서 그 술집을 쳐다보아야 하니까 마음이 결코 편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있는 여전도회원들이 중심이 되어서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오, 하나님! 어찌하든지 저 어두움의 권세를 속히 이곳에서 물리쳐 주시옵소서."
여전도회에서 시작된 기도 운동은 교회 전체에 확산이 되었습니다. 급기야 교회의 모든 교인들이 한마음이 되어서 40일을 작정하고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40일 동안의 작정기도가 끝나고 난 뒤 얼마 안되어서 술집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적자 운영으로 큰 빚을 지고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을 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가 생겨버렸습니다. 술집 주인이 교회를 걸어서 소송을 제기해 온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술집이 망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교회가 그렇게 기도했기 때문에 자기가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책임을 지고 자기에게 일백만 달러를 물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재판이 열렸습니다. 양 측 모두 법정에 섰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돈 일백만 달러 때문에 서로가 마음에도 없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술집 주인은 교회도 안 다니는 사람이 기도 때문에 자기 술집이 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반대로 교인들은 분명히 40일 동안 작정하고 기도해 놓고, 기도가 응답이 되니까 일백만 불이 무서워서 "무슨 소리냐? 안망할 집이 기도한다고 망할 수가 있느냐? 어디 와서 생떼를 쓰느냐? 그것은 억지다!"라면서 기도의 능력을 부인해 버리는 것입니다. 술집 주인은 기도 때문에 자기가 망했다고 하고, 교인들은 기도와는 상관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판사라면 어떻게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판사는 양쪽의 주장을 다 듣고 난 뒤에 명판결을 내렸습니다.
"술집 주인은 이 다음에 하늘 나라에 가서 하나님께 일백만 달러를 직접 받으시오."
술집 주인의 생각에 교인들이 기도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술집을 망하게 하신 것이라고 보니까, 하나님께 가서 일백만 달러를 보상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판사는 뼈있는 말을 한 마디 남겼습니다.
"내 생각에는 술집 주인이 교인들보다는 훨씬 더 믿음이 좋아보이는군요."
술집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인정하는 주장을 자꾸 하고, 반대로 교인들은 기도의 능력을 부정하는 듯한 주장을 하니까 판사가 보기에는 술집 주인이 교인들보다도 더 믿음이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 때로는 확신 없이 반신반의하는 듯한 태도로 신앙 생활을 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막11:24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의 믿음이 굳세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모든 어려운 문제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힘이 되셔서, 어떠한 위기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히스기야 왕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했는지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큰 위기가 임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대군을 이끌고서 쳐들어 온 것입니다. 그 당시 앗수르는 세계 최대의 강국이었습니다. 이미 북방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남방 유다의 여러 성읍들도 앗수르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유다 백성들이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겠습니까? 앗수르 왕 산헤립은 자기 부하 랍사게를 보내었습니다. 랍사게는 예루살렘 성문 앞에 서서 크게 고함을 지르면서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또 앗수르 왕 산헤립은 자기 부하를 시켜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히스기야 왕에게 협박하는 편지였습니다.
"빨리 항복해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그러나 항복하지 않고 대항하면 잔인하게 모조리 짓밟아 버리겠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러한 때 그가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편의상 세 대지로 나누어서 오늘 말씀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왕 산헤립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또 그와 맞서 싸우겠다고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즉시 어디로 올라갔다고 했습니까?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히스기야의 모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아는 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나의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리가 힘있게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8대 당회장이셨던 김익두 목사님은 정말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워낙 유명하셔서 그 분에 관한 일화도 아주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한 토막입니다.
한 번은 김목사님이 평양에 가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시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씀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성황리에 부흥회를 마치고 난 뒤 목사님은 다른 곳으로 가시기 위해 차를 타고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옆에는 어떤 젊은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목사님에게 먼저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 실례합니다만, 손님께서는 혹시 지금 평양에서 한창 날리고 있는 김익두 목사에 대해서 아십니까?"
김익두 목사님이 바로 옆에 앉아있는데 그것도 모르고서 김익두 목사님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 그 사람에 대해서 소문으로 들은 말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청년은 신이 나서 떠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그래요? 나는 김익두 목사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그 분은 평양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말씀이 얼마나 능력이 있고 은혜로운지 모른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목사가 되기 전에 유명한 깡패였답니다. 개망나니와 같은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변화받고 유명한 부흥사가 된 것입니다."
자기가 김익두 목사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그렇게 떠벌렸던 것입니다. 물론 그가 목사님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깡패였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개망나니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것도 알았습니다. 지금은 목사요, 유명한 부흥사요, 그의 말씀이 은혜롭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장본인인 김익두 목사님이 옆에 앉아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몰랐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게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삶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붙들고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의 삶 속에서 비로소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하셨습니까? 낙심하지 마세요. 우리 곁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그 은혜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왜 하나님이 우리를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저를 한 번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릎이 떨릴 때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라."
힘들고 어렵고 무릎이 떨리는 듯한 무서운 일을 당했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환난 가운데서 구원해 주십니다.

둘째로, 히스기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기도로서 모든 것을 해결했습니다. 나라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그는 기도함으로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뒤에 그가 죽을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그는 기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히스기야의 기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좀 더 구체적으로 히스기야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히스기야가 어디에서 기도를 했습니까? 침실에서 기도했습니까? 왕궁에서 기도했습니까? 오늘 본문 14절을 보니까 "여호와의 전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전에서의 기도를 절대로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뒤에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그 때 그는 일어설 기력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그 때는 침상에 누운 채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얼굴을 벽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왜 벽쪽을 바라보고 기도했을까요? 벽 너머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습니다. 그 옛날 모세도 기도할 때는 여호와의 성막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있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곳을 바라보면서 기도했습니다.
"새벽기도하는데 꼭 교회에 와서 기도해야 됩니까? 철야기도하는데 멀리 떨어져 있는 기도원까지 가서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까?"
이런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성전에 올라와서 예배를 드리고, 성전에 올라와서 기도하는 것을 귀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요즘 조금 바빠서요."
이와 같은 핑계를 대지 마시고, 차라리 일에 게으르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게으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일에 실패가 없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즘 조금 피곤해서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새 힘을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침상에 누운채 어쩔 수 없이 성전 쪽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건강을 주셨을 때, 성전에 올라와서 기도하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서요."
사람을 보고 교회에 나오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교회에 나오셔야지요. 기도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1:1관계입니다.
이유야 어떠하든지 간에 성전 기도를 중단하시거나 포기하신 분은 다시금 성전 기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곧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의 삶을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형통케 하시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5절 말씀을 보니까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직접 성전에 올라가서 자기 목소리로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왕이었습니다. 지금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할 일이 많았겠습니까? 그는 선지자를 대신 보내거나 제사장들을 대신 보내어서 기도하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직접 성전에 올라가서 자기 목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내 목소리로 내가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때 제일 좋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겼습니다. 그럴 때 구청장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시장에게 부탁하기도 합니다. 더 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장관에게 부탁하든지 대통령에게 부탁을 합니다. 대통령도 할 수 없는 큰 일은 누구에게 부탁하면 됩니까?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부탁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내 일을 부탁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장관을 만나거나 대통령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마음이 설레는 일입니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영광된 일을 어찌 제 3자에게 부탁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직접 찾아 뵙고, 내가 직접 부탁을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는 내가 직접 성전에 올라가서 내 목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가장 좋은 것입니다.
또 히스기야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16절 말씀에 보니까 그 내용이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오, 하나님! 지금 앗수르 왕 산헤립이 하나님을 저토록 훼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어서 우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그리해서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되신 하나님이신 것을 만백성이 보아서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히스기야는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드높이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그의 기도를 왜 하나님께서 응답하여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이 히스기야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해 주셨는지 살펴봅니다.

먼저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모든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2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일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다 들으셨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도 들으실 것입니다. 듣고 계십니다. 왜 들어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빠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빛이 제일 빠르다고 생각하십니까? 빛은 1초에 30만km를 달립니다. 1초에 지구 일곱바퀴 반을 돕니다. 빛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릅니다. 그러나 우주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광활합니까? 빛의 속도로 수십억년을 달려야 겨우 도달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별들도 많습니다. 우주는 정말로 거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좌는 그 우주를 넘어서 셋째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니 빛이 셋째 하늘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달려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기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에 우리의 기도는 순식간에 첫째 하늘에 대기를 넘어서, 둘째 하늘인 천체를 넘어서, 셋째 하늘인 하나님의 보좌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무엇이 우리의 기도보다도 빠르겠습니까?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는 무엇입니까? 대포소리입니까? 천둥소리입니까? 그런 소리가 아무리 커도 한 나라 밖을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하늘 보좌에까지 상달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기도보다도 더 우렁찬 소리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위력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핵폭탄과 같은 원자무기가 힘이 있습니까? 아무리 핵폭탄이 위력이 있다한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어떻게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는 결코 시시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우렁찬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즉각적으로 들어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기도도 들어주십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3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대저 내가 나를 위하며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며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지키시겠다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시는데 누구를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히스기야를 위해서도 아니고, 유다 백성들을 위해서라고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예루살렘 성을 지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예루살렘 성을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세수를 합니다. 그리고 화장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얼굴이니까요. 우리가 자녀들에게 예쁜 옷도 입히고, 맛있는 음식도 먹이고, 용돈도 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도성이니까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게 있는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다. 하나님께 드리시면서, 하나님께 맡기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네 사업을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그것을 나에게 맡겼은즉 내가 나를 위하여 네 사업을 지켜주리라. 네 건강을 염려하지 말아라. 네 가정을 걱정하지 말아라. 네 자녀를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그것들을 나에게 맡겼은즉 내가 나를 위하여 지켜주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다 맡기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 왕 산헤립과 그의 군사들을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36절 말씀을 보십시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 팔만 오천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시체 뿐이라."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늘의 천군 천사를 동원하신 것입니다. 하룻밤에 앗수르 군사 십 팔만 오천인이 송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하나님을 훼방하던 앗수르 왕 산헤립은 37∼38절에 있는 말씀 그대로 그의 두 아들의 손에 암살을 당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심판해 버리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스기야의 기도 앞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무력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의 군대가, 그의 협박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직접 나가서 싸우는 것이 더 좋습니까? 기도하는 것이 더 쉽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나가서 피흘리며 싸우는 것이 더 쉽겠습니까?
"기도는 좋지 않은 거야. 쓸모 없는 거야. 필요 없는 거야."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가 좋은 줄은 알면서도 왜 기도를 안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고아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지 뮬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를 쉬지 않고 계속해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평생 동안 끊임없이 기도해서 오만 번 이상의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 우리는 기도하지 않습니까?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위기를 당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계십니다. 인간적인 지혜를 짜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강구하려고 하지 마십시다. 히스기야처럼 그런 일은 다 미루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먼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 옛날 히스기야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던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에게도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이 처해있는 어려운 상황이 어떠한 것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다 해결함 받으시고, 주님의 평강을 우리의 마음 속에 회복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갈릴리 거센 풍랑 속에서도 고요히 잠을 청하셨던 예수님의 평강이 우리의 평강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이 평강을 붙들고 이번 한 주간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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